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공평을 앞세우지 않으면 진보의 미래는 없다.

                     - ‘역동적 복지국가론의 교육정책’ 비판을 중심으로 -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국가정책이나 전략의 논리적 형식은 대개 ‘무엇이 어떠하니 어떻게 하겠다 내지 바꾸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논리적 형식의 핵심요소는 현 상태(status), 즉 현황 및 문제점이고, 다른 하나는 해법(solution)이다. 이 해법은 철학, 가치, 정책 방향, 로드맵 등으로 구성된다. 이는 내적 강.약점과 외적 위기.기회에 대한 판단(SWOT 분석), 그리고 정치지형, 재정, 유관 법제도, 권능, 문화와 관행, 리더십 등 다양한 정책적 접점(인터페이스)에 대한 판단이 주요하게 고려된다. 일반적으로 국가 정책이나 전략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현상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과 주요한 정책적 접점을 면밀하게 검토하는 것이다. 정책적 접점을 면밀히 고려하지 않으면 자전거 프레임에 비싼 오토바이 바퀴를 끼워 넣거나, 험한 비포장 도로를 달릴 차 임에도 불구하고 고속도로만 달릴 스포츠카로 설계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그래서 정책 플랫폼이나 정책 패러다임(패키지)이 강조되는 것이다.

 

그러면 ‘역동적 복지국가론’의 주요 정책들은 과연 정책적 인터페이스를 얼마나 면밀히 고려했는지 살펴보자. 더 나아가 ‘역동적 복지국가론’이라는 정책 플랫폼(패키지)이 한국적 환경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지 검토해 보자. 일단 교육 정책 하나만 가지고 살펴보자. 여기서 준거로 삼는 논문은 ‘역동적 복지국가의 논리와 전략’의 p 145~190에 실린 ‘교육정책의 현황과 과제’-이상구 안승문 김미숙 윤종훈-이다.

 

이 글은 진보진영의 교육정책과 관련한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진보진영은 그동안 3불 정책, 7차 교육과정반대, 중등교사 자격증 소지자의 초등학교 교사 임용반대,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반대, 교원평가 반대, 일제고사 반대 등 적극적인 대안의 제시없는 반대투쟁에만 치중해 온 것으로 국민들에게 인식되고 있다. 진보진영(정치권, 지식사회, 시민운동 세력-필자 주) 역시 교육정책의 영역과 대상의 협소함이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대학입시를 중심으로 하는 기존의 교육정책의 틀에 갇혀있었다. 보수진영과 마찬가지로 특목고 문제와 고교평준화정책, 대학입시제도에만 시야가 고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대학교육의 질과 대학졸업생들의 취업문제, 그리고 평생교육 부분은 진보진영의 주요 정책의제에서 소외되어 있었다.(앞의 책, p 150)

 

이외에도 저자들은 학교에서 공급하는 교육.훈련과 산업현장이 요구하는 그것의 부교합(mismatching) 문제도 지적하고, 고등학교 졸업생의 85%가 대학에 가는 대학교육의 인플레이션과 저질교육의 양산 문제도 지적하고 있다. 또한 저자들은 “교육문제의 원인이 협의의 교육계 내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므로, 교육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교육 내부의 해법만으로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하며 교육정책의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나는 한국 교육(정책)계의 담론 지형을 잘은 모르지만, 저자들의 인식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렇다면 저자들은 어떤 해법을 내 놓을까?

 

저자들은 ‘복지국가 교육정책의 이론적 배경’에서 ‘교육정책의 대상과 범위’를 1)전통적인 교육정책의 영역 2)교육의 산업적 측면 3)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고 평생고용을 달성할 수 있는 고용정책으로서의 역할 4) 인적자원 개발정책이자 인구정책으로서의 역할 5) 퇴직자 재교육을 포함한 평생학습 등 노인정책으로서의역할 6) 지역산업클러스트의 핵심적 역할 수행을 통한 지역경제성장의 구심점으로서의 역할 7)국제경쟁력을 보장하는 산업정책과 경제정책으로서의 역할로 확장할 것을 주장한다. 역시 이의가 있을 수가 없다. 아마 교육정책의 대상과 범위의 확장 주장에 관한 한 나 뿐만 아니라 저자들이 비판하는 ‘진보진영’과 ‘보수진영’ 공히 이의가 없으리라 생각한다.

