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쓴 시간: 10년 3월 28 8시 40분 40 ~ 10년 3월 28 14시 50분 32

 

(나는 오늘도 희망의 자장면을 만든다 / 상해 지음 / 명진출판)

 

너무나 감동적이다.

수 많은 어려움을 딛고 일군 성공이라 값지고,

진정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분이 있었다니 놀랍기도 했고,

한번 만나 뵙고 손이라도 잡아봤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성공한, 자수성가한 사람의 진솔한 이야기라

가슴을 울린다. 또 큰 울림이 있는 가르침이라

마음에 새기고 두고두고 실천하고 싶다.

뜻밖에 좋은 책, 훌륭한 분을 만나서 기쁘다.

언젠가 한번 하림각을 찾아가 인사도 드리고

자장면은 맛보고 싶다.

2010. 3. 27. 14:30

김 선욱

 

때는 2010년 3월 28 일요일 오전 8 41이다. (노트북의 시계가 3분 늦으니 실제론 44분이다.) 지금 세계에는 어떤 일이? 또 국내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원인 모를 사고로 인하여 선미에 폭발이 일어나 초계함이 침몰하고 해군 46명이 실종되었다고 한다. 이상하다. 원인을 모르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인가?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찝찝한 느낌이 든다. 실종된 장병들이 무사 귀환하였으면 참 좋으련만.

 

김연아 선수는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2위를 차지하였다고 한다. 모든 것을 다 이룬 김연아 선수가 초반의 부진을 씻고 프리에서 잘하여 2위에 오른 것만도 참으로 잘 한 일이 아닌가. 큰 성공 후의 위기를 잘 극복한듯 싶어 참으로 다행이다 싶다.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훈련하고 연습하여 본인의 기량을 점점 더 높여나가길 기대해 본다. 경기나 인생은 끊임없는 자기와의 싸움인 것이다. 자기를 이기는 자가 결국 승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긴 연아 선수에게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지금 여기는 사무실이다. 일요일 나홀로 앉아 이렇게 독후감을 쓰고 있다.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고 있다. 사실 우리네 인생은 생각하는 것처럼 쉽지만은 않다. 아니 어쩌면 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어렵게 경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의 경우가 그렇다.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데, 다들 고통스럽게 살고 있는듯 보여 그 동안 참으로 안타깝기도 했고 답답하기도 했다. 대체 왜들 그런지 한심하기도 했다. 왜들 그렇게 사는 것인지 생각해보느라 고민을 많이 했고, 나름 연구도 많이 해보았다. 또 세상이 올바르게 돌아가지 않는 것을 한탄하고 살았다. 이 모든 게 나의 해석이기는 했지만, 너무나 슬펐다.

 

이런 고민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괴로움 속에서 나태하고 게으르게 살아왔다.  내 한 몸 잘 살아서 무엇 하나 싶어 일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많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살았다. 어쩌면 세상과 인간에 대한 나의 생각이 올바르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하여 반성을 많이 하고 있다. 인류를 위해 고민을 하면서도, 자신과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였던 것이다. 저 혼자만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열심히 사는 것은 분명 가치있는 일일 게다. 소유욕에 빠지는 삶을 살지만 않는다면 풍요롭게 사는 것은 행복하게 사는 것이 틀림이 없다.

 

오늘 아침 우연히 한자락 글에 마음이 평안해졌다. 이런 훌륭한 글을 읽으면서 어째서 우리는 마음 다스림에 관한 책을 읽으며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인지 몹시 안타까웠다.

 

자신과 싸우지 남과 다툴 것 없다

 

일했으면 먹고, 놀았으면 먹지 말라. 이 말씀은 인생이 어떤 것인가를 잘 밝혀 주고 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놀이가 아니라 저마다 맡은 바 일하는 것을 뜻한다. 삶을 즐긴다는 것은 열심히 일한 다음에 얻는 선물이다.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이 있고 해야만 하는 일이 있게 마련이다. 하고 싶은 일만 고집하면 저절로 게을러지고,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으면 저절로 부지런해진다.

일하는 것보다 빈둥거리며 놀고 싶을 때 자신이 두 갈래로 나누어지는 것을 누구나 체험할 것이다. 놀고 싶어하는 자신과 일해야 하는 자신으로 나누어졌을 때 자신과 싸워야 한다.

남의 성공을 부러워하고 시샘하는 사람은 게으름을 감추거나 숨기고 있는 사람이다. 부지런한 사람은 남의 성공을 부러워는 하되 시샘하지 않는다. 제 일을 다하기에 분주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게을러지려고 할 때마다 자신과 싸워 부지런한 사람이 되려고 하면 남을 시샘할 겨를도 없고 남과 시비를 걸어 다툼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삶을 크게 보면 사소한 의견 차이나 시비의 다툼은 하찮게 보인다.

