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뜨거운 떡밥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바로 '섬노예 사건'이라고 불리는, 전남의 외딴 섬 염전에서 노예 생활을 하다가 가까스로 구조된 장애인의 사례입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421&aid=0000672118

우선 저 사건에 대한 네티즌들의 분노는 정당합니다. 무엇보다도 저 섬의 경찰 등 공권력이 피해자들의 구조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것, 섬 주민들조차 피해자들의 탈출을 방해하고 공범 역할을 했다는 대목에서는 인간적인 치떨림과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앞으로 정부는 가능한 행정력을 모두 동원하여 이런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강력한 대책을 세우는 한편 이번 사건에 책임이 있는 모든 당사자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엄정한 처벌을 받도록 조치할 것을 촉구합니다.

하지만 이런 분노의 한편에서 더 심각한 우려도 지울 수 없습니다. 지금 인터넷에서 저 사건을 소재로 벌어지는 토끼몰이 사냥은 사건의 직접 당사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간단히 말해 호남에 거주하는 주민이나 호남 출신들 전체를 대상으로 혐오감을 부추기는 광기가 불어닥치고 있습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위에 링크한 기사에 달린 댓글들 중 일부입니다.

-이번일로 전라도 여행가는일은 없을것같네요 감사합니다~~
-전라도 새끼들이 다 그렇지 뭐 ㅉㅉ
-어서오랑께 염전은 처음이제?
-정말 전라도 사람 욕을 안하려고 해도 안할수가 없다.
-난 일베도 싫고 지역감정으로 싸우는것도 싫지만 이런 전라도 섬노예같은 사건이 줄줄이 나오는거보면 정말 답이없다 21세기에 노비가 머냐 한심한놈들 이래서 전라도 섬여행갈땐 혼자가지말란거구나
-저기 경찰하고 섬주민하고 다 한통속이라 탈출도 못한다더라. 여행가려 했는데 무서워서 가겠냐 ㅎㄷㄷ 빨리 여행금지구역으로 지정해야한다.
-역시.........그곳이랑께. 경찰도 동네주민 노예주인 터미널 직원들 모두 한통속이랑께. 이끼 실사판이랑께
-삼성 이병철:전라도 출신은 뽑지말고 뽑더라도 요직에는 앉히지마라ᆢ명언이지
-우리나라도 링컨같은 대통령이 나와서 전라도 노예해방 선언해야될듯 
-저 직장 이번에 여수쪽으로 발령받았는데... 정말 많이 위험한가요? ㄷㄷ..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 겁니다. 많이 위험한가요??? 여수쪽에는 특히나 섬 많잖습니까
-정말 전라디언들은 답이없는 쳐죽일 종자들이며 대한민국 사회의 암적인 존재,기생충,쓰레기들일뿐이다.
-뭐 지역감정은 없지만... 저런 이유 때문에 전라도에서 역사적인 연쇄살인도 많이일어남... 뭔가 전라도에는 폐쇄성이 있는듯...
-요새느끼는건데요ㅋ어른들말틀린게하나없네ㅋㅋㅋ전라도욕하길래요새그런게어딨냐고ㅋㅋㅋ죄송합니다ㅋㅋㅋ살면서 어른들전라도욕하는거 한번씩은다들어보셨을겁니다ㅋㅋㅋ해논게있으니전라도욕먹는겁니다ㅋㅋㅋ
-명불허전ㅋㅋㅋ 7시!!!!!

저 기사에 달린 댓글은 2만2,339개입니다. 그 가운데 일부만 소개하지만 전체 댓글 가운데 99% 정도는 전라도에 대한 욕설과 모욕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 댓글 자체도 소름끼치지만 사실 저 댓글을 소개하면서 가장 두려웠던 것은 저 댓글 내용 보면서 속으로 '맞는 얘기들이네'하며 공감하는 사람들도 내 페친 중에도 꽤 있을 거라는 짐작이었습니다.

궁금해서 찾아봤습니다. 이런 종류의 사건을 주로 다뤘던 SBS TV의 <긴급출동 SOS24>를 검색했더니 가장 오래 전에 보도된 사안 중 이번 사건과 비슷한 노예의 사례가 2개 나오더군요. 

하나는 2008년 3월 18일 방송된 경상남도 마산에 위치한 장애인 시설 '소망의 집' 사례였습니다(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803191410311001 ).

다른 하나는 2009년 2월 10일 방영된 안동 개밥 먹는 노예(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8&aid=0000120893 )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찾지 못한 사례들이 더 많을 것이고 거기에는 호남 지역의 비슷한 사건들도 있을 겁니다. 방영은 했지만 지명에 대해서는 특별한 정보가 없는 경우도 있더군요.

