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전훈은 월드컵을 놓고 실질적으로 선수를 길게 차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2월과 4월에는 아무런 일정이 없으므로, 3월 딱 한번 원정 평가전을 마치면, 바로 5월, 최종명단 발표입니다. 선수와 전술에 대한 실험을 해보기 위한 마지막 기회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간은 그냥 속절없이 낭비 된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1. 애시당초 목적이 불분명했던 전훈


많은 분들이 지적했듯, 국대의 근간이 되는 선수들이 많이 빠진 전훈이었습니다. 동아시아에서 뛰는 선수들만 차출 가능했는데, 그 중에서도 국대 주전일 것 같은 김영권, 한국영은 여러가지 사정으로 선발하지 않았습니다. 부상으로 탈락한 황석호-하대성은 경합멤버리고 치더라도, "3주"라는 긴 시간에 브라질 현지 적응에 이동 피로와 시차적응까지 시뮬레이션을 하는 전지훈련을 주전급을 대거 제외한 명단을 가지고 굳이 할 이유가 뭐가 있었을지요? 


만약 단순히 후보급 선수들의 기량 확인이 목적이었다면 굳이 3주간의 시뮬레이션이 필요했나 하는 생각입니다. 이미 동아시아컵때 한번쯤 돌려봤던 선수들이고, 국내 선수들의 실력이나 플레이 성향 파악은 평소에 리그를 보면서 확인해야하는 감독의 숙제였을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 팀의 조직력과 플레이 스타일의 정체성을 확정하기 위한 전훈이었다면, 한 명이라도 더 주전급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차출하고, 팀 전술을 반복적으로 훈련시키는 편이 좋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선수 선발 명단과 평가전 내내 사용되었던 4-4-2와 제로톱은 홍명보호의 전술 구상과는 조금 먼 것이었습니다. 



2.  선수단 운용 및 동기 부여


선수 선발과 동기 부여에도 실패한것 같다는 지적도 일리있어 보입니다. 


먼저 베테랑 문제. 인터뷰에서 베테랑이 필요하다며 "이동국, 염기훈, 차두리를 보고 있다."라고 말한게 박지성 선수를 염두해둔 언플이 아니라면,  이번 전훈에서 중점 테스트해야 하는 선수는 염기훈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염기훈 선수는 멕시코전 45분으로 끝이었습니다. 염기훈 선수가 템포나 스타일상 부진했던 문제도 있었지만, 기왕 베테랑 롤을 맞겨보고자 했던 선수였는데 그 45분으로 끝낸건 좀 아쉬울 수 밖에 없습니다.  볼을 끌어도 상관없도록 (혹은 키핑을 해줘야 하는) FW나 중앙으로 이동시킨다던지 해서(이를테면 이근호 선수와 자리를 바꿔서라도) 몇가지 다른 롤을 테스트 해봤어야 하는게 아닌가 합니다. 


애당초 선수 선발에도 약간 아쉬움이 있긴 했습니다. 전반적으로 리그 활약이 좋은 선수들을 선발한 것은 맞지만, 진짜 국대감인지 팬들도 확신 못하는 선수들도 상당수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를테면 지난시즌은 풀백으로 소화했던 김기희, 빠르지만 아쉬운 김태환, '국대 문은 누구에게라도 열려있다'라고 보여주기 식으로 선발되어 연습 멤버로 데려간거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이지남. 리그 최고의 풀백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모자란 김대호. 고요한만 해도 수비력이 좋은 윙어이긴 한데, 공격 측면에서는 항상 아쉬웠지요. 한편 J리그에서 얼마나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는지 잘 모르겠는 김민우. 심지어 염기훈도 경찰청 전역후 첫 경기를 제외하고는 리그에서 그렇게 눈에 띄지는 않았습니다. 



명단을 본 팬들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과연 선수본인들이 얼마나 자신들이 최종 엔트리에 선발 될거라고 믿었을 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선수들이 경기를 풀어나가는데 있어서 '절박함'을 보여주지 못한데에는, 이 선수들에 대한 동기부여가 적절치 못했던 것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개개인의 수준으로 봤을때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동아시안컵때의 멤버를 가지고도, 이번 전지훈련때보다 훨씬 나은, 끈끈한 경기력을 보여주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그때는 딱 포워드만 문제였던것 처럼 보였습니다), 이번 시기의 대표팀 관리에는 확실히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3. 전술 운용


평가전 세 경기의 전술 운용은 정말로 아쉽습니다. 그동안 줄기차게 4-2-3-1을 근간으로 운영되어 왔던 대표팀인데, 갑작스레 밸런스도 잘 맞지 않는 4-4-2를 들고나와서 계속 문제점을 노출했기 때문입니다. 


