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의문이 남아있었다. 그 것은 바로 미투라고라님께서 쓰신 글에서 미투라고라님이 남기신 쪽글 때문이었다.

미투라고라님은 '이승만과 박정희를 옹호하는 분들께'라는 제하의 자신의 글에서 쪽글로 이런 주장을 하셨다.


사람마다 견해는 다르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건국 아래 가장 악랄한 대통령이 이승만이라고 보는 편입니다. 아직까지 이승만의 아우라를 뛰어넘는 악당은 없습니다. 인간적으로 이승만은 박정희와는 비교불가, 지존급 쓰레기입니다.


그리고 내가 이런 주장을 쪽글로 했었다.

저는 미투라고라님의 '악독하다'라는 표현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그냥 '일반적인 판단'에서 생각한다면 민의가 총합된 419혁명을 뒤엎어버린 박정희가 더 나쁘다고 봅니다. 더우기 박정희는 419혁명 전에 이미 쿠테타 모의를 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죠.


내 쪽글에 첨언하자면, 박정희가 419혁명 전에 이미 쿠테타 모의를 한 점은 박정희 쿠테타의 성격을 규정한다. 만일, 419혁명 전에 쿠테타 모의가 없었다면 장면 정권은 미국의 대한원조가 민간 + 군비라는 쿼터에서 군감축을 통하여 민간원조분을 더 늘리려는 정책이 당시 군인이었던-더우기 미국에서는 남로당 전력의 인간이 어떻게 장성이 되느냐? 라는 이의제기를 해왔으니까-박정희 입장에서는 '먹고사는 문제 때문'이라고 백번 양보하여 이해할 구석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419혁명 전에 이미 쿠테타 모의를 한 전력이 있었다는 사실은 516 쿠테타의 성격을 가늠하게 된다. 물론, 권력욕으로만 친다면 부산임정시절에도 발췌개헌 따위나 했던 이승만의 권력욕 역시 넘사벽이기는 하다만.....



어쨌든 '이승만이 건국 이래 가장 악랄한 대통령'이라는 미투라고라님의 주장에 '왜?'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가 최근에 스카이넷에서 이 문제가 다시 이슈가 되었었다. 그 이슈가 된 계기가 지금은 아크로에서 잠적하신 '시닉스님'의 문제 제기였고 그 문제 제기는 미투라고라님의 주장과 아주 일치했다.


"이승만이 건국 이래 가장 악랄한 대통령"


그리고 그런 이슈 속에서 내가 논쟁에 뛰어들게 되었고.... 시닉스님 덕분에 간과했던 역사적 사실을 자세히 들여다 보게 되었으며 새로 알게된 역사적 사실이 있었다.



그래서 그 논쟁의 결과, '이승만과 박정희 중 누가 더 악랄한가?'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입장이 바뀌었다.


과거 : '일반적인 판단'에서 생각한다면 민의가 총합된 419혁명을 뒤엎어버린 박정희가 더 나쁘다

현재 : 잘.............. 모르겠다............


"이승만과 박정희 중 누가 더 악랄할까?"

판단은 읽는 분들의 몫으로 남긴다.


그리고 한번 판단해보시라는 의미에서 이승만 언행을 간단하게 정리하고 내 판단을 주석처리한다.(주장들 중 읽는 분들의 편의를 위하여 원래 주장의 뜻이 바뀌지 않는 범위에서 내가 수정했다)


주장 : 박정희의 반공은 정신적 무장이였다면 이승만의 반공은 인종청소에 가깝다. 즉 이 인간 빨갱이네 고문해서 전향하게 만든 것이 박정희면 이 인간 빨갱이네 네 친구도 빨갱이지? 네 가족도 네 친척도 니 이웃도 빨갱이일꺼야. 따라서 다 죽여버려....가 이승만이다. 

내 판단 : 연좌제를 판단한다면 박정희 때가 더 무섭지 않았나? 물론, 실제적인 인명 살상으로 따지면 이승만 때가 더 심했겠지만 정신적인 압박감은 박정희 때가 더 심하지 않았나?


연좌제에 대한 역사를 잠깐 고찰한다면,

대한민국에서의 연좌제는 1894년 대한제국시대의 갑오개혁때 폐지되었으나 공식·비공식으로 통용되어 오다가 1980년 8월 1일 공식 폐지되었다. 그러나 장교임용시험에서는 아직도 연좌제를 폐지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직업분류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과연 1980년 8월 1일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고 연좌제가 없어졌다고 할 수 있나?




