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이란?


영한사전의 스펙(spec) 예문

We want the machine manufactured to our own spec.
우리는 그 기계가 우리 자신의 사양에 맞춰 제작되기를 바란다.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는 이윤은 단지 경영의 결과일 뿐이지 기업의 목적은 아니라고 했다. 그럼 기업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회에 있으며, 고객을 창출하고 그들에게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야 말로 기업의 존재목적이라고 했다.

또한 "유능한 경영자는 종업원의 약점을 찾는 일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약점을 활용하여 어떤 목적을 달성할 수는 없으며, 오로지 강점을 통해서만 목적을 이룰 수 있다. 종업원이 필요한 강점을 갖고 있다면, 약점은 조직이 보완해줄 수도 있다."라고도 했다. 영국의 블래어가 '노동당을 선택한 이유'와도 비슷한 의미를 지닌 말씀인 것 같다.

대학과 학생의 관계는 무엇일까? 학생은 대학의 고객이면서도 동시에 '인적 자원'이라는 면에서 '기업의 종업원'과 유사한 성격을 갖는다. ('인적 자원'이란 용어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은 '찌질한'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으므로 생략한다.)


스펙(specification)이란 경영학 '인적자원관리'에서 직무분석할 때 작성하는 '직무명세서'를 말한다. 이와 비교되는 것으로 '직무기술서'가 있다.

1. 직무기술서
직무분석의 결과에 의거하여 직무수행과 관련된 과업 및 직무행동을 일정한 양식에 기술한 문서

2. 직무명세서
직무분석의 결과에 의거하여 직무수행에 필요한 종업원의 행동, 기능, 능력, 지식 등을 일정한 양식에 기록한 문서

직무기술서/직무명세서의 예

직열 - 노가다
직무명 - 노가다
직무코드 - 4444

직무개요
1. 사대강 강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삽질하기

직무내용
1. 삽질
2. 페인트칠
3. 벽돌 옮기기

직무수행요건
1. 숙련요건 - 숙련 소요시간 ; 1시간
2. 교육내용 - 테일러의 과학적 삽질법 (테일러의 실험 결과, 한 삽의 무게가 21파운드일 때 가장 효율적이라고 함. 삽질의 속도, 경사각 등 효율적인 삽질 방법을 연구하여 연8만달러의 삽질비용을 절약한 베들레헴 철강회사의 사례를 집중 연구)
3. 지식요건 - 물리학, 화학
4. 능력요건 - 천삽 뜨고 허리 안펴도 거뜬해야 함
5. 책임요건 - 복종의식, 근검절약



그러니깐 취업준비생들이 말하는 일반적인 의미의 '스펙'이란 취업사관학교로서의 대학에게는 이런 각 기업의 직무수행요건에 알맞는 고객(=기업)지향적인 '제품' 생산을 위한 개념이다. 1인당 하루 삽질 작업량을 16톤에서 59톤으로 늘릴 수 있는 '인적 자원'을 생산해낼 수 있는 대학이야 말로 '명문대'인 셈이다.

현재 대학에게 '고객'은 '기업' 뿐인 듯 하다. '학생 개개인'이나 '사회'는 그들에게 이윤을 창출해주지 못하기 때문인가? 고액의 등록금을 갖다 바쳐도 '고객' 대접을 받지 못하는 대학생들.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면, 원래 각국의 지역주의(regionalism, 地域主義)*는 무정부주의나 공상적 사회주의와 같은 사상적 조류에 영향을 크게 받았다. 지방분권이니 균형발전이니 하는 것들의 근본이념을 보라. 그러나 신지역주의가 등장하면서 각 지방정부는 전문경영인의 역할을 자처하며 지역을 '기업'을 경영하듯 움직인다. 또한 성장연합(growth coalition)을 강화시키며 토착 중소자본가, 지주, 지역 언론매체 등으로 구성된 세력과 연대하여 지역 규모에서의 성장지상주의에 빠졌다.

* '지역주의'란 여러가지 의미가 있다. ① 국제경제를 논할 때의 지역주의란 (WTO와 대비하여) EU나 NAFTA와 같은 지역 단위의 경제통합 흐름을 말한다. 그 외에 ② 인종, 종교 등을 이유로 주권국가 내의 특정지역에서(혹은 이산된 채로) 종족민족주의를 배후로 하는 정치운동을 뜻하는 지역주의가 있으며, ③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영호남 지역주의와 비슷한 의미로서의 지역주의가 있으며, 여기서는 세번째를 뜻한다.


대학도 마찬가지 종래에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한발 빗겨선 위치에서 존재했다면, 지금은 적극적으로 그 자본주의 체제 속으로 편입되기를 열망한다. 그 편입의 지름길은 지역사회나 다른 공동체와의 연대가 아닌 '기업'과의 제휴이다. '인력조달 하청업체 사장'인 대학 총장은 더 이상 CEO이기를 거부할 수 없다.

