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연적인 상태에서, 열은 온도가 높은 물질에서 낮은 물질을 향해 이동한다. 반박할 수 없는 과학이다. 그러나 에너지가 투입되면 그 반대의 역전도 가능하다.  지금 우리 집 거실에서 돌아가고 있는 에어컨은, 전기 에너지를 투입하여 온도가 낮은 거실의 열을, 온도가 높은 바깥으로 배출하고 있다. 때문에 우리 집 거실에서 '열역학 제 0법칙'을 운운하는 것은 과학을 함부로 농단하는 무식이다.

2. 무중력 상태에서, 쇠구슬과 깃털의 무게는 0이다. 반박할 수 없는 과학이다. 그러나 지표상이라면 쇠구슬의 무게는 깃털보다 무겁다. 당연히 지표상에서 쇠구슬과 깃털사이에 벌어지는 무게 경쟁을 공정하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과학을 빙자한 폭력일 뿐이다.

3. 노동력의 구매자인 자본과 판매자인 노동자는 동등한 교환자이다. 따라서 완전경쟁시장의 원리에 의해 서로가 행복해 질 수 있다. 때문에 주류 경제학은 반박할 수 없는 과학이다. 그러나 권력이라는 에너지가 투입되는 현실의 공간에서 시장의 질서를 찬양하는 무리들은 도대체 무엇이라고 불러주어야 할까? 우리 집 에어컨에 꽂혀있는 전기 코드를 뽑아서 콧구멍에 꽂아주어야 '에너지의 과학'을 느낄 수 있을까?

4. 서울에서 하와이까지 가는 비행기. 100% 하와이는 아름다운 와이키키 해변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98% 하와이는 지옥과 같은 태평양의 깊은 바닷속일 뿐이다. 98% 사회주의가 어떻게 처참한 모습으로 망가졌는지 잘 아는 사람들이 98% 시장주의는 와이키키 비스무리한 어느 해변가일 것이라는 근거없는 주장을 해댄다. 미안하지만 그 곳은 지옥이다. 오늘도 쌍용자동차의 노동자들은 98% 시장주의는 100% 시장주의와 별 차이없다는 주장속에 평택의 도장 공장 지옥속에서 죽어가기 일보 직전이다.

5. 시장에 대한 권력의 규제와 개입이 없는 사회, 시장의 자생적 질서를 밥먹듯이 외쳐대는 자들이, 오늘은 쌍용자동차의 노동자들을 권력이 개입해서 제거해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다수의 공익을 위해 일부의 희생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감히 '자유주의'를 논하고, 제값 받고 노동력을 팔겠다는 주장을 죄악이라고 단죄하는 자들이 감히 '시장주의'와 '자생적 질서'를 운운하는 희안한 사회이다. 진정 너희들이 자유주의와 시장과 자생적 질서를 아느뇨?

6. 대안을 말하라고 요구한다. 대안은 이미 나와 있다. 바로 너희들의 언어로 그 대안을 말해주겠다. 너희들이 좋아하는, 자본과 노동이 시장안에서 완전 경쟁하게 내버려두어라. 파업을 하든지 말든지 직장폐쇄를 하든지 말든지 지지든지 볶든지 다 죽든지 말던지 시장에 개입하지 말고, 지네들 꼴리는 대로 알아서하게 그냥 내버려두어라. 그러면 자생적인 질서가 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다. 너희들이 할 일은, 그렇게 해서 탄생한 자생적 질서에 대해 지금처럼 찬양만 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만세, 아름다운 자본주의 만세. 
이것은 절대로 비꼬거나 역설적인 외침이 아니다. 이왕 시장원리주의 하려거든 100% 제대로 해보자는 이야기다.
그래야 시장주의의 저 아름다운 이상향. 100%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에서 아름다운 해변의 노을을 바라보며 해피하게 살든지 말던지 할 것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