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미가제 이야기를 쓰다가 다시 샛길로 빠지는 중입니다. 하기야 제가 뭐 다 그렇지요.

히딩크가 기자 및 축구 관계자 불러놓고 당시 대표팀의 전력에 대해 브리핑을 한 적이 있죠. 당시 그 브리핑을 돌이켜보면 상당히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먼저 히딩크는 일반의 통념을 깨고 한국 대표팀의 기술력은 높다고 말했습니다. 당연히 모여든 사람들 일부는 의례적인 칭찬으로, 또 일부는 그래도 세계적 명장의 발언이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희망을 품기도 했죠. 그 뒤에 찬물 쫙 끼얹었습니다. 85프로 수준. 더 늘 가능성 제로. 그렇지만 이 정도면 해 볼만하다...

신선한 충격을 준 발언은 그 뒤에 나왔습니다.

'한국팀은 정신력이 약하다'

오잉? 당연히 기자들과 축구 관계자들은 술렁거렸습니다. 기술 수준은 만족할만 하다더니 정신력이 낮아? 아니, 한국팀이 정신력 빼고 뭐 있어? 한마디로 이마에 붕대 감고 뛰는 팀 아냐. 이제 보니 히딩크, 혹시 사기꾼 아닐까? 쟤, 놀고 먹으면서 연봉 챙긴 거 아냐?

그렇지만 뒤이은 히딩크의 설명을 들으며 모두 동의할 수 밖에 없었죠.

히딩크에 따르면 한국팀의 정신력에서 강한 건 '투지' 뿐입니다. 그가 원한 정신력은 그보다 더 고차원적인 이야기였죠. 간단히 말해 '언제 어떤 상황이든 당황하지 않고 최선의 방안을 찾아내는 능력'이랄까요?

구체적으론 선제골 넣었다고 흥분하지 않기(석주흉아, 미안.), 거꾸로 빼앗겼다고 당황하지 않기, 상대의 야비한 반칙에 열받지 않기, 반대로 필요할 땐 적절히 야비하게 반칙한 뒤 냉정하게 화내는 상대를 약올려 더 수렁에 빠뜨리기 - -;;; 등등.

제가 굉장히 감명받은 입양 스토리가 있었습니다. 가난 때문에 미국으로 남매를 입양시켜야했던 홀어머니 이야기인데요. 그 홀어머니는 자식들이 미국으로 떠나는 전날까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애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가서 지켜야할 사항등을 가르쳤지요. 그리고, 자신의 상황을 솔직히 이야기하고 절대로 너희들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최선의 길이기에 마음 아프지만 보낸다고 이야기해주었지요. 그리고 서툰 영어로 입양하는 미국의 양부모들에게 전하는 편지를 동봉해서 보냈지요.

전 위의 홀어머니는 정말로 대단한, 더 나아가 저같은 범인은 근접도 못할 정신력의 소유자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라도 위와 같은 상황을 맞으면 술로 도피하거나 정을 뗀다는 명목하에 오히려 아이들을 멀리하기 십상이지요. 그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합니다. 그렇지만 자기보다 더 힘들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비참하고 슬픈 감정을 애써 누르며 마지막까지 냉정하게 최선을 다한다는 것, 이거야말로 진정한 정신력이지요.

그런 점에서 가미가제를 보면 그야말로 안습입니다. 가미가제는 엄밀히 말해 전략 전술이라기보다는 최악의 상황을 감정적으로나마 도피하려는 지도부들의 자기 연민이나 기만책에 불과합니다.그들은 미군의 군함들을 향해 휘청휘청 날아가는 제로센을 보며 중얼거렸겠지요.

'벚꽃처럼 자신의 젊음을 바치는 이 아름다운 풍경에 어찌 감동받지 않을 손가. 천황폐하를 위해 초개처럼 목숨을 바치는 황군 만세! 일본혼이여 영원하라!.'

아름답긴 개뿔. 날아가는 비행기 안의 조종사는 약 탄 술 먹고 헤롱거리고 어차피 1회용 비행기 만드는 군수 공장은 비리로 얼룩지고 도쿄  심장부는 폭격에 지옥을 맛보고 있는 와중에 지 혼자 감동에 젖어 뭐 하는 쌩쑈랍니까? 이건 코미디죠. 그것도 출연 배우들은 어처구니없게도 자신들이 감동적인 대 서사시를 만들었다고 자랑하며 내놓는 블랙 코미디.

그런 점에서 저부터 정신력 재무장을 해야겠습니다.요즘, 땡땡이를 너무 많이 치고 있어서리. 당장 오늘부터. ㅠ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