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동적 복지국가론’에 대한 기대와 우려

- <복지도시를 만드는 6가지 방법>에 대한 서평을 중심으로-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복지국가 바람이 거세게 분다. 복지국가론이 진보좌파의 지적 대유행이 될 것 같은 조짐이 완연하다. 과거 복지국가론을 ‘합사개’(합법주의, 사민주의, 개량주의)의 하나로 배척하던 진보좌파의 스타 정치인들이 슬그머니 자신이 오래전부터 북유럽식 사민주의자인 양 복지국가주의자라는 모자를 덮어쓰고 있다. 제대로 된 국가론(국가 개조의 가치, 비전, 전략) 없이 노무현 때리기 등의 쌩쇼 정치와 정치공학으로 일관하던 몇몇 얍삽한 정치인들도 이 대열에 끼어들려고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한겨레신문 등 진보 동네의 간판급 언론들이 2004년에 조선.동아가 뉴라이트 운동에 대해 그랬듯이, 복지국가론을 진보의 활로라도 되는 것처럼 확실한 띄워주기를 하고 있다.

 

나는 복지국가론의 유행이 가져올 수많은 긍정적, 고무적 효과를 헤아리면서 쾌재를 부른다. 동시에 부정적 효과를 헤아리면서 한탄을 한다. 한국의 진보개혁 세력의 수준이 이것 밖에 안 되나!!!

 

내가 쾌재를 부르는 것은 첫째, 드디어 한국에서도 맞든 틀리든 국가개조의 가치, 비전, 전략이 분명하고, 호흡도 비교적 긴-영국의 페이비언 소사이어티를 모델로 하는- 사상.정책 집단이 홀로서기에 성공해서 정치, 언론, 시민운동 등과 협력적(약간의 우위도 있는) 긴장 관계를 형성한 듯 하기 때문이다. 둘째, 진보좌파 내에 끈질기게 남아있는 (복지국가론을 떨떠름하게 바라보아온) NL, PD론자들을 사상.이념적으로 압도하여 지지율 3~5% 짜리 세력을 잘만 하면 10~15% 정도로 올릴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역동적 복지국가론은 진보개혁의 (보수에 대한) 승부수는 아니지만, 진보(좌파)들에 대한 승부수는 맞다고 생각한다.

셋째는 하나의 사상.정책 집단이 생겨나서 활발하게 활동하면 거의 예외 없이 이들과 차별성이 있는 다른 집단들도 활성화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진보 동네에서 정책 패러다임이 다른 두 세 개의 정치, 사회 집단이 파당을 이루어 생산적 경쟁을 하는 날이 도래할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선진 정치의 지적 토대가 아닐까?

 

앞으로 우리 사회디자인연구소는 복지국가론의 유행 현상이 초래할 긍정적 효과를 극대화하고 부정적 효과를 극소화하는 활동을 할 것이다. 정치, 정책 비평도 하고, 사상.정책 운동도 하고, 여기에 입각한 시민운동도 할 것이라는 얘기다.

 

오늘은 (역동적)복지국가론자들과 세계관, 가치관이 거의 비슷한 사람들이 공저로 쓴 책 한권을 비평 하려고하다. 이 책은 올해 2월26일자로 출간된 <복지도시를 만드는 여섯 가지 방법>(최영희, 박은수, 백원우, 김용익 공저, 석탑)이다. 지난 월요일 한겨레신문이 1면에 크게 보도하고, 다음날 사설로도 다뤄준, 성대한 출판기념회를 연 <역동적 복지국가의 논리와 전략>(이상이 편저)(3월8일자 출간)이 국가정책 담론이라면, 이 책은 지방정책 담론이다. 국가정책 담론을 다룬 책과 지방정책 담론을 다룬 책의 출간시기를, 축구에서 링크진과 공격수가 협력하듯이 이 시기(지방선거를 앞두고 있고, 민주당이 뉴민주당 플랜 시리즈를 발표한 시기)에 맞추었다면, 그 담론의 질을 떠나서 정말로 높이 평가 받을 만한 일이다. 그런데 두 책의 출판 시기가 근 열흘 간격인 것이 우연인지 계획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앞으로 담론 시장에 뛰어들려면 복지국가론자들처럼 국가 개조의 가치, 비전, 전략과 지방정부 개조의 가치, 비전, 전략이라는 전일적 체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지방선거 출마자들은 꼭 읽어 보시길