'기업'이 '인적 자원'을 '공정하게' '적소'에 잘 선발배치하여 활용한다면 그나마 낫겠는데,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대학생이 스펙 쌓기(스펙이란 기성旣成 조건에 자신의 역량을 끼워맞추는 것)에 열을 올리는 것이 과연 성장의 관점에서도 최선일까? 기업이 요구하는 '스펙'이 최적이고 최고의 효율성을 보장한다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기업들이 요구하는 영어, 자격증 등등...을 기업들이 요구하지 않으면 대학생들이 공부하지 않을까? 대학생들이 스펙에 목숨을 거는 이유는 그만큼 '미래가 불안하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그래서 '안정'을 희구하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 불안의 원인은 '열악한 중소기업, 자영업'의 처지와 같은 것이며, '월세 세입자, 비정규직, 간접고용 노동자'의 처지와 같은 것이다.




우리나라 대다수 기업이 직무분석조차 제대로 하는 곳이 없다고 하는데, 그 직무에 맞는 인재는 무엇이다 이렇게 말하는 능력이나 과연 있을까? 대외활동, 공모전 이딴 것이 기업들의 직무와 어떤 연관이 있을까?

 
인사담당자 79% “직원 뽑고 후회했다”
http://polinews.co.kr/viewnews.html?PageKey=0401&num=100895

온라인 취업사이트 사람인(www.saramin.co.kr)이 기업 인사담당자 491명을 대상으로 채용 후 괜히 뽑았다고 생각하는 직원이 있는가에 대해 설문을 진행한 결과, 78.8%가 ‘있다’라고 응답했다.

신입직원 중 후회한 유형은 ‘열정은 없고, 편한 일만 하려는 유형’(45%, 복수응답)이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가르쳐도 이해력이 떨어지는 유형’(44.7%), △‘스펙만 좋고, 실무능력이 떨어지는 유형’(39%), △‘말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유형’(38.8%), △‘회사 내 예의범절을 전혀 모르는 유형’(38.2%), △‘본인만 아는 이기적인 유형’(28.7%) 등의 순이었다.

(중략)

채용을 후회한 직원을 어떻게 했는지 묻는 질문에는 40.1%(복수응답)가 ‘상담을 통해 개선토록 했다’라고 답했다. 이어 ‘주의를 줬다’(38%), ‘인사고과를 낮게 평가했다’(21.2%), ‘권고사직 시켰다’(20.7%), ‘개선의 여지가 없는지 지켜만 보았다’(19.4%) 등의 의견이 있었다.

직원 채용 시 잘못된 선택을 한 이유로는 ‘면접에서 지원자의 말만 믿어서’(31.8%)가 1위를 차지했다. 계속해서 ‘심층면접을 진행하지 않아서’(18.6%), ‘개인적으로 인재채용 스킬이 부족해서’(15%), ‘스펙만 보고 평가했기 때문에’(14.7%), ‘평판조회를 실시하지 않아서’(7.2%) 등이 뒤를 이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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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타임즈



'운동권 스펙'이란 뭘까?

그 전에도 그랬지만 특히 얼마전 고려대생 대자보 사건이 있은 후, '운동권 스펙'이란 용어를 쓰는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정확히 어떤 의미로 썼는지는 알 수 없다. '운동권'이 원하는 인재상? 이런 의미라면, 그런 운동권 적합형 인재상은 어떤 것일까?

80년대, 90년대 초반까지는 헌신성과 전투성이 요구되었다. 사회과학적 안목과 정치적 능력, '사람 사업'을 잘할 수 있는 수완도 중요했다. 일부는 기술적인 분야의 능력을 가진 인재도 요구되었다.(영상제작, 문화예술, 데모전략, 대중 선전, 물품 조달, 대외관계, 홍보, 협상전략, 대규모 조직 관리자 등)

2000년을 넘어오면서부터는 사회운동에서도 제반 전문지식에 대한 다양한 능력이 요구된다. 이제는 피아가 명확히 구별되고, 전선이 뚜렷한 형태의 운동이 아니다. 전선이 이리저리 갈려 있고 모두가 적이기도 하고 모두가 동지이기도 하다. 또한 선악구별만으로는 아무런 운동도 못한다. 예전과 달리 선악이 뚜렷이 구별되지 않는 영역의 문제가 대중의 삶을 결정짓는 환경에 처했다. 이런 환경에서는 그만큼 진보운동에도 뛰어난 인재가 더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나 운동권이 스펙 만들어봐야, 조직원들의 생계를 책임져주지도 못할 것인데 그건 어디다 쓸 것인가?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정도되는 조직이라면 규모도 꽤 크고 당비, 조합비도 적은 편이 아니지만, 그 외의 조직들은 스펙 만들어봐야 무용지물. 활동가들이 이슬만 먹고 살 수는 없다. '돈'은 적게 주더라도 '명예'나 '경력'을 줄 수 있다면 그나마 낫겠는데, 시쳇말로 이제는 쌍팔년도도 아니다.

어쩌면 앞으로는 강기갑 같은 인물도 구하기 힘들지 모른다. 한국에서도 각 노동조합이 (가입 조합원 두당 얼마의 성과급을 받는) 유급 organizer를 두면 어떻겠는가...라는 생각도 한다. 우리가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나라 중에서는 '최장의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국가'가 바로 대한민국인데, 그런 나라에서 '성과급'이니 하는 것까지 도입하여 '일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피를 말리려고 드니 경악을 금치못하는 것인데, 그럼에도 노조 스스로 이런 성과급제로 조직확대를 꾀하는 것을 반대할 생각은 없다. 대의를 위해!

