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의는 한국 선거에 있어서 나타나는 매우 중요한 그리고 매우 결정적인 유권자의 투표 성향 중 하나이다. 영남은 한나라당에 한표를 호남은 다시 민주당에게 한표를 그리고 충청도는 (비록 선거 때 마다 그 이름이 바뀌어 어르신들이 헷갈릴지도 모르겠으나) 자유선진당에게 한 표를.

 

모두 심정적으로 동의하고 있 듯이 선거에 있어서 지역주의는 타파되어야 한다. 진짜 민주주의가 되기 위해선 말이다.

 

그래서 자주 거론되고 있는 것이 선거제도의 개편이다. 지금의 소선거구제, 즉 한 1선거구에서 1명이 뽑히는 방식에서는 절대 지역주의가 극복 될 수 없기 때문에 선거구를 중선거구 혹은 대선거구로 개편하고 국회 의석과 관련하여서는 독일식 비례대표제 (정당 지지율만큼의 의석만을 차지할 수 있는 선거구, 이 방법에 의하면 민노당이나, 진보신당은 지난 총선에서 좀 더 많은 의석을 얻을 수 있었다.) 를 도입하여 지역주의를 해체하자는 주장이다.

 

나는 지역주의의 해체에는 찬성하되 위와 같은 식의 지역주의 해체에는 반대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선거제도, 비례대표제의 개편을 통한, 제도적인 지역주의의 극적인 해체에는 반대한다.

 

지역주의는 앞서 말했듯 유권자의 투표성향이고 한국 투표 성향에 있어서 굉장히 주도적인 위치를 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이러한 투표 성향이 제도적으로 해체되어버리면 과연 어떠한 투표 성향이 지역주의를 대체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현재 지역주의적 성향이 적게 나타나고 있는 지역의 투표 실태를 살펴보면 해답을 얻을 수 있다. 필자가 예로 들고 싶은 지역은 서울과 제주이다. 서울에는 지역주의 성향이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대통령이 되려면, 다수당이 되려면 서울에서 이겨야 한다. 그런데 과연 서울 유권자의 투표성향은 깃발만 꽂으면 뽑아준다는 호남과 영남에 비해 우월하고 민주적인가? 서울의 표심은 우선 거대 이슈에 의해 좌우된다. 예컨데 대운하, 행정수도 이전, 청계천, 뉴타운 같은, 특히 건설 토목 경제와 관련된 거대 이슈를 보고 어느 정책이 우리 동네의 땅값을 올려줄 것인가 하는 질문의 답으로 투표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서울 시민들은 미디어를 통해 노출되는 정치인의 이미지라던가 정치인의 개인적 결함에 집착한다. 그리고 그 이미지를 향해 막연히 기도한다. '잘 살게 해주세요' 라고 말이다. 미국의 선거는 그 선거 운동 기간 중에 후보들의 지지율을 결정할 만 한 거대한 이슈들이 난무하고 지지율이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치지만 결국엔 (조금 자극적으로 말하자면) 그 지지율이 반반으로 돌아온다. 왜냐하면 미국의 시민들은 결국에 나의 이해를 대변해 줄 후보가 누구인지, 정당이 어디인지에 대한 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후보의 말실수, 사생활, 과거에 대해 질타하다가도 결국엔 나를 대변할 후보를 뽑는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이슈에 의해 형성된 지지율이 곧 선거의 결과가 된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자신이 속한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이 어디고 후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그저 경제를 살리겠거니, 땅값을 올리겠거니 하며 투표하는 비호남, 비영남권의 유권자보다 선거 기간의 결정적인 이슈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자신의 선호 정당에 투표하는 호남, 영남의 유권자가 훨씬 더 낫다고 보는 것이다. 그나마 그들 덕에 한국 정치는 (그 격차가 커봐야) 6:4 정도의 정치 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제주의 투표성향을 보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제주는 거대 지역주의 대신 소규모의 학연, 혈연 정치가 판을 친다. 즉 자기 학교 나온 사람, 자신과 같은 성씨를 뽑는다는 것이다. 만약 중선거구제가 실시되서 한 선거구에 2명의 당선자가 나온다면 과거에 그 지역 정당 출신이 한명 뽑히는 결과에서 그 지역 출신, 혹은 지역에 기반을 둔 성씨 2명이 뽑히는 결과로 바뀔 뿐이다. 외형적으로 한 지역에서 당이 다른 2명의 당선자가 나오는 것이지 다른 모습의 지역주의인것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네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럼 이대로 좋다는 말이냐?' 라고 물으면 대답은 완전히 '노' 이다. 다만 나는 제도적으로 지역주의를 해체하면 지역주의가 완전히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에 내게 절대적인 선택권이 있어서 '내일 독일식 비례대표제와 중선거구제를 주겠다. 대신 내일 안 받으면 다음 기회는 10년 후에나 찾아올 것이다.' 라고 신이 내게 말한다면 나는 차라리 10년 후를 택하겠다는 것이다. 지역주의의 해체는 그것과 같이 가야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 중에 하나로 나는 진보정당의 완전한 자립을 말하고 싶다. 한국 진보정당은 계급을 이야기하지 않고 사회적 시민권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이는 한국 정치 현실 상 어쩔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지만 진보 정당이 그 존재의 목적을 좀 더 고찰한다면 결국에 진보정당은 사회적 시민권을 주장해야 한다. 그래서 진짜 노동자를 대변하고, 진보세력을 대변하는 정당이 나와야 그 때서야 영남의 진보적인 30,40대 노동자들이 한나라당을 안 찍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을 때 그런 투표 성향이 지역주의의 해체다. 같은 맥락에서 한가지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환경주의 정당이나 여성주의 정당 그리고 기독교 정당의 성장이다. 물론 진보정당에서 환경주의나 여성주의를 포괄할 수 는 있겠으나 보다 적극적으로, 실천적으로 그리고 급진적으로 그러한 가치들을 대변할 세력이 있을 때 지역주의를 대신할 수 있는 여러 투표 성향들이 나타날 수 있다. 기독교 정당의 경우, 많은 기독교 인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한나라당이 기독교를 대표하는 당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비록 내가 신학에 대해 아는 바는 전혀 없으나 적어도 아직까지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는 정당은 안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대구 경북에 사는 기독교인들은 어쩔 수 없이 박근혜에게 98%의 지지를 봉헌한다. 그러나 진정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누군가가 기독교 정당의 현수막으로 걸고 기독교신자에게 호소한다면, 그리고 그가 충분한 지지를 얻는다면 그것이 지역주의의 해체이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지역주의의 제도적인 해체와 더불어 지역주의를 대신할 수 있는 선택의 스펙트럼의 확장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영남에서 민주당이 뽑히고 호남에 한나라당이 뽑히는 게 지역주의의 해체가 아니다. 낙태에 반대하고 유전자 조작에 반대하는 대구 출신의 지자수씨가 기독교당을 지지하고 도룡뇽을 위해 수 조원의 터널공사를 중단시킨 어느 종교인의 행위에 찬성하는 서울의 나환경씨는 녹색당에, 더 많은 복지가 더 광범위한 무상의료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진보석씨는 진보주의 정당에 마음 놓고 투표 할 수 있을 때 지역주의가 해체된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우리가 얼마나 투표하면서 찝찝하고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지를 잊지말자.

단지 선거구 개편과 선거제도 개편을 통한 지역주의 해체 시도는 결과만 지역주의가 아닌, 실제로는 여전히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반반 갈라먹는 그래서 지금과 다르지 않은 결과를 야기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