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는 루나의 별님이 스켈렙에 올리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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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남패권과 호남차별
 
박상훈씨의 글에 보니까 이런 대목이 있군요.

[지역주의가 위로부터 조직되고 동원되었다는 증거를 확인하기에 가장 용이한 사례는 선거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선거는 제도화된 정치참여가 제한되어 있던 권위주의체제에서 정치적 동원이 가장 급격하게 이루어지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 시기 반호남 지역주의가 최초로 동원된 사례는 1971년 대통령 선거였지만 그 이전 1960년대에도 선거에 동원된 지역성의 사례가 있었다.

1960년대 선거에 동원된 지역성은 호남이 아니라 영남이었다. 1970년대 이전 영남의 지역성이 정치적으로 동원된 이유는 영남이 전체 인구의 30%를 상회하는 인구구성을 갖고 있다는 점과 박정희후보가 영남출신이었다는 사실에 있었다. 예컨대 1963년의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박정희 후보는, 영남이외의 지역에서 ‘구악일소’ 등 개혁주의를 강조한 반면 영남 지역에서는 영남의 지역성에 호소하는 차별화전략을 구사하였다. 1967년 선거의 경우 역시 전체적으로 경제발전의 성과를 부각시키면서도 영남지역의 선거유세에서는 계속해서 영남의 지역성을 동원하고자 하였다. 영남의 지역성에 호소하는 선거전략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1963년 대선의 경우 박정희 후보는 전국 평균 51%의 지지를 획득했지만 경북과 경남에서는 각각 61%와 67%를 획득했다. 1967년 대선의 경우는 전국 평균득표 55%에 비해 경북과 경남에서는 71%와 75%를 획득하였다]

박정희의 경우 윤보선 상대로 할때부터 영남내에서는 이미 지역성에 입각한 선거를 해왔고 영남에서는 상당한 효과를 얻어왔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부터 70프로이상의 지지를 경남 경북에서 획득했구요. 즉 이것은 호남과 무관하게 영남단독으로 지역주의가 발전해 왔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 성격은 패권적 성격이 점점 강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결국 영남의 지역주의는 그 시초부터가 패권적 지역주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박상훈씨도 말하지만 71년 선거가 완벽한 영호남간의 대립적 지역주의 선거라고 하기는 머한 면이 있지만 확실한 것은 영남에서의 반호남주의가 처음으로 나타났다는 점이 명백하고 나아가 영남은 몰표가 63년 67년 71년 선거를 거치면서 계속 유지되어 왔다는 점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박상훈씨도 동의하듯이 유신집권기에 반호남주의와 영남몰표를 위한 권위주의세력의 프로퍼간다가 아주 전략적으로 이루어지게 되구요. 동시에 반호남주의가 반공주의가 결합하게 됩니다. 이른바 호남=김대중=빨갱이론이죠. 그런데 김상웅씨의 김대중편전에서 보듯 김대중의 경우는 전혀 빨갱이와는 무관하다는 겁니다. 사실 대구폭동사건이나 박정희의 형의 경우를 보듯 오히려 빨갱이 발호는 영호남막론하고 해방공간에서는 모두 발호했음에도 호남=빨갱이 이 등식이 강화되는 시기가 바로 박정희시기였죠.

그에 비해 호남의 지역주의 투표성향은 적어도 87년 대선이전까지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진명행씨의 포스트의 결과에도 아주 명백히 드러나는 것이죠. 총선과 대선모두에서 오히려 호남은 박정희와 공화당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지지를 했으니깐요. 그런데 이것이 85년 총선을 기점으로 바뀌게 되고 87년 대선을 기점으로 분출되게 되는 것이고 저는 적어도 이러한 호남의 지역주의는 저항적 지역주의로 당연하다고 봅니다.

암튼 영남의 지역주의는 호남과 무관하게 자신의 패권을 강화하게 위해 63년부터 조금씩 발전해오다가 유신시기를 거치면서 완벽하게 체계화되고 나아가 그 이후 영남정권이 대대적으로 나오면서 점점 강화되어 온것이라는 겁니다. 그럼에도 자꾸 영호남 지역주의니 영호남 지역감정이니 이런 것은 참으로 문제가 있다고 봐요. 영남패권의 문제와 호남차별의 문제라는 틀에서 따로 떼어서 보아야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것이죠.

