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스켑렙에서 잠깐, 그리고 여기에서도 잠깐 눈팅만 했었는데 이렇게 게시판 개편된 걸 보니 어설픈 글이나마 한편 적어보고 싶어지네요. 여러분들의 내공이 비하면 참으로 부족하지만 그래도 읽어보고 나름대로 과거청산 문제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나눠봤으면 좋겠습니다.

   과거청산을 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두 번 다시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일 겁니다. 개인적으로 역사, 특히 한국 근현대사에 꽤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역사가 우리에게 의미가 있다면 그건 바로 인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거라 생각합니다. 비록 역사 속의 인물들과 다른 시대, 다른 장소, 다른 상황에 놓여 져 있더라도 같은 ‘인간’으로서 때로는 동질감을 느낄 수도 있고, 그 인물에게 감정이입을 하면서 희노애락을 함께 느낄 수도 있겠죠.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부딪히고, 나름대로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겠죠. 즉, 역사란 것은 단순히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우리의 현재와도 어떠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고, 그런 관계가 미래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역사라는 것이 그만큼 중요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뭐, 그런 거창한 걸 떠나서도 역사 속에서 때로는 도전하고 때로는 좌절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재미있습니다. 우리가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인물에 대해서 의외의 면을 발견하기도 하고, 인물의 내면을 상상해보면서 ‘어떤 생각으로 이런 일을 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한때 독립운동을 했던 이광수가 어쩌다가 친일파의 대표적인 인물이 됐는지, 어떠한 과정이 있었고 생각의 변화가 있었는지, 그런 것들을 생각해보는 것은 나름대로 흥미롭죠. 물론 저만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그런 점에서 역사라는 것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아주 중요한 질문에 해답을 던져줄 수 있는 학문이란 생각을 합니다. 따라서, 과거청산이라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친일파 청산을 하지 못하면서 왜곡된 현대사를 살아야 했던 우리로서는 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겠죠.

 조금 서두가 길었지만, 위에서도 말했듯이 저는 친일문제를 비롯해서 과거청산이라는 것을 ‘인간적인 삶’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존재로 보고 있습니다. 일단 그나마 제가 아는 것이 친일문제인 고로 친일문제 위주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친일문제와 관련해서 과거청산을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은 보통 이런 식입니다. ‘이미 지난 이야기다. 왜 옛날 얘기를 꺼내냐’-더 나아가서 지금은 경제 발전이 중요하다고도 하죠-, ‘그 당시에는 어쩔 수 없었다’와 같은 이야기.

 첫 번째, 지금에 와서 과거청산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반박하고 싶습니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지 않으면 되풀이된다고. 그 예로 서정주나 모윤숙과 같은 인물들을 들 수 있겠죠. 미당 서정주는 아시다시피 시에 있어서는 대가라 칭할만 합니다. 김현이 그랬던가요? 미당은 시의 정부라고. 하지만 그는 친일과 친독재와 오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죠. 그의 친일시로 유명한 것이 ‘오장 마쓰이 송가’인데 전 그보다도 전두환을 찬양한 ‘처음처럼’이 훨씬 역겹습니다.

 

처음처럼-- 전두환 대통령 각하 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

 

미당 서정주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이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 이여

이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

 

새맑은 나라의 새로운 햇빛처럼

님은 온갖 불의와 혼란의 어둠을 씻고

참된 자유와 평화의 번영을 마련하셨나니

 

잘사는 이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물가부터 바로 잡으시어

1986년을 흑자원년으로 만드셨나니

 

안으로는 한결 더 국방을 튼튼히 하시고

밖으로는 외교와 교역의 순치를 온 세계에 넓히어

이나라의 국위를 모든 나라에 드날리셨나니

 

이나라 젊은이들의 체력을 길러서는

86아세안 게임을 열어 일본도 이기게 하고

또 88서울올림픽을 향해 늘 꾸준히 달리게 하시고

 

우리 좋은 문화능력은 옛것이건 새것이건

이나라와 세계에 떨치게 하시어

이겨레와 인류의 박수를 받고 있나니

 

이렇게 두루두루 나타나는 힘이여

이 힘으로 남북대결에서 우리는 주도권을 가지고

자유 민주 통일의 앞날을 믿게 되었고

 

1986년 가을 남북을 두루 살리기 위한

평화의 댐 건설을 발의하시어서는

통일을 염원하는 남북육천만동포의 지지를 얻어셨나니

 

이나라가 통일하여 흥기할 발판을 이루시고

쉬임없이 진취하여 세계에 웅비하는

이 민족기상의 모범이 되신 분이여!

 

이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

하늘의 찬양이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

 

 전 사실 서정주의 시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서정주의 시를 교과서에서 가르친다면 서정주의 과거 역시 가르쳐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한용운이나 이육사의 시를 가르칠 때면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것도 꼭 독립운동과 연관을 시키려고 하면서 서정주의 시에 대해서 가르칠 때 서정주의 친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기계적인 형평’에도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드네요.

