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787    "도덕성은 증명할 수 있다. 우리를 창조하고 우리가 의존해 있는, 전지하고 전능하고 선 자체인 최고 존재의 관념에

 대해, 그리고 우리에게 명석한 오성이자 합리적 존재로서 우리 자신의 관념에 대해 충분히 고찰하고 연구를 계속하면,

도덕성을 증명 가능한 과학들 가운데 두어도 될만한 기초를 찾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분명히 수학이 자명한

명제들로부터 논쟁의 여지없이 명백한 필연적 결론을 이끌어 내듯, 스스로 다른 과학 분야에 적용하는 냉정한 태도로

대처하면 옳고 그름의 척도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p615 "Morality capable of demonstration. The idea of a Supreme Being, infinite in power, goodness, and
wisdom, whose workmanship we are, and on whom we depend; and the idea of ourselves, as
understanding, rational beings, being such as are clear in us, would, I suppose, if duly considered and
pursued, afford such foundations of our duty and rules of action as might place morality among the
sciences capable of demonstration: wherein I doubt not, but from selfevident propositions, by necessary
consequences, as incontestable as those in mathematics, the measures of right and wrong might be made
out, to any one that will apply himself with the same indifference and attention to the one as he does to
the other of these sciences.

 

*번역서 787, 788 쪽은 전체적으로 번역이 잘못되어 있다. 읽어봐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어 찰학은 이해하기 어려운

건가 보다 하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위의 글과 이어지는 글은 러셀이 로크의 『인간지성론』4권 3장 18절을 인용한 것이다.

이 글은 한문장이다. 길기도 하고 문장 구조를 한눈에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번역문은 두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두번째

문장은 완전히 틀렸다.

 

* understanding : 오성(悟性) 이라고 많이 번역하는데 아마 일본 사람의 번역어일 것이다. 일상어로 전혀 쓰이지 않는

이 따위 번역어는 없애버려야 한다. 참고로 중국어 번역에선 이해력(理解力)으로 되어 있다.

http://www.jungam.or.kr/bbs/topic/%EB%B2%84%ED%8A%B8%EB%9E%80%EB%93%9C-%EB%9F%AC%EC%85%80%EC%9D%98-%EC%84%9C%EC%96%91-%EC%B2%A0%ED%95%99%EC%82%AC-%EC%A4%91%EA%B5%AD%EC%96%B4%ED%8C%90

 

제안번역 : 우리를 창조하고, 주관하며 전지전능하고 무한히 선하신 지고의 존재인 신에 대한 관념과 이해력을 갖춘 합리적

존재로서 우리 자신에 대한 관념은, 이런 관념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 명백하므로, 이 관념들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고

알아내려 한다면, 도덕성을 증명가능한 과학들 가운데 두어도 될만한 행동규칙과 의무에 대한 토대를 제공할 걸로 나는

생각한다. 이 점에 의구심은 없지만 자명한 명제로부터 수학의 논리적 결론만큼이나 의심의 여지가 없는 필연적인 논리적

결론으로 옳고 그름에 대한 척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이들 과학의 다른 것들에 대하는 냉정하고 주의 깊은

태도로 사람을 대하면 그 척도를 어느 누구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p787   다른 양태들의 관계도 수와 외연의 양태와 마찬가지로 정말로 지각될 수도 있다. 만약 다른 양태들의 일치나 불일치를

검토하거나 추구할 정당한 방법을 생각해 낸다면, 그 양태들도 마찬가지로 증명 가능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p615  The relation of other modes may certainly be perceived, as well as those of number and

extension: and I cannot see why they should not also be capable of demonstration, if due methods

were thought on to examine or pursue their agreement or disagreement.

 

* extension :  외연(外延) 이 아니고 연장(延長)이다. 외연은 논리학 용어로 일정한 개념에 적용되는 사물의 전체 범위를

말한다. 여기서는 기하학에서 다루는 선, 면, 다면체 등의 연장성을 말한다.

유클리드 『원론』은 기하뿐만 아니라 수론도 다루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유클리드의 공리 방법에 엄청 감동을

받아 확실성을 추구하는 데에 전범으로 삼고 있다. 수와 연장의 양태들이라 표현한 것은 유클리드의 『원론』을 염두에

둔 것이다.

 

* mode : 양태(樣態)인데 로크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Modes are defined complex ideas which, however compounded, contain not in them the supposition

of subsisting by themselves, but are considered as dependencies on or affection of substances; such as

are ideas signified by the words triangle, gratitude, muder, etc.

스스로 존재하지 못하고 실체에 의존하는 것, 실체의 성질을 말한다.

