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의 기사를 '통째'로 퍼왔습니다.(그래프는 생략) 기사 출처는 여기를 클릭하시고 제가 주석을 달았습니다.

"박정희처럼 내다보고, 김대중처럼 경청하라."

10명의 경제수석들이 뽑은 성공한 경제 대통령의 롤모델은 박정희·김대중 대통령이었다. 경제개발 초기에 경제 전문가 대부분이 반대했던 수출 주도형 산업화모델을 뚝심 있게 밀어붙인 박정희 대통령의 혜안과, 대화와 타협을 중시해 경제팀의 의견을 끝까지 들어준 김대중 대통령의 소통 능력이 제일 중요한 미덕이란 것이다. "자신이 모신 대통령을 제외하고 가장 성공한 경제 대통령은 누구였나"라는 질문에 10명의 경제수석 중 6명이 박 대통령을 뽑았고, 김대중 대통령도 2표를 얻었다. 3저 호황기에 한국 경제를 이끈 노태우 대통령이 한 표를 받았다. 전두환 대통령이 2표를 얻었지만 모두 박 대통령에 이어 2순위였다.

DJ의 대중경제론을 제가 비판하는 대목입니다.

당시 국제 상황과 마샬 플랜의 마샬이 외교관 시절 남긴 비망록에 의하면 '한미일의 하청 구조'가 실현되었기 때문에 DJ의 대중경제론의 유효성 여부에 관계없이 '당시 국제 정치 역학 상' 실현 불가능했고 아마도.... DJ의 대중경제론은 만일 DJ가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더라도 미국의 공작에 의하여 팽당했을겁니다.


왜냐하면, 강력한 반공라인 구축이 목표였던 미국은 그래서 일본의 전범들에게 나름 면죄부를 주고 특히 전범의 정점에 있는 일왕은 처벌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과 장면 정권의 경제개발 계획 및 박정희의 경제개발 계획에 대하여 미국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 외자유치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힘들게 했다는 점 등에서 들 수 있죠.


그 결과가 잘잘못을 떠나 박정희가 한일협정을 맺고 또한 배트남 파병 군인들의 월급을 삥땅쳐 경제개발에 투입하는 등의 '기록들'이죠.


한미일 하청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애니메이션 분야입니다. 미국이 전체 기획을 하고 일본이 골격을 그리고 그리고 한국이 프레임 단위의 만화를 그리는 하청구조 말입니다. 더 상세한 부분은 생략!


어쨌든, 제 판단은 수출위주의 경제정책이 방향으로는 맞다...라는 것입니다. 단지, 박정희 정권 말기에 수출보조금 등을 악용하여 대기업들이 수출에 힘쓰기보다는 그 여유돈으로 부동산 투기에 앞장서고 또한 정권 차원에서 부동산 투기에 가담하는 등의 부작용 등이 만만치 않게 있었고 지금도 대한민국호 경제의 가장큰 암초로 작동하고 있습니다만.


◇박정희 대통령 같은 혜안 가져야

경제수석들은 '경제 대통령 박정희'로부터 배울 점을 크게 두 가지로 꼽았다.

첫째로 박 전 대통령은 시대적인 요청을 분명히 인식하고 이에 맞는 경제운용 전략을 일관되게 추진했다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에서 경제수석을 지낸 현정택 인하대 교수는 "1960~1970년대의 시대적인 소명은 '등 따뜻하고, 배부른' 국가 건설이었다"며 "경제 민주화가 시대적인 소명인 지금과는 눈높이가 다르지만, 박 대통령은 당시의 과제를 훌륭하게 달성했다"고 말했다. 1960년대에는 주요 개발도상국들이 대부분 내수 중심의 성장전략을 택하는 추세였지만, 박 대통령은 경제개발계획을 시작한 뒤 무수한 반대에도 대외지향적인 수출전략을 밀어붙여 성공했다. 김인호 이사장은 "경제팀에 구체적인 정책개발과 집행을 위임하더라도 대통령이 경제의 큰 원칙을 갖지 못하면 자격미달"이라며 "본인 나름의 틀을 갖고 경제팀에게 일을 맡겨야 한다"고 했다.

둘째는 자신의 경제철학을 실천하는 경제팀과의 팀워크였다. 박 대통령은 1965년 1월부터 14년간 경제동향보고회의와 수출진흥확대회의 등 경제 관련 장관급 회의 2개를 매달 직접 주재했다. 주요 경제현안을 경제팀과 함께 챙기면서 다른 장관들이 보는 앞에서 경제팀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경제수석을 지낸 박병원 은행연합회장은 "박정희 대통령처럼 대통령은 큰 틀의 경제목표만 정하고 시시콜콜 간섭하면 안 된다. 경제팀에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고 믿고 맡겨야 한다"고 했다.

