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ittered with. SexyDolphin

1. 끄적끄적

어제 8년만에 중학교 동창을 만났습니다
전 아직 군미필이라 졸업하고 군문제 해결을 준비합니다만 그 친구는 여자인지라 '취업' 에 대해 고민하더라구요
오랜만에 만나 나누는 대화치곤 재미없는 주제였습니다만,

이리저리 어리석음으로 사람에게 데이며 대학생활 끝자락에 다다르는 저로서
어제 그 친구를 만나 대화하는 내내 찰나에 스쳤습니다

                                                                    사람도 답은 아니다 그러나,
                                                                    결국 사람이 답이다



2. 다윈말곤 '진화' 의 아이디어를 떠올린 사람이 없었을까?

잠시 레퍼런스를 달겠습니다
Ref 1 : http://library.thinkquest.org/C004367/eh1.shtml

                                                                        Pre-Darwinian Theories of Evolution

1. Evolution-like ideas had existed since the times of the Greeks,
    and had been in and out of favor in the periods between ancient Greece and Victorian England.

2. While the Greeks did not specifically refer to their concepts as "evolution",
    they did have a philosophical notion of descent with modification.

3. During medieval times, the idea of evolution was quite out of fashion, 
    since the time was dominated by the Christian theory of special creation.

4. Immanuel Kant (1724-1804); In a thoroughly modern speculation, he mused that
    "an orang-outang or a chimpanzee may develop the organs which serve for walking, grasping objects, and speaking-in short,
    that lie may evolve the structure of man, with an organ for the use of reason, which shall gradually develop itself by social culture"

5. Carolus Linnaeus, or Carl Linné (1707-1778), is considered the father of modern taxonomy for his work
    in hierarchical classification of various organisms. At first, he believed in the fixed nature of species,
    but he was later swayed by hybridization experiments in plants, which could produce new species.

   However, he maintained his belief in special creation in the Garden of Eden, consistent with the Christian doctrine
   to which he was quite devoted. He still saw the new species created by plant hybridization to have been part of God's plan,
  and never considered the idea of open-ended, undirected evolution not mediated by the divine.

6. Thomas Malthus' (1766-1834) theory of population growth was in the end what inspired Darwin
    to develop the theory of natural selection.



요악하면, 그리스 시대에도 '진화' 의 개념이 있었는데 단순히 '세대교체' 즉, '사회적 진화' 의 협의로써 사용한듯 합니다
중세시대에는 워낙 크리스트교가 득세하여 '진화' 의 개념이 구물(舊物) 로 여겨졌고 재밌는것이
칸트가 인간의 이성이 '거짓말' 로부터 탄생하였다 상상한 것입니다

분류학의 대가, '린네' 는 교배를 통해 새로운 종을 유도했지만 끝까지 '유신론' 에 대한 충성을 버리지 않았고
맬서스의 인구론에 영향을 받은 '다윈' 이 그 인구론에 잘 들어맞도록 '경제적 진화' 의 협의로써 '자연선택' 이란 용어를 출발했습니다 



Ref 2 : http://answers.yahoo.com/question/index?qid=20080203101933AAdzsex

맬서스의 가정 :
animals will continue to breed until there are too many for the available food, at which time they will compete for scarce resources.

다윈의 가정 :
favourable variations would tend to be preserved, and unfavourable ones to be destroyed.
The results of this would be the formation of a new species.



   발제 : 진화의 개념은 고대 그리스로부터 전승되어 왔을 뿐임에도
               왜 하필, 다윈의 '진화' 가 그토록 이슈가 된 것일까?



Ref 3 : http://library.thinkquest.org/C004367/eh2.shtml

7. Many scientists and naturalists criticized Darwin's theories,
    possibly because of earlier belief in Lamarckism, and attempted to provide numerous counter-examples.

cf) Lamarckism : organisms "want" to evolve, organisms tend to evolve "upward" towards some distant goal(=teleological)

8. Darwinism also seemed to fit well with prevailing notions of progress that were common during his era.
    Many people at the time believed in the idea that humans were destined for continuous social, cultural, and technological progress.

    Fitting with this notion is the concept of the Great Chain of Being, 
    an idea elaborated by numerous philosophers (including Descartes, Spinoza, and Liebniz) and given its catchy title by Arthur Lovejoy.

    This idea placed God at the top of the chain, followed by angels, mankind, and a succession of animals, plants,
    and finally inorganic matter (and sometimes nothingness). The idea of evolution fit well with this image,
    implying that living beings had somehow climbed this ladder, culminating in the pinnacle of evolutionary progress:
    the human being.



