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변응만변님의 글에 대한 리플인데, 리플로 쓰기에는 약간 길어질 것 같아서 그냥 본문에 씁니다. 지역주의와는 별로 관련이 없는 글인데 글 제목은 저렇게 되어버렸네요...그리고 리플로 쓴 것이라 글이 조각조각 나뉘어져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1. 계급정당문제
사회의 균열점을 찾아내서 그것을 ''정치화'하는 것은 정당이 블루오션을 찾는 당연한 정치적인 행위이니, 이불변응만변님의 말씀대로 정당의 다양성을 위해 이런저런 균열점을 찾아내는 것도 맞는 말입니다.

다만 인위적으로 서구식 정당문화를 우리나라에 이식하기 위하여 엄연히 존재하는 현재의 양당체제를 "이념적으로 협애한 비정상적인 정당체제"로 단정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정치화되지 않은 종교,낙태를 정치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나, 87년 이래로 꾸준히 시도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그 성과가 미약한 계급정당의 추구를 마치 "정당민주주의의 완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주장하시는 것은, 오히려 너무 진부한 주장이 아닌가 합니다. 일단, 종교의 정치화가 정당정치발전에 반드시 필요한가는 차치하고, 계급정당에 대한 생각입니다.
계급정당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말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정당체제를 개편하려는 시도는 별로 성공할 확률이 적을 것 같다는 말씀입니다. 최장집 교수와 그 학파가 우리나라의 정치의 문제점의 근원을 정당의 문제로, 더 구체적으로는 노동자들이 정치세력화가 되지 않아서, 정치에 노동이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보수양당의 정당체제를 비판한 이래로, 너무도 당연하게 계급부재를 꼬집는 진보적인 글들이 넘쳐나는데, 왜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이라는 괜찮은 진보정당이 있음에도 노동자들의 정치세력화가 되지 않는가에 대한 고민보다는 "지역주의 때문이다", "노동운동을 안좋게 보는 보수언론때문이다", "민주당이 짝퉁 진보짓해서다"라는 식으로 외부적인 요인에서 그 답을 찾는 모습은 별로 좋지 않습니다. 노동자들이 파편화되서 노동자라는 계급적인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그래서 노동조합 조직률도 아주 낮고, 사회적으로 노조에 대한 인식도 좋지 않은 현실은 물론 외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뾰족한 대안을 진보정치세력이 내놓고 있지도 못합니다. 결국 계몽으로 돌아가는데, 노동자들의 이익이 계급적으로 통일되는지조차 이제는 불분명해진 마당에, 어떻게 할 것인지 기대도 되고 궁금도 합니다.


2. 한국 민주주의의 상황
역사적인 관점에서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가 어떤 발전경로를 밟고 있는지 분석할 능력은 없습니다만, 그냥 대충 감으로 제가 때려맞추자면, 경제부문의 압축성장처럼, 한국의 민주주의도 압축성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즉 서구에서 몇백년동안 투쟁하면서 쌓아올린 민주화를 우리는 몇십년 안에 뚝딱 해치웠죠. 이런 상황에서, 지금 이미 어느정도 민주주의가 안정화 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봅니다. 즉, 정치적 수사로는 '이명박이 독재한다'라고 할 수 있겠지만, 객관적으로 보자면 민주주의 틀 속에서 좀 더 보수적이고 구태스러운 집권세력이 나타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는 것이죠.

이미 한국사회의 유권자들은 어느정도 안정화,공고화된 민주주의의 틀 속에서 자신의 정치적인 성향, 투표의 성향을 갖춘 것 같습니다. 그 틀이 지역주의든 뭐든간에, 계급성이 별로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죠. 이런 상황을 서구와 비교해서 "비정상"적인 상황으로 간주하고, 노동계급의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물론 아름다운 일이겠으나, 87년부터 20여년간 해왔는데 그 성과가 미약하고, 한나라당을 필두로 한 소위 "수구보수"세력의 힘을 깎기 보다는 진보세력이 보기에 "온건보수"적인 자유주의 개혁세력과 파이를 나눠먹는 현실을 생각해보면, 서구식 다당제를 한국정치에 이식하려는 인위적인 시도에 무언가 문제가 없는지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은 때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계급정당이 등장해봐야, 더 많은 세금과 더 많은 복지 이상의 것을 주장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더 많은 복지를 가능케하려면 국가 재정이 튼실해야 하고, 결국 진보도 "성장전략"이 필요한데, 사실 성장에 대한 진보쪽의 경험과 능력은 일천하죠. 무엇을 생산하고 내다 파는 능력은 진보에게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맨날 하는 얘기는 사회적 기업, 공적서비스분야 일자리 확충 정도인데, 그것과 계급정당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도 확실치않고, 결국 누가누가 일을 잘하나의 문제로 귀결되는데, 이런 상황에서 서구식 정당체제를 이식하고자 하는 운동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3.서울의 투표성향
이불변응만변님은 ""예컨데 서울시장의 출마자가 '제가 서울시장이 된다면 서울시의 인구를 200만명 정도 줄여서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겠습니다' 라고 하면 지지를 얻을 수 있을까요? (서울시민들은) 공공성을 기반으로 한 정책들 보다는 자기 집의 땅값 상승과 같은 눈 앞의 이익을 극대화 시켜 줄 거대 건설 토목 이슈를 쫓아 투표하는 성향이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004년 총선까지 선거에서의 쟁점은 "선vs악"의 대결이었습니다. 물론 민주개혁진보세력의 관점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즉 민주화vs독재, 헌정사상 최초의 정권교체(+IMF)vs 반민주 나라망친세력, 정치개혁vs수구꼴통, 탄핵반대vs탄핵찬성...대충 이렇게 흘러왔습니다.

