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미각 후각이 상당히 예민한 편입니다. 그래서 맛을 섬세하게 느끼는 편이고 어느 정도는 미식가에 속하는 편입니다. 다만 음식을 즐길 뿐 맛에 대한 불평은 일절하지 않습니다.(특히 집사람이 만들어 준 음식은... ㅎㅎㅎ)

한 동안 와인을 좀 마셔 봤는데, 솔직이 이건 클래식 음악하고 비슷한 종류더군요.
맛을 즐기려면 일정한 훈련이 필요하고, 그래도 여전히 절대적인 맛을 구분하는 건 매우 어렵습니다. 마치 동일한 곡이라도 누가 지휘했는가, 누가 연주했는가에 따라 틀린 클래식 음악처럼요.

제가 술은 좀 약하기 때문에 자주는 안 마셔서 와인을 충분히 즐길 정도로 마시게 되지는 않더군요. 그래서 맛을 구분하는 경지에는 이르지도 못 했고, 이를 생각도 없습니다. 그냥 기회가 되는대로 싼 와인이든 비싼 와인이든 즐겁게 즐길 뿐입니다.

그러다가 막걸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대학교 다닐 때 학교앞에서 술동이에 나오는, 때로는 시큼하게 변질된 그 막걸리를 마시고 완전히 맛이 가서 음식이 들어가야 하는 곳으로 다 배출해낸 이후론 그 지독한 냄새와 숙취에 막걸리를 절대 가까이 하지 않았었죠.
하지만 얼마 전에 기회가 되어 마신 막걸리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돗수가 좀 낮아져서 그런지 가볍게 마실 수 있고, 향도 제법 좋고 목넘김도 매우 좋습니다. 약간 달작지근 하기도 한 게 아주 좋습니다. 숙취요? 거의 없습니다.

그냥 줏어 들은 것이라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막걸리라는 술은 곡식(쌀, 밀가루, 보리 등)을 쪄서 누룩과 물을 섞어 발효시킨 것이라고 합니다. 이름처럼 그렇게 만들어진 술을 대충 걸러 마시는 건데, 박정희 정권 때 쌀이 모자라서 쌀 대신 밀가루를 써서 만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원래는 천천히 발효시켜야 숙취를 유발하는 물질의 생성이 적어 뒤끝이 좋은데, 이걸 3~4일 내에 급속 발효를 시키느라 숙취가 심한 술이 되었으며, 유통과정이 좋지 않아 발효를 지나 알코올이 식초로 변하는 일이 생겨 시큼한 맛에 거품이 풀풀 나는 현상도 많이 생겼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일정 비율의 물을 타서 돗수를 6% 이하로 제한했다고도 합니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다시 쌀을 쓰고(남아 도니까... 그런데 수입쌀로 만든다는 소리도 있고...) 천천히 제대로 발효를 시켜 만들며, 돗수 제한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서 각종 돗수에 숙취 없는 막걸리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와인은 그 원재료인 포도에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포도 겉에 이미 효모가 붙어 있어서(포도 표면에 희끗희끗한 것들) 포도를 넣고 그대로 찧어 발효시키면 되지요. 그러나 곡식을 원재료로 한 막걸리는 일단 곡식에 들어 있는 탄수화물을 당으로 분해하고 이 당을 다시 알코올로 바꾸는 두 단계의 과정을 거쳐야 한답니다. 잘 아시는 누룩을 쓰지요. 전에 방송에서 보니 이런 발효과정을 알아 낸 것이 참 대단한 '발명'이라고 하더군요.

막걸리는 원재료인 쌀을 전분이 많고 다른 성분이 적게 해서 만들수록 담백한 맛이 나고 숙취가 적다고 합니다.(일본 청주들은 쌀 표면을 깎아 내서 만들기 때문에 맛이 더 맑고 깨끗합니다. 얼마나 깎아냈는가를 가지고 술을 구분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쌀에 밀을 섞으면 맛이 더 걸죽하고 진하게 된다고 하니 사람들의 기호에 따라선 쌀만으로 만든 막걸리가 반드시 더 좋다고 하긴 어려울 듯 합니다.

막걸리는 식이 섬유가 매우 풍부하고 아미노산들을 비롯 각종 영양소가 풍부하고(영양때문에 먹는 건 아니지만... -_-;;) 특히 열처리를 하지 않은 생막걸리는 유산균과 효묘가 매우 풍부해서 건강에 아주 좋다고 하네요. 와인이 항산화물질인 폴리페놀 때문에 건강에 좋다고 알려졌는데, 사실은 제법 높은 돗수 때문에(대략 14% 부근) 이 정도 폴리페놀의 효과는 깎아 먹고도 남음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막걸리는 돗수가 절반이고 와인 못지 않게 항산화물질들을 다량으로 포함하고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다량의 영양소, 특히 요구르트에 필적하는 유산균과 식이섬유 등등,을 고려하면 수만원 짜리 와인보다는 고작 천 몇 백원 하는 막걸리 드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제가 먹어 본 바로는(한 20종류 이상 먹어 봤습니다.) 서울장수생쌀막걸리가 '지존'입니다.(유통기한 1주일) 물론 가격까지 고려한 결론이죠. 불과 1200원의 저렴함은 어지간한 맛으로 극복이 안 됩니다. -_-;; 약간 달작지근하고 개운한 맛을 원하시면 이 막걸리 좋습니다. 덜 달고 담백한, 그러면서도 과일즙같은 것으로 칵테일도 해보고 싶으시다면 국순당 막걸리(유통기한 약 1개월)가 좋은데 깨끗한 맛 때문에 과일같은 안주와 아주 잘 매치가 되죠. 가격은 역시 1300원. ㅎㅎㅎ

다른 막걸리들은 제가 먹어 본 바로는 개인적인 기호에 크게 좌우될 가능성이 커서 추천하기는 어렵습니다.(특히 돗수가 높은 막걸리들)

맥주 좋아하시는 분들 많은데, 저는 개인적으로 맥주와 막걸리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단연코 막걸리입니다. (비교가 좀 그렇긴 하지만요.)
한 가지 꼭 알려 드리고 싶은 건, 반드시 제조일자를 확인하시고, 가장 최근에 제조된 것으로 고르십시요. 2~3일 정도의 날짜 차이로도 맛이 확연하게 다릅니다. 이게 막걸리 유통에 아직도 남아 있는 문제고, 이것은 품질 문제로 직결되지요. 개인적으로 가격을 좀 올리더라도 이 문제를 해결해야 막걸리를 즐기는 분들이 더욱 늘어 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저녁에도 집에 가서 아내와 막걸리를 한 통 즐길 생각입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