 - 먼길을 가려는 사람은 신발을 고쳐 신는다 (윤재근 지음/아카데미북)

 

명심보감이다. 사람의 모든 일은 마음 먹기 혹은 생각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음에 담아 늘 새기며 살아야 할 훌륭한 정신을 견지한다면 우리는 능히 행복할 수 있을 것이리라.

 

인생에는 언제나 부침이 있을 것이다. 힘들고 어려운 시절이 있다면 평안하고 행복한 시기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렵고 힘들다고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곧 좋은 시절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인생 부침이 아닌가. 그런데 어렵다고 포기하면 영영 기회가 없을 것이다.

 

나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인생을 살려고 한다. 내 꿈과 이상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힘들다고 인생을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일이 잘 안 된다고 쉽게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다. 꿈과 이상이 없이 산다면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나 꿈을 갖고 살아야 할 것이다. 힘들다고 인생을 포기한다면 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것이다. 한 때 좌절하고 낙담을 하더라도 우리는 늘 희망과 기대를 갖고 살아야 한다. 언제든 올바른 길을 찾아 적절한 노력을 기울인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일이 잘 안 된다면 더욱 더 노력을 기울여 훈련하고 연습을 하여서 실력을 쌓아야 할 것이다. 실력이 좋아지면 언젠가는 일도 잘 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은가?

 

얼마 전에 아름다운 가게 봉은사점에 들렸다가 헌책을 몇 권 사왔다. 그 중 한 권을 지난주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인생에 관하여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또 많은 감동을 받았다. 어떻게 그처럼 어려운 환경을 딛고 일어나 성공의 길을 걸을 수 있었을까 의아스럽기조차 했다. 책을 읽고 나도 더욱 열심히 노력하고 인내하고 끈기를 갖고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안에 저자의 사인이 있어서, 전에 들은 바도 있어서 구입한 것이다!)

 

더 어렵고 힘들 수는 없다고 할 정도로 비참한 인생을 성공으로 반전시킨 사람의 인생을 여행해보자. 중국집 보이로 일하던 꼬마가 세계 최대의 중국집 하림각을 일궈 세웠다고 한다. , 그의 인생 역정을 따라가면서 인생에 대해 배워보자!

 

(나는 오늘도 희망의 자장면을 만든다 / 상해 지음 / 명진출판)

 

<책 읽은 시간>

: 2010. 3. 21. (일) 20:10 (남태령)~

: 2010. 3. 27. (토) 14:23 (사무실)

 

<책 읽은 계기>

전에 동생에게 좋은 책을 읽었다고 들은 적이 있었는데,

이 분의 이야기인 것 같아서 이 책을 사게 되었다.  

요즘 무척 어려운 상황인데 이 위기를 딛고 일어서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려고 배움을 얻기 위해 읽었다.

 

 

 

 

역경을 딛고 성공한 이야기는 가슴 뭉클한 감동을 준다. 이 책을 읽고 찐한 감동을 먹었다. 어느 책에선가는 인생은 40 혹은 50부터라고 했다. 그때부터의 성공이야말로 진짜 성공이라는 의미에서 그런 것이리라.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 남상해 선생님은 어려서의 고통을 딛고 성공의 길로 들어선 이후엔 승승가도롤 달려오셨다. 인생은 50부터라는 이야기는 맞지 않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차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어려움과 고통을 딛고 성공한 남상해 선생님의 성공 스토리이다. 인간은 불가사의한 존재임에 틀림이 없다. 그 분이 겪은 삶은 너무나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열악한 상황에 놓인다면 좌절하고 포기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리라. 그런데도 그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한줄기 희망을 놓지 않고 견디어 냈다는 것은, 그리고 큰 성공을 일궈냈다는 것은 위대한 인간 승리의 드라마인 것이다. 참으로 눈물겨운 인생이었는데

 

오랜 시간을 거꾸로 달려가면, 어린 남상해와 그가 겪은 갖은 고초를 만날 수 있다. 단지 먹고 살기 위해서,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 10살 어린 나이부터 지게질을 하고, 심부름을 하고, 어른 못지 않은 일을 해야만 했던 소년. 눈물을 흘리지 않고 그의 이야기를 계속 들을 수가 없다. 그렇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잊지 않았던 것이 있다고 하는데

 