실제로 국민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 이슈를 가지고 선거를 치른적이 없습니다. 물론 전체적인 구도가 그랬다는 것이지, 간헐적으로는 있었죠. (예를들어 이명박 서울시장 당시 후보가 제기한 청계천복원, 버스전용차로같은 문제가 있습니다. 청계천 복원이 진짜 '복원'이 아니라 그냥 개발사업일뿐이다라는 비판이 있지만)

2006년부터는 그런 선악구도가 사라집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제부터는 경제문제, 먹고사니즘, 돈, 일상생활과 관련된 정책경쟁이 선거에서의 핵심이슈가 되는 것이죠. 누가 해외투자를 더 유치해서 일자리를 많이 만들 것이냐, 누가 우리 동네 더 살기 좋게 해줄 것이냐, 누가 우리 동네 땅값을 안떨어지게 할 것이냐, 누가 우리 동네에 더 좋은 학교를 만들 수 있나, 쓰레기 소각장 설치 문제 등등

공공성을 기반으로 한 정책은 무엇인가요? 아마 "다수의 이익"을 공공성이라고 표현하신 것 같은데, 뉴타운 지정이 되어서 자신들이 사는 동네에 살기 좋은 아파트 촌이 조성되고, 땅값도 오르고 좋은 학교가 생기는 것은 일부 서울 시민의 "이기심"이고, 전체의 공공성을 해하는 일일까요? 어째서 그런가요? 서울 인구 200만명을 줄여서 인구과밀화를 해소하는 것은 왜 공공성입니까? 지방사람들이 서울로 가서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이 나쁜 것인가요? 눈앞의 이익만 좇는다고요? 서울 과밀화가 문제이긴 한데, 지금 당장 서울로 가서 성공하고 싶은 개개인들이 먼 미래의 우리 모두의 이익을 위해 어떤 투표를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시민들의 이기심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지나친 환원주의적인 생각이 아닌가 싶습니다.

원론적으로 이불변응만변님의 말씀이 사실 옳습니다. 대한민국 5000만 인구가 모두 수도권에서 살고 싶어하는 세상은 정상이 아니죠. 좁아터진 서울에 수천만명이 몰려들면 환경도 안좋아지고 살기 팍팍하죠. 그런데, 모두가 서울에서 성공하기 위한 경쟁을 하는 이 현실 속에서, 어떤 공공성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매우 궁금합니다. 관념적으로야 모든 국민이 서로 합의해서 서울집중현상완화를 위하여 서울에 독점된 각종 편의시설, 대학, 기업,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게 되는 것이 공공성이겠죠. 그런데 그 합의는 쉽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당장 저 문장을 쓰면서도 "저걸 어떻게 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서울에 있는 대학, 서울에 있는 직장을 다니고 싶은 욕망, 서울에서 살고 싶은 욕망, 강남처럼 좋은 환경에서 살고 싶은 욕망은 "이미" 국민들이 가져버린 욕망이고, 어떻게 생각하면 이 욕망에 의한 무한경쟁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리인듯도 합니다. 이런 무한경쟁으로 압축성장했고, 그 과실을 또 우리가 따먹고 있는 걸수도 있고요.

자...이것을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개선할까요. 저 무한경쟁은 팍팍하고 경쟁은 비인간적인 원리이니 그것을 타파하는 방향이 공공성인가요? 아니면 저 현실을 건들기보다 경쟁에서의 공정성, 기회균등을 확보하면서 최소한의 안전판을 만드는 것, 그리고 그 안전판의 기준을 점점 끌어올리는 것이 현실적인 공공성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