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는 불교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가는데 외국 불교도 그러는지 모르지만 한국 불교는 참 이런 부분에서 이해가 안간다는 생각입니다
아직은 몇 안되는 사찰이지만 이게 시간이 가면 산신각이나 칠성당처럼 사찰내 소원을 이뤄주는 부처의 반열에 오를지도 모르겠네요
불교닷컴 기사입니다
기사를 보면 미 미 미춰버리겟네 소리가 나옵니다



박정희 前 대통령의 영정을 모신 전국의 사찰은 42곳이었다. 지역별로는 수도권 11곳, 충청권 9곳, 부산·경남권 11곳, 대구·경북권 9곳, 호남권 3곳이었다. 이 사찰들은 박 대통령 생전에 방문했거나, 박 대통령 지시로 사세가 확장된 사연 외에도 주지스님이 ‘꿈에서 현몽해서’ 라고 밝힌 경우가 많았다.  

이는 박 대통령의 사위 신동욱 박사가 최근 펴낸 <신이 된 대통령>에서 밝힌 내용이다. 신 박사는 6년 동안 5만 km 이상을 다니며 전국 사찰을 샅샅이 훑었다.



  
도선사에 봉안된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영정. '신이 된 대통령'은 박통 내외 영정을 모신 도선사를 비롯한 42곳 사찰을 기록했다.

“5000년 만에 가난 벗게 해준 박 대통령”

사찰 가운데서는 도선사를 맨 앞에 소개했다. 도선사는 육영수 여사가 기도했던 곳으로 박정희·육영수 영정을 봉안한 사찰 가운데서는 가장 유명한 사찰이다. 

신 박사는 “도선사 무료 공양의 유래는 육영수 여사가 인근의 어려운 사연을 듣고 사찰에서 무료식사 제공이 가능한지를 물어오면서 시작됐다”고 했다.

총화종 인왕사는 인왕산 기슭에 5개 종단 11개 개인사찰이 모여 있는 사찰이다.  

인왕사 본원정사 주지 회암 스님은 “인왕산의 인(仁)자는 사람 인(人)이 두이(二)로 구성됐기 때문에, 평소 어진 임금 두 분을 모셔야 나라의 태평성대가 이뤄진다고 생각했다”며 박 대통령과 조선 태조 이성계 영정을 모신 이유를 밝혔다. 스님은 “박정희 대통령은 5000년 만에 가난을 벗어나게 해줬다”고 했다.

‘우보살’ 유명한 강화 선원사는 추모법회 14년째

TV에서 ‘우보살’을 통해 널리 알려진 강화 선원사는 매년 8월 박 대통령 내외의 추모법회를 봉행하고 있다. 

신 박사는 “선원사가 8월에 추모법회를 여는 것은 육 여사가 8월에 서거했고 이때가 연꽃이 가장 화려하고 경건한 자태를 뽐내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주지 성원과 박 대통령과의 각별한 인연도 있다”며 1977년 박정희 대통령이 강화 선원사를 방문해 몽고의 침략을 막아낸 사지를 발굴하라고 지시한 사연을 소개했다.

고양 월광사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부터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前 대통령까지 역대 대통령 9인을 신장을 대신해 모시고 있었다. 

법상종 소속인 이 사찰이 박 대통령의 제를 지내는 이유는 김상회 원장(주지 격) 부친이 유언으로 남긴 까닭이었다. 김 원장은 “부친은 6·25전쟁 때 육군장교학교에 입학해 군생활을 하면서 박 대통령을 흠모했다”고 했다.

  
'신이된 대통령' 저자 신동욱 박사가 최근 공개한 사진. 남원 관음사 지장전에 봉안한 박통 내외 영정에 시주가 올려져 있다.

