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은 바로 해병 1사단 올리버 스미스 장군.
장진호 전투는 아는 사람들이 많을 테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음. 몇가지 일화만 이야기하겠음.

우리가 아는 해병 이미지와 달리 올리버 스미스 장군은 버클리대를 졸업한 지식인 스타일이었다고 함. 대학시절 공부를 열심히 하며 타이핑과 속기를배워서 전쟁 당시에도 많은 기록을 남길 수 있었음.

장진호 전투의 배경을 살펴보면....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 잘 알 것임. 그 작전 성공에 흥분한 맥아더는 또 하나의 상륙작전을 기획했으니...이름하여 '원산상륙작전'
그런데 이게 코미디처럼 됐음. 상륙하러 갔더니 기뢰가 줄줄이 부설돼있어서 그거 제거한 뒤에 상륙해보니 이미 지상군이 원산까지 올라온 상태였음. 아무튼 그때 미 해병 1사단은 원산에 도착하여 개마고원 일대로 빠르게 진격을 명령받았음.

이때부터 한국을 구원한 올리버 스미스의 일화가 시작됨....사실은 그 이전에도 약간의 일화가 있음.

미 해병 1사단은 전쟁 터지면 제일 빨리 전장에 도착하는 부대임. 2차대전 당시 미군이 지상에서 첫 승리를 거둔 과달카날 섬 전투의 주역이기도 함. 아무튼 당시 맥아더는 펠로우 섬도 빨리 점령할 것을 명령했는데.... 스미스 장군이 부사령관으로 현장에서 지휘한 그 전투에서 미해병 1사단은 큰 피해를 입음. 사단장은 사흘이면 끝날 거라 생각하고 현장이 아니라 배에 있었음.

그 전투후 올리버 스미스가 얻은 교훈은 '현장을 모르는 사령관의 말을 그대로 따르다가 우리편이 x된다'임. 그리고 '현장 모르는 상관이 내 부하들 목숨 구해주는 거 아니거덩?'라는 스미스의 신념은 이후 장진호 전투를 성공으로 이끄는 토대가 됨.

아무튼...올리버 스미스와 맥아더는 별로 좋은 인연은 아니었음. 맥아더 충성파 알몬드는(그래도 신성모 급은 아님) 해병 1사단에게 빠른 북진을 요구함. 그렇지만 현장을 파악한 올리버 스미스는.... 그 명령 생까기로 함. 대놓고 개기고 싸우고 사실상 명령 불복종에 가깝게 부대를 느릿느릿 진격시킴. 알몬드도 빡쳤으나.... 올리버 스미스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로 함. 사실 내 생각에 스미스는 알몬드를 좀 우습게 봤을 것 같기도 함. 그도 그럴 것이... 인천상륙작전의 주역 미해병 1사단은 서울 진공에 앞장섰다 큰 피해를 입음. 북한군이 완전 붕괴되어 별 저항이 없을 것이란 맥아더와 알몬드 생각과 달리 북한군 정에 부대가 급히 배치되어 있었음. 너무 서두른 나머지 항공대 지원없이 서울에 진입해야 했던 미 해병 1사단은 둘의 착오로 인한 결과를 뒤집어 썼음. 그럼에도 미해병 1사단의 수훈은 놀라운 것이어서 감탄한 타임지는 표지 전면에 올리버 스미스의 사진을 실음. 타임지를 본 맥아더와 알몬드의 입이 튀어나옴.

어쨌든 스미스의 판단은 정확했음.....미 해병 1사단이 진격해야할 개마고원은 그야말로 협곡이어서 미군이 자랑하는 물량전을 제대로 펼치기 힘들었음. 거기에 작전 지역도 존내 넓음. 간단히 말해 적이 매복해있으면 각개격파되기 딱 좋은 상황이었음.

여기에 한국전 당시 맥아더의 최대 실책이 겹침. 산악지대에 한국말을 모르는 이상한 군인들이 있다는 정보를 생깜. 거기에 아시안 후진국 군대가 별거 있나란 자만심도 한몫했음. 즉, 중공군이 참전했더라도 충분히 분쇄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빠른 진격만을 요구함.

그렇지만 '현장을 모르는 니들이 내 부하들 목숨 책임질겨?'란 교훈을 뼈에 새기고 있던 올리버 스미스는 해병 1사단에게 최대한 간격을 빽빽히 유지한 채 진격할 것을 명령함. 거기에 보급로 확보를 위해 곳곳에 보급 기지와 임시 공항까지 개설함.

