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ittered with. SexyDolphin

                                                 1st part of the discussion summary


11. 촘스키는 인간이 활동하는 영역을 초기조건으로 한정하여 수평적으로 확장하는 지식의 민주적 속성을 '창의성' 이라 정의함에 반해,
           푸코는 지식 그 자체로 존재하여 그저 잠시간 인간의 활동영역으로 비로소 수직적으로 침투할 때의 권위적 속성을 '창의성' 이라
           정의한다.



12. 촘스키는 과학에 있어서 선행되는 초기조건을 '협의의 limitation' 이라 명명하였으며 이를 기반으로 하여 'freedom' 을 갖춘 '창의성' 을 얼마든지 펼쳐왔고 앞으로도 펼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따라서, 과학의 '방법론' 역시 'freedom' 을 갖춘 '창의성' 을 통해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다 주장한다.

반면 푸코는 과학에 있어서 선행되는 초기조건을 '광의의 grille' 이라 명명하였으며 기껏해야 '거기서 거기에 머무는', '밑져야 본전 식'
과학의 허점을 주장하였으나 필자가 판단할 때, 푸코는 개인적인 이유로 촘스키의 주장에 대해 지나치리만큼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 밖에 없는 논리에 머물고 있다.



13. 아무래도 푸코는 '진리' 라는 닿을 수 없는 그것이 가지는 '권위' 에 대해 심리적으로 의탁하고 있는 듯 하다. 반면,
촘스키는 진리 그 너머에 빛나는 '순리' 라는 것이 가지는 '이해' 가 보여주는 또다른 우주의 가능성/ 여지에 대해 exciting 하고 있다.
(참사랑 님, 촘스키의 이것이 제가 앞으로 평생을 걸쳐 경험/ 시도하려는 핵심입니다 :D)

정리하여 촘스키가 희구하는 지식이란 (푸코의 바람대로) 한발짝, 두발짝 전진하는 선형적 즉, 소극적 과학이 아니라
방법론에 대한 무한한 조합을 자유자재로 선택하여 비선형적 즉, 적극적 과학을 제시한다.

반면 푸코가 희구하는 지식이란 영겁을 초월하여 그저 시대성에 대한 납득 가능한 현상만을 설명할 뿐인,
불변본체에 대한 소극적 과학이다.



14. 필자가 판단할 때, 두 학자는 서로 다른 영역(domain) 에서 창의성과 과학적 지식을 논하고 있다.
푸코는 '진리가 궁극이다' 의 전제에 머물고 있으나 촘스키는 '진리 너머 순리가 있다' 의 전제로 확장하여 논하고 있음이다.

그러나 2부, '정치' 에 대한 논의에서만큼은 '푸코' 가 첫 발언부터 매우 영리한 사회처세술을 청중들에게 은연중 알리고 있다.



                                           2nd part of the discussion : You interested in Politics?


Chomsky's Turn (발제)

15. And I think that, at least in the technologically advanced societies of the West we are now certainly in a position where meaningless drudgery can very largely be eliminated, and to the marginal extent that it's necessary, can be shared among the population; where centralised autocratic control of, in the first place, economic institutions, by which I mean either private capitalism or state totalitarianism or the various mixed forms of capitalism that exist here and there, has become a destructive vestige of history
적어도 서구 사회와 같이 의미없는 고된 노동이 최소화되어 불가피한 정도로까지 모든 국민이 분담해야 한다. 개인 자본주의, 국가 전체주의, 그 외의 아류 자본주의에 기반한 중앙독재적 정치구조는 아픈 역사의 피비린내의 근원지다



Foucault's Turn (부제 : 정치는 개인의 비판적 자세가 선행되어야 하는 필요악이다)

16-1. If one understands by democracy the effective exercise of power by a population which is neither divided nor hierarchically ordered in classes, it is quite clear that we are very far from democracy. It is only too clear that we are living under a regime of a dictatorship of class, of a power of class which imposes itself by violence, even when the instruments of this violence are institutional and constitutional; and to that degree, there isn't any question of democracy for us
또다른 법적 효력에 의해 실행되는 민주주의라면 그것이 분권구조든 계급구조든 이 역시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저 분권과 계급으로 대표되는 소극적 중앙독재에 불과하므로 이 역시 민주주의가 아니다

16-2 that we should indicate and show up, even where they are hidden, all the relationships of political power which actually control the social body and oppress or repress it
따라서, 무엇이 민주주의 인가를 정의하는 것보다 사회를 억압하고 제약하는 '그 무엇' 을 파악하는 것이 현답이다

It seems to me that the real political task in a society such as ours is to criticise the workings of institutions, which appear to be both neutral and independent; to criticise and attack them in such a manner that the political violence which has always exercised itself obscurely through them will be unmasked, so that one can fight against them
그럴듯하게 중립적이고 그럴듯하게 독립적으로 비춰지는 정부 기관들의 활동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이, 정치구조가 무엇이든가에 필연적으로 발생/ 수반하는 정치적 폭력에 대한, 최상으로 영리한 개인의 사회처세술이다

16-3. the suppression of the one is achieved through the exhaustive discernment of the other
본디 개인에 대한 억압과 제약은 개인과 개인 간의 (필요 이상의) 철저한 구별적 인식을 시발점으로 마침내 실행됨을 개인은 깨달아야 한다