 

논문의 결론부에서 제시한 ‘복지국가를 향한 교육정책의 세부내용’에도 진보와 보수 공히 공감할 수 있는 주장이 많다.

 

초.중등학교 교육을 창의력 중심으로 개편하기 위하여 “교과목별 점수제 자체를 폐지하고, 각 학교의 학년별 ‘이수자격’을 규정하여야 한다”는 것, “‘국민핵심능력 표준’을 구축하고, 이에 따라 최소한의 필수 이수학점만 이수하면 졸업할 수 있도록 하며, 개인별 ‘학습이력관리’와 ‘학습계좌제도’의 도입 등을 통해 실질적인 맞춤형 교육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 “등록금 후불제(융자제도)와 연동하여 대학의 교육여건에 대한 평가인증을 강화하여, 이 제도가 무분별한 사학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용되는 것을 방지하여야 한다”는 것, 대학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개편과 조정을 위해, “학문 중심대학, 전문가 양성대학, (산업 현장에서 요구되는 기술 교육을 실시하는) 기술 교육 중심대학으로 기능을 재편하고, 이행노동시장 개념에 입각하여 대학을 활용함으로써 노동시장 신규진입자-재직근로자-이직예정자-실직자 등의 근로생애에 따라 단계별 평생학습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평생학습의 강화를 통해 과대한 대학교육에 비해, 과소한 성인교육간의 균형과 소통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는 것, “꼭 필요한 경우에만 대학에 갈 수 있도록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을 단계적으로 50%이하로 낮추는 등 OECD 국가 수준으로 정상화”하자는 것 등이다.

 

(내가 과문해서인지 아니면 의지와 노력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지 올라갈 수있도록 다양한(유비쿼터스) 사다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내 주장과 맞닿아있어서인지) 특별히 크게 공감가는 것은 과잉대학진학율의 정상화와 대학입시교육의 개편을 위해 장기적으로 “고교졸업 후 1회, 직장 근무 중 1회, 직장 퇴직 후 1회 등 인생에 3번의 대학입학기회를 부여하고, 입학단계별로 인센티브가 점증하는 제도”를 실시하자는 주장이다.

 

역동적 복지국가론의 교육 관련 주장의 정수

 그런데 내가 보기엔 저자들의 주장의 정수는 PISA평가에서 가장 높은 교육경쟁력을 기록하고 있는 핀란드 이상으로 교육투자를 하면서(핀란드는 GDP의 7%, 한국은 7.5%(공교육 3.5% + 사교육 4%) 결과는 형편없는 한국의 교육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획기적인 공교육에 대한 선행투자를 통해 다양한 사교육 수요를 공교육 내에서 해결하자(p164)”는 주장이다. 이는 “빈부의 차이나 부모의 학력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이 차별없이 최상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북유럽 국가들의 교육 철학을 배경에 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저자들은 “유치원에서부터 대학원까지 필요한 모든 교육을 국가가 사실상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공교육의 질이 낮아서 사교육이 창궐한다는 인식을 깔고 있다. 그래서 “공교육의 높은 질 보장 및 공교육으로 사교육 흡수를 통한 사교육비 부담의 일소”를 주장하는 것이다. 어쨌든 획기적인 공교육에 대한 선행투자는 곧 획기적인 교육재정 확대 및 교원 증원 정책으로 연결된다. 저자들은 “우수한 교직 전공자들이 신분이 불안전한 학원 교사가 아닌 상대적으로 선호하는 정식 교원이 되도록 하면서 불필요한 사교육을 공교육으로 흡수하자”고 주장한다. 이는 “현재 40.4만명인 교직원 숫자(초등 17.2만명, 중등 10.9만명, 고등학교 12.3만명)를 현재의 2배 수준으로 증원”하고 “교대, 사대 출신 뿐 아니라, 전공과 교육이수 여부에 따라 다양한 교사직을 개방(p 163)”하자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교사 1인당 학생수, 학급당 학생수가 많아서 사교육이 창궐할까?

