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심리학과 정치 철학 사이의 관계

 

진화 심리학과 정치 철학(또는 이데올로기나 도덕 철학) 사이의 올바른 관계는 무엇인가?

 

어떤 진화 심리학 비판자들에 따르면 강간이 적응이기 때문에 강간은 정당하다라는 주장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진화 심리학이 위험하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진화 심리학 명제에서 도덕 철학 명제를 그런 식으로 무지막지하게 이끌어내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걱정도 팔자다라는 속담이 떠오른다.

 

어떤 사람들은 진화 심리학은 과학의 교권에 속하고 정치 철학은 도덕 철학의 교권에 속하기 때문에 둘 사이에 어떤 관계도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진화 심리학 명제에서 정치 철학 명제를 하나도 이끌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에 따르면 그런 시도는 모두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할 수 밖에 없다.

 

나는 과학의 가치 중립성과 진화 심리학」에서 이 문제를 다룬 적 있다. 과학 명제에서 도덕 공리를 이끌어내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도덕 정리는 이끌어낼 수는 있다는 것이 요지였다. 나는 과학 명제에서 무턱대고 도덕 철학 명제를 이끌어내는 것도 문제지만 과학 명제에서 도덕 철학 명제를 절대로 이끌어낼 수 없다는 생각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http://theacro.com/zbxe/?document_srl=70856

 

인간 본성에 부합하지 않는 제도를 추구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 따르면 그런 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큰 희생을 요구하기 때문에 그런 제도를 추구하는 것은 어리석거나 사악하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사례들 중에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공산주의, 키부츠의 공동 육아 등이 있다. 나는 키부츠의 공동 육아는 인간 본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무모한 시도였다고 생각하지만 공산주의는 옹호한다.

 

 

 

 

 

강간 처벌의 문제

 

무엇이 인간 본성에 부합하는 것이고 무엇이 부합하지 않는 것인가? 논의의 편의상 남자가 강간을 적응적으로 하도록 하는 메커니즘을 진화시켰고, 여자가 강간을 피하도록 하는 메커니즘을 진화시켰고, 남자와 여자가 강간이 나쁘다고 도덕적으로 판단하도록 하는 메커니즘을 진화시켰다고 가정해 보자.

 

남자가 강간을 하도록 하는 메커니즘을 진화시켰기 때문에 강간을 금지하고 처벌하는 제도는 인간 본성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나? 여자가 강간을 피하도록 하는 메커니즘을 진화시켰기 때문에, 또는 남자와 여자가 강간이 나쁘다고 도덕적으로 판단하도록 하는 메커니즘을 진화시켰기 때문에 강간을 금지하고 처벌하는 제도는 인간 본성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나? 인간 본성에 부합하지 않는 제도를 추구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이런 뜻으로 말한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무슨 뜻인가?

 

 

 

 

 

효율성의 문제: 외국어 교육의 시기

 

공교육 과정에서 이전에는 중학교 때부터 외국어를 가르쳤다. 지금은 초등학교 때에도 조금씩 가르치고 있다. 나는 외국어 교육을 최대한 일찍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능하면 태어날 때부터 하는 것이 좋고, 그것이 안 된다면 유아원이나 유치원에서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언어 학습과 관련된 인간 본성에 대한 나의 믿음 때문이다. 인간은 모국어를 태어날 때부터(자궁 속에서도 모국어의 리듬을 약간은 익힌다고 한다) 배워서 만 3~4세가 되면 기본적인 문법은 거의 다 배운다. 인간은 아주 어린 시기에 언어를 배우도록 설계된 것 같다. 스티븐 핑커의 언어 본능』에 이것을 뒷받침하는 여러 증거들이 있다.

 

만약 언어 학습의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가 있다는 진화 심리학자들의 믿음이 맞다면 아주 어린 시기에 외국어를 가르치면 훨씬 더 효율적일 것이다. 즉 아이들이 덜 고생하면서 외국어를 더 잘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중학교 때부터 외국어를 가르치는 교육 제도는 인간 본성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시쉬포스의 노동: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시쉬포스는 신들의 심기를 건드려서 시쉬포스의 노동(Sisyphean task, Sisyphean challenge, 시쉬포스의 형별)이라고 불리는 처벌을 받게 된다. 그는 커다란 바위를 언덕 위로 굴려 올려야 하는데 꼭대기쯤까지 굴려 올리면 항상 바위는 아래로 굴러 내려간다.

 

시쉬포스가 해야 할 일은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헛된 일처럼 보인다. 사실 바위를 꼭대기에 올리는 일 자체가 별로 의미 있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시쉬포스의 노동을 비유적으로 생각해 보면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여기서 언덕 꼭대기가 완벽한 민주주의를 상징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래도 시쉬포스의 노동이 쓸데 없는 짓으로 보이나?

 

나는 인간 본성 때문에 완벽한 민주주의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한편으로 이기적이며 다른 한편으로 어리석다. 이기적이기 때문에 남들보다 자기 것을 더 챙기려고 하며 이것은 평등에 방해가 된다. 그리고 어리석기 때문에 권력자의 속임수에 잘 속아넘어간다. 이런 면에서 민주주의는 인간 본성에 부합하지 않는 제도다. 그렇다고 민주주의의 이상을 위한 노력을 포기해야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이상을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인간 본성을 들먹이면서 공산주의의 이상을 포기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민주주의에 지장을 주는 인간 본성의 온갖 측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자들이 많은 이유는 민주주의가 왕정이나 군사 독재에 비해 더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자는 공산주의에 지장을 주는 인간 본성의 온갖 측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에 비해 더 좋다고 생각한다.

 

 

 

 

 

맺음말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인간 본성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온갖 것들을 뜻할 수 있다. 따라서 제대로 논쟁하려면 그 의미를 먼저 정의하고 시작해야 한다. 이 글에서 몇 가지 의미에 대해 썼지만 나도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이 글이 그 의미를 규명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더 깊은 논쟁을 벌일 수 있도록 하는 촉매가 되었으면 한다.

 

 

 

 

 

2010-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