요약하면 맬서스의 인구론에 영향을 받은 다윈의 자연선택은 일면 '수동적 진화' 를 의미하는데 반해
유기체는 '스스로' 진화한다는 '능동적 진화' 를 의미하는 라마르키즘의 과학자들로부터는 빈축을 샀습니다
(라마르키스트들이 용불용설을 '스스로' 의 의미로 이해했나봅니다)

다만, 사회-문화-기술의 '진보' 적 개념이 당대의 시대정신으로 자리잡아가는 때에 맞추어
일반 대중으로부터 다윈의 '수동적 진화' 는 그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광의에서만 보면 동일한 '진화' 를 의미하는 라마르키즘이 다윈만큼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지 못한건
'진보' 라는 개념이 '神' 을 상정하지 않는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인간의 '진화' 를 내포하는 차원에서
'神' 을 상정하는 목적론적인 라마르키즘적 진화와 그 주체여부에서 큰 차이를 보여
대중들의 시대에 대한 욕구를 만족시키는데에서 다윈이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Ref 4 : http://news.dongascience.com/HTML/News/2009/03/03/20090303100000000253/200903031000000002530117130000.html

9. 19세기 후반의 상황은 다윈에게 유리했다. 이 시대는 자유주의와 산업화의 성공 시대였다.
     경제적 자유주의는 기업 간 경쟁과 노동의 자유는 자연선택의 일종이며 그걸 막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힘을 실어줬다.

Ref 5 :
http://blacktv.tistory.com/entry/%EB%8B%A4%EC%9C%88%EC%9D%80-%EC%84%B8%EC%83%81%EC%97%90%EC%84%9C-%EB%AC%B4%EC%97%87%EC%9D%84-%EB%B3%B4%EC%95%98%EC%9D%84%EA%B9%8C-%EB%8B%A4%EC%9C%88-%EC%A2%85%EC%9D%98-%EA%B8%B0%EC%9B%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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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 6 : http://inepisode.com.ne.kr/episode_20.htm

11. 과학의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진화론의 뿌리도 고대 그리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엠페도클레스 같은 자연철학자는 땅, 물, 바람, 불 4원소의 결합과 분리로 자연세계의 변화와 생멸을 설명했다.
       아낙사고라스는 인간은 물고기 모양의 조상으로부터 유래했다고 설명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양한 생물들에 대한 분류체계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고등동물과 하등동물로 구분해서
       그 관계를 설명하는 근대 이후의 진화사상과 이어진다.

이후 생명 진화와 관련된 철학적·과학적 발전은 꾸준히 이뤄졌다. 1753년과 1758년에는 스웨덴의 린네(C.von Linne) 가
식물과 동물의 종을 명명하고 분류하는 체계를 각각 발표했다. 한편 19세기로 접어들면서 동물의 진화에 대한
좀더 구체적인 학설이 제기됐다. 그 대표적인 예가 1809년 라마르크(J.B.Larmark) 가 발표한 ‘동물학’과, 이후 소위
용불용설로 불리는 획득형질의 유전에 대한 그의 이론이다.

다윈의 진화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가장 중요한 사상 중 하나는 맬서스(T.R.Malthus)의 ‘인구론’이다. 다윈은 이 책을 통해
진화의 메커니즘으로 ‘생존경쟁과 자연선택’이라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또 비글호 항해기간 동안 읽었던 라이엘(C.Lyell)의
‘지질학의 원리’도 그의 생각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종의 기원이 발표되자마자 종교계의 반발이 거세게 일어났다. 하지만 이전 시대에 비해 다윈의 진화론은 종교계의 반발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 배경에는 산업혁명기를 통해서 과학기술에 대한 신뢰가 높아졌던 사람들의 인식과,
자유경쟁을 통한 식민지 쟁탈이라는 ‘강자의 법칙’에 대한 유럽제국의 사회적 사고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진화론은 발표 이후 곧바로 스펜서(H.Spencer) 등에 의해 사회다윈주의(Social Darwinism)의 확산과,
당시 유행하던 강대국에 의한 식민지 쟁탈 경쟁 현상과 연결됐다. 그리고 왜곡의 정도가 심해지면서 인종차별과 사회우생학 등
사회적 병리현상도 나타났다. 생명현상에 대한 과학적 발견이 사회적으로 잘못 해석될 때 일어날 수 있는 심각한 위험성을 보여줬다는
의미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크다.



3. 스타를 보면 시대가 보인다

늘 회의했었습니다. 시대를 따라가라는 말은 내입에 풀칠해야겠으니 어거지로라도 받아들이겠는데
'누가' 시대정신을 만들며 왜 '시대' 가 '날' 따라오게 만들순 없는지

역사가 말해주는군요 결국 민중, 대중이 결정함을.
어떻게보면 민심이란 한낱 부질없는 유행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고요

따라서 유행에 이리저리 휩쓸리며 콩고물이나 떨어지길 기대하며 눈치보는 어리석음을 경계해야겠다 다짐합니다
근데 생각해보니 그 민심을 갖고노는 정치인들은 정말 대단한 배짱들입니다

본래 민심을 얻어낸뒤 실패하면 사회적으로 정치실업자 되는거 한순간인데
얼굴에 철면피 깔고 무대뽀로 돌진하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인듯 합니다

그러고보니 왜 故 노무현 대통령이 '바보' 라 추모되었는지도 알겠습니다
보통의 정치인들이 그래왔듯 민심을 갖고놀만큼 독하지 못하셨네요

잘하셨든 못하셨든 그래봤자 다 사람사는 거기서 거기의 세상인데
굳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실 필요까진 없었을텐데
대통령을 떠나 '한 사람' 으로서 뒤늦게 추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