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빼기 요법(bloodletting, 사혈요법)은 피를 빼내는 치료법이다. 현대 의학에서는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효과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In the overwhelming majority of cases, the historical use of bloodletting was harmful to pati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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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apeutic phlebotomy refers to the drawing of a unit of blood in specific cases like hemochromatosis, polycythemia vera, porphyria cutanea tarda, etc., to reduce the amount of red blood cells.

http://en.wikipedia.org/wiki/Bloodletting

 

서양에서는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하여 2천 년 동안이나 피 빼기 요법이 사용되었다.

 

 

 

한의학계에서는 여전히 널리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중국 고서황제내경이나 우리 고전동의보감에도 피를 뽑아 치료하는 방법이 언급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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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가 체했을 때 할머니가 손가락 끝을 바늘로 따주던 것 역시 비슷한 개념이다.

한의학에서는 이를 '사혈(瀉血)요법' 이라 한다. '()' '쏟아버린다' 는 뜻으로 피를 쏟아버리는 치료법이란 의미다. 사혈침을 찔러 피가 나오게 한 뒤 그위에 작은 항아리처럼 생긴 부항기를 붙여 내부 압력을 줄이면서 피를 몇 백cc 뽑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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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혈은 한의학의 치료방법 중 하나다. 한의학에선 탁해져 뭉친 피(어혈·瘀血)를 제거하기 위해 사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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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국한의학연구원 의료연구부와 동국대 한의대 침구학 교실이 전국 한의사 322명을 조사한 결과 10명 중 9(89.5%)에 가까운 288명이 사혈치료를 하고 있었다.

사혈요법, 건강에 치명적일 수도

입력: 2007.03.06 17:47 / 수정: 2007.03.07 08:24

http://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3/06/2007030600787.html

 

 

 

Edzard Ernst & Simon Singh가 쓴 『Trick or Treatment: The Undeniable Facts about Alternative Medicine』 중 7~14, 20~23쪽에서 피 빼기 요법을 다루고 있다.

 

 

 

18세기 유럽에서 피 빼기 요법은 만병통치약처럼 온갖 질병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것도 민간 요법 정도가 아니라 권위를 인정 받는 의사들이 피 빼기 요법을 썼다. 이것은 당시의 의학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1799 1214일은 피 빼기 요법의 역사에서 중요한 날이었다.

 

미국의 영웅 조지 워싱턴을 치료하기 위해 세 명의 의사가 피 빼기 요법을 썼다. 그런데 무지막지하게 많은 양을 뽑아냈다. 차도가 없자 그들은 계속 피를 뽑았다. 결국 하룻동안 무려 인체에 있는 피의 절반 정도를 뽑았다. 결국 워싱턴은 1214일에 사망한다. 당시 워싱턴을 치료(?)했던 의사들은 병이 심각할수록 더 많은 피를 뽑아야 한다고 믿었다고 한다.

 

By the time the three physicians had finished their treatments and bloodletting of the President, there had been a massive volume of blood loss—half or more of his total blood content being removed over the course of just a few hou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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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shington died at home around 10 p.m. on Saturday, December 14, 1799, aged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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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iagnosis of Washington's final illness and the immediate cause of his death have been subjects of debate since the day he d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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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n at that early date, there were accusations of medical malpractice, with some believing that Washington had been bled to death. Various modern medical authors have speculated that Washington probably died from a severe case of epiglottitis which was complicated by the given treatments (all of which were accepted medical practice in Washington's day)—most notably the massive deliberate blood loss, which almost certainly caused hypovolemic shock.

http://en.wikipedia.org/wiki/George_Washington

 

유명 인사의 죽음은 당시에 널리 인정 받던 피 빼기 요법에 대해 의문을 품게 하는 사람이 늘어나도록 했을 것이다.

 

윌리엄 코베트(William Cobbett)는 당시에 대단한 명성을 누리던 의사인 벤자민 러쉬(Benjamin Rush)의 피 빼기 요법이 병을 치료하기는커녕 사람을 죽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에 따르면 그 지역의 사망률이 피 빼기 요법이 널리 쓰이면서 높아졌다고 한다.

 

러쉬는 코베트를 고소했고 공교롭게도 12 14일에 판결이 났다. 이 재판에서 러쉬가 승소했다.

 

Cobbett also campaigned against the eminent physician and abolitionist Dr. Benjamin Rush, whose advocacy of bleeding during the yellow fever epidemic may have caused many deaths. Rush won a libel lawsuit against Cobbett, who never fully paid the $8,000 judgment, but instead fled to New York and back to England in 1800, via Halifax, Nova Scotia to Falmouth in Cornwall.

http://en.wikipedia.org/wiki/William_Cobbett

 

코베트가 재판에서 졌지만 이 재판이 피 빼기 요법에 대한 회의론자가 생기는 데 기여했을 것이다.