<복지도시를 만드는 6가지 방법>(이하 <복지도시>)은 지방선거 출마자들을 위해 쓴 책이다. 책의 머리말은 책의 핵심 문제의식과 발간 취지를 이렇게 쓰고 있다.

 

“복지국가는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 정부와 정책의 가치관이 진보적으로 변해야 한다. 국민들이, 특히 성장으로 이미 혜택 받은 국민들이 복지를 위한 돈을 기꺼이 모아야 한다. 제도를 바꾸고 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 국가가 변해야 한다. 개발국가에서 복지국가로…….

그러나 복지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복지 ‘국가’ 못지않게 복지 ‘지방’이 필요하다. 나라를 꾸미는 머리는 중앙에 있지만 국민들을 다독이는 손은 지방에 있다.(중략) 지방자치단체야 말로 국민들을 보살피는 복지국가의 손발이다.(중략) 해방된 지 십 수 년 후, 우리는 개발독재의 시대를 살았다. 지방 자치가 부활한지 십 수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개발자치의 시대를 산다. 복지 ‘국가’가 늦어진 만큼 복지 ‘지방’이 늦어지고 있다. 수많은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이 개발시대에 훈련받은 사람들이다. 또는 그 혜택을 누리고 출세하고 돈을 번 사람들이다. 그들의 마음은 개발과 성장의 욕망으로 가득하다. 새사람이 들어가야 한다. 새 사람은 새 논리로 무장해야 한다. 이 책은 새 사람들을 위한 논리와 경험을 모은 책이다. “

 

이 책은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정책 공약(매니페스토)을 만드는데 사용할 원재료와 약간의 요리법을 정리하였다. 6가지 방법은 “안전한 도시, 배우는 도시(평생교육도시), 건강한 도시, 더불어 사는 도시, 삶이 쾌적한 도시(녹색, 오염, 생태, 문화), 색깔 있는 경제와 어우러지는 도시(특성화, 거버넌스, 혁신클러스트)“를 만드는 정책 원칙(정신)과 사례(방법)이다. 나는 이 책을 밑줄치고, 메모까지 하면서 두어 번 읽었다. 이 책의 행간에 흩어져 있는 반짝이는 아이디어까지 완벽하게 흡수하기 위해 생각날 때마다 몇 번이고 더 들춰볼 생각이다. 하지만 내가 깊이 음미하고 높이 평가하는 대목은 역동적복지국가론자들과 맥을 같이 하는, 저자들의 핵심 주장이 아니다. 내게 있어서 이 책의 가치는 저자들이 소개한 다양한 사례와 거기에 흐르는 일부지만 보편성이 있는 정신과 방법이다. 지방 정책 담론은 대체로 당파(진보와 보수,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와 상관없는 것들이 많아서 사민주의 복지국가론자들의 정책 아이디어에서도, 자유주의 복지국가론자들의 정책 아이디어에서도 배울 것이 얼마든지 있다.

