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막무가내(莫無可奈)라는 단어가 더 품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뉘앙스를 더 잘 전달해주는 것 같은 무대뽀라는 단어를 사용할 것이다. 그리고 tantrum이라는 단어의 번역어로 내 자신이 버둥떼를 제시했지만 여기에서는 그냥 땡깡을 쓰겠다.

 

TV 프로그램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내이 911>에는 심하게 떼를 쓰고 말을 잘 안 듣는 아이가 나온다. 육아 전문가가 출동하여 1주 동안 개입한다. 1주 만에 아이가 놀랍도록 다르게 변한다. 그렇게 말을 안 듣고 말썽을 부리던 아이가 착한 아이로 돌변하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나는 처음 이런 프로그램을 보았을 때 제작자가 사기를 치는 것이 아닐까 의심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평범한 아이들에게 연기를 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또한 편집으로 왜곡할 수 있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아이들이 갑자기 착하게 돌변하는 모습은 나에게는 미스터리였다. 하지만 진화 심리학적으로 조금 더 생각해 보니 어쩌면 쉽게 설명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은 그런 현상에 대해 내가 찾아낸 설명이다. 이 글에서 제시한 적응 가설을 다른 진화 심리학자가 이미 제시했는지 여부는 잘 모르겠다. 또한 아직 이 가설의 검증 방법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이 글에서는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다.

 

 

 

 

 

양말과 부부 싸움: 서열의 중요성

 

양말을 아무 곳에서 팽개쳐 놓는 남편에게 아내가 빨래 바구니에 넣으라고 한 마디 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대판 부부 싸움을 할 때가 있다. 남자들끼리 술집에서 사소한 일로 시비가 붙어서 결국 살인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얼핏 보면 그런 사소한 일로 대판 싸우거나 심지어 살인까지 하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 이런 현상이 인간의 비합리성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서열 또는 권력의 측면에서 접근하면 많은 것이 해명된다. 양말의 행방은 사소한 문제지만 부부 사이의 권력 문제는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술집에서 누군가에게 모욕적으로 들릴 수 있는 한 마디 말 그 자체만 보면 사소한 문제지만 남자들 사이의 권력 문제는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침팬지의 서열에 지각 변동이 일어날 때에는 사소한 것에서 시작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예컨대 서열이 낮은 수컷이 자신보다 서열이 높은 수컷에게 인사를 안 하는 식이다. 침팬지와 인간의 인사는 상당히 비슷하다. 이런 작은 일에서 시작하여 결국 대판 육탄전을 벌인다. 이 때 서열이 높았던 수컷이 항복 선언을 하면 서열이 바뀐다. 서열이 바뀌면 둘 사이의 관계에서 아주 많은 것들이 바뀐다. 침팬지는 인사와 같은 사소한 문제로 싸운 것이 아니라 서열을 두고 싸운 것이다. 사소한 문제는 발단일 뿐이다.

 

 

 

 

 

무대뽀 정신

 

그 무대뽀 정신, 무대뽀 무대뽀... 그게 필요하다.

- 조필(강호), 영화 <넘버 3>

 

근데요... 내가 최사장 돈 받아 주고요... 대신 빈정 상해 우리 둘이 붙어 버리면... 애들 뒤지는 거 계산 안 나오고... 가게 부숴지고 불타 없어지면 어림 2, 3... 일단 오늘 두어 방 찌르고 가면 병원비만도 기 천대는 나올 것이고... 나는 회사 좀 찢어져도 백산 잡았다는 소문에 다른 용역으로 보충하면 일년이면 너끈히 재기할 것이고... 백회장 운 좋아서 사셔도 우린 발목부터 베고 가니까 골프, 등산 다 하신 거고... 남은 일생 도자기나 구우시는 거고...

- 이원술(정재영), 영화 <강철중: 공공의 적 1-1>

 

조폭 두목 이원술은 자기 조직보다 더 큰 조직 두목이 있는 곳에 사시미 하나 달랑 들고 혼자 찾아가서 협박을 한다. 그 협박은 결국 통한다. 이것이 무대뽀 정신의 힘이다.

 

<조폭 마누라>에서 빤스(김인권)는 여러 명의 깡패와 대면하게 된다. 빤스는 노래를 부르며 옷을 하나하나 벗더니 결국 빤스만 있고 덤벼든다. 그러자 깡패들은 도망간다. 여기에서도 빤스가 보여준 것은 무대뽀 정신이었다.

 

무대뽀 정신으로 똘똘 뭉친 사람과 싸우면 피곤하다. 설사 자신이 싸움에서 이기더라도 큰 손해를 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경우 차라리 양보하고 만다. 따라서 자신의 무대뽀 정신을 남에게 알릴 수 있다면 큰 이익을 볼 수 있다.

