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있었던 한국 정치의 큰 선거에서 20대의 투표율은 대략 18~20%를 보였다. 그나마 그것도 국회의원 선거나 대통령 선거에서 그랬던 것이고 곧 있을 6.2 지방선거에서는 대략 15% 선 마저 무너지지 않을 까 걱정이 크다. 20대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두가지로 진단된다. 하나는 정치가 부패했기 때문이라는 관점이다. 국회의원들이 국회에서 한다는 일은 입법이 아니라 갈등과 반목이라고 느끼고 있고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국정을 운영하고 있어서 20대가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둘째는 20대, 그 중에서도 특히 대학생들은 유년에 경험했던 IMF 라는 경제적 혼란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취업하기 위한 스펙 쌓기에 열중하느라 정치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즉 정치적 이상을 형성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구구절절 옳은 소리이다. 그런데 한가지 핵심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의 20대들이 정치적 이상이 없고 정치적 의식이 없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20대들의 정치적 이상이 정치적 무관심주의이고 정치적 의식이 곧 정치적 무의식인 것이다. 다시말해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옳다고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 라는 개념과 내가 관계되는 순간 내게 돌아오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불안과 공포가 정치적 무관심주의를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현재 20대의 정치양상을 살펴보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현재 한국 대학생의 정치는 크게 두가지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하나는 시민적 권리 증진에 헌신하는, 그래서 대체로 '찌질' 하다고 생각되어지는 소수의 운동세력과 그들의 존재에 대해 어느 정도 존경과 경의를 표하면서도 거기에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갖지 못하는, 결국 스펙을 위해 각개약진하는 다수의 스노브들이 나머지 집단이다.
 
정치적 무관심에 대한 진단이 잘못되었으니 당연히 처방이 먹힐리 없다. 진보는 좋은 정치를 보여주고 좋은 강연을 하고 좋은 대안을 내놓으면 정의를 갈구하는 피 끓는 젊은 청춘들이 따라오겠지 했는데 아무도 따라와 주지 않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찌질하면 아무도 안 따라오는 시대가 되었다. 청바지에 티 하나 걸치고 마르크스 이론을 설파하던 선배들에 의해 조직되고 움직이던 시대는 끝이 났다. 진보도 이제 멋을 이야기하고 간지를 이야기 해야 할 시대가 온 것이다. 진보 세력에서 그토록 경멸하는 오세훈, 홍정욱, 나경원을 보라. 그들은 어떻게 젊은이들에게 어필하는가. 그들에겐 간지가 있다. 멋이 있다. 정책, 이념, 철학을 떠나 그들 자신에게서 풍겨나는 간지가 대학생을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진보는 아직도 개량한복을 입고 표준어 하나 제대로 구사못하는 강기갑 아저씨를 따르라고 한다. 물론 존경할 만한 분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 간지가 안난다. 강기갑을 지지한다고 말하기 부끄럽다는 이야기이다.
 
 시대가 그렇다. 젊은이들이 진보적이지 않은 사회는 없다. 그러나 진보적인 가치를 말하는 세력이 간지가 없을 때에는 과감히 간지나는 보수로 갈아타는 것이 현대 사회이다. 결국 진보가 공략해야 할 집단은 시민적 권리 향상에 헌신하고 몸 바칠 수 있는 용기와 자신이 대체로 진보적이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 그 사이의 용기를 갖고 있는 젊은이들이다. 진보적이지만 찌질해지기는 싫은 대학생들을 진보로 포섭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얘기한 바 있던 진보 아이돌론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이다. 나는 진보적이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용기' 있는 선언이 아니라 '간지' 나는 행위가 되도록 해야 한다.
 
 또 하나 무시해선 안 될 것이 한국 대학생들이 그토록 열망하는 스펙이다. 물론 오직 스펙을 위한 스펙에 집착하고 거기에 몰두하느라 자신의 정체성을 잃는 것은 정말 바보같은 짓이고 궁극적으로 지양되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그러한 학생들을 포기할 것인가? 한국 대학생의 과반수가 넘을 스펙의 노예들을 쯧쯧쯧 의식없는 것들이라 치부하면서 그들의 지지를 포기할 것 인가? 그러면 절대 진보가 이길 수 없다. 스펙을 이야기하는 진보가 되어야 한다. 우리만의 스펙을 만들면 된다. 메이져 언론사의 공모전이나 대기업의 인턴 처럼 영향력있고 공신력있는 진보만의 스펙을 만들자.
 
 현 스펙 공화국 체재에서 스펙을 버린다는 것은 취업을 버리고 인생의 안락함을 버리겠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그 어떤 대안도 제시해주지 못하면서 스펙을 버리고 진보를 이야기 합시다라고 외친다면 돌아올 말은 '잘나셨네요' 밖에 없다. 현 체제에서 성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는 진보가 되어야 간지나는 진보가 된다.
 
 
 물론 진보의 핵심은 인간성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성이야말로 진보의 본질이며 모든 것의 기준은 인간성이 되어야 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스펙이라던가, 간지 그리고 찌질함이라는 개념과 담론이 인간성을 기준으로 수긍하고 수용할 수 있는 문제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쉽게 답할 수 없을 것이다. 스펙으로 인간을 평가하고 비주얼에 의한 느낌으로 가치를 매긴다는 것이 본질적으로 인간적이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현대의 진보는 어쨋든 현대의 인간상을 포용해야 한다는데 있다. 부모 돈으로 산 수백만원 짜리 명품을 들고 허영을 과시하는 대학생들을 비판하는 것은 진보의 역할이다. 그러나 동시에 거의 대다수의 대학생들이 명품들고 다니는 삶을 동경하고 추구한다면 그러한 대학생들 까지 우리 쪽으로 끌어 올 수 있는 능력도 진보의 역할이다. 진보를 이야기해도 명품을 들고 다니는 것 만큼 간지나고 멋있는 일이라는 것을 증명해보이는 일. 운동권적인 낭만과 생태주의와 사회주의의 찌질한 빈곤함에서 벗어나 자본주의적 가치에서의 멋을 보이고 스펙 공화국에서 '선' 스펙의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어야 오늘의 대학생들에게 진보를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