늘 꿈을 꿀 일이다. 하지만 나는 죽으려던 그 힘으로 이 악물고 그 어려웠던 시절들을 견뎌냈다. 그래서 결국 세계에서 가장 큰 중국집의 사장이 되었다. 까막눈이었던 무식쟁이가 서른아홉 살에 뒤늦게 대학도 마쳤다. 다만 막다른 골목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 된다는 나의 소박한 경험을 나누고 싶었다. (7p)

 

살아오면서 나는 다른 이들보다 훨씬 더 많이, 적어도 하루에 두 번, 거르지 않고 했던 일이 하나 있다. 바로 꿈꾸는 일이었다. 구두를 닦을 때는 거대한 구두 공장 사랑이 되는 꿈을, 중국집 종업원 시절에는 세계 최대, 최고의 자장면집 주인이 되는 꿈을 꾸었다. 심지어 군에 입대했을 때는 장군이 되어 병사들을 사열하는 나를 꿈꾸었다. (8p)

 

나는 내게 주어진 그 혹독한 삶의 조건들을 보기 좋게 돌려 버린 그 역전의 힘을 사랑하며, 오늘도 꿈을 꾸며 살고 있다. 야무진 도전 정신이 싹틀 모양 있는 꿈을, 그리고 그것이 실현될 수 있는 구체적인 꿈을 말이다. (9p)

 

그는 여는 글에서 꿈꾸라고 소리친다. 그렇다. 성공한 모든 사람들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꿈꾸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러한 가르침만 마음만 새겨도 한권의 책 이상의 가치가 있으리라.

 

책에선 먼저 중국집을 내서 30억을 번 7가지 비결을 전수해 준다. 사업하는 사람들의 중요한 마음 자세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오랜 경험에서 우러난 깨달음이라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 충고이다. 음식 사업을 하거나 중국집을 경영하려는 사람들이라면 금과옥조로 삼아도 좋으리라.

 

 <대통령 앞에서도 기죽지 말라> <항상 장사가 안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라> <매일 아침 일찍 시장으로 출근하라> <음식 배달원에게도 꼭 위생복을 입혀라> <바쁠 때일수록 더욱 친절하라> <맛을 높이기 위한 실험을 계속하라> <고객을 만족시키기 전에 먼저 종업원을 만족시키라> 왜 그런지 이유는 책을 읽어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리라. 

 

이제 그의 처연한 어렸을 적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그 당시에 그처럼 어렵지 않은 사람이 있었겠는가만은 그래도 오늘날처럼 좋은 환경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한번 대리 체험을 해 보아도 좋으리라. 그래서 마음을 다지고 자신의 어려운 환경을 딛고 일어선다면 훌륭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갓 태어난 동생이 병이 들었는데 약을 쓰지도 못하고, 설상가상으로 제대로 먹은 것이 없는 어머니에게선 젖이 나오지 않아 결국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42p) 사람은 자기 먹을 것은 가지고 태어난다는 옛말이 있다. 하지만 우리 형제는 그러지도 못했다. 먹지 못해 죽어갔다. 그것도 한둘이 아니고 4명이나. (42p) 죽기 하루 전날 아버지, 어머니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말을 내게만 무슨 비밀인 듯 털어놓던 내 바로 밑 여동생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에 사무친다. 오빠야, 내 한 가지 얘기가 있는데, 하얀 밥 한 그릇만 먹고 죽었으면 소원이 없겠다. (42p)

 

한푼 벌면 그대로 시골집에 송금하는 보람으로, 가족들 생계를 돕는다는 뿌듯함으로 힘든 서울 생활을 견뎌 나갔다. (43p) 그런 억울한 발길질이나 주먹질을 당할 때마다 나는 빨리 크려고 한 대씩 맞는 매겠거니 하고 참아 냈었다. 그 때마다 일일이 생각하다간 분통이 터지고 겁이 나서 도저히 살 수 없었을 것이다. (43p) 여러 구역마다 텃세가 심해서 한번씩 손님을 받아 구두를 닦으려면 반쯤 죽을 각오를 해야 했다. 죽기 살기로 도망은 또 얼마나 다녔던가. (43p)

 

이렇게 어려운 시절을 보낸 소년 남상해도 아주 어려선 유복한 생활을 보냈다고 한다. 1938년 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 성황리에 태어나 해방이 되기 전까지 일본 북해도에서 교편을 잡고 계시던 부모님 슬하에서 행복하게 자랐다고 한다. 그러나 귀국해서는 한없이 어렵게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교편을 잡으시던 아버님께서는 거친 생활에는 힘을 쓰시지 못하고 말았고, 어머님께서 장사를 시작하였지만 집안의 반대로 그만 둘 수 밖에 없었단다. 양반 체면에 장사는 할 수 없다면서 집안에서 못하게 했다고 한단다. 그야말로 곤궁한 처지에 떨어지고 만 것이다. 이 때부터 그의 고행은 시작되었다.