 

본격적인 비판에 앞서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정신과 방법 몇 개를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적하효과(trickle down effect)에 대한 믿음, ‘파이가 커져야 나눠 먹을 것이 생긴다’는 철학‘에 대한 문제 제기는 옳다. 토건사업의 고용유발계수가 낮고, 성장 동력이 아니라는 것도 상식이다. 국민소득 증가가 곧 선진국이 아니며, 공단유치가 곧 부자도시가 아니며, 명문학교 유치가 곧 지역 학생들의 학력 신장이 아니라는 것도 두말하면 잔소리다. 요소투입형 성장이 한계에 이르렀기에,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와 혁신이 성장 동력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복지서비스는 산업이며 그것도 고용창출효과가 높은 산업이라는 것도 맞다. ‘성장이 우선이냐 분배가 우선이냐라는 이분법적 색깔론을 벗어던져야 한다’는 것도, (지역의 문화와 예술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청소년, 직장인, 노인, 장애인, 저소득층, 외국인근로자, 농산어촌 주민 등 계층별 라이프스타일과 생애주기별 특성을 고려한 문화공급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것도 지금까지 우리의 지방은 중앙정부의 자원을 더 많이 분배받으러 경쟁하는 의존형 지방화에 머물렀다.(p 160)는 것도 백번 지당하다.

 

반석이 푸석푸석해서 생긴 커다란 구멍

원래 국가개조(경영) 담론의 생명은 그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주된 대립물(주적)을 무엇으로 설정하느냐에 달려있다. 이것이 틀려버리면, 모래 위에 세운 기둥과 지붕이 다 무너지듯이, 그 나름대로 내적 정합성이 있는 사상이념 체계라 할지라도 헐렁헐렁하고 결국에는 무너지게 되어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역동적 복지국가론의 지붕을 3대가치(존엄, 연대, 정의)에 비유했고, 기둥을 4대원칙(보편적 복지, 적극적 복지, 공정한 경제, 혁신적 경제)로 정식화했다. 이 책에서 제시한 6가지 방법은 내부의 벽체와 인테리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맑스레닌주의나 주체사상 이후로 나타난 그 어떤 국가개조 담론 보다 전일적 체계를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정교한 체계가 모래 위에 서 있기에 조만간 비, 바람이 들이치고, 쥐들이 들락거리는 폐가가 되기 십상이다. 역동적 복지국가의 가치, 원칙, 방법을 모조리 쓰레기장으로 가져가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튼튼한 반석, 즉 한국 사회가 어디쯤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바른 통찰 위에서 새롭게 재구성해야 한다는 얘기다.

 

주된 대립물에 대한 얘기에 앞서, 먼저 담론의 토대(반석)가 푸석푸석해서 생긴 커다란 비, 바람구멍 몇 개만 살펴보자. 솔직히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주장이나 <복지도시>에는 이런 구멍들이 너무나 너무나 많다. <복지도시>는 이렇게 주장한다.

 

“기업은 지방으로 가기를 꺼려한다. 교육, 보건복지, 문화의 인프라가 취약하기 때문이다. 기업유치를 원하는 지자체는 물질적 인프라보다 사회적 인프라에 더 투자할 일이다”(p 47) “교육 보건 등 사회적 인프라가 만들어져야 수도권 인구가 지역으로 돌아올 수 있다”(p 54)

 

이 말은 맞는가?

분명한 것은 한 아이가 제대로 자라기 위해서는 마을 하나가 필요하듯이 기업이 제대로 성장.발전하기 위해서는 소비시장, 협력업체, 교통물류 인프라, 인력 공급시스템 등으로 이루어진 기업 생태계가 있어야 한다. 나는 과거 자동차 회사에 근무할 때 완성차 공장만 지으면 자동차가 나오는 걸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이 중에는 후진국의 실력자들도 있었다) 그런데 완성차 공장은 엄청나게 많은 전후방 협력업체와 교통물류 인프라와 사회적 인프라라는 생태계(토양, 햇볕, 물, 바람 등)가 있어야 자랄 수 있는 거목이다. 이런 생태계가 없이 완성차 공장만 덜렁 지으면 사막에 심은 나무 꼴이 된다. 요컨대 기업이 지방 가기를 꺼려하는 이유 중에는 지방의 취약한 교육, 보건복지, 문화 인프라도 있지만, 그 못지않게, 아니 더 결정적인 것은 기업 활동 관련 인프라라는 얘기다.

