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afider님의 분석은 너무 나이브한 분석이라고 보여진다. 

 

단순히 민주당과의 정서적 유대나 연결고리라기 보다는 정치적으로 어떻게 훈련, 트레이닝을 받았는가의 관점에서 접근해서 생각할 수 있는 문제 아닐까? 정치적으로 생사고락을 같이한 사람들은 그런 과정 속에서 리더의 정치적 신념과 자신의 신념을 일치시키는 과정을 거치고,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단련되고 훈련된---경영학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로 alignment 되었다는 표현이 가능할 것 같다. 명박아(MBa) 중이신 bonafider님은 이 단어의 뉘앙스를 직관적으로 이해하실 것으로 믿는다.---반면에,

 

고난을 같이 하지 않고, 과실만 따먹은 사람들은 과실의 달콤한 맛은 알았지만 정치적 지향과 신념을 어떻게 구체화하고 구현하는지에 대해서도 제대로 교육받지도 훈련받지도 단련되지도 않은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 정치적 신념이나 지향자체도 권력에 취해서 왜곡되었을 가능성도 크다고 생각한다.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 어떤 정치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관념적이고 피상적인 정치적 이상을 가지고 현실에 적용할 때는 정치공학적 접근만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치현실를 부정하고 그런 현실정치를 더러운 것, 바람직하지 않은 것, 옳지 못한것, 정치공학적인 것으로 폄하하고 자신들의 도덕적 우월감과 정당성을 스스로에게 부여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이 한국의 민주주의와  한국정치의 진보에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이것은 묘익천님이 말한 호남출신 자영업자의 때묻은 100만원이, 호남출신 택시기사, 때밀이의 피눈물 젖은 1,2만원이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진보에 기여한 것과 같고, 시닉스님이 말한 것처럼 높은 정치적 이상을 떠들고 고상한 지향을 입으로 떠드는 무리들보다 소중한 한표를 성실하게 행사하는 한사람 한사람의 소시민들이 우리 민주주의 진보에 더 큰 기여를 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친노를 지지하는 몇몇 인사들과 같이 정치에 혐오감을 느끼고 지역주의를 비판하며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고 기권했다고 떠벌리거나, 반민주적인 인사들에게 투표했음을 자랑하고, 친노정치인들을 통해 또는 문국현을 통해 처음으로 정치에 관심을 가졌다는 부끄러운 고백을 자랑스럽게 하는 무개념 인사들보다, 약간은 보수적인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당신 스스로 어떤 일보다 투표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한표를 성실하게 행사하셨던,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투표를 하도록 종용하고, 게으른 자식들을 깨워서라도 새벽같이 투표장으로 보냈던 내 아버지가 입만 되바라져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이들보다 우리 정치와 민주주의의 진보에 더 큰 기여를 하셨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