 

평생 교편을 잡고 있었던 아버지는 억센 생활인으로 거듭나기엔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했다. 매일 우리 형제들은 부족한 먹거리를 해결하려고 산에 가서 솔잎을 따고 쑥을 뜯어왔다. (49p)

 

그 며칠 동안은 거친 음식도 거칠게 느껴지지 않았다. 희망이란 것, 기대란 것은 그렇듯 강렬한 위안이고 힘이었다. (50p)

 

그제쯤엔 어머니도 정신이 없는 모습이셨다. 우리들과 함께 어떻게든 끼니를 해결하려던 그 씩씩했던 모습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저 수척해져만 가셨다. (50p)

 

아버지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아무 말씀도, 아무 표정도 없이 그대로 쓰려지셨다. 그날 우리 가족은 모두 울었다. 그렇게도 강했던 어머니도 우셨다. 이젠 굶어 죽을 일만 남은 것 같았다. 아버지는 전 재산을 소매치기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51p)

 

품팔이 간 집에서 주는 음식을 당신은 먹지 않고 종일 모아두었다가 저녁에 아버지와 우리들에게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럼 어린 우리들은 찬밥덩이나마 모처럼 구경하는 것이라 조금이라도 더 많이 먹으려고 서로 아귀다툼을 벌였다. 그 식은 밥덩이가 정말 얼마나 달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또 그런 날 저녁이면 기분이 느긋해지고 잠도 달게 잘 수 있었다. (56p)

 

어머니는 그 고된 남의 일 하루 꼬박 하고 돌아온 날이면 얼마나 허기가 지셨을까. 배고픔은 아이나 어른이나 노인이나 젊은이나 다 똑 같은 것 아닌가. (56p)

 

병막에서는 거의 매일, 시신이 나갔다. 며칠 동안 한 집에서 얼굴 맞대어 익힐 만하면 가마니에 둘둘 말려 나갔다. 그러고 나면 또 다른 환자와 그 가족이 들어와 빈방을 메웠다. 그러나 그 적 굶주린 우리 가족에게도 죽음은 너무나 가까이 있었다. (57p) 병막에 들어간 지 두 달 만에 내 바로 밑 여동생이 죽고 말았다. 내 평생에 하얀 밥 한 그릇 먹고 죽었으면 원이 없겠다던 아이. 그 열흘 후 내 위 쌍둥이 형 중 한 명이 죽었고, 또 그 열흘 후에는 갓난이 막내가 죽었다. 젖먹이 어린 것은 당시 여섯 살배기 여동생이 안고 다니며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동냥젖을 얻어 먹였지만 그것 가지고는 어림도 없었나 보다.(58p) 결국 한 달 만에 형제들 셋이 떠나갔다. 모두가 못 먹어서 얼굴이 퉁퉁 붓고 눈자위가 푸석푸석한 모습으로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난 것이다. (58p) 며칠을 계속해서 굶으면 정말이지 몇 걸음 떼는 데도 어지럼증을 느낀다. 기어가야 할 정도가 되는 것이다. 배고픈 그 심정은 굶어본 이라야 알 수 있다. 그렇듯 독한 굶주림 속에서 나와 어머니를 제외한 가족들 모두는 쑥 독이 올라 앓기 시작했다. (58p)

 

차마 말로는 다 표현 못할 고통이 아닌가. 내가 만약 이런 극한의 상황에 처해 있었다면 어찌되었을까. 잘 견뎌낼 수 있었을까. 정말 자신이 없다.

 

그 새벽에 아버지는 시신을 거적에 둘둘 말아 한쪽으로 치우면서, 미안하구나, 미안하구나. 부모 잘못 만나 먹지 못해 이래 됐구나. 울컥 한소리씩을 토해 내셨다. 그 옆에서 우시던 어머니는 잠시 후 눈물을 닦으며 엿 광주리를 머리에 이셨다. 그리고는 문 앞에서 그렁그렁한 눈길로 동생이 말려 있던 거적을 물끄러미 본 다음 나와 다른 형제들을 한번 둘러보셨다. 결국 아무 말씀도 못하시고 입술을 터져라 깨물면서 장삿길에 나선 어머니. 열흘 후 둘째형이 죽었을 때도 어머니는 똑 같은 모습을 보이셨다. (59p)

 