 

 

“저 출산 원인은 보육시설 등 육아 인프라 부족에 있다는 게 많은 조사의 공통된 결론이다. 마땅히 맡길 곳 없는 현실이 가장 큰 문제인 것이다. 출산비 지원보다 보육 인프라 구축이 먼저다.” (p137)

 

이 말은 어떤가?

저출산 문제가 그렇게 간단한 문제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상식을 가진 사람의 눈에는 저출산 문제의 해법이 결코 간단치가 않다. 그 핵심에는 일자리와 소득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좋은 일자리가 있는 사람은 고용불안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겠지만, 불안할 고용조차 없는 사람이 너무나 많고, 구조적으로 안정될 수 없는 고용도 너무나 많다. 국가와 사회가 세금으로 일자리와 소득을 책임지기에는 우리의 세금부담 의지는 너무나 낮고, 공공부문에 대한 이유 있는 불신은 높고, 개개인의 기대 소득(생활) 수준은 너무나 높다. 이는 제대로 된 직업, 직장을 가진 사람의 처우가 우리의 생산력 수준에 비해 너무나 높기 때문이다.

 

지방의 군들을 살펴보면 교사 1인당 학생 수, 공보육시설, 찾아가는 보건의료서비스 등에서 서울 보다 월등한 곳이 한 두 곳이 아니다. 공무원 1인당 주민수가 대도시의 10배가 이상인 곳도 적지 않다. 주민 1인당 예산도 서울의 10배가 넘는 곳도 수두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입 인구가 유출 인구보다 많지 않고, 출생 아동은 서울보다야 좀 낫지만 월등한 수준은 아니다.

 

이 곳에서는 공무원을 위해서 군이 존재하는지, 군을 위해서 공무원이 존재하는지 알 수 없는 곳도 적지 않다. (그런데 지방 선거 때 후보자가 이런 문제의식을 피력하면 큰일 난다. 주민 40~50명당 공무원 1명 인 곳에서 그 누가 공무원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복지국가론자들의 논리는 아마 이들이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이 시대 한국의 주된 대립물을 개발국가로 설정하다 보니 한국 사회의 뿌리깊은 불의(불공정, 불공평) 문제를 간과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적 통제, 감시, 견제의 사각지대에 놓인 지방정부의 심각한 부조리에 대한 별 문제의식 없이, 지방정부의 권한을 강화하고, 지방재정을 확충하자고 한다. 또한 지방정부의 인력 사업 구조조정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이, 사회복지 공무원이 모자라서 사회복지의 질이 낮다면서 관련 공무원을 더 뽑자고 한다. 요컨대 토건업자와 개발지상주의자에 대한 문제의식은 있으나, 사익집단화된 공공(정치, 행정, 사법, 언론 등)과 사회적 강자들의 지대(자릿세) 추구 경향에 대한 문제의식은 취약한 것이다.

 

21세기는 인구가 줄어드는 시기다. 주택, 보육, 충실한 공교육을 만들어 아이를 많이 낳게 하고, 보건의료와 생활체육으로 사람들을 건강하게 하고, 좋은 교육과 여가 생활을 통해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인재를 양성해야 한국 경제는 활력을 잃지 않는다.(p 53)

 

이 말은 어떤가?

건강하고 잘 교육된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인재를 많이 공급하면 한국 경제가 활력을 잃지 않는다는 얘기는 맞는가? 그런데 좋은 인재 공급량이 아무리 많아도 노동수요가 없거나, 창업 여건이나 중소기업 여건이 열악하면 소용없다. 한국의 청장년실업은 그들이 건강하지 않고, 잘 교육되지 않았고, 창의적이지 않아서 생긴 문제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노동의 공급 측면에서 문제를 삼는 것은 전형적인 유럽적(스웨덴적) 문제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노동의 수요가 적은 것은 엄청나게 많은 문제들이 얽히고 설켜 있다. 기업과 기득권 노동의 담합과 사회적 강자들의 지대 추구 경향, 정부의 강자 편향(예산 분배=복지 인프라 부족)과 불공정거래에 대한 허술한 규제감독 등도 빼놓을 수 없는 원인 일 것이다.