그러면 과연 한국의 사교육이 (PISA 등)국제학력수준 비교 지표, 교사 1인당 학생수, 학급당 학생수, 보조교사, 상담교사 숫자 등으로 측정되는 공교육의 질이 낮아서 창궐할까? 물론 사교육을 많이 시키는 학부모들은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긴 있다. 또 초등학교의 경우는 실제 일리가 있다. 그래서 초등학교에서 특기적성 교육을 대대적으로 강화한다면 학교 바깥의 사교육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특기적성 교육의 상당 부분은 공교육 체계로 흡수될 것이다. 교육 질만 담보 된다면 초등학교 학부모들 대부분이 머뭇거림 없이 추가되는 교육 비용을 지불 할 것이다. 그러나 입시의 영향권에 들어가있는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고등학교는 다르다. 사실 이들 학생들과 학부모들이야 말로 사교육으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데, 불행하게도 이들이 사교육을 시키는 동기는 공교육이 부실해서가 아니다. 어쨌든 남(경쟁자)보다 앞서가야 하기 때문이다. 기를 쓰고 남 보다 앞서가려고 하는 이유는 대학과 전공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대우와 기회가 하늘과 땅 차이고, 따라서 선호와 경쟁이 치열하고, 어떤 형태로든 평가, 선발, 배제가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사교육 문제의 근본 원인은 평가, 선발, 배제 방식(입시평가 제도)이 아니라 대학과 전공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대우와 기회의 엄청난 격차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평가, 선발, 배제 방식이 합리적이고, 그에 따른 사회경제적 대우와 기회 격차가 적다면, 아니 적정하다면, 그래서 배제된 사람이 억울함을 느끼지 않는다면,  평가.선발 방식과  그 결과로서 나온 ‘격차’는 사회의 성장의 동력이자  통합의 요체일 것이다. 그래서 ‘격차나 불평등’ 자체가 악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격차’와 그 할당 방식의 합리성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것이 정의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한국은 너무나 많은 자원과 가치가 정의의 원리(승자도 패자도 억울하지 않는 게임규칙)에 따르기 보다는 힘의 원리를 따른다. 교육계 역시 예외가 아니다. 아니 교육계는 그래도 좀 양호한 편이다. 아래 자료는 ‘OECD교육지표’에 나와있는 교사급여 국제 비교표다. (http://std.kedi.re.kr/index.j>국제통계>OECD교육지표>4-3-1.D3.1.교사급여(2007))

여기서 말하는 GDP는 PPP(구매력 환산 GDP)다. 보통 환율은 1달러당 최근 몇 년 동안 1000원에서 1500원까지 오락가락 했지만 PPP는 대략 800원 수준으로 보면 된다. 이는 15년 경력 교사의 법정 급여가 54,798달러라는 것은 PPP로 환산했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보통(교환) 환율로 따지면 약간 떨어진다. 1달러=1000원이라면 54,798달러는 0.8(800/1000)을 곱해 주면 된다.  

 

                                                  <OECD  교육지표(2007)> (단위: 달러)

 

 

그런데 위 표에 적시된 '1인당 GDP 대비 15년 경력의 급여 비율'은 PPP로 따지든 교환환율로 따지든 동일하다. 어쨌든 한국의 15년 경력 교사는 한국 평균GDP의 2.21배를 받는다고 할 수있다. 다른 나라와 한번 비교해 보시길. 특히 북유럽 국가들과. 한국과 소득수준도 좀 비슷하고, 기질도 비슷한 그리스, 포트투갈과도 비교해 보시고, 일본, 미국과도 비교해 보시길.

