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가 고래를 이기는 매니페스토> 출간 소감
     -영혼이 있는 선거전략-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장)




지난 겨울 동안 나와 정창교(한국 매니페스토 실천본부 연수원장) 선배가 공저로 책을 한권 썼다. 제목은 <새우가 고래를 이기는 매니페스토>(경향 애드컴)이고, 부제는 ‘영혼이 있는 선거전략’이다. (인터넷 서점에는 주말쯤에나 링크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책의 기획, 연출 등 핵심적인 역할은 정창교 선배가 하고, 나는 주연 배우 쯤 했다고나 할까?

지난 12월, 정창교 선배가 나에게 이 책을 공저로 내보자는 제안을 하지 않았다면, 내 스스로 이런 책을 쓸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창교 선배가 나에게 책 쓸 것을 제안 한 것은 내가 비교적 오랫동안 정책에 관심을 보여 왔고, 실제 정책 매니페스토 만드는 작업을 좀 해 보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판단은 정확한 판단이었다고 생각된다. 비록 내가 제안을 받기 전까지 써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은 없지만, 제안을 받고나서는 대단한 흥미와 사명감을 갖고, 심혈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지난 12월 중순 경, 책을 구상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2월 중순이면 충분히 출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책의 서두 부분 몇 십 쪽은 정창교가 이미 정리해서 갖고 있고, 한국에서 지방선거용 매니페스토를 만드는 실전 노하우 몇 십 쪽은 김대호가 쓰고, 번역 소개할 일본의 모범 매니페스토는 둘이서 발굴하여 일본어 번역자(이희진 박사)에게 의뢰하면, 매니페스토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지방선거 후보자들이 충분히 사볼만한 책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매사가 그렇듯이 이 간명한 기획을 막상 실행에 옮겨보니 의외로 난관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일본어가 시원치 않은 두 사람이 일본 홈페이지를 뒤져서, 한국 지방선거 출마자들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될 만한 적절한 매니페스토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또한 그 매니페스토의 효과나 후일담 관련 기사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또한 번역을 마쳤다고 하더라도 어떤 부분을 발췌할 지도 고민스러웠다. 더욱 어려웠던 것은 우리가 독자들에게 보여주려고 한 것은 매니페스토 내용만이 아니라, 그 문서 형식(편집)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나의 매니페스토 만들기 실전 노하우가 책을 낼만큼 그렇게 풍부하지 않았다. 처음 A4 20쪽 분량으로 초고를 완성하긴 했지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일본 매니페스토 발굴, 번역, 편집 작업이 한 달가량 밀리면서, 지방선거 후보들과 정책 매니페스토 만드는 공동 작업을 몇 번 더 해보면서, 그런대로 내가 만족할만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만들어 보면서 방법론도 같이 다듬었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내가 쓴 2부의 최종 원고는 대략 A4 35쪽 가량이 된다. 물론 이외에도 내가 쓴 부분은 좀 더 있다. 책 제목은 내가 제안한 것인데 출판사도, 정선배도 좋다고 하여 채택되었다. 나로서는 사실상 처음으로 쓰는 실용서라고 할 수있다. 공저로서는 두 번째 책이다.

 

어쨌든 이 책은 정창교 선배의 오랜 매니페스토 운동 경험(1부)과 나의 정책 연구 경험과 매니페스토 작성 지원 과정에서 생긴 노하우(2부)와 둘이 공동으로 수행한 일본의 모범적 매니페스토 연구 경험(3부)으로 구성되어있다.   

 

약간의 소회를 덧붙이자면 이런 아쉬움이 있다.

책 3부에서 소개된 일본의 모범적 매니페스토들은 하나같이 그 지역을 오랫동안 천착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들은 단체장에 출마하기 전 20~30년 동안 그 지역에서 관료 생활을 했거나, 10년 이상 의원 생활을 했다. 게다가 일본은 지방자치단체장의 압도적 다수는 무소속이다. 비록 대부분의 무소속들이 1~2개당의 추천이라는 꼬리표를 달고는 있지만, 그 꼬리표보다 후보의 됨됨이나 준비정도가 당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다. 게다가 일본의 주류 언론들은 매니페스토 선거 확산, 정착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정책 선거 확산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모든 면에서 일본에 비해 열악하다. 무엇보다도 선거는 당 대 당의 대립 구도가 결정한다. 후보 보다는 당을 먼저 본다는 것이다.

 

당의 유력자와 일반 시민들과는 좀 동떨어진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을 갖고 있는 당원들이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공천 시스템으로 인해, 유력 정당의 후보들은 선거 몇 개월 전에는 공천 문제 해결을 위해 노심초사 한다. 지역(민심)을 깊이 천착할 시간과 정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다. 그나마 한국의 주류 언론은 정책 매니페스토에 대한 관심이 적다. 2010년 들어서는 정치적, 정책적 관심이 세종시, 4대강, 방통위 논란 등에 묻혀 버렸다. 게다가 선거 컨설턴트는 많지만, 지방자치단체장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분야의 정책을 다루는 정책 컨설턴트는 거의 없다. 수요도 없고, 공급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매니페스토는 사막에 나무를 심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하지만 한국 사회와 정치가 한 단계 도약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아닐 수 없다.

 

한국에서 정책 매니페스토가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는 길은 명백하다. 첫째, 후보자들이 상당한 공력을 들여서 정책 매니페스토를 만들도록 하고, 잘 만들면 그만큼의 정치적 이득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 너무 힘들면 부정행위(수단 방법 안 가리고 두껍게 예쁘게 만들기)가 극성을 부릴 수 있기에 적당히 힘들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원칙을 적용하면 정책 매니페스토는 책 형식은 유지하되 대폭 얇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내 생각에 1,000~2,000원 정도 가격에 30~50페이지 정도가 좋지 않을까한다. 수첩형식으로 만드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이는 법적으로 강제할 사항이 아니라, 유력 후보자들이 모범을 보이고, 언론 등이 그 내용을 검증하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을 것이다. 그리고 약간의 부작용이 있을 지라도 유세장 판매를 허용하고, 지역 후보자들의 정책 매니페스토를 한데 모아서 파는 이동(차량) 판매대를 허용해야 한다. 그리고 출판기념회도 통상적인 방식의 판매로 인정하여 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언론과 시민단체의 관심과 평가와 시시비비도 필수다. 이렇게 되면 공약집을 출판하지 않고는 감히 정치판에 명함을 내밀지 못하는 문화가 형성되면서 한국 정치가 비약적으로 발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책 매니페스토 관련 법, 제도, 문화를 바꾸지 않아서, 투입 대비 산출이 적게 되면, 표지는 번드르르하고 페이지 수도 제법 되지만 실제 아무런 가치가 없는 쓰레기 같은 책만 양산될 것이다. 당연히 매니페스토 공해론, (종이)낭비론, 무용론 등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대한민국과 코리아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는 건강한 옥동자를 팔다리 허리가 부러져서 중증 장애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지방선거에 도전하는 사람들과 열성적으로 돕는 사람들은, 비록 바쁘더라도 한 번쯤은 읽어 볼 만한 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