주장 : 주접 영감탱이(시닉스님 표현 ^^)

맥아더, 얘도 과대평가된 애긴 하다만 아무튼 얘가 당시 이승만이 총애했던 대한민국 장성들과 만난 뒤 앞에선 칭찬했다가 나중에 이승만과 독대하는 자리에서 그 장성들 보니 뚱뚱한 체형하며 파티 좋아하는 생활도 문제있고 지휘능력도 뛰어나지 않다며 교체하라고 권고했지.

그 때 이승만 왈,

"그 사람들 눈에 빛이 납니다. 뛰어난 인잽니다."


그 다음 부산 피난 시절 계엄령 내리라는 이승만 지시를 이종찬이 거부했지. 그 뒤에 이승만이 미군과 만날 때마다 이종찬을 가리키며 

"쟤가 여러분 적이었던 일본군 출신이래요~~"


이하 시닉스님께서 기술하신 내용

4.19 희생자가 사망만 189명에 부상자 6259명이었음. 박정희 당시도 부정선거 규탄하는 대학생 시위가 끊이지 않았으나 저 정도의 희생자를 낸 적은 없음. 그래서 이승만은 그래도 하야하지 않았냐는 주장은 '그래도 박정희가 희생자를 저 정도 규모로 만들진 않았다'는 주장을 불러오게됨. 물론 두환이 같은 놈도 있긴 함.

이승만 당시의 부정 선거 규모와 정도는 그 질과 양에서 박정희당시와 비교가 안됨. 그래도 박정희는 박빙 승부 정도는 연출했으나 이승만은 늘 압도적(?)으로 당선됐음. 특히 이승만이 마지막으로 출마한 선거, 4.19를 불러온 그 선거... 100프로 득표....


이승만이 박정희보다 뛰어난 면이 있긴 함. 그건 문제 터질 때마다 밑에 애들에게 책임 떠넘기는 수법. 국민방위군도 그랬고 6.25. 전쟁 지휘도 그랫고 한강 인도교 폭파도 그랬고 부정선거도 그랫음. 그리하여 아직도 '이승만은 좋았는데 밑에 사람들이 잘못해서...' 떠드는 인간들이 있긴 함.


한강 인도교 폭파 당시 피난민들이 한강 인도교 위에 있었고 그래서 800명이 그대로 한강에 수장되었음. 평양점심설을 외치던 이승만....


문제는.....

전쟁 발발 소식을 들은 이승만이 첫 발언.

"드디어 올 것이 왔습네다" (주석 : 평양점심설을 떠들던 정신병자 이승만이니 통일 망상에 빠졌겠지... 그리고..)

그리고 잽싸게 대전으로 튐. 전쟁 발발 3일도 안돼 수도를 버리고 튄 전쟁 통수권자는 전세계에서 이승만이 유일할 것임. 인간백정 스탈린도 모스크바가 위험했을 때 모스크바와 같이 죽겠다며 버티고 눌러 앉는 기백을 보여줘서 결국 모스크바 전투 승리를 이끌었음.




한 분의 고귀함과 한 인간의 천박함이 비교된다는.....


제주 4.3 사태..... 그리고 보도연맹 사건.....

보도연맹 사건(保導聯盟事件)은, 1950년 한국전쟁 중에 대한민국 국군·헌병·반공 극우단체 등이 국민보도연맹원이나 양심수 등을 포함해 확인된 희생자만 4934명에 달하고, 증언들에 따르면 최대 20만 명 남짓의 민간인을 살해했다고 추정되는 대학살 사건이다. 보도연맹원 학살 사건이라고도 불린다. 이 사건에는 미군도 민간인 집단 학살 현장에 개입했다. 오랜 기간 동안 대한민국 정부가 철저히 은폐했고 금기시해 보도연맹이라는 존재가 잊혀져 왔지만, 1990년대 말에 전국 각지에서 보도연맹원 학살 사건 피해자들의 시체가 발굴되면서 보도연맹 사건이 실제 있었던 사건임이 확인됐다. 2009년 11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통해 정부는 국가기관에 의해 민간인이 희생되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현재에도 사건 진상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출처는 여기를 클릭)


그리고 이승만이 반공주의 노선을 강화시킨 계기가 되었다는 여수,순천 사건.... 그 실상에 대하여는 아직 파악하지는 않았지만 소속은 남로당 장교들이었되, 남로당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었다는 학설도 대두되고 당시 '백범 김구 연루설'도 제기되었다는 것을 판단해보자면 반공은 두번째이고 강력한 반공라인을 구축하려는 미국의 의도와 맞물려, 일본의 전범들을 살려준 미군정.... 그리고 남한에서의 강력한 반공국가 건설에 이승만은 착실히 미국의 시다바리 노릇을 한 것이라고 보여짐. 역사의 사실과 진실이 어디에 있던 간에.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