,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을까. 이런 지옥과 같은 고통의 터널을 어찌 지내셨을까. 정말 사람이란 알다가도 모를 위대한 존재이다. 나도 우리 어머니께서 어렵고 힘든 삶을 영위하신 한탄을 가끔 들었다. 살기 위해서 견디기 힘든 고통의 다리를 건너셔야 했던 것이다. 이 대목을 읽으며 나의 어머님의 생각도 나고 하여 눈시울을 그렁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여동생을 묻은 지 열흘이 지나 둘째형을 묻던 날도 아버지는 시신과 함께 공동묘지 비탈에서 곤두박질을 치셨다. 그렇게 자식 셋을 가슴에 묻고 나서 아버지는 귀를 잡숫고 말았다. 없던 혈압 계통의 질환이 생겼으며, 그래서였는지 굶주려 힘이 없는 것과는 다르게 늘 시름시름 앓으셨다. 그리고 좀더 있다가는 오랜 자리보존에 들어갔다. 그 수발 역시도 어머니 몫이었다. (60p)

 

이 책을 읽으며 참 많이도 가슴이 시렸다. 어쩜 이럴 수가 있을까를 연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뒤로 소년의 인생험로는 계속된다. 차마 눈뜨고 다 읽을 수가 없다. 소년은 더는 시골에서 살수가 없어 무작정 상경한다. 무임승차로 서울역까지 어렵게 올라왔지만 진짜 어려움은 발치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대책, 무슨 돌파구 같은 것이 있어야 했다. 몇 날 며칠을 생각에 빠져 나무도 안 하고 종일 산에서 뒹굴다 드디어 나는 주먹을 쥐고 일어섰다.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래, 서울! 서울로 가는 거다. (69p)

 

나는 어렸고 첫눈에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지독하게 굶주려 있었지만, 그리고 바로 내 옆에서 푸짐하게 음식을 펼쳐놓고 먹는 이들도 많았지만, 아무도 내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결국 내게 음식을 준 이는 여느 사람보다 훨씬 초라한, 아마도 얻어먹고 다니지 싶은 그런 아주머니였다. 그녀가 내게 준 그 개떡 하나는 어쩌면 몇끼니 식량이었는지도 모른다. (77p)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옛말이 항상 맞는 말은 아닌 것 같다. 깊고 따뜻한 인심은 동병상련의 사랑에서 나온다. 그 적 그 개떡이 그렇게도 맛났던 건 내가 굶주려 있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77p)

 

서울에 도착하면 마음이 편할 줄 알았다. 기쁠 줄만 알았다. 한데 왜 그리 힘이 빠지던지∙∙∙∙∙∙∙. (79p)

 

서울에서의 첫날밤, 나는 대합실 바닥에서 새우잠을 자다 영문도 모르는 채 끌려 나가 죽을 만치 두들겨 맞았으니 신고식 한번 옹골지게 한 셈이다. 그날 그렇게 모질게도 팼던 그 소년과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 매 타작 인연이 서울 생활을 시작하는 내게 큰 보탬이 되었으니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81p)

 

갖은 고통을 견디며 꿋꿋하게 살던 소년 남상해는 더는 견디기가 어려워 자살을 결심한다.쥐약을 먹으려고 죽으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했다. 천우신조랄까 어떤 외침 때문에 그만 소스라치게 놀라고 입에 가져갔던 쥐약 풀은 물그릇을 떨어뜨리고 목숨을 부지하게 된다.

 

그 당시 나는 내가 돈을 부치지 않으면 내 형제들 중 누구 하나가 또 굶어 죽어 봉분도 없이 그 야밤에 묻힐 것이라는 생각에 늘 짓눌려 있었다. 그래서 어린 나이였지만 아무리 먹고 싶어도 풀빵 하나를 차마 사먹지 못했다. 벌이가 시원치 않은 날 저녁은 아무것도 먹지 않고 허기지고 피곤한 몸을 가누며 낙산 꼭대기에 기어올라가 그대로 쓰러지곤 하였다. (95p) 그런 날 밤이면 어머니 생각이 더 간절했다. 배가 고파 뒤척이다 보면 먼저 간 누이와 형들이 어른거렸다. 나도 모르는 새 흐른 눈물로 얼굴이 흠뻑 젖어 있곤 했다. 그 당시 내 심정을 제대로 표현할 줄 알았다면 아마도 이렇게 읊조렸을 것이다. 산다는 건 잔인한 일이야. (95p)

 