내가 이런 표를 들이대면 한국 교사 임금이 너무 높으니 깎아야 한다는 얘기인 줄 지레 짐작하고 온갖 반론을 늘어놓는 것을 보았다. 잡무가 많아서 노동시간이 길다는 둥, 1인당 학생수가 많다는 둥,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낮아서 근로자들의 평균 임금이 GDP 대비 다소 높은 것이 정상이라는 둥. 다 일리가 있는 비판이지만, 우리의 생산력(소득) 수준을 감안 할 때, 한국 교사의 급여는  엄청 높다고는 말할 수 없어도 꽤 높다는 사실을 부정할만한 근거는 안니다.(각종 복지비용 등 사회임금의 존재를 얘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위에서 제시한 급여는 공히 세전급여다. 높은 주거비, 교육비 등을 들어 GDP 2배를 받아서는 먹고 살기 힘들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러면 GDP 1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은 주거와 교육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불가촉천민이라는 얘긴가?)

 

내가 이런 표를 제시하는 것은 교사 임금이 그 사회의 공공부문(공무원, 공기업), 전문직, 대기업 정규직(생산직) 등 괜찮은 직장, 직업의 바로미터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나라는 공공부문 임금과 대기업 생산직은 교사 임금과 비슷하다.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은 교사임금의1.5~3배다. 한국 교사가 처우 수준이 높다는 것은 한국의 괜찮은 직장, 직업이 다 그렇다는 얘기다. 북유럽의 경우 교사가 GDP 1 수준이라는 것은 사회 전반이 임금 격차가 특별히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표를 보면 북유럽에 왜 공공부문이 30%나 되는지? 왜 비정규직 문제가 없는지? 왜 사교육 문제가 없는지? 왜 입시경쟁이나 열풍이 없는지? 알 수 있다(그래도 극히 적은 인기학과/대학을 둘러싸고 약간은 있다고 한다) 물론 왜 교사수가 많은지도 알 수 있다. 한국에서는 40만명을 고용할 재정으로 스웨덴은 거의 100만명을 고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약과다

기여, 부담, 의무에 비해 누리는 권리, 이익, 혜택의 불균형에 관한 한 교사들은 약과라고 하였다. 힘있는 노조와 시장지배력 있는 대기업이 만나는 곳에서는 이 불균형이 훨씬 심하다. 노조의 임금인상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회사측이 언론에 흘린 자료라서 약간의 과장이 있겠지만, 어쨌든 금호타이어(타이어 업계 2위)의 광주,전남 곡성,경기 평택공장에서 근무하는 생산직 4,278명의 2008년 평균 연봉은 연말정산을 위한 작년 소득세 신고액 기준 7,135만원이었다. 연봉 1억원 이상(GDP의 5배로 사실상 중소기업 임원 대우) 생산직은 전체의 4.9%인 209명, 8000만~1억원은 전체의 25.7%인 1100명이었다. 박용순 노조 기획실장은 "정년을 앞둔 장기 근속 생산직이 많은데다 휴일 근무도 빈번하다 보니 임금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말했다 한다. 금호타이어 노조는 2004년 18.2%의 임금 인상을 쟁취한 이후 매년 10% 안팎 임금을 올려서 5년 평균 11.5%씩 인상했다고 한다. 2009년은 경제위기로 인해 상반기 누적적자가 1042억원, 당기순손실은 2223억원을 기록했는데, 노조는 금속노조의 지침에 따라 임금 7.48% 인상안을 들이밀었고, 회사는 이 때다 싶어 수백명 정리해고 카드를 들이밀면서 때 맞춰 위의 자료를 언론에 배포한 것이다.