 

“21세기 한국에 복지국가 건설은 필연의 임무이자 당면의 과제이다. 양극화와 저출산.고령화는 복지의 결핍이 만든 질병이다”.(머리말)

 

이 말은 어떤가?

사실 나는 이런 인식이 이 책 저자들을 포함한 복지국가론자들의 오류의 결정판이라고 생각한다. 단적으로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자신들의 생각을 집약한 카달로그의 “복지국가의 Vision"의 핵심 주장도 비슷하다.

 

“우리는 (2007년 7월) 출범당시부터 한국의 사회양극화에 주목하였으며, 그 근본적 원인으로 신자유주의를 비판하였습니다. 1997년의 외환위기 이후 뿌리 내린 신자유주의는 국민의 정부 이후 우리 경제사회에 구조화 되었으며 현재 더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양극화 성장체제는 중산층을 포함한 대부분 국민의 삶에서 5대 불안을 지속적으로 야기하고 있습니다. 일자리 불안, 보육.교육 불안, 주거 불안, 노후 불안, 건강.의료 불안이 그것입니다”

 

요컨대 복지국가론자들이 생각하는 주적은 신자유주의(복지국가소사이어티)와 개발독재 내지 개발국가이다. 이것을 한데 묶으면 ‘신자유주의 토건국가’ 형용 모순적 개념이 나온다. 과거 노대통령이 우스개로 말한 ‘좌파 신자유주의’에 대해서 입게 거품을 물고 비판하던 사람들이, 우스개가 아니라 진지하게 말한 ‘신자유주의 토건국가’라는 형용 모순적 언어에 대해서는 왜 거품을 물지 않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복지국가론자들의 거의 모든 진단은 신자유주의로, 거의 모든 해법은 (보편적, 적극적) 복지로 통한다. 물론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핵심 가치에는 정의가 들어가 있고, 4대 원칙에는 공정한 경제가 들어가 있다. 2007년에 낸 <복지국가혁명>에는 ‘기업지배구조 투명화, 혁신적 중소기업, 생산적 금융지원, 협력적 노사관계, 연대적 조세제도’가 공정한 경제를 떠받치는 주요 정책방향으로 되어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낸 <역동적 복지국가의 논리와 전략>에서는 정치사회전략은 추가 되었지만 공정한 경제 영역이 완전히 빠져있다. 보편적 복지와 그 재원조달 방안(조세 재정개혁)이 과거나 지금이나 핵심 중의 핵심이다. 사실 복지국가론자들의 심리나 정서로 보면 독일식 조정시장경제(은행중심 금융시스템, 사회적 조합주의)와 장하준류의 재벌 존중(스웨덴 발렌베레 가문처럼 삼성을 만들기) 등이 올라가면 맞지만, 현실과 너무 심하게 충돌하다 보니 빼 버리지 않았나 생각된다. 물론 나의 이런 판단이 틀릴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의 목차 체계는 이들의 관심 영역과 우선순위를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다. (이 책의 후속편은 <복지국가 지방정부의 역할과 전략>이다. 경제금융산업 정책이 아니다.)

