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철환 - 엄마 대신 나를 길러준 우리 고모, 세상에 없는 그분에게 보내는 나의 멜로디


주철환 전 OBS 사장이 관객 800명을 모아놓고 콘서트를 열었다. 직접 작사 작곡한 곡들을 담아 ‘노래는 불러야 노래다’ 라는 제목의 앨범도 냈다. 변신과 도전에 능한 그의 이력을 감안해도 이번 이벤트는 좀 의외다. 도대체 무슨 사연일까.

사람들은 ‘주철환의 인생 5막’이라고 했다. 교사 출신 스타 PD가 방송국을 떠나 이화여대 교수가 된 사연, 여기에 돌연 OBS 사장으로 방송계에 복귀하며 변신을 거듭한 그의 남다른 행보에 ‘가수’라는 타이틀이 더해졌다는 의미다. 그가 직접 노래 10곡을 만들어 콘서트를 열었는데, 800객석이 꽉 찼으니 어지간한 가수 못지않은 이벤트다.

평소 ‘재미있게 살고 의미 있게 죽자’는 좌우명으로 유명한 주철환이니 무대에서 판을 벌였다는 얘기를 들어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이번에 그를 무대로 이끈 건 재미가 아니라 어머니였단다. 아들 노래 듣는 걸 좋아하던 어머니가 최근 세상을 떠나 그분을 위해 무대에 섰다는 얘기. 그런데 여기에 숨은 사연이 하나 더 있다. 주철환이 어머니라고 부르는 사람은 생모가 아니라 그의 고모다.

**** 50년 동안 가슴에서 꺼내지 못한 말, 고마운 우리 엄마

“제가 다섯 살 때 생모가 돌아가셨어요. 저야 워낙 어릴 때니까 기억이 가물가물하죠. 우리가 6남매였는데. 시집간 큰누나를 빼고도 중학생부터 네 살 막내까지 고만고만한 애들이 다섯이었대요. 그 많은 애들을 아버지 혼자 키울 수가 없어서 고모가 조카 한 명을 맡아 기르기로 했는데 그게 바로 저였죠.”

원래 고모는 막내 여동생을 데려가려고 했다. 그런데 막내가 고모네로 입양(?) 가는 날, 기차 앞에서 어찌나 크게 우는지 도무지 데리고 탈 수가 없었다. 결국 옆에서 생글생글 웃고 있던 주철환을 대신 데려갔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개구쟁이 같고 선한 웃음이 그의 운명을 바꾼 순간이었다.

남편과 사별하고 아이 없이 홀로 지내며 서울 돈암동에서 가게를 운영하던 고모는 주철환을 친아들처럼 아꼈다. 학교를 못 다닌 탓에 까막눈이었지만 사람 마음을 읽는 눈은 누구보다 밝고 지혜로운 여자였다. 웃음이 많고 늘 친절해서 주위에 사람이 북적대는 인심 좋은 옛날 아낙이었다.

전쟁 후의 가난한 시절을 여자 혼자 버텨낸 덕일까. 후덕한 마음 씀씀이 뒤에는 단단함도 숨어 있는 분이었다. 강단도 남달라 조카 데리고 혼자 사는 여자라고 얕보는 사람이 있으면 꼬장꼬장하게 맞섰다. 이런 그녀를 주위에서는 ‘또순이’라고 불렀다. 늘 생글거리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일할 때는 누구보다 집중력 뛰어나고 결과물도 좋은 주철환식 외유내강 성격은 바로 그 시절 고모에게 물려받았다.

“남한테 많이 주면서도 신세 지는 건 싫어하던 어머니는 제게도 받은 것 이상으로 늘 돌려주라고 가르쳤어요. 비록 못 배웠지만 셈에 밝고, 억척스레 살면서도 정 많은 분이었죠. 저를 친아들과 다름없이 헌신적으로 사랑해 준 분이기도 하고요.”

주철환은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 중 하나가 고모한테 어머니라고 불러드리지 못한 일”이라고 회상했다. 어릴 때는 엄마 없는 게 창피해 일부러 숨겼고, 철들고 나서는 왠지 쑥스러워 자꾸 미루다 보니 결국 타이밍을 놓쳤단다.

“어릴 때 제일 싫었던 게 환경 조사랑 가정 방문이었거든요. 어머니가 시장에서 장사를 하셨는데 선생님이 어수선한 장터 바닥에 찾아오는 게 어린 마음에 정말 창피했어요. 친구들이 엄마 없다고 놀릴까 봐 조마조마했고요. 큰누나가 우리 집 근처에 살았는데 선생님 오실 때마다 누나네 집에서 빨리 시간 지나가기만 바랐던 기억이 나네요. 결국 만날 고모라고 부르다 갑자기 어머니라고 부르기 어색해서 평생 한 번도 어머니라고 못 불렀어요.”

어른이 되어서야 조카를 친자식처럼 기른 고모가 얼마나 대단하고 고마운지 깨달았다는 주철환. 결국 그는 고모를 하늘로 떠나보내고 나서야 50년 동안 마음에 묻어둔 단어를 입 밖으로 낼 수 있었다.