겨울에 어렵사리 연탄 하나 사서 오르다가 구르면 그 아까운 것이 다 깨지고 만다. 다시 사려면 돈이 아까워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내 주변 사람들 모두가 그런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견딜 수가 없었다. 나도 나이를 먹으면 저 모습일까? 그럼 어떻하지∙∙∙∙∙∙∙. (97p) 나는 갑자기 더 살고 싶은 생각이 딱 없어져 버렸다. 살아봤자 고생만 되고 형제들한테 도움도 안되고 나아지는 것 없이 나중엔 추잡한 어른이 ~ (12:19 ~ 13:40 : 점심 식사) 되고 말 것이라면 더 살아 뭐 하나. 이렇게 생각한 나는 사람이 쥐약을 먹으면 금방 죽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약국에 가서 쥐약을 사왔다. 혹시 어린아이라고 쥐약을 안 팔면 어쩌나 하고 조마조마한 마음이었는데 다행히도 약사는 쥐약을 선뜻 내주었다. (97p)

 

나는 다시 천막 안 굴 속으로 들어가 미리 준비한 도가니 물에 쥐약을 풀었다. 거무죽죽한 그 약물을 휘젓는 손가락이 파르르 떨렸다. 약물에 담갔던 손가락을 입에 넣어보니 떨떠름한 맛이 났다. 갑자기 온몸이 와들와들 떨려왔다. 입 속은 타는 듯 말랐고 몸에서 열이 나는 게 느껴졌다. 턱 밑으로 받쳐든 약물 도가니에 식은 땀방울이 두어 방울 떨어졌다. 약물이 동심원을 그리며 파장을 일으켰고, 순간 이 동그라미가 다 지워지기 전에 마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약물 도가니를 입으로 가져다 대었다. 한데 그 순간, 어디서였을까. 다다시야! 라면서 누군가 절박하게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98p)

 

다다시. 내가 우리 나라에 들어온 이후로 나를 그렇게 부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다시는 내 일본 이름이었으므로. 오랫동안 앉아 있다 정신을 차려보니 하늘이 희붐히 밝아 오고 있었다. 굴 안엔 도가니가 시커먼 독약을 바닥에 쏟은 채로 덩그렇게 엎어져 있었다. 먹먹한 마음으로 그것을 치우다 나는 쿡 주저앉았다. 긴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내가 살아 있었던 것이다. 눈물이 뜨겁게 흘러내렸다. 아직은 죽지 말라고, 아직 뭔가 희망이 남이 있다고, 그래서 죽으려던 그 순간에 절박하게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99p)

 

이렇게 죽음에서 발길을 돌린 이래 소년은 갖은 어려움을 다 극복하고 마침내 세계 최고의 중국집을 운영하는 훌륭한 사업가로 성공하게 된 것이다. 참으로 눈물겨운 이야기다. 하지만 마침내 인생 반전에 성공하여, 어려운 사람들에게 베풀 줄도 알고, 노인들을 모셔다가 음식을 대접하는 등 좋은 일을 하시면 행복한 생을 영위하게 된 것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성공 스토리가 아닌가. 남상해 선생님의 위대한 인간 승리의 역사에 힘찬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분이 저 때 포기하고 돌아가셨더라면 어떻게 될 뻔 했는가. 위대한 인간 승리도, 노년에 타인을 위해 베푸는 행복한 인생도 없었을 것이 아닌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아무리 어렵다고 하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어려움을 꿋꿋하게 견디어 내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어 마침내 진정한 성공을 이루길 기원하고 싶다. 모두가

 

이 독후감을 쓰고 있는데, 사무실에 출근한 동료 FC가 계셨다. 나보다 입사는 몇 년 늦었지만 나이는 두 살 더 많으신 분으로 성공적으로 일을 잘 하고 계신 분이다. .토 이틀 어딜 놀러 갔다 오셨다며 할 일이 있다고 사무실에 나오시는 길이라 했다. 사무실 입구쪽에 있는 내 자리로 오셔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내가 갖고 있는 책을 보면서 한 권 얻을 수 없을까 하시어 짧은 글귀를 적어서 한권 선물을 하였다. 건강에 관한 얘기를 또 해드리며 인생사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고 난 후 열심히 독후감을 쓰고 있는데, 그 분이 점심 때가 되어 식사를 하러 가자고 하여 따라 나섰다. 오래 전에 아내 분이 암에 걸렸을 때 조언을 해 드린 적도, 책도 선물한 적이 있었다. 이런 저런 일로 해서 내게 한턱 내시려는 것 같아 따라 나선 것이다. 뭐가 먹고 싶으냐고 해서 자장면이 먹고 싶다고 했다. 왜냐고 묻길래 이 책을 읽은 이야기를 해드렸다. 중국집에 가서 간자장면을 시켜 맛있게 먹었다. 정말 맛이 좋았다. 사무실에 돌아와 커피를 한잔 마시면서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성공적으로 일을 잘 하시는 분이라)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어 고마운 마음으로 새겨들었다. 오늘 우연히 뜻 깊은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다.