하지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 사례가 특별히 전남 등 호남에만 국한된 사건일 수는 없다는 것이고 더욱이 호남 거주민이나 호남 출신들의 특이한 성향에서 발생하는 사건일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이런 사건은 어느 지역에서나 일어납니다. 물론 호남은 섬이 많고 그 섬 지역의 주요 생업이 염전이나 새우잡이 등 일반인들이 싫어하는 종류의 일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저런 사건이 상대적으로 자주 일어나고 또 그만큼 언론에 노출될 가능성도 더 높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사건 당사자가 아닌 호남인 전체를 욕하면 도대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정확한 통계를 내보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의 언론들은 이것과 비슷한 사건사고 등이 발생할 때 다른 지역의 사건에 대해서는 그냥 사건의 성격만 제목으로 뽑는 반면 호남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는 유독 지명까지 제목에 포함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도 피해의식에 의한 오해일까요?

이런 얘기까지는 거론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런 종류의 사건 가운데 가장 악질적이고 피해의 규모도 큰데다 그 사건의 처리라는 점에서도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사례가 바로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입니다.

부산 형제복지원에서는 12년 동안 무려 531명이 사망했고, 일부 시신은 300~500만 원에 의과대학의 해부학 실습용으로 팔려나갔습니다. 원장이던 박인근(당시 58세)은 자신의 땅에 운전교습소를 만들기 위해 원생들을 축사에 감금했고,하루 10시간 이상의 중노동을 시켰다고 하는군요. 이거 다 언론에 보도됐던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사건을 놓고 "부산 놈들을 때려죽여야 한다"느니 "부산 여행을 가는 일이 없을 것"이라느니 하는 발언은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영화 <도가니>를 보면서도 불편했던 것은 사건 자체의 문제점이나 그 사건의 배경에 깔린 구조에 대한 접근보다 사건이 일어났던 광주 지역의 문제로 접근하는 듯한 영화 제작진의 편향이었습니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사건의 범인들은 전라도 사람들인 반면 그 사건을 해결하는 주인공은 부산 출신으로 등장하는 것도 왜 굳이 그런 설정을 만들었는지 의문이 생기더군요. 실제로 도가니 사건의 해결 주역도, 그리고 사건 해결을 위해서 발벗고 뛴 실무자들도 모두 광주 지역 시민사회 활동가들이었습니다. http://www.womennews.co.kr/news/53233

조중동 등 메이저 언론의 문제에 대해서 여러가지 얘기가 나오지만 저는 무엇보다 독자들의 선입관에 호소하고 그 선입관을 강화하는 편집 및 논조가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독자들이 호남, 난닝구, 홍어를 신나게 씹고 싶어하면 거기에 딱 맞는 기사를 가공해 제공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죠.

독자의 선입견과 언론의 전문성이 결합해 만들어진 '상식'이라는 프레임이 만들어지면 누구도 거기에 도전하기 어렵게 됩니다. 다른 지역에서 혐오 사건이 일어나면 그건 그냥 혐오 사건이지만 호남에서 뭔가 사건이 일어나면 그것은 '호남이기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 됩니다. 어떤 도덕가도 어떤 이론도 이 프레임에 걸리면 빠져나올 방법이 없습니다. 그 결과는 파국입니다. 깨트리기 어렵기 때문에 그만큼 무서운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섬노예 사건은 누가 뭐래도 전남의 섬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인데 그만큼 욕 먹는 것도 당연한 것 아니냐 뭐가 그리 주절주절 변명이 많냐... 아마 이렇게 생각하실 분도 계실 겁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 아래와 같은 기사와 그 댓글도 소개합니다. 지난 1월 초 광주의 치매 노인이 길을 잃고 헤매다 얼어죽었다는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어떤 댓글들이 달렸는지 한번 보실까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6694560

-따뜻한 슨상님 품으로..
-돌아가신분은 안타깝지만 혹시 이분도 국민장으로할건가요 군대앞에서 돌아가셧다는데
-역시 민주화가 가슴깊이 담겨있군 치매걸려도 역시 그 탄약고로 가는군
-표1장 증발 .....
-어디라구요 ???ᆢ
-전라도 / 체첸.티베트.스코틀랜드.오키나와
-절라도 범죄기사만 뜨면 전국이 하나로 통일되네ㅋㅋㅋㅋ 이게 절라도놈들의 현실ㅋㅋㅋㅋ
-우덜의 열사가 귀한께 당분간 냉사로 봐꿨응께 이해들 하드라고 열사나 냉사나 한끗차잉께 그리들 아소 우덜 성상님의 계시랑께
-ㅉㅉㅉ 마지막에 박근혜 아웃이라고 글이라고 써놓고 죽으면 민주열사 되는건디 존나 안타깝다ㅋ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아! 잔인한 동네여! 노인 비록 치매 증세가 있었다 해도 마뜩챦은게 있었으니 엄동설한 집을 나선 것이지. 정처없이! 비정한 심보들이여!
-이분을광주5.18묘역에안장해야될듯합니다.
-탄약고 털고 반란을 일으키던 젊은 시절이 그리운가 보네

