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범적응론

 

진화 심리학이 범적응론(panadaptationism)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다. 원래 범적응론은 모든 형질을 적응이라고 보는 관점을 말한다. 진화 생물학의 기초만 배워도 이런 순수한 범적응론이 터무니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예컨대 맹점이라는 형질이 적응이라고 주장하는 진화 심리학자는 한 명도 없는 것 같다. 즉 어떤 진화 심리학자도 맹점이 있던 우리 조상이 맹점이 없던 조상에 비해 더 잘 번식했기 때문에 맹점이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어떤 전문 진화 심리학자에게 물어보아도 인간의 형질 중 적응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들의 목록을 수도 없이 많이 댈 수 있다. 내가 적응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몇 개만 대 보겠다. 현대인의 비만, 콘돔, 문자 사용, 컴퓨터, 피아노, 동성애, …….

 

진화 심리학자들은 형질들 중 적응보다는 적응이 아닌 것이 훨씬 많다고 이야기한다. 이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인간의 형질을 파악할 수 있는 방식은 무한한 반면 적응의 수는 유한해 보이기 때문이다. 눈의 예를 들어보자. 임의의 크기의 직육면체로 눈을 쪼갤 수 있다. 따라서 무한히 많은 형질들로 파악할 수 있다. 반면 적응의 측면으로 눈을 쪼개기 위해서는 수정체, 각막, 망막 등의 구조로 쪼개는 방법에 따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 심리학자들이 순수한 범적응론의 오류를 범하기라도 하는 듯이 비판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이것은 터무니 없는 비판이거나 수사적 표현일 것이다.

 

 

 

 

 

범적응론적 편향

 

진화 심리학자들이 순수한 범적응론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말은 진화 심리학자들이 모든 형질을 적응이라고 믿고 있다는 말이다. 반면 진화 심리학자들이 범적응론적 편향을 범하고 있다는 말은 진화 심리학자들이 지나치게 많은 것들을 적응이라고 본다는 말이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첫 번째 비판은 터무니 없다. 그렇다면 두 번째 비판을 살펴보자.

 

(진화 심리학자들을 포함하여) 진화 생물학자들은 적응론과 관련하여 항상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있으며 실제로 수 많은 오류를 범했다. 어떤 때에는 적응 아닌데도 적응이라고 잘못 생각할 때가 있으며 어떤 때에는 적응인데도 적응이 아니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이런 오류를 범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처음부터 몽땅 다 확실히 안다면 뭐 하러 연구를 하겠는가? 따라서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 보고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진화 심리학자는 교황이 아니다(교황 무오류설).

 

비판자들은 진화 심리학자들이 한쪽 방향의 오류 즉 적응이 아닌데도 적응이라고 보는 오류를 반대쪽 방향의 오류보다 훨씬 더 많이 범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같다. 진화 심리학자들이 적응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크다 보니 그런 식으로 오류를 범한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적응일 것이라고 기대할 때가 많나?

 

생물학자들은 지난 두 세기 동안 온갖 생물의 온갖 생리적 구조에 대해 아주 많은 것들을 밝혀냈다. 그럴 때마다 생물학자들은 감탄을 했다. 생물학자들은 자연을 의인화하여 이런 식으로 이야기할 때가 많다: 자연은 어떻게 이런 기발한 생각을 해 낼 수 있었을까? 자연은 어떻게 이런 정교한 구조를 만들어냈을까?

 

여러 생물의 생리적 구조뿐이 아니라 온갖 동물의 온갖 행동도 생물학자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또한 인간의 생리적 구조도 생리학자의 감탄을 자아낸다. 생물의 기발함과 정교함은 한편으로 기독교인들에게는 신에 대한 감탄을, 다른 한편으로 진화 생물학자들에게는 자연 선택에 대한 감탄을 자아낸다. 시각을 비롯한 인간의 감각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인간 뇌 속에 있는 놀라운 지혜에 수 없이 감탄한다. 진화 심리학에 적대적이지만 기독교식 창조론을 거부하는 대다수 학자들도 이런 감탄을 공유한다. 그리고 그들도 자연 선택에 대해 어느 정도 배웠다면 그것이 자연 선택의 힘 때문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적응 가설을 싫어할

 

인간이 아닌 생물에 대해 설명할 때 사람들은 적응 가설을 잘 받아들인다. 인간의 육체적 측면을 설명할 때에도 사람들은 적응 가설을 잘 받아들인다. , 심장, 허파, , 근육 등의 놀랍게도 기발하고 정교한 구조가 자연 선택의 산물인 적응이라는 점을 의심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인간의 정신적 측면 중 감각, 운동과 관련된 것들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적응 가설을 잘 받아들인다. 망막에 맺힌 2차원 상에서 시작하여 3차원 공간을 창조해 내고 3차원 색감(쉽게 말하자면 명도, 채도, 색상의 3차원)을 창조해내는 뇌 속의 복잡한 시각 메커니즘이 자연 선택의 결과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특정한 주제들을 다룰 때에만 진화 심리학에 적대적인 사람들이 적응 가설을 거부한다. 즉 인간의 정신적 측면 중 이데올로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들을 다룰 때에만 적응 가설을 거부한다. 질투, 낭만적 사랑, 모성애, 강간, 외부인 혐오(xenophobia) 등이 그 예다. 진화 심리학 비판자들은 과학적 기준 따위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동물 연구를 그대로 적용한다고?