 

 

 

 

 

뻥카

 

무대뽀 정신으로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에 뻥카(bluff, 쥐뿔도 없는 패를 들고 허세 부리는 것)를 치는 사람이 존재한다. 뻥카를 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을 확인하고야 마는 사람도 있다.

 

능력의 경우에는 쉽게 남에게 상당히 설득력 있게 보여줄 수 있다. 예컨대 시비가 붙어서 육탄전을 벌이기 직전까지 간 상황에서 옆에 있는 거대한 바위를 들어올림으로써 자신의 힘이 얼마나 센지 보여줄 수 있다. 힘이 없는 사람은 힘이 세다고 허세를 부릴 수 없다. 왜냐하면 금방 들통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대뽀 정신은 그렇게 쉽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근육은 쉽게 보여줄 수 있지만 자신의 뇌 회로를 보여줄 방법은 없다. 따라서 뻥카가 통할 때가 상대적으로 많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갈등

 

로버트 트리버스는 윌리엄 해밀턴의 친족 선택 이론에서 출발하여 부모 자식 사이의 갈등에 대해 다루었다. 그의 논문 Parent-offspring conflict(1974)」는 이제 진화 심리학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부모와 자식도 이해관계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엄마와 자식의 경우에도 근친도(degree of relatedness) 1이 아니라 0.5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충돌의 씨앗이다.

 

 

 

 

 

자식의 무기: 땡깡

 

부모는 어린 자식에 비해 힘이 압도적으로 세다. 따라서 자식이 부모와 육탄전을 벌여서는 승산이 없다.

 

이 때 자식이 사용하는 무기가 땡깡이다. 부모가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면 자식은 몇 시간 동안이나 울면서 발버둥친다. 심할 때에는 벽에 머리를 박치기하는 자해 행위까지 한다.

 

벽에 머리를 찧든 안 찧든 땡깡은 자해 전략이다. 자식은 엄청난 에너지를 땡깡에 투자한다. 따라서 신체 발달이나 면역을 위해 투자할 에너지가 부족해진다. 게다가 땡깡 부리는 아이로 낙인이 찍히면 평판도 나빠진다.

 

이런 자해 전략이 통하는 이유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근친도가 0이 아니라 0.5이기 때문이다. 자식이 자해를 하면 결국 부모도 손해를 본다. 자식은 자신의 몸과 평판을 볼모로 삼아서 부모에게 덤비는 것이 땡깡이다.

 

 

 

 

 

땡깡에는 무엇이 걸려 있는가?

 

양말의 행방을 두고 부부가 대판 싸울 때 양말의 문제만 걸려 있다고 보면 착각이다. 권력의 문제가 걸려 있다. 마찬가지로 장난감을 사 달라고 아이가 부모에게 땡깡을 부릴 때 장난감만 걸려 있다고 보면 착각이다. 여기에서도 서열 또는 권력의 문제가 걸려 있다.

 

부모가 서열이나 권력의 문제에서 어린 자식을 항상 압도한다고 봐서는 안 된다. 서열과 권력이란 무엇인가? 서로의 의지가 충돌할 때 누구의 의지가 관철되는지를 따져야 한다. 만약 자식이 무대뽀 땡깡 정신으로 무장해서 항상 원하는 것을 얻는다면 어떤 면에서는 부모보다 자식이 서열이 높다고 봐야 한다.

 

이것이 자식과 기싸움을 벌일 때 부모가 항상 아주 단호한 무대뽀 정신을 발휘해야 하는 이유다. 자식과 부모의 싸움에서 중요한 것은 육체적 힘의 차이가 아니다. 힘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점은 당연하다. 둘은 무대뽀 정신 대결을 벌이는 것이다.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하다

 

애들 싸움에서 통용되는 규칙이 있다. 먼저 울면 지는 거다. 격투기 심판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A가 정타를 더 많이 때렸다고 해도 결국 A가 먼저 울었다면 B가 이긴 거다. 과정이 아니라 결과가 중요하다.