 

푸석푸석한 토대=역사적 감각의 오류

내가 복지국가론자들의 주장을 절반은 취하고 절반을 버리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들의 사회, 역사 인식, 즉 한국 사회가 어디쯤 있고,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거시적 통찰이 틀려먹었기 때문이다. 나는 ‘1997년의 외환위기 이후 뿌리 내린 신자유주의’에서 문제를 찾는 것은 너무나 단견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의 뼈대와 속살을 샅샅이 뜯어보면 한국은 취약한 공공(정치, 행정, 사법, 언론 등)과 강력한 진보, 보수 사익집단이 담합 아닌 담합을 하면서 오른쪽으로 확 굽은 사회이자, 왼쪽으로 꽤 굽은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단지 1997년부터 생겨난 모순.부조리가 아니다. 1987년부터도 아니다. 봉건과 식민, 그리고 1948, 1961년을 계기로 형성된 모순.부조리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은 채, 1987년, 1997년의 모순.부조리가 덮씌워졌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진보와 보수 이익집단이 단결력이나 불공정거래나 시장을 통해서 선진국 같으면 전후방 가치생산 사슬과 3비층이 누릴 잉여를 과도하게 빨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선진국에서는 (세계화, 지식정보화, 자유화로 인해 생긴) 너무 풀어놓은 시장이라는, 이른바 신자유주의 폭력 하나가 민초를 괴롭힌다면, 한국은 이와 더불어 너무 통하지 않는 시장(상식)이라는 폭력이 하나 더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3비층은 거열의 형벌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시장, 자유, 자율책임, 경쟁력의 이름으로 오른쪽으로 잡아당기고, (공공부문 정년 연장시도처럼) 공공, 복지, 안정의 이름으로 왼쪽으로 당기고 있기 때문이다. 양극화, 저출산 고령화는 이 거열의 형벌의 결과이다. 이런 형벌을 받게 된 것은 진보와 보수 이익은 강하고 몰염치한데 반해, 공공은 약하고, 때론 사악하기 때문이다.

 

정말 수많은 원인이 얽히고설킨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제를 취약한 복지=토건위주 재정할당=낮은 조세부담률과 신자유주의에서 주로 찾는 것은 너무나 단견이다. 이는 구부러진 동전의 볼록한 면은 그대로 두고, 오목한 면을 피려는 시도이자, 오른쪽 반신(우파적 개혁)은 묶어두고 왼쪽 반신(좌파적 개혁)으로만 뭔가를 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얘기는 하도 많이 했으니 오늘은 이쯤 하자)

 

복지가 아니라 정의가 먼저다.

한국 사회 문제의 핵심적인 부분은 복지의 결핍이 아니라 정의의 결핍으로 인한 것이다. 정의는 경제정의,금융정의, 복지정의, 재정정의, 교육정의, 정치정의 등 다양하다. 정의는 원칙과 상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쨌든 정의의 핵심은 게임규칙이다. 상벌체계다. 그 핵심 지주는 공정성(기회, 조건, 출발선의 평등)과 공평성(결과의 합리적 불평등)이다. 누릴 사람이 누리고, 배려 받을 사람이 배려 받는 것이다. 기여, 부담, 의무와 권리,이익,혜택의 균형이다. 이 균형점은 공정성과 공평성이 그리 왜곡되지 않는 선진국과 한국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어쨌든 공공이 약하면 좌.우 이익집단들이 이 게임규칙을 왜곡시키려 한다. 진보 깃발을 든 이익집단이든 보수 깃발을 든 이익집단이든 화전민적 심성으로 자기 쪽으로 경제적 잉여를 많이 끌어오려고 할 뿐, 공동체와 후세대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얘기다.

 

현재 한국의 진보와 보수의 해법은 상류에서 생산되는 엄청난 오물 생산 공장(일자리를 줄이고, 복지수요를 늘리고, 유능한 개인과 집단은 정치경제적 지대를 추구하게 하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억울함을 만연케 하는 시스템)은 그대로 방치하면서 단지 하류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격이라고 할 수 있다. 진보는 복지로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보수는 더 높은 성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내 얘기는 하류의 문제를 손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상류의 문제 해결에 선차성을 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복지가 아니라 정의가 먼저라는 얘기다. 더 큰 복지를 위해서는 더 큰 정의, 더 강력한 정의를 세워야 한다는 얘기다. 더 따뜻한 사회를 위해서는 더 차가운 정의를 세워야 한다는 얘기다.