 

진화 심리학자들은 똥파리의 강간이 적응이니까 인간의 강간도 적응이다, 제비의 질투가 적응이니까 인간의 질투도 적응이다, 침팬지의 질투가 적응이니까 인간의 질투도 적응이다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런 식으로 말했다는 누명을 쓰고 있다. 물론 이것은 진화 심리학자 비판자들이 기억력이 없거나 양심이 없기 때문에 진화 심리학 연구를 왜곡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똥파리도 제비도 침팬지도 아니다. 따라서 똥파리에 적용되는 것이, 제비에 적용되는 것이, 침팬지에 적용되는 것이 인간에게 적용되지 않을 때가 많다. 예컨대 똥파리는 똥을 좋아하지만 인간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똥파리, 제비, 침팬지의 적응에 대한 연구는 인간 적응에 대한 증거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진화 심리학자들은 그런 연구들 때문에 어떤 것들을 기대하게 된다. 제비의 질투가 적응이라면 인간의 질투도 적응일 가능성이 있다는 식의 기대가 그것이다.

 

제비 수컷과 인간 남자는 비슷한 처지에 있다. 자신의 아내인 암컷이 다른 수컷과 교미를 하면 남의 유전적 자식을 키울 위험이 있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제비의 뇌보다 더 크다. 따라서 질투를 위한 정보 처리를 제비도 하는데 인간이 못하라는 법은 없다. 따라서 자연 선택에 의해 인간의 질투 메커니즘이 적응으로서 진화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상당히 자연스럽다. 물론 기대와 입증은 다르며 진화 심리학자들은 이 차이를 잘 알고 있다.

 

침팬지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친족이다. 침팬지 엄마는 자식을 몹시 사랑한다. 침팬지 연구자들 다수는 이것이 적응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 때 인간 여자의 자식 사랑이 침팬지 암컷의 자식 사랑과 상동(homology)일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물론 이 때에도 기대와 입증을 구분해야 한다.

 

 

 

 

 

과대망상에서 벗어나자

 

동물 세계에서 생리적 차원뿐 아니라 정신적, 행동적 차원에서도 놀랍도록 정교한 적응들이 진화했다. 물론 사람들이 신경 쓰는 이데올로기와 별로 상관 없는 시각 메커니즘뿐 아니라 질투, 사랑, 외부 동물 혐오(xenophobia) 등의 경우에도 이것은 그대로 적용된다. 이런 사정을 살펴볼 때 이데올로기와 관련이 있는 인간의 여러 형질들이 적응일 가능성을 고려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인간의 생리적 측면에서, 시각처럼 이데올로기와 관련이 별로 없는 정신적 측면에서 자연 선택이 놀랍도록 기발하고 정교한 메커니즘을 만들어냈는데 질투와 같이 이데올로기와 관련이 있는 측면에서만 자연 선택이 힘을 못 썼다고 보는 것은 좀 이상하지 않은가? 지난 수백 만 년 동안 일어났던 자연 선택이 20세기 마르크스주의자들이나 페미니스트들의 이데올로기 눈치를 보면서 작동했다고 본다면 정말 중증 과대망상이다. 자칭 진보주의자들이여 자연 선택은 당신들 눈치를 보지 않는다.

 

 

 

 

 

증거는 무엇을 가리키나?

 

어떤 것들은 진화 심리학계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강간, 정신병질(psychopathy), 종교 등에 대해서는 적응 가설과 부산물 가설이 상당히 팽팽히 맞서고 있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비판자들은 마치 진화 심리학계 전체가 이런 형질들이 적응이라고 믿는다는 식으로 헛소문을 퍼뜨린다. 심지어 Randy Thornhill Craig T. Palmer가 쓴 『A Natural History of Rape: Biological Bases of Sexual Coercion(2000)』에서 Thornhill은 강간의 적응 가설을, Palmer는 부산물 가설을 주창했지만 둘 모두 적응 가설을 내세웠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한 두 명이 아니다.

 

논란이 되고 있는 것들 중 진화 심리학자들이 대체로 동의하는 것들이 있다. 대다수 진화 심리학자들은 친족에 대한 사랑, 낭만적 사랑, 질투, 근친상간 회피 등이 적응이라고 생각한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이것들이 적응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들을 상당히 많이 수집했다. 물론 그 증거들은 물리학에서 쓰이는 증거들에 비하면 미약하다. 하지만 기능주의 사회학자들, 마르크스주의자들, 페미니스트들, 정신분석가들의 대안적 가설들을 지지하는 증거들보다는 훨씬 더 강력해 보인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그것들이 적응일 리가 없다고 우기고 있다.

 

동성애, 콘돔 사용 등이 적응이라고 보는 진화 심리학자는 별로 없다. 이전에 동성애의 적응 가설이 유행한 적이 있긴 하다.

 

 

 

 

 

2010-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