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게시판을 도배하는 것만 같아서 정말 죄송한데요. 라이툼히님의 댓글에 대해서 또 댓글을 달려고 보니 차라리 새롭게 다른 논의를 촉발시켜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


한국 사회의 진보 혹은 좌파가 직면하는 여러가지 한계 중에 하나는 이른바 열등감 담론입니다. 진보의 주장이나 운동이 한국 사회 구조에서 성공한 적 없고 주류가 되어본 적 없는 세력들이 성공한 사람들한테 투정하는 것 처럼 비춰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회의 부조리한 체제를 극복해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그 체제에서 탈피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체제를 개선하려는 운동 세력들이 체제 밖에서, 즉 비주류로서 개혁과 개선을 외치고 있는 모습 자체를 열등감에 사로 잡힌 루저들의 투정이라고 봐서는 안됩니다. 다만 그렇게 생각하도록 유도하는 주류 언론 세력과 정치 세력으로 인해 진보세력이 '열등감'에 사로잡힌, 못생긴 여자나, 학점, 영어점수 안 좋은 사람들이나, 좋은 직업 못 가진 사람들이나 있는 루저집단으로 호도되고 왜곡되고 있다는 점이 심각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거기서 라이툼히님께서 지적하지는 '찌질함' 이 비롯되는 것이죠. 대학생에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보다 학점도 안 좋고, 대외활동도 없고, 영어점수도 안 좋은 애가, 게다가 못생기고 옷도 못 입는 애가 '좋은' 일 한답시고 뭉쳐다니니까 찌질해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대학생들이 운동 세력에 대해 적극적 참여가 없는 심정적 지지 만을 보낼 뿐이죠. 등록금은 깍아주겠지 하는 작은 소망을 갖고 말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했던 연설 중에 이런 맥락의 글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역사는 정의로운 세력이 정권을 잡아 본 적 이 없는 역사다, 정의가 정권을 잡아야 사람들이 정의를 말할 수 있다.


최근 한국 정치사와 관련하여 생각했을 때 노무현과 김대중 정권을 완벽한 의미의 진보정권이라 보지 않는다면, 간단히 말해 진보는 단 한번도 승리자인 적이 없던 겁니다. 미시적으로 혹은 개별 정책적으로는 진보의 승리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있었지만 이른바 한국 사회의 성공과 1등 담론에서 승리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죠. 그러나 위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이러한 승리 담론 자체에 동의하고 거기서 승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렇게 계속 루저집단의 열등의식 표출로 진보가 비춰져서는 절대 한국 사회의 담론을 좌향좌 시킬수 없다는 것이죠.


결국 진보에게 필요한 전략 중에 하나는 네흘류도프(이하 네흘류)적 진보를 양성하는 것입니다. 네흘류는 톨스토이가 쓴 부활의 주인공입니다. 거기서 네흘류는 공작 작위를 갖고 있고 물려받은 재산도 매우 많고 사회적으로 신임이 두터운 젊은이입니다. 그러나 그는  '형법' 제도의 모순과 위선에 대해 점점 각성하고 농자유전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구조에 대한 비판을 깨우쳐가면서 점차 변화하게 됩니다. 유산으로 물려받은 농지를 소작농들에게 무료로 분배해주는 대신 수확의 일부를 마을 공동자금으로 쓰도록 유도합니다. 정치범 죄수들과 만나면서 그들의 사상의 감명받고 억울하게 누명 쓴 사람들을 보면서 사법체계의 위선과 경직성을 혁파하려고 노력하죠. 네흘류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승리자가 말하는 진보의 영향력입니다.


홍세화님이나 박원순님이 이런 말을 자주 하십니다. 대학생들 제발 고시 그만하고 영어 공부 좀 그만하라고, 옳다고 생각하는 일 좀 하라고, 물론 옳은 말입니다. 지금 처럼 거의 모두가 고시 공부를 하거나 대기업에 들어가려는 사회구조 자체에는 근본적인 모순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걸 내려놓고 진보적 가치를 달성하자 라고 하면 아무도 따라와주지 않을 것라는 것도 당연합니다. 따라서 그럴 바엔 차라리 네흘류도프적 진보가 되기를 권하는 편이 낫습니다. 성공하고 싶어서 하는 대학생의 욕망을 인정하고 거부해서는 안되는 것이죠. 지금 대학생들이 겪고 있는 존재론적 고민 중에 하나는 신념과 욕망의 싸움입니다. 분명 나는 진보적인 사람인데 진보의 얘기를 들어보면 나는 진보가 아닌 것 같다. 그냥 내 욕망의 뜻으로 살아야지 하면서 진보적인 신념을 포기해버립니다. 그들까지 감싸안을수 있어야 합니다. 너희의 욕망 속에서도 충분히 진보가 실현가능하다. 행시,외시,CPA,로스쿨/취업/의전원/유학 이것들 속에서도 네흘류도프적 진보가 되면 된다. 너희가 성공한다고 해도 진보임에는 변함이 없다. 이런 식의 논법으로 대학생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박정희 집권 기에 중고등학교 평준화를 실시했던 교육부 장관이 이런 말을 했었죠 '내가 경기고 출신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평준화를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비슷한 맥락입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신념에만 헌신해야 하는 운동권의 낭만으로 사회가 변화는 시대가 지났습니다. 주류의 입에서, 승리자의 입에서 진보가 나올 수 있게 하면 사회를 바꿀 수 있을 겁니다. 그러려면 진보는 반드시 열등감 담론에서 자유로워 져야 합니다.


'제 앞가림을 하면서 사회 비판해야 쿨하고 간지나는거지' 라는 라히툼니님의 지적에 이렇게 제 생각을 구체화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