뭐~ 진보/좌파 조직이 키운 인재가 끝까지 충성한다는 보장만 있다면, 지역에서 인재를 키우기 위해 추진하는 사업(남도학숙, 전북학숙)처럼 기본적인 숙식을 해결해주고 로또식 신분상승을 위해 스파르타식 통제형 학습환경을 조성해줄 수도 있겠다. 그래서 진보/좌파 관료들을 다량 배출할수만 있다면 왜 거부하겠는가.

그러나 이런 것이 대중의 지지를 전취하여 권력을 얻고 목적한 바를 달성하는데에는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진취적인 대학생?

기업들이 내건 스펙에 자신을 '맞춤형'으로 개조하는 대학생들을 '진취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상당히 문제가 많다. 이들이 스펙 맞춤에 열을 올리는 것은 '실용적이고 개성 넘치는 꿈을 갖고 있고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라 '노동시장'에서 노동수급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는 까닭이다. 이들에게 '무식한 대학생'이라고 타박하는 것도 분위기 파악이 안되는 말이지만, 이런 경향을 지지하고 찬양하는 것은 더 괴팍한 일이다.

사실 학벌사회에서 SKY급의 대학 졸업생들이 '먹고 살 걱정'을 하는 것은 국격에 맞지 않는 현상이 아닌가? 왜 이들이 '떨어뜨리기 위한 시험'이라는 '고시나 공사 시험' 따위에 연연해야 할까? 그런 것은 '공무원 사관학교'를 자처하는 지잡대에나 어울리는 것 아닌가? 일류대 졸업생이라면 1인 기업이라도 차려서 지잡대생들 서넛은 고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공부 못하는 대학의 학생들은 왜 '데모질'도 못할까?

'지잡대생이라는 하층 카스트는 왜 데모질도 못할까?'라는 질문은 좀 생뚱맞다. 시장원리나 세상 이치에 따르면 당연한 것 아닌가? 우선 운동권 내에서도 학벌이 미치는 영향은 강했고, 어디 지역 의장이라도 하려면 적어도 지방 국립대나 그 다음 가는 사립대 총학생회장 명함은 갖고 있어야 했다. 2년제 전문대 출신이 (졸업을 늦춘다면) 전대협 의장을 할 수 있었을까?

그나마 학벌이 좋은 대학생들이 데모질도 잘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기성의 권력'을 만만하게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 아닌가? 온전히 헌신성, 인품, 사회를 보는 안목이 더 뛰어난 까닭이었을까?

지잡대생 입장에서는 데모질에 시간과 정력을 투자해봐야 별로 얻을 것이 없다. 명문대생이라면 하다못해(!) 그런 경력을 내세워 지방의회 의원 출마라도 하지만, 지잡대생은 그런 경력을 내세우면 '블랙 리스트'(채용 회피 명단)에 오른다.  그 밖에도 '신설 학교'라거나 '종교 재단'이 세운 학교라면 더 많은 난관이 있었을 것이다.


진보는 금욕주의적일까?

진보는 대학생의 욕망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가? 대학생들이 스펙 맞춤 경쟁에 올인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은 그들을 '속물' 혹은 '물욕에 눈이 먼 사람'이라고 봐서가 아니다. '답이 없는 제로섬 게임' 구조에서 모두가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카지노나 로또(물론 스펙 맞춤이 일확천금을 노리는 것은 아니다)에 가산을 탕진하는 사람을 보고 안타까워하듯, '좁은 바늘 구멍'에 자신의 몸을 구겨 넣느라 '승산이 적은 싸움'에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는 많은 '예비 루저들(패배자들)'을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이들의 스펙 경쟁은 직접 시장의 소비자에게 호소력을 갖는 능력을 갖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로 기업의 종업원이 되기 위한 경쟁일 뿐이다. 때문에 그 경쟁에서 탈락하면 루저가 되는 것은 따놓은 당상이다.)

이건 사회주의자와 같은 진보/좌파 뿐만 아니라 '창의성'을 중시하는 기업가나 자본주의자라도 매우 안타까워할 일이 아닌가? 그들의 욕망이 조만간 산산히 부숴질 것을 알기에 '스펙 맞춤에 열올리지만 말고 다른 것도 생각해보자'는 제안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정리 + 결론

1. 스펙 경쟁은 진취적인 욕망의 실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2. 스펙 경쟁에 몰두하는 젊은이들 개개인을 탓할 것은 못되지만, 그것을 찬양하는 것은 안될 일이다.
3. 스펙 경쟁에서 탈락한 '루저'를 위한 정책이 필요하고, 그런 정책을 추진할 '정당'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노동생산성이 개판 오분전인 '한국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을 향상시킬 방안을 더 고민해보는 것이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1mg이라도 도움이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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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vote. What does that mean? It means that we choose between two bodies of real, though not avowed, autocrats; We choose between Tweedledum and Tweedled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