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ittered with. SexyDolphin

1. 지피지기면,

의식이 개념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개념이 의식을 창조한다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고서야 비로소,
'양자 세계' 에 대한 의식이 창조되었다

그렇다면 개념은 무엇으로부터 창조되는가?
'필요' 다. '필요' 에 의해서 개념은 창조된다

유인원에게 '의복' 의 개념이 없는 것은 의복이 '필요'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필요' 는 무엇으로부터 창조되는가?



2. need = could use

영어 단어로 '필요' 는 need 다. need 와 동의이음어로 could use 가 있다.
could use 는 가정법 과거의 형태로서 '가능성' 을 의미한다.

창조론과 진화론/ 관념론과 유물론의 논쟁은 이 '가능성' 에 대한 '확실성' 을 다툰다. 따라서, 그들의 논쟁은
태생적으로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음이다. 가능성을 가능성 있는 그 자체로 내비 두어야 하는데 조급한 마음에 이를,
'확실성' 으로 단정 지으려는 해석방식을 오늘날에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3. Why Not? 아님 말구

우주 함수 P가 있다. 이 함수는 potential 함수로서 '필요' 를 창조하는 '무엇' 이라 정의하겠다.
potential 이란 쉬운 말로 무상성, 잠재성 따라서, 가능성이다. 따라서 '필요' 는 이 우주 함수 P의 Delta 값이다 즉, Delta P 이다.



가끔 나 스스로 뭘 하고 있는가; 숨 쉬고 있는 이 자체에도 밑도 끝도 없을 회의감을 표출할 때가 있다.
(단, 여기서의 회의감은 지극히 ‘중립적’, '중용적‘ 인 개념이다. 부정적, 우울적 회의감은 사춘기 때 이미 겪지 않았는가)

가능성으로부터 ‘필요’ 를 중개하는 ‘Why’ 의 회의감인 것이다. 그러나 이 회의감은 금새 잊혀지고 만다. 'Why Not' 덕분이다

일례로 세미나에 참여하다보면, 갑작스런 ‘왜’ 에 당황하고 마는 사람들의 보편적 속성을 악용하여
세미나의 분위기를 급격히 하향 평준화시키는 소인배 엘리트들을 겪게 된다. 대처법은 간단하다. ‘Why Not' 으로 반문하면 그만이다

창조론과 진화론이 다루는 영역은 언제까지나 Delta P 이다. 필요에 따라 개념을 창조하고 의식을 창조할 뿐이다.
그러나 그 둘조차 P 는 아니다.

관념론과 유물론의 상반적 대립도 언제까지나 Delta P 이다. 역시나 필요에 따라 그저 개념을 창조하고 의식을 창조할 뿐이다.
그러나 그 둘조차 P 는 아니다.

P 는 그저 ‘필요’ 를 창조할 뿐,
‘개념’ 이 아니요 ‘의식’ 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야 필요의 근원, P 를 알아낼 수 있는가?
모른다. 회의(懷疑; doubt, skepticism, moderation)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곧, ‘중용’ 의 태도이다

문명, 문화, 사회를 창조한 원동력은 창조론, 진화론이 될 수도 있고 관념론, 유물론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학문의 다양성, 민주성에 대한 배려는 풍요로운 문명, 신선한 문화 그리고 사람사는 사회를 가능케 한다.

그렇다 할지라도 그 네 가지 중 그 어느 것도 나와 너의 ‘회의감’ 에 대한 설명을 하진 못한다.
회의감은 Delta P 보다 더 P 에 가깝기 때문이다.



4. 무엇이 논쟁을 전쟁으로 비약시키는가

질서를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질서를 지키지 않게 될 경우 때문이란다.
그러나 이러한 ‘엘리트주의적’ 선민 논리는 극단적 태도로 비약될 수밖에 없다.
질서라는 개념은 ‘필요’ 에 의해 창조된 것임을 망각한 것이다. 흔히, 종교 교리에 심취한 신도들,
사회 경험이 빈약한 젊은이들에게서 많이 발견되는 그들의 정의감에 손발이 오그라드는 논리다

신이라는 개념, 질서라는 개념이 ‘필요’ 에 의해 창조된 것임을 망각한 것이다.
따라서 신 그리고 질서의 개념이 ‘필요치 않은’ 사람들은 그들과 굳이 대화를 전개할 ‘필요’ 가 없는 것이다.

가끔 그들의 개념적 허구성에 대해 학문적 권위 따위를 빌려 그들과의 철없는 논쟁에 총대 매는 열사들이 있는데
도토리 키재기다. 더욱이 그들과의 논쟁에서 승리한 우월감에 젠체하는 열사라면 볼 것 없이 그냥 ‘찐따’ 다.

전쟁으로 비약되는 논쟁에서 서로가 쟁취하려 했던 건 스스로가 ‘필요’ 로 했던 ‘개념’ 에 불과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명분’ 말이다.
그러니 그 어느 쪽도 회의감이 선사하는 쾌감을 맛보지 못한다. 논쟁을 논쟁 자체로 즐기는 나아가 ‘삶’ 을 즐기는 ‘기술’ 을
스스로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5. 후회 없애기 + 남녀노소 지위고하 불문하여 친구 만들기

필요에 의해 개념을 창조하고 의식을 창조했다면 그 결과가 성공적이든/ 실패적이든 후회를 하지 않는다.
다만, 잠시 회의한 후 새로운 개념을 바탕으로 새로운 의식을 창조할 뿐이다.

그러나 필요하지도 않은데 억지로 개념을 창조하고 억지로 의식을 창조했다면 그 결과가 아무리 성공적이어도 후회를 하게 된다.
회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필요가 있었어야 회의도 있을 수 있는데 필요가 없었으니 회의도 없는 것이다.

굳이 피를 흘리지 않아도 풍요로운 문명, 신선한 문화 그리고 사람사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
내가 필요한게 무엇이고 너가 필요한게 무엇인지만 알면 된다

그러면 그 다음 과정은 자연스럽게 '판' 이 짜여진다
'판' 이 짜여졌으니 '중용' 의 태도로 즐기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남녀노소 지위고하 불문하여 그때는 친구가 된다
삶이 즐거워지고 너와 나가 win-win 한다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으로 내비두자.
너와 나가 스스로 '회의의 쾌감' 을 누리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