 

‘한국거래소’도 재밌는 곳이다. 이는 증권거래 등 수수료가 주요한 수익 원천으로 사실상 경쟁자가 없는 회사인데, 무슨 일인지 2005년에 주식회사로 전환되면서 부산으로 본사를 옮겼다. 이명박 정부들어 이 회사는 공공기관으로 분류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결국 준정부기관으로 분류되어 임직원들의 처우수준이 공개되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시스템(alio.go.kr)과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자료에 따르면 이 회사의 1인당 평균 연봉은 2005년 8,925만원, 2006년 8,972만원, 2007년 1억19만원으로 뛰었다가 이명박 정부 들어 약간 삭감되어 2008년 9,691만원(그래도 공공기관 전체 평균의 1.8배였다), 2009년 9,119만원으로 되었다. 2008년 당시 거래소 직원 719명의 36%가 1억원 이상의 연봉을 받고, 노조 전임자는 9명이었다. 2009년 현재 평균연봉은 한국거래소 9,119만원(평균근속년수는 15.7년)으로 TOP이고, 그 다음이 한국예탁결제원(8,864만원), 기업은행(8,112만원), 코스콤(옛 증권전산 7,683만원), 산업은행(6503만원)(평균근속연수 16.2년), 수출입은행(5,608만원) 순이었다. 하나같이 재정경제부 관리들이 퇴임후 가는 곳이다.

  

한국거래소의 2009년 인력구조를 보면 직원 698명 중 부장이 30명, 부부장이 69명, 차장 137명, 과장 171명, 대리 199명, 사원 75명으로 전형적인 항아리형 구조다. 평균연령이 40세를 훨씬 넘는다. 복리 후생비는 물론 킹왕짱이다. 부산 본사 직원이 224명인데 부산 사택이 206채이고, 사택 비용으로 276억원을 지원하였다. 이는 무이자 또는 2%의 낮은 금리로 3년간 임직원 162명에게 주택 구입비 명목으로 96억원의 대출을 해주었다.

 

2008년 10월 이정환 전 이사장(이명박 정부 출범 뒤 온갖 사퇴 압력에 시달렸다고 폭로하면서 물러났다)의 뒤를 이어 부임한 김봉수 이사장은 거래소 문제에 대해 "경쟁자가 없으므로 경쟁할 필요가 없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수수료 수입으로 배불리 먹고 살 수 있는 구조“라고 하였다. 또한 ”일단 부장이 되고 5년 후 임원이 되지 못하면 정년으로 회사에서 나가야 하기에 직원들이 (부장)진급을 늦게 하려하고 그러려면 아무 성과도 내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봉수 인터뷰 2010.02.28) 공기업 중 상당수는 이런 인사체계를 갖고 있어서 부장이나 이사 승진을 극력 회피 한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많이 바뀌었다고 들었지만......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2005년 연봉(기본급+ 성과급)이 3억6천만원이었는데, 매년 급속하게 올라 2008년 7억9,700만원으로 상승하였다. 이는 당시 공공기관 연봉 TOP인 수출입은행장(5억9천200만원)보다 훨신 높았다. 당시 전체 공공기관장 평균 연봉은 1억6천만원이었다. 한편 한국거래소 감사와 이사의 연봉은 2005년 2억1천만원에서 2008년 감사 5억원, 이사 4억9천만원으로 늘어났다.

 

이명박 정부 들어 한국거래소 이사장 기본급은 2008년 3억7,160만원에서 2009년 1억6,131만원으로 줄었다. 성과상여금은 2008년에만 4억1,904만원을 받았는데 2009년 성과상여금은 아직 책정되지 않았다. 만약 성과상여금이 없다면(아마 안 줄 것이다) 2009년은 연봉은 1억6천만원대로 떨어지는 것이다. 8억원이 1억6천만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한편 감사와 이사는 거의 연봉 5억원 수준에서 1억 3천만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한국거래소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왜 국민들이 이명박 정부를 압도적으로 지지했는지 일단을 보여준다.  진보(좌파)는 죽으나 사나 노조 편이고, 개혁 세력은 몰라서 그랬는지, 알고도 그랬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한국거래소의 비합리와 몰염치를 방관하였다.

 

성장과 복지의 이분법은 바보 짓이다.