 

, 책으로 돌아가서 내가 마음에 새기고 싶은 내용이 있어 책 뒷여백에 따로 표시해 둔 부분이 있다.

 

하루 지게질을 세 번 채우지 못했을 경우에는 캄캄한 밤중에 산으로 올라가서 산지기의 눈을 피해 솔가지 몇 개라도 꺾어 왔다. 그래야 마음이 편했다. 당시 내 마음 속엔 늘 , 이제 누가 죽을까?라는 소리가 두려움으로 울려 왔던 것이다. (66p)

 

그렇게 8개월 가량이 지나자 주인은 내게 고생했다며 월급을 주기 시작했다. 그 이후 내 월급은 거의 매달 올라갔고 급기야는 구두닦이 수입을 웃도는 수준이 되었다. (115p)

 

처음에는 숙식만을 제공하고 차츰 하는 것을 봐서 급료를 준다는 조건으로 이곳에 들어왔지만 언뜻 막막한 얘기였다. 그리고 시골집에 돈을 못 부친다는 생각에 애가 탔다. 하지만 편하게 생각하기로 하였다. 우선은 지친 심신을 쓰다듬는 일이 중요했다. 또한 선배 종업원들의 눈치를 보니 주인에게 별다른 불만이 없어 보였다. 열심히 해서 인정받으면 되겠구나. (105p)

 

이젠 죽는 건가, 이대로 이렇게 먼 곳에서? 그런 생각을 하며 가물가물 정신을 잃었다가 다기 깨기를 되풀이했다. 그 흐릿한 정신 속에서 나는 내가 일하던 집보다 더 큰 음식점의 주인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어느 동생을 카운터에 앉힐까 고민하기도 했고, 어머니 아버지께 밥 때가 되면 무슨 음식을 드릴까 궁리하기도 하였다. 억센 근육을 지닌 우람한 몸집의 어른이 되어 있기도 했고, 번쩍번쩍 한 별을 단 장군이 되어 있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소스라쳐 일어나보면 이부자리가 온통 땀과 눈물로 젖어 있었다. (120p) 물론 그것은 주인의 간호 덕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이대로 주저 앉을 수 없다는 의지가 나를 살렸던 것 같다. 무슨 일을 하든 크게 성공하게 말겠다는 나의 꿈이 나를 살린 것이다. 그리고 그 뒤 나의 꿈은 더욱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이왕이면 중국집 사장이 되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120p)

 

오늘 합격하겠구나. 스스로에게 거는 자기 확신, 자기 암시였다. (146p) 그로부터 며칠 후 중식부 최종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이 들어 있는 걸 확인하던 순간, 그 순가의 기쁨은 뭐라고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146p)

 

이렇게 중얼대던 나는 잠에서 깨었다. 꿈이었다. 당시 국제관광공사 교육 연수원은 워커힐에 있었다. 돌아보면 그 꿈은 내 앞길에 대한 예시였던 것 같다. 그런 것을 보면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옛말은 과연 맞는 말인 듯싶다. 지금의 처지가 옹색하고 바라는 일들이 안 풀린다고 해서 결코 절망할 일이 아닌 것이다. (147p)

 

1982년 나는 남산 중턱에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의 중국집을 열고 그 상호를 다리원이라고 불렀다. 처음 6개월간은 장사가 너무 안 되어 초조해지기도 하였다. 만일 그대로 주저앉으면 나는 알거지나 다름없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처지였다. 그러나 초조해지는 마음보다 된다는 생각이 더욱 확고했다. 나는 전심전력으로 홍보에 매달렸다. 서울 시내의 유명빌딩에는 모두 광고 전단을 넣었고, 특히 강남 지역의 신흥 부촌을 집중 공략하였다. 패션을 리드하면 생활 패턴도 그들이 주도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나는 이러한 홍보전을 2년 동안, 장사가 잘 될 때도 한결같이 지속하였다. 개업 후 6개월이 지나면서부터 점차 예약 손님들이 오기 시작했다. (176p)

 

젊은 시절 나는 오로지 움켜쥐는 일에만 몰두했다. 한번 손에 들어온 것은 일단 쥐고 보았다. 그렇게 하여 손에 준 것이 많아지고 쌓여가는 것을 보면 즐겁고 행복했다.그러나 점차 나이가 들고 생활이 안정되자 그러한 내 모습이 안쓰럽고 허했다. 뭔가 색다르고 더 큰 즐거움이 있을 것이었다. (194p)

 