돌아가신 분이 왜 저런 비하의 소재가 되고 게다가 저 분의 죽음이 왜 전라도 비하의 이유가 되는지 혹시 설명해주실 분 계십니까? 탄약고 얘기는 돌아가신 분이 공군탄약고 철조망 담 옆에서 숨진채 발견됐다는 것을 다시 트집의 소재로 삼아서 나온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사건의 성격 때문에 전라도를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전라도이기 때문에 어떤 사건이건 비하의 재료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대조적인 사례가 있습니다. 제가 요 몇 년 사이에 접한 가장 엽기적이고 소름끼치는 사건이었습니다. 바로 자신을 무시한 사촌동생을 수면제를 먹여 재운 후 전기톱으로 신체를 절단해 죽인 사건입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2623982

울산에서 일어난 이 잔혹 사건에 대해서도 역시 댓글들이 달렸습니다. 그 중에는 역시 지역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댓글도 있습니다. 

-경상도는 어쩔수 없내요....
-역시 베충이의 본토 흉노족의 후예 답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댓글 분량은 상대적으로 매우 적습니다. 그대신 비교적 사건 자체에 대한 감상을 적은 댓글이 훨씬 많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무슨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냥 안보고 살지 그랬어요. 얼마나 힘들었으면 살의까지 느꼈는지는 모르지만, 죽은 사람도 산사람도 안타깝네요.
-사람은 꼭 자기 한만큼 돌아 온다.... 그치만 살인은 최선이 아니였다...
-우리나라 대체 왜 이러나요..ㅠ무서워서 살겠나요...정신병자도 아니고...완전 충격이네요
-아진짜무섭게왜그러냐 왜그런영화를봐가지고

저런 잔혹사건에 대해서도 분노나 혐오보다는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 대해 안쓰러운 심정을 표현한 것이 매우 독특합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더욱 특이한 현상이 있습니다. 바로 이 사건을 보도하는 기사의 갯수입니다.

지난 1월 20일에 사건이 발생한 후 거의 20일이 지나 현장검증을 다룬 후속 기사와 일부 가십성 기사까지 나왔습니다만 전체 기사 건수는 40개가 되지 않습니다. 그 중 상당수는 사건이 일어난 울산 지방의 지방신문들이 게재한 것입니다. 반면 섬노예 사건을 다룬 기사는 어제(2월 6일) 처음 보도가 시작됐습니다만 이틀만에 전체 기사가 100건을 훌쩍 넘어가고 있습니다.

저 전기톱 살인 사건에 비해서 이 섬노예 사건이 훨씬 더 충격적이고 잔인하고 구조적 모순이 중첩된 그런 사건이기 때문일까요? 사회적으로 독자들에게 더 많이 알려야 할 사건일까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섬노예 사건은 정말 우리 사회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구조적인 문제점을 보여주는 사건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구조적인 문제란 호남놈들은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홍어족들이어서 저런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일까요 아니면 전남과 호남 지역 전반의 경제적 낙후와 사회적 인프라 미흡이 심각한 문제라는 것일까요?

여기서는 결론을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게 있습니다. 재미난 골에 호랑이 나오더라고, 호남을 씹고 저주하고 조롱하고 비하하는 데 너무 재미 붙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호남만 소외시키면 자신들의 정치 경제 사회적 목표를 손쉽게 달성할 수 있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우리나라의 주도권을 쥐고 있습니다. 지금 온/오프라인에서 넘쳐나는 호남 비하는 바로 그런 주류세력의 가치관이 광범위하게 대중들에게 정착하고 있는 증거라고 봅니다. 하지만 그게 과연 언제까지나 지속가능한 구조일까요?

위에 링크한 치매노인 동사 사건에 짤막하게 올라온 댓글을 소개하는 것으로 포스팅을 마칩니다. 짧막한 댓글이지만 여기에 담긴 저간의 스토리와 분노는 결코 짧지도, 간단하지도, 가볍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 나라의 미래를 진정으로 고민하는 시민들과 지성인, 양심적인 전문가들의 관심을 간곡히 호소합니다.

"전라도 광주에 삽니다만 전국이 우릴 싫어하니 독립하고싶네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