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진중권과 스티브 잡스에 대해 썼던 글이 생각나서...그때 좌파에게 국가 경쟁력이란 어떤 의미인가도 물었지요. 그런데 오늘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좌파에게 전문성이란 무엇인가?"

일단 진중권이 스티브 잡스를 언급했던 그 강의 제목은 '미학으로 세상 읽기'였죠. 그런데 미학 이야긴 거의 없고 정부와 사회 비판이 주였다고 합니다. 전 그 강좌를 보지 않았으니 뭐라 말하긴 어렵지만 만약 제가 참석했다면, 만에 하나 강의료까지 지불했다면 환불해달라고 요구하고 싶을 만큼 화가 났을 겁니다. 

정부에 대한 입장 차이가 아니라 그 강좌가 모름지기 담아야할 내용이 어긋난다고 생각해서겠죠. 가령 전 강의할 때 교육 내용상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정치나 사회 현상, 혹은 제 개안사에 대한 언급은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수강생들에게 강의 시간은 그야말로 돈이고 전 수강생들이 낸 돈 이상의 전문적인 내용을 전달해야할 의무가 있으니까요.

오해 안하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지금 하려는 이야긴 진중권을 비판하려는게 아니니까요. 진중권도 대학 강의의 경우 정부비판으로 수업 시간 때우지는 않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일단 이런 생각을 좀 하셨으면 해요. 가령 우파 미학자가 있다 칩시다. 그의 강의 제목이 '미학으로 세상 읽기'였다고 해봐요. 개인차가 있겠지만 제가 아는 상당수 우파 인사들은 미학 이야기로 대부분을 채웟을 겁니다. 그들 다수는 그게 자기가 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겠죠. 또 그들 다수는 지나가는 말로면 모를까 교육 제도의 혁신이니, 국가 경쟁력이니, 미래형 인재니와 같은 거창한 이야기는 피했을 겁니다. 국가 경쟁력에 대한 질문이 나오면 '그건 제 전공이 아니라서...'라며 피하거나 왜 지금 그런 질문이 나오냐는 식의 황당한 표정을 짓겠죠. 제 말을 조금 더 이해하고 싶으시면 요즘 유행인 최고 경영자 인문학 과정에 대한 책을 참조하세요. 가령 청 왕조에 대한 강의면 현대적 의미에 대해 살짝 언급한 뒤 청왕조에 대한 이야기로 채웁니다. 질문도 그 내용을 심화시킨 방향으로 이뤄지죠.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긴 진보 진영의 제너럴리스트는 차고 넘치는데 전문가적 식견을 가진 인물의 비상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물론, 진보 진영이 갖고 있는 전문성도 있을 겁니다. 노동이나 농민 문제 등이 그렇겠죠. 그렇지만 국가 운영이란 측면에서보면 그런 주제에 대한 우파 진영의 전문가도 차고 넘칩니다.

한가지 더 예를 들죠. 진보 진영의 대표적인 영화 평론가를 들라면 진중권을 드는 사람이 꽤 있을 겁니다. 조금 죄송한 이야깁니다만 제가 보기에 영화 평론가로서의 진중권은 별로 진보적이지 않습니다. 전 오히려 정성일씨 평론이 더 급진적이고 래디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대개의 사람들은-지명도를 떠나- 정성일씨가 더 진보적인 평론가라는 인식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왜 이런 착시가 벌어졌을까요?

제가 보기엔 두가지가 원인입니다.

1) 하나는 대중적 지명도로 말미암은 현상입니다. 이건 뭐 그럴 수 있다고 쳐요.

2) 이게 전 상당히 의미심장하다고 보는데...많은 사람들에게 진보진영은 제너럴리스트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는 것입니다. 부지불식간에 전문가들은 중도나 우파 진영에 속해있다고 보는 것이죠. 이런 이미지는 올소독스 혹은 속류 좌파에 의해 강화되죠. 중간 계층이나 기득권 계층은 진보의 주력이 될 수없다...이런 주장이 횡행하면 어떻게 되느냐. 상당수 대중에게 전문가=기득권층=우파 혹은 중도 정도로 인식하게 됩니다.

물론 이런 제 주장엔 진보 진영에서도 볼멘 소리를 할 수 있으리라 봐요. 단적으로 진보 진영의 역량이 약하니 전문가 집단이 외면해왔다고 보는 것입니다. 

일리가 있지만 그게 전부일까요?

제가 볼 땐 역시 그렇지 않습니다. 전 오히려 진보진영 스스로 전문 영역보다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담론을 더 선호하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었다고 봐요. 그러니 가끔 유명 인사가 진보 정당을 지지해도 걍 이미지 활용 정도에서 끝나는 거지요. 당장 진보 진영이 반짝했던 지난 정권 당시를 떠올려봐도 됩니다. 그때 민주노동당에서 사회 각계의 전문직 인사들을 영입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진보 진영은 전문가 집단과 거리가 멀다는 이미지 탓에 설령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전문가 조차도 진보 진영의 일원으로 묶이기를 꺼리는 악순환이 벌어지죠. (까놓고 말해 진보 진영에선 다양한 성향의 전문가 집단이 유입될 경우 어떤 순혈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두려움도 무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지 않나요? )

조금 도발적인 질문을 던져보죠. 진보 정당에 대기업 임원 출신이 들어올 수 있을까요? 대기업 임원은 그만두고 이용철 변호사 같은 분이 진보 신당이나 민주 노동당에 가입한 뒤 최고 위원에 선출되고 출마할 수는 있을까요? 당장 이모 감사관 같은 분도 결국 진보 정당에서 뿌리내리기에 실패했습니다.

그럴 수 없다면,  과연 진보 정당은 어떻게 수권 정당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요? 그냥 지금 있는 한 줌의 전문가들이 자기 분열 혹은 증식하여 수권 이후를 감당할 만한 전문 인력을 키워낼 수 있을까요? 아니면, 그 이념적 스펙트럼 혹은 문화적 다양성의 범주를 넓혀 꽤 가운데로 나간 전문가들을 영입하는게 지금이라도 취해야할 전략일까요?

사실 제가 요즘 탐독하고 있는 책이 미래 경영 전략이니 뭐 이런 것들입니다. (머리에 쥐납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런 책들은 대체로 우파의 전유물이라고 간주된다. 조직 체계론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런 분야에 대해 입장 없이 맑스나 푸코 등만 읊어도 과연 수권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