 

 

 

1747년에 제임스 린드는 괴혈병과 관련하여 통제된 임상 시험을 했다.

 

이 연구 방법론이 피 빼기 요법에도 응용되었다. 1809년에 스코틀랜드의 군의관(military surgeon)인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limton) 366명의 환자를 무작위로 세 집단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세 집단 중 하나는 피 빼기 요법을 썼다. 치료법을 제외하면 되도록 조건을 같도록 했다.

 

해밀턴의 임상 시험은 표본의 규모가 크고 무작위로 배정했다는 점에서 린드의 임상 시험보다 한 단계 진보한 방식이었다.

 

그 결과 피 빼기 요법을 쓴 집단에서는 35명이 사망했지만 나머지 두 집단에서는 각각 2명과 4명이 사망했다. 린드는 6년이나 지난 다음에야 자신의 임상 시험 결과를 발표했는데 해밀턴은 아예 발표하지도 않았다. 그의 임상 시험을 정리한 문서는 1987년에야 발견되었다.

 

나중에 피에르 루이(Pierre Louis)를 비롯하여 여러 명이 비슷한 임상 시험을 해서 발표했다. 처음에는 많은 의사들이 그런 임상 시험에도 불구하고 피 빼기 요법을 고집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피 빼기 요법은 아주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면 주류 의학계에서는 쓰이지 않게 되었다.

 

In the 19th century, an influential theory was proposed by French physician François-Joseph-Victor Broussais, that fevers were the result of inflammation of the organs, and bloodletting was an effective treatment for any fever. Louis disagreed, publishing a paper in 1828 to that fact (expanded in 1834 to a book-length treatise in the American Journal of Medical Sciences entitled "An essay on clinical instruction"), which demonstrated that the use of bloodletting for pneumonia was ineffective. Louis' approach was strongly resisted by doctors at the time, who were unwilling to wait for tests to determine if current treatments were effective, or discard treatments if they were found ineffective.

http://en.wikipedia.org/wiki/Pierre_Charles_Alexandre_Louis

 

 

 

당시에 피 빼기 요법이 매우 위험했던 이유는 때로는 무지막지하게 많은 피를 뽑아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해밀턴의 임상 시험을 통해서 피 빼기 요법이 아예 효과가 없다는 점이 입증된 것은 아니다. 어쩌면 훨씬 작은 양을 뽑아내는 요법이 효과가 있으면서도 부작용이 거의 없을지도 모른다.

 

해밀턴의 임상 시험에서는 온갖 환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것은 당시에 피 빼기 요법이 만병통치약처럼 쓰였다는 점에서 이해할만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런 임상 시험으로는 각 질병에 피 빼기 요법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

 

어쨌든 피 빼기 요법을 검증하기 위한 여러 임상 시험들을 통해 의사들은 서서히 피 빼기 요법이 거의 효과가 없으며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피 빼기 요법의 역사는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가르쳐 준다.

 

잘 통제된 대규모 임상 시험을 거치지 않고 그냥 선조의 지혜에 의존하거나 개인적인 경험에 의존하게 되면 위험하면서도 효과가 없는 치료법이 효과가 있다고 믿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18세기 유럽의 의사들이 특별히 멍청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리고 그들이 특별히 사악했다고 보기도 힘들다. 그들은 나름대로 머리를 쓰고 경험을 살려서 치료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20세기의 온갖 심리학 연구들이 보여주듯이 인간은 온갖 인지 편향 또는 자기 기만에 빠지기 쉬운 존재다. 따라서 설사 선량하고 똑똑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엉터리 치료법이 효과가 있다고 믿을 수 있다. 통제된 임상 시험의 도움이 없다면 말이다.

 

 

 

위에 인용한 기사에서 볼 수 있듯이 한의학계에서는 여전히 사혈 요법이 널리 쓰이고 있다. 그리고 체했을 때 피를 약간 뽑는 민간 요법이 여전히 널리 쓰이고 있다. 한의사들은 과연 사혈 요법의 효과에 대해 통제된 임상 시험을 해 본 것일까? 체할 때 손을 따는 것에 대한 통제된 임상 시험이 있었나? 나는 그런 임상 시험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한국의 한의사들은 18세기 서양의 의사들보다 훨씬 더 똑똑하고 자기 기만에 훨씬 덜 빠지나? 그래서 통제된 임상 시험이 없어도 무엇이 좋은 치료법인지 알아낼 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