꿈에 박통 ‘친견’해 영정 모신 사찰 수두룩

안성 백련사는 주지 태함 스님이 박 대통령 서거일인 10월 26일 속가 딸을 얻은 우연에서 영정을 모시기 시작했다. 박통 내외 영정을 모신 산신각에 모신 까닭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되는데, 그 영혼이 산신령으로 온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했다. 스님은 “박통이 영정 봉안 몇일 전 현몽했다. 그 이후 백련사가 불같이 일어났다”고 했다.


용인 불광사는 정치를 하던 주지 현성 스님의 부친이 박통으로부터 하사 받은 병풍이 인연이 돼 박통 내외의 영정을 모시고 있었다. 스님은 “영정을 모신 후 박통 내외가 자주 현몽했다. 한번은 두 분 천도재 봉행 전 꿈에 나타난 나라의 어려운 일이 술술 풀릴 것이라고 했다”고도 했다.

이천 보현정사는 주지 백암 스님이 항상 뇌리에 박통 내외가 따라다녀 모시게 됐다고 했다. 스님은 “박통 내외 영정 봉안 후 신도들도 좋아하고 스님 몸도 가벼워졌다”고 했다.

기도하다 ‘억’하고 쓰러지니 육 여사 저격당해

포천 금룡사는 중창주 무주상 스님이 1974년 7월경 육여사를 만난 인연에서 비롯됐다. 당시 육여사는 군인 한명과 절에 찾아와 ‘뒷바라지 할테니 전쟁 없는 나라를 위해 설국암 불사를 합시다’라고 한다. 

이 스님은 육 여사가 저격 당하기 하루 전 꿈에 나타나 “내가 갑자기 가게 됐다”며 사라졌다고 했다. 좋은 꿈이 아니라는 생각에 그 길로 양양 낙산사를 찾아 기도하는데 갑자기 옆구리를 걷어차인 듯 심한 통증이 와 정신을 잃고 쓰러졌고, 그 시간 육 여사는 저격당했다고도 했다. 스님은 “육 여사가 그 후로도 자신의 고민거리가 있을 때마다 꿈에 나타나 짧은 말로 방법을 가르쳐줬다”고 했다.

단양 광덕사가 영정 모신 이유 5가지

단양 광덕사도 박통 내외 영정을 모시고 있다. 회주 혜인 스님이 영정을 모신 까닭을 책은 다섯가지로 적었다. 첫째 5000년 민족 굶주림을 해결했고, 둘째 비리·폭력을 척결해 민족정신을 일깨웠고, 셋째 대한민국 전반에 애국혼을 불어넣었고, 넷째 영계에서도 조국을 수호해주고 있고, 다섯째 육 여사는 현명한 내조를 한 위대한 여성상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혜인 스님은 “두 분을 모시지 않는 것이 이상하지 모시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라며 “대한민국은 지금 술 취한 사람이 운전하고 있다. 뿌리 없는 나무는 시간이 지나면 죽는다. 정신이 살아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천 직지사, 밀양 표충사 등도 영정 모셔

이 외에도 책에는 홍천사 천국사 귀현사 대성사 수정사 용호사 관촉사 팔봉사(이상 충청권), 무궁사 상원사 표충사 천경사 홍제사 송운사 용암사 안정사 청광사 천불사 현광사(이상 부산·경남권), 보문사 직지사 구화사 해운사 천생사 천문사 포암사 지장선원(이상 대구·경북권), 수덕사 관음사 호국사(이상 전라권)가 박통 내외 영정을 모신 내력을 밝혔다.

혜자 스님 귀띔으로 6년 동안 전국 다녀

저자 신동욱 박사는 지난 15일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도선사를 찾았다가, (박근령 씨와의) 결혼식 주례를 봐준 혜자 스님 소개로 영정을 모신 한 법당이 한두 군데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 이후부터 ‘각하와 국모님을 신으로 모시는 사찰을 발굴하자’는 목표로 2008년부터 6년가량 전국 56개 사찰을 돌아다녔다”고 말했다.

신 박사는 “사찰을 다니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 사위’라는 이유로 환영을 많이 받았다”면서도 “한 사찰에서 
  
는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