 

요컨대 한국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주된 대립물은 신자유주의도 개발국가도 아니다. 그것은 불공정과 불공평을 지렛대로 고도성장한 경제적 토대위에 서 있는, 그 나름대로의 빛나는 성공신화를 가지고 있는 제반 기득권집단이다. 한마디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시장과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국가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인식을 가지면 좌파적 개혁과 우파적 개혁을 결합 병진에서 한국의 미래를 찾을 수 밖에 없다. 구부러진 동전의 볼록한 면을 누르면서 오목한 면을 피는 노선을 진보개혁의 집권전략으로 채택하게 된다. 스웨덴 노총(LO)이 위대한 것은 힘센 노조의 밥그릇으로만 잉여를 더 많이 퍼 담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연대(임금)의 이름으로 노동계급 내에서 自助적으로 불평등과 불공평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진보 이익집단들이 스웨덴 노총만 같아도, 아니 그 발치에만 가도 진보 이익집단은 진보와 개혁의 주력부대가 될 수 있을 텐데...... 그렇지 않으면 집권을 꿈꾸는 정치사회세력은 좌우 양쪽에서 두 개의 전선을 운영해야한다.

 

노무현은 원칙과 상식의 회복, 반칙 특권 타파라는 구호에서 보듯이 한국 사회의 핵심 문제를 제대로 파악했다. 그러나 각론에 가서 문제의 핵심을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찾으면서 대통령 아니면 통제가 안 되는 관료 마피아 집단들의 국정 농단을 방치한 측면이 있다. 또한 원칙과 상식의 왜곡의 실상과 그 깊은 뿌리, 즉 미처 갚지 못한 엄청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외상값을 보지 못한 측면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라는 단어를 빼 놓으면 문장 구성이 안되는 진보(좌파)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 약진하는 역동적 복지국가론자들 보다는 훨씬 역사적 감각이 정확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래 봐야  몽땅 좌익맹동주의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지만...... 복기해 보면 2003~2007년 기간에는 범진보개혁 세력 전체가 주객관적 조건을 면밀히 고려하지 않고 기분대로 내질러대다가 망한 좌익맹동주의자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문제는 기득권에 대한 태도다.

사상이념이나 정책의 총론은 멋들어진 말로 서술되어 있기에 대체로 흠잡을 데 없이 좋은 얘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 실체를 알려면 자기들이 가진 부당한 기득권에 대한 태도를 보면 된다. 민주당의 뉴민주당 플랜이 왜 감흥이 없는가? (나는 역동적 복지국가파의 주장 보다 훨씬 한국 현실에 맞고, 정치적 성장가능성도 높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정도로 집권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은 진정성이 없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공천 과정이나 경선 과정에 민주당의 영혼이나 진정성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는 복지국가론도 마찬가지다. 복지국가론은 공공부문 종사자들이 좋아할만한 이념이 분명하다. 노동조합이라도 갖고 있는 대기업 생산직 노동도 좋아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복지국가론의 본색이랄까, 실천적 귀결은 이들 핵심 지지층의 부당한 기득권에 대한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검지로 가리키며 삿대질을 할 때, 엄지는 하늘을, 중지에서 약지까지 손가락 세 개는 자기 자신을 가리킨다. 나는 한국 사회의 모순 부조리도 정확히 그렇다고 생각한다. 신자유주의가 원흉이라고? 일정부분 맞다. 하지만 그렇게 삿대질 하는 자기 자신도 못지않게 심각한 원흉이다. 자기 자신이 사회적 강자가 맞다면 정치, 경제적 지대를 엄청 깔고 앉아 있기 때문이다. 좌파가 문제의 원흉이라고? 그 역시 일정 부분은 맞다. 하지만 그렇게 삿대질하는 자기 자신도 그렇다. 모순.부조리의 원흉으로 상대방만 지적한다면 결코 제대로 된 해법을 낼 수 없을 것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