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의 삶을 설파하던 법정스님이 타계하신 이후 스님의 유언에 따라 절판된

무소유 책을 소유하려는 사람들의 경쟁으로 책값이 천정부지로 뛰어 오른다는

소식에 웃음을 짓지 않을 없다. 이렇듯 시도 때도 가리지 않고 나대는 보면,

소유욕이란 인간 본성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그런 본성을 극복하고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신 스님이니 많은 사람들로 부터 존경을 받는 것일 터이다.

 

무소유 소유하려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는하나 모든 사람들이

법정스님 처럼 무소유를 실천하고 살아야한다고 마음은 없다.

타고난 본성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인간으로서 최대한의 자유를 추구하는 삶도

있지만, 자신의 타고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또한 비난 받을 일은 아니다.

다만 본성에 무작정 끌려가는 것과 본성을 이해하고 겸허히 수용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다.

 

인간 본성이 무었이냐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논란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으나

물리적인 검증이 불가능한 모든 논란들이 그러하듯 그냥 입씨름에 머물

밖에 없다. 사회학이 과학적 검증 방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면서 사회과학이라

칭하듯 인문학에서도 과학적 사실을 인문학적 명제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하려는 노력이
대세를 이룬다. 특히 인간 본성과 관련해서는 지난 수십년간 괄목 발전을
이룬
유전자 생명공학에 근거한 철학/심리학자들의 진화생물학적 사유가 흥미롭다.

 

영화나 T.V드라마 등에서도 DNA검사로 범인여부를 확정짓거나 친자 확인을하는

장면등이 흔히 등장 만큼 DNA 생활용어가 되었고 구체적 역할이나

생성 과정등도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의 상식이 되었다.

그러나 이렇듯 상식화된 과학적 사실을 인간본성을 규명하는데 적용하는 것은

아직도 주저하는 이들이많다.

아마도 창조론에 기반한 종교적 이유가 가장 크다고 짐작되지만,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라도 인간을 지나치게 물성화 한다는 우려 또한

크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생명공학의 발달에서 얻어진 새로운 지식을 근거로 일부 진화 생물학자들은

인간 본성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DNA 기계적인 생존/재생 기능에

다름 아니라고 주장한다.  창조론을 철저히 배격하는 진화 생물학자들의

이런 주장이 결과적으로 창조론과 유사한 결정론에 이른다는 것은

아이러니컬하기도하다.

 

어쨋거나 진화 생물학이던 창조론이던 결정론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자유의지와

반대편에 자리하고 윤리적 책임에 대한 없는 씨름의 축이된다.

아마도 인지과학 쪽에서 인간의 의식 문제를 설명 수 있는, 확실하고

구체적인 세포의 작동구조와 다른 신체기능들에 대한 영향/역영향 등에

대한 연구 결과가 나올때 까지는 이런 입씨름은 지속 될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소유와 DNA 결부시켜 보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있다.

법정스님의 무소유는 어찌보면 철저하게  DNA 숙주로서의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삶의 방식이라는 생각이다. 그런면에서 모든 인간들이

법정스님 수준의 무소유를 실천한다면 ()으로서의 인간에게는 재앙이다.

DNA없는 인간이란 존재 없는 아니겠는가 ?

동시에 없는 인간의욕심, 무절제한 동물적 생존본능 추구가 순간에

불과한 인간의 존재를 얼마나 허망하게 소모시키는가를 생각하면,

동물적 생존 본능은 DNA의기계적 생존/재생 기능의 반영일 이라는 주장에 대해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내용을 음미해 봄직하다는 것이다.

 

법정스님이 몸소 보여주셨듯이 로서 세상에 한시적으로 존재하는데

필요한 것은 그리 많지않다.  물질적인 뿐만 아니라 명예나 권력 같은 것도 그렇다.

후손들이 겪어야 생존을 위한, DNA 필요조건을 충족시키기위한,

노력들보다 그들의 전인적인 존재에 좀더 충실할    있는 조건을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어느정도의 물질적 부를 축적하는 마저

의미 없다고는 생각 않지만 지나친 소유욕은 그로인해 결핍을 겪게될

다른 존재들은 물론 직계자손들에게도 득보다 해가 가능성이 높다.

비만 보다는 영양 결핍이 생명연장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수백년 동안 보존된

특정 지역의 유해들에 대한 유전자 분석에의해 확인 된바있고

실험실에서도 검증된 사실이다.

물론 생명연장 못지 않게 삶의 질이 고려 되어야겠지만 전인적인 존재를

충실하게 한다는 결국 세상 만물을 이해하고 사랑할 있는

자유의 극대화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