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형은 lynching 또는 lynch law. 하지만 한국에서는 흔히 린치를 명사형으로 쓴다. 나도 그냥 그런 용법에 따르겠다. 린치는 공식적인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사람들이 모여서 어떤 사람을 처벌 또는 처형하는 것을 뜻한다.

 

한 가지 설명에 따르면 린치는 군중 심리에 사로잡힌 일군의 사람들이 제정신을 잃고 평소에는 하지 않을 사악한 짓을 하는 것이다. 즉 뭔가 고장 난 행동이다.

 

나는 어떤 사회학 교과서에서 린치에 대해 다루는 것을 보고 진화 심리학자들이 흔히 떠올리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혹시 적응이 아닐까?

 

 

 

집단 선택론을 적용하면 아주 쉽게 적응 가설을 만들어낼 수 있다. 공동체에 해를 끼치는 개인을 처벌하거나 제거 함으로써 공동체의 안녕에 도움이 되도록 린치 메커니즘이 진화했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나는 집단 선택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개체 선택론을 적용하여 린치의 진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겁나게 싸가지 없는 작자를 제거한다면 공동체에 속한 거의 모든 다른 사람들에게 이득이 된다. 하지만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의 논리가 작동한다. 겁나게 싸가지 없는 작자가 가만히 죽음을 기다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을 제거하는 데에는 커다란 비용이 치를 수 있는 것이다.

 

 

 

린치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일어나는지 살펴보자. 뭔가 심각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이 모인다. 그리고 그 사건과 범인으로 밝히진 또는 추정되는 사람에 대한 비난이 시작된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흥분하게 되며 범인을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가 된다. 흥분이 점점 더 심해지면 처벌에 대한 이야기가 점점 더 살벌해진다. 이 때 범인의 과거 악행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결국 죽여라라는 구호가 등장한다. 흥분은 더 심해지고 대다수 사람들이 죽여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한다고 밝힌다. 결국 사람들은 합심해서 범인(또는 범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을 죽인다.

 

린치가 일어나는 과정을 살펴보면 각 개인에게 그리 큰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차릴 수 있다. 만약 한 사람이 범인을 죽이기로 하고 혼자 실행에 옮긴다면 큰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이 때 다른 사람들이 도와줄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과정에서는 어떤 단계에서도 아무도 큰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다. 사람들은 조금씩 더 강력한 처벌에 대한 동의를 이끌어내며 흥분한 감정 상태를 표출함으로써 농담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남들에게 알린다.

 

 

 

점점 흥분하면서 결국 죽여라로 모두가 통일되는 과정은 얼핏 보면 군중이 미쳐가는 과정으로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그것은 매우 합리적인 과정이다. 사람들은 범인의 처단을 원하지만 자신이 혼자 커다란 비용을 들이길 원하지 않는다. 또한 다른 사람들도 범인의 처단을 원하는지 아직 확실하지 않다. 이럴 때 조금씩 더 흥분하면서 조금씩 더 강력한 처벌을 위한 동의를 이끌어내는 것은 매우 합리적이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이런 식으로 동의를 이끌어내서 결국 실행에 옮기면 아무도 큰 비용을 치를 필요가 없다.

 

범인을 제거함으로써 각 개인이 얻을 수 있는 것이 8이라고 하자. 범인을 혼자 제거할 때 치르는 비용이 34라고 하자. 이럴 때에는 거의 아무도 나서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린치라는 과정을 통해서 범인을 같이 제거하는 데 드는 비용이 5에 불과하다면 (얼핏 생각해보면) 대다수가 나설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왜냐하면 5보다는 8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계산에는 문제가 있다. 린치를 할 때 혼자서만 쏙 빠지면 8이라는 이득을 누리지만 5라는 비용을 치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배신을 하지 않고 다들 린치에 참여하려고 하는 것일까? 여기에서도 집단 선택론을 끌어들이면 아주 쉽게 그럴 듯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

 

개체 선택론을 적용하여 좀 더 온전한 가설을 만들기 위해서는 린치에 참여했을 때와 참여하지 않았을 때의 손익을 비교해야 한다.

 

린치에 참여하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집단적으로 범인을 처단하려고 하더라도 범인이 반격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 과정에서 다칠 수 있다. 물론 혼자서 할 때에 비하면 작지만 위험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손해를 볼 가능성이 있다. 예컨대 제일 처음 죽여라를 외쳤는데 결국 반응이 별로여서 죽이지 않기로 결판난다면 범인에게 나중에 보복을 당할 위험이 있다.

 

그렇다면 린치에 참여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또는 린치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잃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린치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자신의 용맹함을 과시할 수 있다. 이것은 특히 남자들에게 요긴하다. 린치에 참여하지 않으면 겁쟁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으며 범인의 편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위에서는 린치에 참여할 때 드는 비용이 5라고 했다. 그리고 범인을 제거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8이라고 했다. 여기에서 빠진 것은 린치에 참여하는 것 자체로써 얻는 평판이다. 사람들이 린치에 참여하는 이유는 린치에 참여하는 것 자체로부터 얻는 평판 등의 이득이 5보다 크기 때문일 것이다.

 

 

 

린치에 참여할 때 오바하면 상당한 손해를 볼 수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죽여라를 외쳤는데 반응이 시들해서 죽이지 않기로 결판난다면 나중에 범인의 보복을 당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린치에 적극 참여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흥분 정도와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잘 듣고 지금 죽여라라고 말하면 통할 것인지 여부를 잘 판단해야 한다.

 

만약 린치를 위한 메커니즘이 자연 선택의 결과 진화한 적응이라면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그런 판단을 잘 하도록 설계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얼핏 보면 집단이 점점 미쳐가는 것 같아 보이지만 각자는 다른 사람의 흥분 정도와 말하는 내용을 보고 자신이 얼마나 흥분할 것인지 그리고 어떤 말을 내뱉을 것인지를 무의식적으로 정밀하게 계산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와 비슷한 가설을 본 적이 없다. 이 가설은 내가 생각해낸 것이다. 아직은 거친 가설에 불과하며 어떻게 검증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2010-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