 

침팬지의 서열 싸움에서도 결과가 중요하다. 먼저 항복하는 쪽이 지는 거다. 중간이 더 많이 때렸다고 이기는 것이 아니다. 애들 싸움에서는 우는 것이 항복으로 통한다. 애들 특히 남자 아이들은 온갖 이유 때문에 싸우지만 결국 싸움에는 서열이 걸려 있다. 이런 면에서 침팬지의 서열 싸움과 애들 싸움과 땡깡을 둘러싼 기싸움은 똑 같다.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면서 땡깡을 부리는 아이가 있다고 하자. 이 때 부모가 자식을 아무리 타이르고, 협박하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몹시 두들겨 패도 이것은 중요하지 않다. 결국 장난감을 사 줌으로써 부모가 항복 선언을 하느냐, 부모가 몇 시간 동안 버텨서 결국 자식의 항복 선언을 받아내느냐 여부가 중요하다. 이만큼 많이 혼냈으니까 이젠 됐다고 생각하는 부모가 있다면 완전히 착각에 빠진 것이다. 부모가 항복 선언을 하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

 

육아 전문가는 차분하지만 단호하게를 권고한다. 땡깡을 부릴 때 전혀 혼내지 않더라도 끝까지 버텨서 결국 자식의 항복을 받아내면 된다.

 

 

 

 

 

땡깡의 적응 가설

 

나는 땡깡 조절 메커니즘이 진화했다고 추측하고 있다. 자식은 부모가 어느 정도 무대뽀 정신을 발휘할지 미리 알 수 없다. 따라서 시험을 해 볼 필요가 있다. 땡깡을 부림으로써 자식은 부모가 얼마나 단호한지 시험한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전략을 선택한다.

 

만약 부모가 항상 결국 항복한다면 무지막지한 땡깡 전략을 쓰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자신의 무대뽀 정신이 녹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자식은 일단 땡깡을 부리기 시작하면 끝장을 볼 때까지 갈 것이다. 뻥카라는 것이 들통 나면 더 이상 땡깡 전략을 쓰기 힘들기 때문이다.

 

만약 부모가 항상 울트라초특급슈퍼 무대뽀 정신을 보여준다면 땡깡을 아예 부리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 따라서 이 때에는 착안 아이 전략을 쓸 것이다. 물론 과연 부모의 무대뽀 정신이 얼마나 되는지 여러 번 시험하려 할 것이다.

 

땡깡을 부릴지 여부를 결정하는 요인에는 부모의 반응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다루지 않을 것이다.

 

 

 

 

 

행동주의 심리학의 설명: 아이들이 매저키스트(masochist)인가?

 

장난감을 사 달라고 몇 시간 동안 땡깡을 부리는 현상은 행동주의 심리학과 잘 들어맞지 않는다. 특히 부모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때리는 경우에도 땡깡을 부리는 것은 행동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뭔가 이상하다. 욕 먹고 얻어 맞는 것이 어떻게 보상(reward)이 될 수 있단 말인가?

 

행동주의자들은 이 문제를 희한하게 해결한다. 욕이나 구타도 관심이기 때문에 쾌락을 준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설명한다면 행동주의의 도덕성 발달 이론과 모순된다. 행동주의자들에 따르면 아이들이 도덕 규범을 내면화하는 이유는 못된 짓을 했을 때 혼나기 때문이다. 즉 처벌(punishment)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땡깡을 설명할 때에는 욕 먹고 얻어 맞는 것이 보상이고 도덕성을 설명할 때에는 욕 먹고 얻어 맞는 것이 처벌인가? 장난하나? 이럴 때 행동주의자들은 정신분석가를 닮은 것 같다. 그런 식으로 제멋대로 해석하면 세상에 설명되지 않을 현상이 어디 있나?

 

 

 

 

 

다시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부모의 반응을 보고 땡깡과 관련된 전략을 선택한다는 적응 가설로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 출연하는 아이들의 태도가 1주일 만에 돌변하는 것이 잘 설명된다. 아이들의 뇌 속에서 변한 것은 별로 없다. 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서열이다. 침팬지 사회에서 치열한 서열 싸움 끝에 으뜸 수컷(alpha male)이 바뀌면 엄청나게 많은 것이 바뀐다. 땡깡을 둘러싼 기싸움에서 부모가 항상 지다가 1주일 동안 아주 단호하게 행동해서 항상 승리한다면 결국 서열 질서가 바뀐다.

 

육아 전문가들은 한결 같이 아이가 땡깡을 부릴 때에는 항상 아주 단호하게 행동하라고 권고한다. 저번에는 단호했으니까 이번에는 조금 느슨하게 하자. 애가 너무 불쌍하다는 식으로 생각하면 이미 지는 싸움이다. 그러면 서열 관계를 확실히 역전할 수 없다. 서열 관계를 확실히 역전하지 못하면 아이도 부모도 피곤하게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계속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아이의 소원을 항상 들어주어야 한다.

 

<내니 911>에서 육아 전문가들은 조종(manipulation)이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 아이가 부모를 조종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진화 심리학의 적응 가설은 아이들의 이 조종하려는 성향의 기원을 설명해 준다.

 

 

 

 

 

2010-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