드디어 중공군이 전면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자....미군은 아노미 상태에 빠짐. 미해병 1사단도 중공군 2개 군단에 완전 포위됨. 이런 상황에서도 알몬드는 이미 붕괴된 8군쪽으로 해병 1사단이 진격하라는 얼빠진 명령이나 내렸음. 우리의 올리버 스미스, '정신 나간 상태에서 내린 명령일 것'이라 일축함. 그리고 헬기편으로 이동하여 중공군이 포위한 하갈 우리에 사단 본부를 차림. 즉, 적진 한가운데로 뛰어든 것임. 사단장이 함께 한다는 소식을 들은 해병 1사단 병사들이 느꼈을 감동은....상상에 맡김.

그리고 올리버 스미스의 정신에 감동받은 해병 항공대를 비롯해 전부터 돈독한 사이였던 해군 항공대도 같이 죽을 각오로 지원에 나섬.

글이 좀 새는데 알몬드와 올리버 스미스는 정말 뭔가 서로 안맞는 사이였음. 알몬드는 2차 대전 당시 흑인으로 구성된 사단을 맡는다는 이유로 준장이 됐음. 이후 자신의 사단이 참패를 거듭하자 흑인 병사들 탓을 함. 한국전 당시 미 육군은 흑인을 비전투 분야에만 배치했던 반면 해병대는 구분없이 배치함. 미해병대는 '인종, 학벌에 상관없이 우리는 같은 해병이란 사실이 제일 중요하다'는 문화였으며 올리버 스미스는 그런 해병대 문화에 큰 자부심과 애정을 갖고 있었다고 함. 그 문화는 다른 나라에도 연장되어 올리버 스미스는 풋내기 한국 해병대에도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었다고 함.

본론으로 돌아가서 중요한건 최정예 해병 1사단이 포위됐다는 사실이 갖고 온 정치적 파장임. 중국 및 북한은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함. 사실 누가봐도 해병 1사단은 모두 죽거나 포로가 될 운명이었음. 미국은 큰 충격을 넘어 거의 패닉 상태에 빠짐. 수만명의 자국 군인이 포위돼서 전멸할 수 있다는 상황은 한번도 겪어보지 못했으므로 미국 전역에서 '어디 있는지도 잘 모르는 한국 땅에서 왜 수만의 우리 젊은이가 피를 흘려야 하냐'는 항의가 솟구침. 미해병 1사단이 모두의 예측처럼 정말로 궤멸했으면 디엔비엔푸 패배 이후 프랑스처럼 미국도 철수할 수 있었음.

여기서 올리버 스미스 최고의 명언이 나옴. 히긴스라는 미모의 여기자가 '그러니까 지금 후퇴하는 거죠?' 묻자 올리버 스미스는 '후퇴라니 제기랄, 우리는 다른 방향으로 진격하는 거다' 대꾸함. 그 말을 들은 해병대들은 다시 전의를 다짐.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가슴도 뛰고 있음.

아무튼, 해병 1사단은 그 포위망을 뚫었을 뿐만 아니라 중공군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함. 거기에 아군의 시체를 남겨두지 않는다는 전통까지 지킴. 상부에선 피해를 막기 위해 부상병들을 포기하라는 지시도 내렸으나....해병대들은 생깜. 

그리고....미 해병 1사단의 분전은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었으니 중공군의 진격을 저지함으로써 그 유명한 함흥 철수를 가능케 했음. 여기엔 상부의 잘못된 지시를 무시하고 철저히 부대 간격을 유지함과 아울러 보급로를 확보했던 올리버 스미스의 작전이 결정적으로 역할함.

보급과 관련하여 조금 더 쓰자면... 야전 비행장을 건설한 미군도 포위된 처지라 보급이 여의치 않았지만 중공군도 산악 지대라 죽을 지경이었다고 함. 미군 기지를 점령한 뒤에 미군을 추격하는게 아니라...창고부터 뛰어들었다고 함. 놀라운 건 당시 중공군을 현장에서 겪은 미군들의 평가임. 그들은 중공군이 사기가 높고 기율이 엄정했으며 나름 신사적이었다고 함. 민가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 노력했으며 자신들이 동료들의 시체를 수습할 때면 공격을 멈췄다고 함.

아무튼......우린 한국의 운명과 관련하여 올리버 스미스의 공적을 잊지 말아야함. 정말로 난 동상을 세워줘야 한다고 믿고 있음. 기부할 생각도 있음. 아울러 올리버 스미스의 직계 가족에겐 명예 한국 국적 부여하고. 

올리버 스미스의 인생에 대해 더 궁금하면 아래를 참조하삼. 올리버 스미스는 군내 정치에 약해서 대장으로 진급하지 못함. 그렇지만 장진호 전투는 모스크바, 스탈린그라드와 함께 3대 동계 전투로 꼽히며 장진호 당시 살아남은 미해병대원들은 'Chosin Few'로 불리며 지금도 만나고 있다고 함.

그러면 난 다시 금크로 하겠음.

http://www.leesangdon.com/bbs/board.php?bo_table=bookworld&wr_id=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