영남패권은 사실 호남차별뿐만 아니라 충청차별 경기차별을 같이 가져오는 것임에도 그것을 숨기려는 의도가 바로 지역주의문제라는 틀로 호도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죠.

반면 호남차별의 문제는 이승만정권시기 박정희정권시기(이후 전두환집권시절 나아가 김영삼의 3당합당등은 연결됨)로 구별되어 조금씩 다른관점에서 접근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봐여. 이승만집권시기의 호남차별의 경우도 상당히 있었던 것 같더군요. 보니까 이승만 집권시기에 호남은 국가인사에서 엄청 차별을 받았다는 것이 통계에 잡히고 있어요. 그러던 것이 장면집권시절 호남이 상당히 대접을 받습니다.(이것은 장면이 김대중의 정치적 스승이었다는 점도 어느정도 연관이 있는 듯 합니다.) 그러다가 박정희집권시절 호남이 줄어든 만큼 영남이 올라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 박정희 집권시절과 77년 김진국의 연구결과를 소개하고 있는데 여기서도 사회적 거리감의 문제와 그 사회적 거리감을 실제로 증폭시킨 실체의 문제등을 모두 따져봐야 해요. 아무튼 77년 김진국의 연구등에서 보이지만 아무튼 호남차별과 관련된 사회적 거리감은 매우 심각한 수준의 것이라는 것이죠. 물론 이 연구에서 영남의 호남에 대한 사회적 거리감보다 충청(서울)의 호남에 대한 사회적 거리감이 더 크다고 하지만 그 사회적 거리감을 언론이나 정권차원에서 증폭시킨것은 영남정권이라는 사실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죠.  즉 하층민간의 부대낌은 호남과 충청(서울)이지만 그중 유독 호남이 타겟이 된 것은 영남정권의 작품이라는 것이죠. 나아가 80년대 연구결과를 보면 영남의 호남에 대한 사회적 거리감이 더 크게 나와요.

즉 영남패권의 문제와 호남차별의 문제가 완전히 겹치는 것이 아니고 서로 겹치는 면도 있지만 그 본질에서는 차이가 난다는 점이에요. 영남패권은 영남자체에서 영남헤게모니를 위해 박정희 이후 나온 것이고 그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차쯤 호남과 영남간의 대립구도를 만들어왔고 그 과정에서 호남차별을 심화시킨 것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지역주의니 지역감정이니 이런 식의 접근은 본질은 영남패권이 그 정당성이 없음에도 그 정당성이 없다는 점에 대한 문제제기를 탈색시킨다는 점이에요. 나아가 호남차별의 문제는 영남패권과 부분적으로 겹치기는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디아스포라라는 문제였다는 점이죠. 물론 호남뿐만 아니라 충청도 부분적으로 디아스포라가 부분적으로 일어났음에도 유독 호남만이 문제시되었던 것은 영남정권의 노골적인 반호남주의에 입각한 프로퍼간다가 있었던 것이구요.

아무튼 영남패권이 발전되어가는 것과 호남차별의 진행은 양자가 즉자적인 대립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서로 다른 원인에서 나왔지만 차츰 진행되어가는 과정이 영남패권이 호남차별을 강화한 것은 명백하다는 점이고 영남패권은 63년이후 71년기점으로 상당히 그 실체를 이미 드러내기 시작했지만 호남차별은 이미 이승만집권시기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진행되어오다 디아스포라를 거치면서 이것이 점점 심해지다가 80년 광주민주화항쟁을 거치면서 그 실체가 형성되어 85년 총선과 87년 대선에서 폭발되어왔던 거죠. 87년 대선때 호남차별론에 기인한 저항적 지역주의론이 폭발하고 동시에 영남은 김영삼과 노태우를 구심점으로 영남패권이 강화되는 시기였다는 점(왜냐하면 경남부산이 김대중보다 노태우를 더 많이 찍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함)에서 이때 비로서 지역주의선거라는 형태로 분출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물론 그 뒤 영남은 김영삼과 노태우가 합해지면서 이런 구도가 더 강화되었던 것이죠.