 

* 첫번째 문장은 방금 설명한 것들을 옮긴이 주로 달아주는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현재의 번역문만 봐서는 뜻을 이해할

사람이 별로 없다. 더군다나 오역까지 있으니 설상가상이다.

 

 

 제안번역 :  수와 연장의 양태를 포함해 다른 양태들의 관계도 분명히 지각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양태들의 일치나

불일치를 검토하거나 알아내려고 하는 데 정당한 방법을 생각해 낸다면 이들 또한 증명 못할 이유가 없다.

 

 

 

p787   '사유재산이 없는 곳에 정의도 없다'는 명제는 에우클레이데스 체계 안의 모든 증명만큼이나 확실하다.

사유재산이라는 관념은 무엇이든 소유할 권리이고, '불의'라 명명된 관념은 사유재산권 침범이나 침해이기

때문에, 이 관념들의 의미가 확립되고 명명되었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나는 이 명제가 참이라는 사실을

'삼각형의 세 각의 합은 두 직각의 합과 같다는 진술만큼 확실하게 알 수 있다.

 

p615, 616   'Where there is no property, there is no injustice,' is a proposition as certain as any

demonstration in Euclid: for the idea of property being a right to anything, and the idea to which

the name 'injustice' is given being the invasion or violation of that right, it is evident that these

ideas being thus established, and these names annexed to them, I can as certainly know this

proposition to be true as that a triangle has three angles equal to two right ones.

 

* injustice : '정의'로 정반대로 번역했다. 실수다. 그러나 어처구니 없는 실수다. 이로 인해 이어지는 말들이 아귀가

안 맞게 된다. 이런건 편집자가 다 잡아내야 한다. 오탈자만 봐선 안된다.

 

* for 가 걸리는 것이 annexed to them 까지로 봐야 논리가 자연스럽다,

 

제안번역 : '사유재산이 없는 곳엔 불의도 없다' 는 명제는 유클리드의 모든 증명만큼이나 확실한 명제다. 왜냐하면 재산이라는

관념은 소유자가 자신의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이고 '불의'라고 이름붙인 관념은 그러한 권리에 대한 침해나

침범이므로, 또한 이러한 관념들이 확립되었고 그 관념들에 이 이름들이 붙었다는 것은 분명하므로, 나는 이 명제가

참이라는 것을 삼각형의 세 각의 합이 두 직각의 합과 같다는 명제만큼 확실하게 알 수 있다.

 

 

 

p 787   게다가 또 '어떤 정부도 절대적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다.' 일정한 규칙이나 법률에 근거해 사회를 수립한 정부의

관념은 규칙이나 법을 따르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절대적 자유의 관념은 어느 누구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할

자유이다. 나는 이러한 명제가 수학의 어떤 명제만큼이나 참이라고 확신한다."

 

p616 Again: 'No government allows absolute liberty:' the idea of government being the
establishment of society upon certain rules or laws, which require conformity to them; and the idea of

absolute liberty being for any one to do whatever he pleases: I am as capable of being certain of the
truth of this proposition as of any in the mathematics." *

 

* again : 왜 엉뚱하게 '게다가' 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제안번역 : 다른 예를 들어보자. '어떤 정부도 절대적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다.' 정부의 관념은 어떤 규칙이나 법률에 근거해

사회를 확립함이고 규칙 법률을 따르라고 요구한다. 절대적 자유라는 관념은 누구든 무엇이나 하고 싶은대로 하는걸

말한다. 따라서 나는 이 명제가 수학의 모든 명제만큼이나 참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다.

 

 

p 788   우선 인간이 오로지 쾌락을 욕구한다는 주장은 말 앞에 마차를 두는 격이다. 내가 무엇을 욕구하든지 간에 나는

그것을 얻을 때 쾌락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대개 쾌락이 욕구에서 기인하는 것이지 욕구가 쾌락에서 기인하지 않는다.

피학성 변태 성욕자처럼 고통을 욕구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한 경우에도 욕구의 충족에서 오는 쾌락이 있지만, 그

쾌락은 고통과 섞여 있다. 로크 자신의 학설을 보더라도 욕구의 대상이 쾌락 자체가 아닌 까닭은 먼 쾌락보다 가까운 쾌락이

욕구의 대상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로크와 제자들이 시도했듯이 욕구의 심리에서 도덕성을 연역할 수 있다면, 먼 장래의

쾌락을 도외시한다고 비난할 이유도, 사려를 도덕적 의무로 권장할 이유도 없다. 로크의 논증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우리는 오로지 쾌락을 욕구한다. 하지만 사실상 많은 사람은 쾌락 자체가 아니라 까까운 쾌락을 욕구한다. 이것은

많은 사람이 쾌락 자체를 욕구하기 때문에 악하다는 학설과 모순을 일으킨다." 철학자들은 거의 모두 윤리 체계를

세울 때 먼저 거짓 학설을 주장한다. 그리고 그 학설이 거짓임을 입증하는 행동은 악하며, 이는 그 학설이 참이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논증한다.  로크는 이러한 유형에 속한 본보기이다.