내 나이 이제 지천명을 넘어 이순이 지났다. 하늘의 뜻을 알 만한 나이조차 지나 이젠 무슨 소리든 그냥 순하게 듣고, 들으면 그대로 그 속뜻을 자연히 알게 되는 그런 나이가 된 것이다. 젊은 시절을 열심히, 뒤는 물론 옆도 보지 않고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제쯤엔 품을 열고 살아온 마당에다 뭔가 내놓고 싶은 법이다. 그리고 그렇게 푸는 재미, 그렇게 쓰는 재미가 벌고 쌓는 재미보다 훨씬 더 좋은 걸 어떡하랴. 베푸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이 있다. 그것이 물질이든 노동이든 일단 해보면 더욱 푸근한 마음이 되는 것을∙∙∙∙∙∙.(195p)

 

희망이란 성공 가능성의 여부를 떠나, 있는 힘을 다해 일에 매진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것은 절망적인 현실을 견뎌낼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준다. 나는 아침이면 푹 쪼그라든 배를 안고도 대개는 기와집을 지었었다. 그 기와집 안에서 나는, 내가 배달 일을 하던 중국집보다 더 큰 음식점의 주인이 돼보기도 했고, 학자가 되기도 했다. 때로는 대통령이 돼 있기도 했다. 이것은 소년의 허황한 치기로만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그러한 허황함이 고단한 나를 지탱해준 힘이라면, 그것은 이미 허황함이 아니라 어려움을 이기려는 긍정적인 열정이다. (200~210p)

 

매사 부정적인 젊은이는 바보는 안 될지라도 용기와 뚝심을 가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순수한 사고의 힘처럼 거대한 것도 없다. 순수한 젊은이는 잠시 잠깐 바보가 될지라도 내면에 그 거대한 힘을 축적해 갈 수가 있는 것이다. (202p)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 그 일을 최고로 해낼 능력과 열의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비록 그 일이 나와는 별로 맞지 않는 것이라 해도 일단 맡았으면 그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얻는 만큼의 대가는 반드시 치러야 한다. 이 사실이 때로 우릴 우울하고 지치게 만들기도 하지만 반대로 야무진 긴장을 주기도 한다. (202p)

 

일단 목표를 정했으면 어렵다고 중간에 포기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어쩔 도리가 없다고 생각될 때, 더 이상은 한순간도 버틸 수 없다고 여겨질 때 그 때가 바로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내가 열 한 살 때, 창신동 꼭대기 굴 집에서 쥐약을 들이키려던 그 때가 바로 인생의 전환점이었듯이, 그 이후 나는 지금의 하림각을 운영하게 된 맨 처음 시작의 길로 접어들었지 않았나 말이다. 그 며칠 후부터 당장 배를 곯지 않았고, 울타리 안에서 잠을 잘 수 있었다. (202p)

 

이상은 위대한 성공철학의 원리가 녹아 있는 뛰어난 조언이다. 요즘 들어 시크릿이니, 꿈꾸는 다락방이니 해서 꿈꾸는 것 혹은 간절히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성공의 원리를 밝혀 놓는 책들이 많아졌지만, 어떤가 이 책의 주인공은 그런 긍정적인 성공 마인드를 일찍부터 깨달아 자신의 삶에 적용했던 것이 아닌가. 가히 성공철학의 원조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훌륭한 책이다. 현실이 팍팍하고 어려운 사람들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고 마음을 다잡기를 바란다. 책 한 권이 인생을 바꿔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도 앞으로 소년 남상해를 본받아 큰 꿈을 꾸며 이 어려운 시기를 잘 견뎌내고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훈련하고 연습을 하여 위대한 성공을 이뤄내고 싶다. 정말 좋은 시기에 좋은 책을 잘 읽었다. 그나저나 언젠가 꼭 남상해 사장님을 찾아가 내가 읽은 책에 싸인을 하나 받아야겠다.

 

요즘과 같이 모든 것이 풍요롭게 제공되어 부족함을 모르는 세대들에게도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간접적으로나마 어려움을 경험해보면 자신의 여건은 그래도 행복이라는 것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리라.

 

우리 포기하지 말고, 큰 꿈을 꾸자. 그리하여 모두 자신만의 위대한 성공을 이루자!

 

 

 

2010. 3. 28.     14:51

 

 

 

어린 아이처럼 큰 꿈을 꾸고 싶은
고서

김 선욱

<참>사랑 

 

 

[출처] : http://www.myinglife.co.kr/bbs/bbs.htm?dbname=B0041&mode=read&premode=list&page=1&ftype=&fval=&backdepth=&seq=665&num=6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