박병헌.... 모피아의 대부격으로 노무현, 이명박은 물론 박근혜 정권 등 3대 정권에서 승승장구하는 인물이라 '빨간색 마킹한 부분'이 액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원론적으로는 맞는 이야기입니다. 문제는 박근혜의 경우에는 큰 틀의 경제목표를 정할 능력도 없고 설사 정했다고 하더라도 그걸 이해할 지적능력이 없는 것 같다는 점이죠.

이 기사가 2013년 1월 13일날 작성된 것이니.... 대략 각자의 판단들이 있을 것이고 박근혜에 대한 평가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하니 부언 설명은 생략.


◇다원화된 사회에선 추진력보다 설득력이 중요

성공한 경제 대통령 2위로 뽑힌 김대중 대통령은 IMF(국제통화기구) 외환위기라는 국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소통의 리더십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김영삼 정부에서 경제수석을 지낸 한이헌 전 경제기획원 차관은 "김 대통령은 위기 극복을 위해 전문가와 시장, 여론의 목소리를 폭넓게 듣고 노사정대타협과 같은 범국민적 합의를 잘 이끌어냈다"면서 "이해관계가 복잡해진 다원화된 사회에선 밀어붙이는 추진력보다 대화와 타협을 통한 설득력이 중요하다"고 했다.

김 대통령은 대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경제팀의 보고를 존중하고, 본인 의견을 내세우지 않았다고 한다. 이헌재 전 부총리는 회고록에서 "DJ(김대중 대통령)는 보고가 끝난 후 본인이 못 알아듣는 부분만 추가 질문을 하고, 기업이나 시장의 저항이 거셀 때 '(이 정책이) 꼭 필요한 것이냐'고 물어보는 게 고작이었다. 한 번도 압력을 행사한 적이 없다"고 언급했다.

1. 박정희와 DJ의 경제 분야는 '창조'와 '재건, 유지'입니다. 어느 것이 더 '위대한가?'라고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이 무리이겠습니다만 제가 대학교 일학년 때 친구들과 했던 논쟁을 떠올리게 하는군요.


"대한민국이 더 위대하냐? 아니면 이스라엘이 더 위대하냐?"

논점은 이스라엘처럼 '건국을 한 것(2천여년 전에 나라가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건국이죠)'과 대한민국처럼 '여기저기 쪼그라진 냄비일망정 그걸 소중하게 갈고 닦고(?) 연연히 이어온 대한민국이 더 위대한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님은 어느 쪽이세요?


IMF 극복에 대하여 저는 DJ의 리더쉽 방식에는 찬성하지만 그 방법에는 썩 후한 점수를 주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썩 후한 점수를 주지 않는 이유'에 대하여는 설명을 생략하기로 하겠습니다만 어쨌든 당시 상황에서는 유일무이하지 않았던가?하는 부분입니다. 만일 이회창이 당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면? 아직까지도 IMF 관리체제를 유지했을 것이라는데 오백원 겁니다.


왜냐하면, YS의 전두환 사면 관련하여 이회창의 언동은 '한국의 엘리트의 사악함과 조야함을 그대로 반증하는 것'이니 말입니다. 물론, 모순되는 것일 수도 있는데 상대적으로 보면 잘했지만.... 한 대통령의 업적은 상대적인 평가도 중요합니다만 그 것은 평가방법 중의 하나일 뿐이고 그 상대적인 평가가 절대적인 것으로 환치될 수는 없지요.


어쨌든, DJ의 리더쉽 방식에는 찬성하지만 모피아 탄생의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은 DJ가 비판받아야할 대목일겁니다. 이 부분은 DJ가 좀더 적극적으로 '관리를 했어야 했다'는 것이죠. 더우기 그 놈의 '파벌 때문'에 일생을 고생했던 DJ 입장에서라면 파벌이 가져다 주는 폐해에 대하여 더욱 신경 써야 했다는 점이죠.


그리고.... 이명박과 노무현의 꼴값.


제가 이명박의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소리가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평가 가치조차 없으니 생략하겠습니다만 노무현은 무슨 배짱으로 즉석 발언을 한시간이나 했을까요? ㅉㅉㅉ

대통령이 참을성 있게 참모들의 의견을 끝까지 들어주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현정택 인하대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은 민간 전문가 30여명이 참가한 회의에서 원래 계획에 없던 즉석 발언을 1시간이나 하더라. 이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겠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업무 지시를 하는 격"이라고 했다. 현 교수는 "이런 면에선 이명박 정부도 똑같은 실수를 했다"고도 했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