 

p616, 617  In the first place, to say that men only desire pleasure is to put the cart before the horse.

Whatever I may happen to desire, I shall feel pleasure in obtaining it; but as a rule the pleasure is

due to the desire, not the desire to the pleasure. It is possible, as happens with masochists, to desire

pain; in that case, there is still pleasure in the gratification of the desire, but it is mixed with its

opposite. Even in Locke's own doctrine, it is not pleasure as such that is desired, since a proximate

pleasure is more desired than a remote one. If morality is to be deduced from the psychology of desire,

as Locke and his disciples attempt to do, there can be no reason for deprecating the discounting of

distant pleasures, or for urging prudence as a moral duty. His argument, in a nutshell, is: "We only

desire pleasure. But, in fact, many men desire, not pleasure as such, but proximate pleasure.
This contradicts our doctrine that they desire pleasure as such, and is therefore wicked." Almost all

philosophers, in their ethical systems, first lay down a false doctrine, and then argue that wickedness

consists in acting in a manner that proves it false, which would be impossible if the doctrine were true.

Of this pattern Locke affords an example.

 

* as such : 여기서 가장 문제되는 구인데 'being exactly what is mentioned or suggested ' , 즉 '앞서 말한것' 이란

뜻으로 봐야 전체 뜻을 잘 이해할 수 있다.

도덕증명가능 앞에 로크의 윤리학설이 나오는 데 그것을 제대로 읽어보면 이 부분의 번역이 어렵지 않다.

다음이 785쪽에 있는 구절이다.

 

"정념을 제어하면 자유가 올바르게 증대한다."

 

위의 인용문들 가운데 마지막 진술은 내세에서 갈릴 상벌에 대한 학설에 의존한 것처럼 보이리라. 신은 특정한 도덕 규칙을

정해 놓았다. 규칙을 지킨 자는 천국에 가고, 어긴 자는 지옥에 간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신중하게 쾌락을 추구하는 자도

덕을 선호할 것이다.

 

* "We only desire pleasure. But, in fact, many men desire, not pleasure as such, but proximate pleasure.
This contradicts our doctrine that they desire pleasure as such, and is therefore wicked."

이 문장 번역은 완전히 틀렸다. 동사 contradict 의 목적절은 as such 까지다.

 

http://moonchaser.tistory.com/63

링크 걸어놓은 블로거가 지적한 오역은 내가 보고 있는 13쇄에 거의 반영이 되었는데

위의 내용은 반영하지 않았다. 번역자가 자신이 뭐가 틀렸는지 아직도 모르는 모양이다.

 

 

제안번역 :  우선 인간이 단지 쾌락을 욕구한다는 주장은 말앞에 마차를 두는 격이다. 내가 뭘 욕구하든지 간에 내가 그것을

얻는 데서 쾌락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대개 쾌락이 욕구에서 기인하지 욕구가 쾌락에서 기인하지 않는다. 피학성 변태

성욕자처럼 고통을 욕구할 수도 있다. 그 경우 고통을 욕구함에도 불구하고 욕구의 충족에서 오는 쾌락이 있다. 하지만

그 쾌락은 고통과 섞여 있다. 인간이 쾌락을 욕구한다는 로크의 학설을 받아들인다 해도 인간이 욕구하는 것은 로크가

말하는 미래의 쾌락이 아니다. 왜냐하면 곧 실현될 쾌락을 미래의 쾌락보다 더 욕구하기 때문이다. 로크와 제자들이

시도했듯이 욕구의 심리에서 도덕성을 연역한다면 미래의 쾌락을 저평가한다고 비난할 이유도, 신중함을 도덕의무로

강요할 이유도 없다. 로크의 논증은 한 마디로 이것이다. " 우리는 단지 쾌락을 욕구한다. 그러나 사실 많은 사람들이

미래의 쾌락이 아니라 곧 실현될 쾌락을 욕구한다. 이것은 사람들이 미래의 쾌락을 욕구한다는 우리의 학설과 모순된다.

따라서 사악하다."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윤리체계를 세울 때 먼저 거짓 학설을 주장한다. 그리고 사악함이란 그게

거짓임을 입증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데 있는데 이는 그 학설이 참이라면 불가능할 거라고 논증한다. 로크는 이런

논증패턴의 본보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