자칭 진보 논객들의 상당수는 한국 보수는 성장 우선주의 내지 묻지마 성장주의고 진보는 복지우선주의라고 말한다. 보수는 성장이 곧 복지라고 떠벌이고, 진보는 복지가 곧 성장이라고 떠벌인다. 그런데 이 이분법은 한국 국민들이 절실히 염원하는 중요한 가치; 즉 정의, 공평, 추진력을 간과하고 있다고 할 수있다. 저 형편없는 XXX 이명박이, 마이너스 성장을 하면서도 40~50%라는 지지율을 기록하고, 복지를 간판 상품처럼 팔아온 민노당, 진보신당이 저조한 지지율을 기록하는 것은 국민들에게 성장과 복지의 이분법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절실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하여 국민들이 한국거래소와 (금융)공기업을 문제 삼은 것은 이들의 고액 연봉 자체가 아니라 이들이 제공하는 노동의 양, 질에 대한 보수의 적정성이다. 그리고 이들을 사실상 적극적으로 조장(방조가 아니라)한 재경부 관료들의 농간과 도적 마인드와 이들을 방치한 정권이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한국의 경제사회 주체들의 심리는 기회나 여건만 주어지면 한국거래소처럼, 금호타이어노조처럼 하고 싶어 한다. 자본도 노동도 관료도 정치도 마찬가지다. 나는 가치 생산 생태계에 불을 싸질러 자신들만 당대에 잘먹고 잘 사는 화전민적, 도적떼적 충동을 제어할 수 있는 깨어있는 시민, 공평감각이 있는 시민들의 힘과 규율이 사회 저변에 흐르지 않는 상황에서 공공부문의 규모를 늘리고, 조직노동의 권능을 강화하는 것은 진보도 개혁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노동의 양.질에 따른 보수가 적정하지 않으면, 놀고 먹는 존재들이 표준이 되기에 모든 사람들이 박탈감과 억울함에 사로 잡힌다.  아마 한국거래소 등 금융공기업 직원들은 금호타이어, 현대자동차, 다른 공기업 생산직 노동자들의 고용, 임금 수준과 회사 눈치 보지 않고 거침없이 사는 근무환경을 보면서 자신의 연봉은 2~3억은 되어야 합당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교사들도 지금의 따블 따따블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박탈감과 억울함과 처우개선 투쟁의지로 부글부글 끓는 사회에서 정규직 고용 확대가 잘 되겠는가? 노조를 동반자로 여기는 자본이 많을 수 있겠는가?

 

 

복지국가는 생산력과 정치적 역관계의 산물일까? 정의와 공평의 산물일까?

 북유럽복지국가들은 확실히 우리나라보다 국민소득이 훨씬 더 작을 때부터 복지국가 체제를 확립했다. 이 점을 강조하는 복지 학자들이 정말 많다. 그런데 이들은 북유럽복지국가들의 경우 우리나라 보다 국민소득이 훨씬 작을 때부터, 한국에서 너무나 보편화된, (기여, 부담, 의무에 비해 엄청난 권리, 이익, 혜택을 누리는) 야만과 몰염치를 정치도, 관료도, 언론도, 노조도, 시민사회도 방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거칠게 양단하면, 복지국가는 생산력(1인당 평균소득)의 산물이 아니라, 정의와 공평의 산물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정치적 역관계(복지세력의 힘), 노조조직률, 산업/무역구조는 부차적인 변수가 아닐까?

나는 사회의 선진화에 가장 중요한 정의와 공평-염치라고 할 수도 있다-을 빼 놓고 선진국을 꿈꾸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생각한다. 역동적 복지국가도 마찬가지다.

 

 

양적 지표의 우상

다시 교원 40만 명 증원을 통한 사교육 흡수 해법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내 얘기는 이렇다.

첫째, 현재의 대학과 전공에 따른 사회경제적 대우와 기회의 엄청난 격차와 공공부문의 특권적 지위를 그대로 두는 한 사교육 문제와 고시공시 열풍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엄청난 재정은 재정대로 쓰고-교사 1명 고용에 적게 잡아 4천만 원(연봉 3천만 원 + 연금, 복리후생비, 시설 투자 등)이 든다면 40만 명 추가 고용을 위해서는 매년 16조원이 든다. 아니 해가 가면 매년 20조원이 넘게 들 것이다. 4대강 사업에는 몇년간 통틀어 22조원이 든다고 했던가???- 사교육은 별로 줄지 않고, 기업 등으로 갈 수많은 청년 인재들은 다 빨아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솔직히 교직이 수많은 한국 청년들에게 로망 아닌가!!