선수 구성면에서도 진짜로 4-4-2를 연습할거였으면, 포워드도 더 데리고 가고 미드필드 운용도 좀 다르게 생각해 봤어야 합니다. 일단 포워드에 김신욱, 이근호 딱 둘만 뽑아가서 세경기를 돌리는게 말도 안되는 거였습니다. 당장 두 선수중 하나면 빠져도 공격이 삐걱거리고, 둘 다 빠지면 강제 제로톱이 실시되면서 경기를 포기하는 분위기가 연출되지 않았습니까? 


미드필드에서는 윙어들의 동선이 사이드로 국한되었는데, 중앙 미들들은 수비 위치 신경쓰느라 앞으로 나가주질 못했습니다. 결국 중앙은 텅텅비었고, 공격작업은 사이드에서 단순하게 라인따라 주고 받다가 묻지마 크로스 아니 "아무도 없어서 문앞에 두고 가는 택배" 크로스로 일관하게 되었습니다.


근데 더 걱정스러웠던건, 이렇게 경기가 안풀릴때 벤치에서 전술 변경이나 선수교체를 통해서 뭔가 바꾸어 주는 모습이 하나도 안보였다는 점입니다. 평가전이라 승패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할 수 있습니다. 근데 무엇을 평가하고 있는지도 모호한 상태에서, 그냥 팀이 이리저리 헤메고 있는데 그걸 그냥 놓아두는게 과연 모슨 도움이 되는 평가전이겠습니까. 


이를테면 4-2-3-1과 4-4-2의 혼용이 목표였다면, 미드필드에서 주도권을 잃었을 때 4-2-3-1로 전환하면서 윙어의 숫자를 줄이고, 중앙 미드필더를 추가 투입한다던지 하는 전술적 변경을 해 볼 수 있었습니다. 공수 간격이 벌어지고 있을때, 벤치에서 지시가 들어가서 선수들간의 간격을 조절해 준다거나 미드필더의 역할을 재조정할 수도 있었습니다. 근데 멕시코전이고 미국전이고, 전반전에 들어난 문제가 후반전에 고쳐지거나, 선수교체를 통해서 극복된 경우가 한번도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어처구니 없는 실드는 "어떻게 하나 보려고, 그냥 놓아 두어 보았던 것 같다"입니다. 무전술을 고백하는 말도 아니고. 월드컵까지 1년이 남은것도 아니고, 고작 몇개월이고, 월드컵 전까지 잡힌 6번의 평가전중 절반에 해당하는 평가전입니다. 그 평가전을 그런식으로 날려버린다는 건 정말 말도 안됩니다. 


홍명보 감독 본인에게도 이번 평가전은 자신에게 주어진 자원을 가지고, 팀이 어려운 입장에 처했을때 그걸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하는 그런 경험의 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 선수들이 자신의 롤을 수행하지 못할경우, 상대의 컨디션이 월등히 좋은 경우, 선수들이 심리적으로 흔들릴 경우등 여러가지 악재가 닥쳤을 때 어떤 식으로 벤치가 최대한 그 부분에 대응해야 할 것인가를 시도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근데 그 코스타리카 (상대가 알아서 자멸했을 때), 멕시코 (상대가 생각보다 막강하고 우리가 자멸하고 있을때), 미국전 (양팀다 컨디션이 좋지 못한데, 첫골을 일찍 실점했을 때)은 이러한 외적인 상황에 대한 벤치의 대응이 아예 없거나, 있었어도 아무 영향을 못주었습니다. 




4. 


평가전은 선수 몇몇의 기량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국가 대표팀으로서의 대한민국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팀은 단순히 해외파 주전 몇명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주전과 비주전 그리고 코칭스태프의 모든 역량이 다 모여야 비로서 팀이 되는 겁니다. 주전이 빠지더라도 대표팀이 하나의 팀으로서 작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봤을때 이번 북미 전지 훈련은 실패에 가깝습니다. 


코칭스태프가 이번에 모인 멤버들을 진짜 진정한 팀의 일원으로 보고 선발하고 훈련시키고 있었는지, 아니면 어짜피 주전들은 정해져 있으니 그냥 한번 선발해 본건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이 훈련에서 홍명보 호의 구호인 원스피릿, 원팀, 원골에서 이뤄진건 (자조적인 의미로) '원골'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