제가 여기 나오는 논의중에서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것이 영남패권과 관련하여 부산지역등이 그 당시 지역적 특수성에 입각해서 부분적으로 타당성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남출신이 대부분 재벌오너가 되고 또 영남출신이 그 당시 금융자원의 50프로이상을 독점한 것과는 별개라는 점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앞의 것은 부분적은 정당성이 있지만 뒤의 것은 전혀 정당성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죠. 뒤의 것은 특정지역출신이 영남패권적 권력을 이용해 타 지역출신에게 가야할 몫을 심하게 말하면 도적질한 경우에 해당되기 때문이져. 그리고 부산조차도 어느 선부터는 과도하게 특정지역만 발전된 문제가 있다는 점 역시 지적되어야 할 것입니다.(솔직히 대구 경북은 그런 타당성조차도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이 많죠.)
 
2. 민주당분당과 노무현

제가 가끔 김대호씨의 공정-공평잣대가 왜 영남패권문제에는 전혀 적용되지 못할까 하는 점에 대해 상당히 의문인 것도 이런 점 때문이죠. 솔직히 거대노조의 과도한 이익독점을 문제삼는 정도라면 당연히 영남이 가져간 몫이 정당한가에 대해도 물어야 하는 것은 당연함에도 그 부분에는 철저히 입을 다물고 있다는 점은 참으로 아해하기 힘든 부분이죠. 그리고 민주당분당의 문제도 사실은 영남패권이 보수영역뿐만 아니라 진보영역에도 그 패권성을 확대하는 과정이라고 봅니다.(이 부분은 김대호씨가 쓴 참여정부평가의 종착역의 댓글에서도 이런 취지로 적었죠.)

민주당분당 이후 영남비주류가 한 행태를 보면 잘 알 수 있다는 거죠. 서프에서의 김근태-정동영-천정배등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과 유시민찬양 그리고 통합과정에서 이들 통합파와 영남파간의 대립부분등이 중요한 팩트가 되겠죠. 즉 대북특검으로 김대중과 동교동을 죽였고 그 이후 민주당분당으로 구민주당세력을 죽인후 탄핵로또 이후 정동영까지 죽이려했던 서프와 유시민 나아가 노무현의 행태는 가히 영남패권의 잔인성을 여실없이 보여주었죠. 참고로 아마 자기가 대통령후보로 나와 당선되게 만들어준 정당을 당선이후 분열시킨 사례는 아마 세계정치사에는 없는 것일 겁니다. 이것은 영남패권이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봐요.(물론 천신정은 따른 목적이었겠지만)
 
그리고 그 당시 언론과 민노당도 거기에 얼씨구나 하면서 아주 가관도 아니었죠. 그런데 이것을 가능하게 한 중요한 원동력이 언론이었고 그당시 좌파언론은 철저하게 노무현세력의 영향권하에서 움직였다는 것도 상당히 중요한 팩트입니다. 이것은 조선일보가 그 동안 한나라당에게 보이던 행태와 매우 유사하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심장하죠. 바로 노무현집권기를 거치면서 안티조선운동이 쇠퇴하게 된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저는 봅니다. 노무현과 노무현언론이 한 행태가 바로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이 한 행태가 똑같아져 갔기 때문이죠.
 
아무튼 이 이후 안티조선운동은 그 정당성을 많이 상실하게 되어 버리죠. 그리고 노무현의 진보영역에서의 영남패권화는 부산경남이 동의해주지 않으므로 해서 철저히 실패하게 되구요. 그러다 다시 노무현자살사건이후 다시 부산경남의 인심이 친노무현이 되어가면서 부산영남당이 이제 탄생할지도 모르겠네요. 얼마전에 뉴스에 보니까 친노부산영남당을 만든다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더군요. 암튼 지켜 볼 일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댓글영역에서 추가적으로 적기로 하고 이정도로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P.S
 
암튼 여기까지가 영남패권과 호남차별 그리고 민주당분당과 노무현에 대한 저의 몇가지 생각이었습니다.
나츠메님의 댓글에 대한 반론으로 댓글로 갑자기 쓴 글이라 자꾸 수정하게 되는군요. 나아가 문장이나 문맥도 조금 거칠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 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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