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로 다비식 같은 것을 하지 말라. 이 몸뚱아리 하나를 처리하기 위해 소중한 나무들을 베지 말라. 내가 죽으면 강원도 오두막 앞에 내가 늘 좌선하던 커다란 넙적바위가 있으니 남아 있는 땔감 가져다가 그 위에 얹어 놓고 화장해 달라. 수의는 절대 만들지 말고, 내가 입던 옷을 입혀서 태워 달라. 그리고 타고 남은 재는 봄마다 나에게 아름다운 꽃공양을 바치던 오두막 뜰의 철쭉나무 아래 뿌려달라. 그것이 내가 꽃에게 보답하는 길이다. 어떤 거창한 의식도 하지 말고, 세상에 떠들썩하게 알리지 말라."   

                                                                                                                                                             -법정.

 유언은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의 이름 뒤에 남을 운명을 자신과 세계에 계시하는 무언의 방식이다. 그것은 말 속에 담겨 전해지지만, 동시에 그 말 ()을 타고 오는 침묵이 전하는 또 다른 이야기, 즉 운명의 부름에 대응하는 자의 존재 방식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운명은 과거를 회고적으로 향하는 것도 아니고, 미래를 예언하는 것도 아니며, 현재가 처한 자신의 정신적인 본질을 다만 언어로 전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계시한다. 그것이 바로 유언이다. 자살하는 자의 침묵은, 바로 그러한 한에서, 자신의 운명을 가장 정확한 방식으로 유언하고 있다. 즉 그것은 삶이 갑자기 붕괴되고, 운명의 사이렌이 갑자기 멈췄다는 것. 그것은 죽음을 통해 방전하는 운명이 타자에게 전해지는 고통스러운 침묵인 것이다. 

 그러나 또다른 방식의 계시도 있다. 성자의 침묵은 아니지만, 그 성자의 침묵보다 더 고귀한 가치를 지닌 것. 그것은 자연의 침묵이다. 삶의 자연으로부터 죽음의 자연에 이르기 까지, 하나의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자신의 운명을 자연의 침묵 속에 숨기는 자..이 자들은 자신의 운명을 인간이 아닌 신에게 계시하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운명은 마모될 수 없다. 마모될 수 없는 운명이기 때문에, 그들의 운명이 전해지는 말들 또한 마모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들의 운명이 이 세상에 남기는 유일한 자취, 죽음 역시 이 세상 안에서는 마모될 수 없다. 그것은 바로 신의 기억 속에 새겨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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