glittered with. SexyDolphin

1. 유물론에 기초한 의식의 흐름

 (가) 우주는 물질의 반영을 통해 의식의 흐름을 창조한다
 (나) 의식의 흐름은 생물이 제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단지 끊임없이 흐르고 있을 뿐이다. 
 (다) 의식의 흐름은 의식과 그의 여집합인 잠재의식의 합이다. 따라서
         의식, 잠재의식 공히 생물이 제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라) 생물로 존재하는 순간부터 생물로 소멸하는 순간까지 의식의 흐름은 멈추지 않은 채 끊임없이 흐르고 흐른다.



 따라서 우리가 ‘이 사람, 의식이 없는데?’ 라 말하는 상투적인(folk) 용례의 '의식' 은 유물론에 기초하면 틀렸다.
 의식의 흐름은 생물을 찾아다니는데 생명활동이 지속되는 한 의식의 흐름 역시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물론은 이 의식의 흐름에 대한 '자아' 의 불가항성을 근거로 한다.

 따라서 모든 생물에게 (유물론에 기초한) 의식의 흐름은 무제한적으로 공평하게 제공된다



 (마) 의식의 흐름을 구성하는 첫 번째, 의식은 (자아 관점에서) 인지가 집중된 효과를 의미하고
                                                     두 번째, 잠재의식은 (자아 관점에서) 인지가 분산된 효과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생물이 스스로 제어한다 착각했던 ‘그것’ 은 무엇이었는가? 사회화된 따라서, 학습된 ‘자아’ 다.
 아마 진화심리학은 이 ‘자아의 역학’ 을 다루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일반인들이 진화론에 거부감을 표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필자 역시 유물론과 진화론에 거부감을 표출했던 과거를 돌이켜보면 그것은 ‘의식’ 과 ‘자아’ 를 동일시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식까지 제어할 수 있다 ‘착각’ 했었는데 뜬금없이 유물론과 진화론이 태클을 걸어주니 성가실 수밖에. 

 그러나 유물론자들이 다듬은 의식의 개념과 진화심리학자들이 다듬은 진화 개념의 맥락이 무엇인지 파악한 이상
 더 이상의 거부감은 없다. 오히려 놀랍도록 아름다운 (그 둘의) 우주의 창조에 대한 철학에 exciting 할 뿐이다.

 우주는 우리가 살아가기만 해도 그 대가로 ‘의식의 흐름’ 을 죽는 날까지 제공해 주지 않는가!
 (자살은 정말 하지 말아야 한다. 삶만큼 그래서, 주어지는 ‘의식의 흐름’ 만한 ‘축복’ 이 그 어디에 있다고!)


 
2. 돼지는 왜 인간의 무차별적 도축에 저항하지 않는가?

 유물론에 기초한 ‘의식의 흐름’ 과 진화론의 ‘자아’ 개념을 바탕으로 철학을 다시 시작해보자.

 (바) 필자의 철학은 필자에게 끊임없이 제공되는 의식의 흐름에서 그 원동력을 취하여, 자아를 통해 표출된다.

 우리에서 풀 뜯는 토끼에게도 의식의 흐름이란 있다. 그러나 인간만큼의 그럭저럭한(not-so-bad) 자아는 갖추지 못하고 있다.
 토끼 사회에서 토끼가 수행할 수 있는 사회화, 학습의 양과 질을 떠올려보면 간단히 답 나온다.

 그러나 인간의 그럭저럭한 자아는 인간 사회에서 인간이 수행할 수 있는 사회화, 학습의 양과 질을 떠올려보면
 진화에 대한 개인의 심리, 바람만큼 경험할 수 있다. 즉,

 (사) 인간의 영악함은 이 ‘자아의 양상’ 에 의해 그 현상이 결정된다 하겠다.



 돼지는 왜 인간의 무차별적 도축에 저항하지 않는가?

 의식의 흐름이 있어도 그 원동력을 취할만한 ‘자아’ 가 사회화, 학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재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안전공학을 추구하고 사회 안전망을 구축한다.

 (아) 의식의 흐름이 있고 그 원동력을 취할만한 ‘자아’ 가 사회화, 학습되기 때문이다. 비로소 
 
        인간은 ‘자아’ 를 사회화, 학습시킬 수 있는 진보적 시스템을 바라게 되는 것이다.

 이쯤되면 약육강식의 계급구조보다 진보적 시스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진화적 이점’ 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요구가
 ‘매우 자연스러운 진화 흐름’ 임을 목도하게 된다. 아마도 이 진화의 흐름은

 (자) 생존 경쟁으로서의 진화에 대한 무상함을 깨달게 된 사회 구성원들이
        생존 경쟁에 투입하지 않아도 될 잉여 원동력을 진보적 시스템에 재투자하여 더 좋은 새 전리품을 얻으려는 시도이다.

--- to be continued in 3rd sto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