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논쟁이 간간이 이어지는 걸 보다 보니 좀 다른 쪽으로 생각이 흐르네요. 물론 전 체질상 한의학 옹호파는 결코 아니며 그렇게 될 수도 없겠습니다만(한의학이 경험적 검증 체계를 광범위하게 채용하지 않는 한), 한의학 이야기가 나오면 간간이 한의학 범위를 넘어서 인도나 중국의 고전기 일반에 대한 추상적 폄훼로 이어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경우를 볼 때마다 뭐랄까, 이건 좀 부당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몇 달 전쯤에 별 생각 없이 『미지수, 상상의 역사』라는 책을 읽고 있었는데,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어요. 선형대수학의 도구 중에 행렬식(determinant)이란 게 있는데, 이게 행렬(matrix)보다 먼저 발명되었다는 건 아마 수학사에 좀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요. 근데 놀라운 건 행렬식을 세계 최초로 발명한 사람이 일본 수학자라는 거예요. 사무라이 신분인 세키 고와라는 사람이 17세기에 이걸 발명했다는군요.(위의 책, 227쪽. 야콥 베르누이가 발견했다고 해서 베르누이 수라는 이름이 붙은 수열이 있는데, 이것도 이 사람이 먼저 발견했다네요)

그 밖에도 동양 전통 문명이 생각보다 쉽게 폄하될 수 없는 정도의 수준이었다는 걸 보여 주는 사례를 간혹 읽을 때가 있어요. 비근한 예론 중국 근대 이전 역사에서 경제가 급격히 발전했던 송나라 시대에 심지어는 석탄을 이용한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까지 갖춰졌었다는 유명한 주장이 있지요. (약간 마음에 안 드는 책이긴 하지만) 제임스 블로트의 『유럽 중심주의를 비판한다』에서 전통 인도의 경제를 기술한 다음과 같은 부분도 흥미롭고요.

"…이를테면 17세기 영국인들이 나타났을 때 인도의 산업 구조는 영국을 앞질러 훨씬 높은 단계에 있었다… 바닷가 도시들에 있던 인도 상인들은 아주 잘 조직되어 있었는데, 이들은 인도 전역, 또 인도양 전체에 (그리고 그 너머까지) 펼쳐져 있던 거대한 상업 교류망의 중요 부분이었다. … 이 교류망으로 말하자면 유럽인들이 인도 땅에 처음 발을 디딜 무렵에는 은행 업무 등에서 세계 어디서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발달해 있었다."(위의 책, 281쪽)


마이클 모건의 『잃어버린 역사, 이슬람』에서 18세기까지도 인도의 대포 기술이 영국을 앞질러 있었다는 기술도 상당히 놀라웠죠.(지금 이 책을 갖고 있지 않아서 페이지는 못 적겠네요) 사실 되짚어 보면 영국-마이소르 전쟁의 전반부(1, 2차)는 마이소르가 기세 좋게 잡기도 했고요. 같은 책에서 나온 건데, 17세기였나,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기술자가 '날틀'(다 빈치가 실패했던 그것)을 실제로 만들고 비행에 성공해서 보스포루스 해협인지 무슨 산인지의 위를 날아서 착지해 술탄의 치하를 받았다는 기록도 있지요.

제가 이런 사례를 기를 쓰고 찾아 다니거나 뭐 그런 건 아니라서 많은 사례를 들 수는 없지만(사실 위의 사례들보다 더 이전으로 가면-송나라 얘기 빼고도- 유럽은 상대적으로 변방이었으니 오히려 거꾸로 생각해야겠지요), 이밖에도 여러 군데서 생각보다 동양 문명이 그렇게 많이 뒤처져 있던 건 아니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는 많았어요. 이전에는 저도 그냥 피상적인 느낌만 가지고 논의를 하면서 이곳저곳 찔러 댔었는데, 요즘엔 갈수록 확실하게 재구성 가능한 논거가 없으면 그런 논법은 주저하게 되더라고요. 뭐, 그냥 그런 정도의 생각이었습니다.


p.s.
다시 강조하지만, 이런 글 쓴다고 제가 한의학을 옹호하고 현대 문명과 과학을 비판한다거나.. 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그냥 잡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