 모윤숙 역시 친일파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의 분단에도 아주 큰 영향을 끼친 인물입니다. 유엔한국위원단 위원장이었던 메논은 원래 분단을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모윤숙의 미인계에 넘어가 결국은 남북분단을 지지하는 쪽으로 변했죠. 이에 대해서 메논은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외교관으로 있던 오랜 기간 동안 나의 이성(reason)이 심정(heart)에 의해 흔들렸다는 것은 내가 유엔조선임시위원단 단장으로 있던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는데 나의 심정을 흔들었던 여성은 한국의 유명한 여류시인 매리언 모(모윤숙)였다.”

 

 하긴 어디 서정주와 모윤숙 뿐이겠습니까? 대다수의 친일파들은 태평양 전쟁을 ‘영미 제국주의를 타도하는 성전’이라 부르짖던 그 입으로 미군정이 들어서자 미군정의 충실한 하수인이 되죠. 이렇듯 친일 문제가 청산되지 못한 것은 결과적으로 한국 현대사를 왜곡시켰고, 서정주나 모윤숙을 비롯해 수많은 이들이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고 계속 해서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그들도 피해자였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저는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상당 부분 친일파들도 피해자였던 부분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진심으로 친일 행위를 했던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대부분은 원치 않지만 어쩔 수 없이 했던 부분들이 분명히 존재했을 거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물론 개중에는 몸과 마음이 다 일본인처럼 변해버린 아주 열렬한 친일파도 소수나마 있었을 거고요.

 그런데 제가 생각했을 때 정말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친일파들이 자신의 과거 친일 행위에 대해서 어떠한 반성이나 뉘우침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인간은 누구나 오류를 저지르지만, 그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이 아닐까요? 더러 진실된 반성을 하는 사람들도 드물지만 있긴 했습니다. 한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가 친일행위를 했지만 반민특위 법정에서 ‘나를 광화문 네거리에서 찢어 죽여라’고 했던 최린, 수차례에 걸쳐 자신의 친일행위를 공개적으로 참회한 전 홍익대 총장 이항녕과 같은 사람들이 그렇지요. 처음에 최린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눈물이 날 뻔 한 기억이 나네요. 저는, 역사니 법이니 하기 전에 그냥 한 인간으로서, 최린에게는 도저히 뭘 잘못했다고 할 수가 없을 거 같습니다.

 최린이나 이항녕이 한 것처럼은 아니더라도, 솔직하게 잘못했다고 말 한 마디 하기가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요? 그들이 일본 제국주의의 피해자였을지는 모르지만, 해방이 된 후에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미국의 하수인이 되고, 독재정권의 하수인이 된 순간부터는 그들이 피해자였다고 보기 힘들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제가 생각하기에는요.

 그리고, 법적인 책임은 아니더라도 ‘인간적으로’ 역사적인 책임 정도는 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이광수나 최남선의 태평양 전쟁을 찬양하는 연설을 듣고 전쟁에 나가서 죽거나 상이군인이 된 사람이 있다면-틀림없이 있겠지만- 어떻습니까? 이 사람과 이광수, 최남선이 똑같은 피해자라고 하는 건 너무 기만적이지 않나요? 솔직히 말해서 이광수나 최남선의 친일이 목숨과 관련된 행위까지는 아니었다고 보는 게, 독립운동을 하진 않더라도 일제 시대에 절필을 한 김동리와 같은 작가도 있으니까요. 저도 그 길이 쉽진 않았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솔직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 정도는 해주는 게 자신들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요. 친일파들은 누가 뭐라 해도 일본 제국주의의 하수인이 되어 조선 민중들을 억압하는 체제의 한 구성원으로 기능했다고 봅니다. 거기에 대해서 법적 처벌은 못 하더라도 역사적인 평가는 냉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일전에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 명단을 발표한 거 갖고 박정희나 방응모 같이 몇 명만 가지고 친일 문제와 관련된 과거 청산을 부정하는 것을 보며 어이가 없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박정희 같은 인물들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 해도 친일 명단의 수많은 인물들 가운데 한 명인데 그런 소수의 인물만 가지고 친일 명단 자체를 까는 게 어이가 없었고, 설령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 명단이 문제가 있다면 학계와 시민 사회에서 토론을 통해 친일의 기준에 대해 합의를 해가는 과정이 필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 명단에 물론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당연한 거죠. 모든 사람들이 그 기준에 동의할 수는 없겠죠. 그럼 토론과 합의를 통해 더 나은 기준을 이끌어 내는 게 상식적인 것 아닐까요?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우리 모두 역사와 우리의 현실에 대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배울 수 있으리란 생각을 해봅니다.

 친일청산에 대해서는 제대로 써보고 싶었지만 자료도 없고 제 능력도 부족해서 이 정도로 이 글을 마무리해야 될 거 같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함께 토론해봤으면 합니다.

나는 역사에 밀착해서 살아왔다. 역사는 목동의 피리소리에 맞추서 춤추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부상자의 신음소리와 싸움하는 소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