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는 코지토님의 대전제에 대해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리고 글의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핵심은 '선한 네흘류도프도 결국엔 본질적으로는 자신의 계급 지향적 인간' 일 수 밖에는 없다는 것인 것 같구요.

다만 제가 쓴 글의 주장을 수용하시는데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제 얘기는 진보진영에서 네흘류도프적 진보까지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이지, 네흘류도프적 진보를 양산하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는, 유물론적 개념이 진보의 계명인 것 처럼, 현대의 인간상을 어떻게든 포용하고 인정하는 것도 진보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진보 스스로가 '진보를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어서도 안 되고, 재산이 많아서도 안 되고, 주류여서도 안 되고, 옷을 잘 입어서도 안 된다' 라고 인간상이나 인간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을 한정시켜버릴 경우에 나타나는 진보의 한계를 지적한 것이구요. 특히 진보의 기반, 안정적 지지 기반 자체가 부족한 한국 사회에서는 더욱이 그러한 한계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 진보가 위상을 높이고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선, 화법의 전환이나,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미이죠. 

또한 네흘류도프적 진보가 의미하는 바가 체게바라 같이 거대한 '선의' 에 대한 기대 혹은 영웅적 '선의' 에 대한 바람는 아닙니다. 다만 다수의 네흘류도프들이 '선의'를 조금 씩 모은다면 그 파급력은 굉장할 것입니다. 예컨데 저는 허무맹랑하지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강동원, 송승헌, 원빈 같은 배우가 나와서 진보진영의 홍보를 하는 것이죠. 그것은 작은 선의입니다. 그들한테 정치운동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실천을 요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작은 '선의', 신념을 배반하지 않고 자신의 사회적 위치에도 크게 해를 가하지 않는 '선의'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선의'의 크기에 비해 파급력은 엄청날 것으로 예상할 수 있겠죠. 이것이 제가 네흘류도프적 진보를 이야기한 맥락입니다.

좀 주절주절 얘기한 듯 하여 정리해서 말씀드릴께요. 호호
진보의 전략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대학생들을 의도적으로 주류 사회, 승리자의 사회, 가진 자의 사회에 가도록 유도하고, 거기서 진보를 말하게 하자라고 하는 전략은 아닙니다. 성공한 계급, 주류 계급이 되고 싶어 하는 욕망에 사로잡힌 대학생들이나, 이미 그 속에 포함된 인간상까지도 진보를 이야기 할 수 있도록 진보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데 예전에 최민식이 스크린 쿼터제 반대 시위를 벌일 때 많은 사람들이 최민식이 선키스트 오렌지 쥬스 광고 찍은 것을 가지고 비판을 했었습니다. 물론 이율배반적인 행위인 것은 맞아요.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향력이 강한 '작은 선의' 입니다. 최민식이 FTA에 반대하는 농민들의 편에서 같이 으쌰으쌰 한번 해주는 정도의 선의, 그러나 많은 영화팬들에게 진보적 가치를 설득시킬수 있는 '선의' 입니다.
따라서 체게바라의 혁명성 같은 거대한 선의를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수 많은 네흘류도프들의 작은 '선의'를 수용하자는 뜻이죠. 신념과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수많은 현대인들에게 너희도 충분히 진보적이다, 너희의 지위를 손상시키지 않을 정도의 작은 '선의'로도 진보가 충분히 달성 가능하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조금 대답이 되었을까요? 허허 또 피드백 부탁합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