“어머니는 세상 어떤 엄마 못지않은 사랑의 화신이었어요. 가난하고 고생스러운 시절에도 저한테는 뭐든 베풀었죠. 제가 예전에 그런 글을 쓴 적이 있어요. ‘고마워요, 모든 게 당신 덕분입니다. 그걸 줄이면 바로 우리 고모’라고요. 제 마음이 딱 그래요. 오늘의 나를 만든 원동력이라고 말하면 너무 구태의연한 표현인가(웃음)?”

그의 고모이자 어머니는 올해 97세로 눈을 감았다. 비교적 편안하게 임종을 맞았고, 사람들도 ‘천수를 누리다 가셨으니 호상’이라며 그를 위로했지만 가슴 한구석이 뚫린 것 같은 상실감을 떨쳐낼 수는 없었다. 생전에 살갑게 대하지 못했던 아쉬움이 자꾸 후회로 남는다. 앞으로라도 어머니에 대한 얘기를 남들에게 자꾸 들려주고 글로도 많이 써야겠다고 다짐한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요즘 책을 한 권 쓰고 있는데, 중간 제목이 ‘빚을 남기지 말고 빛을 남기는 사람이 되자’예요.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하셨을 때 생각한 문구인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니까 더욱 절실해지더라고요. 그분은 나한테 아무런 빚도 안 물려주셨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빛만 밝혀주셨잖아요. 늘 베풀면서 말이에요.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하면서 살아야죠.”

**** 재미 넘치는 내 인생극장, 누군가에겐 큰 의미가 되길

이번 콘서트는 돌아가신 어머니와 그녀의 주위 사람들을 위해 마련한 이벤트다. 아들 노래 실컷 들으시라고, 빈소를 찾았던 지인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려고 무대에 올랐다.
“어머니 보내고 나서 내가 그분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다 음반을 준비했어요. 직접 만든 노래 불러드리고 가시는 길 지켜준 사람들한테도 들려주면 좋을 것 같아서요.”

가까운 사람들만 모아 이벤트를 벌이려고 여기저기 초대장을 보냈는데, 워낙 마당발인 데다 ‘그 아저씨가 노래도 부른다더라’는 입소문이 번져 구경꾼이 잔뜩 몰렸다. 800석 규모의 공연장이 가득 찰 정도였으니 어지간한 가수 못지않은 콘서트다.

평소 그가 노래 좋아하는 걸 알고 있는 지인들이야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지만 대부분은 ‘깜짝 놀랐다’는 평가다. 그는 이런 대중의 평가가 즐거웠다고 고백한다. 교사에서 PD, 대학교수, 방송국 사장까지 변신에 익숙하고 워낙 도전을 즐기는 주철환 아닌가.

“사람들이 저를 보고 놀라는 게 뿌듯해요. 저는 의외로 남들 시선을 많이 의식하면서 살거든요. 칭찬받고 싶고, 잘했다는 소리 듣는 것도 좋아하고요. 솔직히 이 나이에 뭔가 새롭게 도전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고 그만큼 박수 받을 일이잖아요. 나에겐 또 하나의 도전이고 친구들한텐 좋은 추억이 된 이벤트였죠. 게다가 어머니도 좋아하실 테니까 얼마나 좋은 일이에요.”

아들의 마음이 담뿍 담긴 노래를 실컷 들었으니 어머니도 편하게 눈을 감았을 터다. 주철환의 마음이 궁금하다면 노래를 직접 들어봐도 좋겠다. 워낙 변신에 능한 사람이어서 그런지 직접 만든 노래도 생각보다 훨씬 좋다.

사실 노래는 그의 오랜 취미다. MBC 입사지원서에 그가 써낸 취미도 ‘작곡’이었다. PD 시절 연출한 ‘모여라 꿈동산’이나 ‘퀴즈 아카데미’ 주제곡도 모두 그가 직접 만들었다. 이번에 발표한 노래들은 학창 시절부터 틈틈이 작곡해 둔 곡에 가사를 붙인 것.

평소 머릿속에 떠오른 악상을 잘 조합해 뒀다 작곡가에게 부탁해 그대로 곡을 만든다. 전문가가 더 멋진 음을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그가 구상한 음 그대로 만든다. 악기를 다룰 줄 모르고 악보도 제대로 못 그리는데 작곡을 했다니 믿기 어렵지만, “농부가 초가집 짓는 데 설계도가 꼭 있어야 되냐”는 대답을 듣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쉰 살을 훌쩍 넘겨서도 늘 남다른 뭔가를 기대하게 만드는 이 남자, 진짜 그의 인생 5막은 뭘까.

“가수는 아니니까 걱정 말아요. 조기축구 하는 아저씨들이 죄다 축구 선수를 꿈꾸는 건 아니잖아. 대신 뭘 하든 누군가에게 좀 의미 있고 기억되는 일들을 하고 싶어요. 재미있게 사는 거야 인생 모토니까 늘 지키려 하 지만, 유쾌함 속에서도 뭔가 남는 게 있으면 좋잖아요. 우리 어머니한테 들려준 이 노래들처럼 말이에요.”


취재_이한 기자 사진_이진하(studio lamp), 중앙포토

초승달 3:13 주철환 다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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