Chomsky's Turn (부제 : 비판은 기술이 되고 행동을 통해 예술이 된다)

17. I think that the existing system of law even explains why it is absurd. But if it didn't, we would then have to oppose that system of law
현 사법권력이 스스로 기반을 두고 있는 현 사법체제에 대한 불합리성, 모순조차 설명하기 꺼림을 깨달았다면 이에, 개인은 자아성찰 기능이 상실된 '무너진 정체성' 을 근거로 영리한 비판을 행동할 수 있다

Just because the criminal happens to call your action illegal when you try to stop him, it doesn't mean it is illegal
왜냐하면 범죄자의 범죄행위를 제지하려는 당신에 대해 오히려 역으로 불법이라 범죄자가 주장하는 그 순간 이후로, 당신의 제지행위는 더 이상 불법이 아님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문맥상, 상대의 비상식적인 논리에 대응하는 최고의 논리는, 역으로 상대의 비상식에 근거하는 동시에 상대의 못된 시나리오보다 더 못되게 대응하는 것임을 은연 중 암시하고 있다. 이는 극단적 상대주의자들에 대한 초극단적 상대주의적 대응만이 극단적 상대주의자들을 무력화시키는 사례/ 경우와 꼭같다)



Foucault's Turn (부제 : 도대체 정의의 정의란 무엇인가)

18-1. But if justice is at stake in a struggle, then it is as an instrument of power: it is not in the hope that finally one day, in this or another society, people will be rewarded according to their merits, or punished according to their faults. Rather than thinking of the social struggle in terms of "justice", one has to emphasise justice in terms of the social struggle
정의를 두고 갈등과 분쟁이 발생했다면 그러한 정의 역시, 그저 감추어진 권력의 또다른 가면에 불과하다. 갈등과 분쟁을 통해 승자와 패자가 갈리면 정의의 이름으로 승자는 보상을 받으나, 정의의 이름으로 패자는 징벌을 받을 것이기에.

따라서, 정의를 근거로 하여 갈등과 분쟁을 다룸을 멈추고
갈등과 분쟁을 근거로 하여 정의를 다룸이 지향해야할 사회이다

18-2. that the proletariat doesn't wage war against the ruling class because it considers such a war to be just. The proletariat makes war with the ruling class because, for the first time in history, it wants to take power. And because it will overthrow the power of the ruling class it considers such a war to be just
노동자 계급은 자본가 계급에 대해 투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의 투쟁은 '정의로웠기' 때문에.

(문맥상, 푸코는 '정의추구' 의 공허함에 회의하며 따라서, 자본가계급의 자본가계급만의 '정당성' 에 대한 인정과 포용만이
노동자계급의 노동자계급만의 '정당성' 에 대한 win-win 적 성취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음을 주장한다)

오히려 노동자계급은 자본가계급과 협력했다. 왜냐하면, 노동자 계급은 자본가 계급이 누리는 '권력' 을 노동자 계급도 누림은 곧, 자본가 계급을 termination 하지 않는 동시에 자기 편으로 이끌어냄이 선행되어야 한다 생각했기 때문에. 왜냐하면, 노동자 계급이 자본가 계급이 누리는 '권력' 을 누리게 될 미래에서야, 그 권력을 버리는 것이 '진정으로 정의로우리라' 생각했기 때문에.

(문맥상, 푸코는 정의를 근거로 한 정의가 또다른 정의를 낳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에 대해 은연 중 경계/ 회의하고 있다)

18-3. One makes war to win, not because it is just. When the proletariat takes power, it may be quite possible that the proletariat will exert towards the classes over which it has just triumphed, a violent, dictatorial and even bloody power. I can't see what objection one could make to this

투쟁은 승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지 정의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노동자 계급이 승리의 투쟁 결과 권력을 탈취하면 자연스럽게 (과거 자본가 계급이 그랬듯 역으로) 자본가 계급에 대한 숙청을 행사할 것이다. 누구도 이러한 '정의' 와 '권력' 간의 메카니즘을 부인할 수 없다

But if you ask me what would be the case if the proletariat exerted bloody, tyrannical and unjust power towards itself, then I would say that this could only occur if the proletariat hadn't really taken power, but that a class outside the proletariat, a group of people inside the proletariat, a bureau-cracy or petit bourgeois elements had taken power
그러나 노동자 계급이 권력을 누리지 못하므로 노동자 계급이 그들 스스로와 투쟁(경쟁) 해야만 하는 현실에 대해서 당신(촘스키) 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p.s. : 1~4편은 철학에 대한 토론이었고 촘스키가 주도권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정치에 대한 토론에서만큼은 촘스키는 어느 영화 대사처럼 '뜨뜨미지근한 정의' 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정치에 대한 토론에서만큼은 푸코의 영민함을 촘스키가 따라잡지 못할 듯 합니다
          어렸을때 세일러문의 트레이드마크인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

          오늘따라 그 짧은 한 문장이 왜 이렇게 우스워 보일까요?
          아무튼 오늘날에도 서로가 서로의 정의를 허공에 내뱉으며 국론을 분열시키는 두 major 당이 생각나 씁쓸합니다

          차라리 미국정치는 쇼비즈니스 라는 뉘앙스라도 풍기지,
          우리나라 정치는 서로가 목숨걸고 해서 어련히 재미가 없음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