 

둘째, 더 심각한 것은 교사 인원이 2배로 늘어난다고 해서 공교육질이 그만큼 높아진다는 보장이 없다는 사실이다. 한국 공교육의 질 문제는 교사 1인당 학생 수나 한 학급당 학생 수의 문제로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시골로 가면 학생 수의 자연 감소에 따라 양적 지표(교사, 예산 등)로만 보면 선진국 수준에 도달한 곳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교육 질이 높은 곳이 아니다. 도시 지역도 지난 20~30년 동안 교육 관련 양적 지표는 현저하게 좋아졌지만 그만큼 공교육 질이 좋아졌다고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지난 20~30년 동안 교육의 양적 지표는 좋아졌지만, 사교육으로 인한 고통은 더 극심해졌다.

 

그런 점에서 공공서비스의 질이나 공교육질이 공공재정과 서비스 공급자(교사, 공무원, 공급기관)수에 비례한다고 보는 사고방식은 진보가 섬기는 대표적 ‘우상’인지도 모른다. 생각하면 이 우상의 변종들이 적지 않다. 경로당을 많이 지으면 노인복지 수준이 올라가고, 문화회관과 도서관을 많이 지으면 문화수준이 올라가고, 특목고 유치하면 지역 교육수준이 올라가고, 도로 많이 닦으면 살기 좋아진다는 신화가 대표적인 변종 바이러스다. 이 바이러스의 원조는 1990년대 중후반에 풍미했던 ‘기업 규모가 커지면 경쟁력이 생기고, 작으면 생존이 어렵다’는 신화일 것이다. 이는 외환위기 이후 몇 년 간 금융기관 인수합병(대형화)을 많이 성사시키면서, 덩치는 엄청 커지만 두뇌(기업 금융 노하우)는 (과거 주택 담보 대출이나 예대마진으로 편하게 돈 벌던 시절) 그대로인 대형 금융 괴물들을 여러 개 탄생시켰다. 대우그룹은 김우중 회장이 규모의 신화를 신봉해서 무리한 확장을 하였고, 1999년 워크아웃이후에는 채권단이 400~500만대 규모가 안 되는 자동차 회사들은 독자 생존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여 대우자동차를 사실상 희망이 없는 기업으로 방치하다가, 기업 능력 한참 망가뜨리고, 끝내 헐값에 팔았다.(그래도 청산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규모의 이익이나 신화를 신봉하는 자들, 양적 지표를 중시하는 자들은 하나같이 사람(마음)을 규율하는 평가보상체계나 노하우가 생존과 번영의 관건이자 서비스 질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는데 공통점이 있다. 그 중에서도 자칭 진보는 한국의 공공부문이 공복 내지 공공서비스 종사자라기보다는, 조선후기 양반관료에 가깝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사실을 직시한다면 복지국가라는 이름아래 예산과 공무원을 대폭 늘리자는 얘기를 함부로 하지 못할 것이다. 부동의 진리는 돈(재정)이나 권능은 가장 잘 행사할 수 있는 곳에 주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시장이 잘하면 시장에, 국가가 잘하면 국가에, 제3섹트가 잘하면 제3섹트에, 자유방임 시장이 잘하면 자유방임 시장에, 관리된 경쟁 시장이 잘하면 그것에, 중앙 정부가 잘하면 중앙정부에, 기초자치단체가 잘하면 기초자치단체에, 시민단체가 잘하면 시민단체에...... 요컨대 역량(노하우, 마인드, 상벌체계 등)을 묻지 않고 예산 더주고, 인력 더 주자는 것은 업자(토건업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복지업자도 있다)들의 농간이다.

