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zard Ernst & Simon Singh가 쓴 『Trick or Treatment: The Undeniable Facts about Alternative Medicine』 중 67~69, 79~81, 86쪽을 참조하라.

 

 

 

표본의 수가 크고, 무작위 배정이 이루어지고, 플라시보 치료법이 본유적인 치료 효과를 발휘하지 않는다는 점이 확실하고, 진짜 치료법과 플라시보 치료법의 차이 말고는 모든 조건이 똑 같아야 하고, 환자도 의사도 무엇이 플라시보인지 몰라야 이상적인 임상 시험이다.

 

알약이나 초음파 치료의 경우에는 이상적인 임상 시험에 아주 가깝게 검증할 수 있다.

 

초음파의 경우 어차피 인간은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초음파가 나오지 않도록 의사도 모르게 조작하면 된다. 초음파가 나오지 않는 멍텅구리 기계가 본유적인 치료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는 가정을 의심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만약 알약을 감싸고 있는 캡슐의 크기가 같고, 알약의 무게도 같고, 냄새도 같고, 모양도 색깔도 같고, 의사도 어느 것이 플라시보인지 모르게 하고, 알약을 씹지 않고 그냥 삼키게 한다면 환자가 어느 것이 플라시보인지 알아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리고 플라시보 알약에 밀가루나 설탕을 넣는다면 본유적인 효과가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침술의 경우에는 이런 이상적인 실험 설계가 아주 어렵다.

 

침술 임상 시험에서는 진짜 침술과 가짜 침술(sham acupuncture)을 비교한다. 진짜 침술은 침술 치료사들이 하는 방식 그대로 한다. 가짜 침술에는 보통 두 가지 방식이 쓰인다. 하나는 경락(經絡, meridian)이나 경혈(經穴, acupuncture point)을 무시하고 아무 곳에나 침을 놓는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진짜 침술보다 훨씬 얕게 찌르는 방식이다. 경혈을 자극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깊이 이상으로 찔러야 한다 이론(?)을 거스르는 것이다.

 

임상 시험 결과 진짜 침술과 가짜 침술의 효과가 똑같다는 것이 드러났다고 하자.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소심하게 해석하자면 “경락 이론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가 된다. 경락을 자극하는 진짜 침술의 효과가 아무 곳이나 자극하는 가짜 침술과 같다면 경락 이론에 바탕을 둔 침술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과감하게 해석하자면 “침술의 효과가 플라시보 효과를 뛰어넘지 못한다”가 된다. 이런 식의 해석을 지지하는 사람은 가짜 침술과 플라시보 침술(placebo acupuncture)을 동일시한다. 하지만 정말 둘을 동일시할 수 있을까?

 

 

 

경락 이론이 엉터리라 하더라도 침으로 찔러서 자극하는 것에 플라시보 효과를 뛰어넘는 본유적인 치료 효과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가짜 침술은 플라시보가 아니다. 왜냐하면 플라시보의 정의는 본유적인 효과가 없는 치료법이기 때문이다.

 

진짜 침술과 가짜 침술의 효과가 똑같다는 것이 임상 시험을 통해 드러난다고 하더라도 침술 옹호론자는 할 말이 있다. “경락 이론은 포기할 수 있지만 침술에 본유적인 효과가 있다는 믿음은 포기할 수 없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침술 임상 시험은 이중맹(double-blind) 처리가 아주 어렵다.

 

만약 환자가 평소에 침술 치료를 받아왔다면 어디가 경혈인지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엉뚱한 곳을 찌르는 가짜 침술을 받으면 그것이 가짜 침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문제는 침술 치료를 한 번도 받아보지 않았으며 경락 이론을 접해 보지 않은 환자들만 골라서 임상 시험을 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치료사의 경우에는 무엇이 가짜 침술인지 어떻게 모르게 한단 말인가? 적어도 침술 치료를 해왔던 사람이 이것을 모르게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 같다.

 

따라서 진짜 침술의 효과가 가짜 침술에 비해 더 낫다는 것이 임상 시험을 통해 드러났다 하더라도 그것이 “무엇이 플라시보인지 치료사가 알고 있다”는 점 때문에 발생하는 차이인지 진짜 침술에 가짜 침술을 뛰어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인지 가리기가 어렵다.

 

 

 

최근에는 망원경 침(telescopic needle)을 사용하는 가짜 침술로 임상 시험을 시도하고 있다.

 

연극용 칼(theatrical dagger)로 사람을 찌르면 얼핏 보기에는 사람이 찔린 것 같지만 실제로는 조작된 칼이라서 칼날이 자루 쪽으로 접혀 들어간다. 망원경 침도 이와 비슷하다. 접히는 망원경처럼 침이 손잡이 쪽으로 접혀 들어간다. 따라서 따끔하기만 할 뿐 침이 실제로 피부를 뚫고 들어가지는 않는다.

 

물론 “침이 피부를 뚫지는 못하지만 따끔한 정도로 피부에 자극을 주는 것에도 본유적인 치료 효과가 있다”라는 명제를 100%를 반증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망원경 침은 기존의 가짜 침술보다 더 나은 플라시보 침술이다. 따라서 망원경 침을 이용한 임상 시험을 통해 진짜 침술과 가짜 침술의 효과가 같다는 것이 드러난다면 “침술의 효과는 플라시보 효과일 뿐이다”라는 결론이 더 설득력을 얻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