 

그러면 도대체 당신은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나는 교원 수의 획기적인 증원을 지지한다. 하지만 더 강력하게 지지하는 것은 평가보상체계의 합리화다. 올릴 사람 올리고, 내릴 사람 내리는 것이다. 그 다음이 고용량의 증대(고용률의 상향)이다. 이 둘이 최우선 가치이다. 모든 것의 근본이다. 이것을 전제로 나는 고용량을 늘리기 위해 노동시간 단축을 지지한다. 임금감하 없는 노동시간 단축이 아니라 임금 감하가 수반되는 노동시간 단축이다. 물론 이는 주거비 등 생활비를 줄이는 것과 병행되어야 한다.

 

“그래봤자 15년 경력자가 GDP의 2.2배 수준인 교사를 갖고 왜 못살게 구냐고?”

맞는 말이다. 진짜 합리화 시킬 곳은 별 것도 아닌 일을 하면서 권능은 크고, 처우는 지극히 높은 존재들이다. 이들은 공공부문에 수두룩하다. 이는 이명박이 한국거래소 잡듯이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배후에 있는 재경부 마피아들이 농간을 부리지 못하게 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몰염치한 마인드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권력으로 공공부문을 합리화 한 이후 민간 대기업과 전문직을 포위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처우를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우리의 생산력 수준에 맞게, 또 그들이 창출하는 가치에 맞게 조정하지 않는 한, 권력과 자본에 의해 짓눌려진 교사와 공공부문과 중소기업과 3비층들은 억울함(박탈감)에 몸부림 칠 것이다. 이는 얼마 안가서 격렬한 근로조건 개선 투쟁으로 폭발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1987년 이후 한국 사회가 걸어온 길을 답습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종착점은 스웨덴일 수 있을까?

그러면 평가보상체계를 지속적으로 합리화해 나간다면 과연 그 종착점은 어디일까?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일까? 나는 아닐 거라고 확신한다. 이들 북유럽 국가들은 현재 놀라울 정도로 작은 격차에 경쟁의 승자도, 패자도 대충 수긍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한국은 북유럽 수준의 격차에 대해 경쟁의 승자나 줄 잘선 행운아들(대기업 공기업 조직노동 등)이 전혀 수긍할 것 같지가 않다. 현재 한국은 경쟁의 패자 및 불운아들(3비층, 중소기업, 청년 , 2~3류 대학 출신자, 비인기학과등)이 극심한 억울함을 느끼는데, 스웨덴처럼 되면 경쟁의 승자들이 극심한 억울함을 느끼리라 생각한다. 계량화 되지 않는 격차(불평등)이 엄청 많지만, 무식하게 급여 수준으로 단순화해서 얘기한다면 이렇다. 지금 한국에서는 경쟁의 승자들과 줄 잘선 행운아들이 GDP 2~5 수준의 처우를 경직되게 받기에 고용량도 많이 늘릴 수 없고, 따라서 경쟁의 패자들과 불운아들이 억울함에 치를 떤다고 할 수있다. 그런데 한국 국민들에게 지금의 스웨덴처럼 경쟁의 승자도 패자도 행운아도 불운아도 대충 GDP 1 수준에서 약간의 변위를 보인다면 어떨까? 아마 승자들이 억울함에 치를 떨어 지속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인의 성정, 문화와 지정지경학적 조건을 감안하면 균형점(억울함이 최소로 되는 사회경제적 격차 수준)은 현재 한국과 현재 스웨덴의 중간 어디 쯤 아닐까?

한국이 북유럽 국가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면 그 영향력으로 인해 균형점이 내려오겠지만, 불행히도 한국은 주변에 중국, 일본, 러시아, 대만, 동남아, 미국이 있다. 이는 전문직이나 인재들의 처우 수준을 스웨덴 수준으로 억눌러버리면 이들 상당수는 한국 보다 훨씬 높은 대우를 해주는 중국, 일본, 러시아, 동남아, 미국으로 가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한국은 잘해야 몇 십 년 후에 영국, 네덜란드 수준에서 균형점을 이루지 않을까 생각한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