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진화 심리학자인 Randy Thornhill과 Craig T. Palmer가 쓴 『A Natural History of Rape: Biological Bases of Sexual Coercion(2000)』는 학계와 대중 매체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진화 심리학계에서는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였지만 온갖 사람들이 이 책을 비판하거나 비난했다. 이 책을 쓰레기 취급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은 것 같다.

 

『Evolution, Gender, and Rape』는 진화 심리학에 극히 적대적인 학자들이 『A Natural History of Rape』를 공격한 것을 모아놓은 것이다. 17편의 글이 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기고한 사람들 대다수가 상당히 저명한 학자들이다. 이 책은 진화 심리학계의 강간 가설이 기존 사회 과학계와 일부 진화 생물학자들로부터 어떤 공격을 받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더 나아가 진화 심리학의 여러 테제들이 어떤 공격을 받는지도 살펴볼 수 있다.

 

이 글은 진화 심리학의 입장에서 『Evolution, Gender, and Rape』를 반박한 것이다. 나는 『A Natural History of Rape』를 쓰레기 취급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오히려 쓰레기라고 주장할 것이다. 진화 심리학계 안에서도 여러 가지 이견이 있기 때문에 내가 제시한 모든 반론에 모든 진화 심리학자들이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동의할 것이라는 것이 나의 추측이다.

 

우선 각 장(chapter)에 대한 비판을 정리할 생각이다. 17개의 장에 대한 비판을 모두 정리한 다음에 하나의 글로 묶을 때 인용한 구절을 번역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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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olution, Gender, and Rape』, Cheryl Brown Travis 편집, The MIT Press, 2003.

 

1. Talking Evolution and Selling Difference --- Cheryl Brown Travis

2. Female Sexuality and the Myth of Male Control --- Christine M. Drea and Kim Wallen

3. Power Asymmetries between the Sexes, Mate Preferences, and Components of Fitness --- Patricia Adair Gowaty

4. Does Self-Report Make Sense as an Investigative Method in Evolutionary Psychology? --- Stephanie A. Shields and Pamela Steinke

5. Understanding Rape --- Ethel Tobach and Rachel Reed

6. Pop Sociobiology Reborn: The Evolutionary Psychology of Sex and Violence --- A. Leah Vickers and Philip Kitcher

7. Of Vice and Men: A Case Study in Evolutionary Psychology --- Jerry A. Coyne

8. Evolutionary Models of Why Men Rape: Acknowledging the Complexities --- Mary P. Koss

9. Theory and Data on Rape and Evolution --- Cheryl Brown Travis

10. An Unnatural History of Rape --- Michael Kimmel

11. Violence against Science: Rape and Evolution --- Elisabeth A. Lloyd

12. The Origins of Sex Differences in Human Behavior: Evolved Dispositions versus Social Roles --- Alice H. Eagly and Wendy Wood

13. The Evolutionary Value of the Man (to) Child Affiliative Bond: Closer to Obligate Than to Facultative --- Wade C. Mackey

14. Rape-Free versus Rape-Prone: How Culture Makes a Difference --- Peggy Reeves Sanday

15. What Is "Rape?"-Toward a Historical, Ethnographic Approach --- Emily Martin

16. Understanding Rape: A Metatheoretical Framework --- Jacquelyn W White and Lori A. Post

17. Coming Full Circle: Refuting Biological Determinism --- Sue V. Rosser

 

다음 링크에서 책 본문 중 일부(절반 이상인 듯)를 볼 수 있다.

http://books.google.co.kr/books?id=a2TTPKFUXgkC&printsec=frontcover#v=onepage&q=&f=false

 

 

 

 

 

진화 생물학에 대한 몰이해
 

From a biological perspective, the process should be viewed as the elimination of the grossly unfit and those who have met with an unlucky moment. Individuals who are marginally fit may continue to reproduce as long as they do not meet with an unlucky moment. (Cheryl Brown Travis, 6쪽)

 

Travis는 자연 선택에 의해 “심하게 부적합한(grossly unfit)” 것들만 제거된다고 믿는 듯하다. 그리고 “가까스로 적합한 측에 끼는(marginally fit)” 개체도 운만 나쁘지 않으면 계속 번식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 구절은 Travis가 자연 선택과 진화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만약 심하게 부적합한 것만 자연 선택에 의해 제거되었다면 인간의 눈과 같이 고도로 정교한 구조는 진화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대충 볼 수만 있으면 장땡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강간의 적응 가설을 주창하는 진화 심리학자들은 기회가 생겼을 때 강간을 하느냐 마느냐가 자연 선택에서 의미가 있는 차이를 만들어냈을 것이며 이것이 강간 조율 메커니즘을 진화하도록 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이에 대해 Travis는 자연 선택은 미세한 차이에 의해서는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식으로 응수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강간을 하느냐 여부가 미세한 차이인지 여부를 따지지는 않겠다. 만약 Travis에게 일관성이 있다면 미세한 차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의 눈이 자연 선택에 의해 놀랍도록 정교하게 진화했을 것 같지 않다고 주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번식만 한다고 끝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번식률이다. 잘 번식한다고 할지라도 더 잘 번식하는 개체가 있다면 도태된다. 따라서 계속 번식할 수 있었을 것(may continue to reproduce)이라고 이야기해봤자 별 소용 없다.

 

 

 

 

 

문화 결정론자들의 그럴 듯한 이야기
 

A Natural History of Rape is part of this cultural phenomenon. It is not simply an explication of an idea. Although it is couched in scientific terms, it can be understood as a product not of science but of culture. The emphasis on a supposedly “natural” link between sexuality, danger, and violence might in fact reflect less about scientific empiricism and more about cultural beliefs that emerge from Western Christianity linking sex with sin (Pagels 1999, Ruth 1987) and the more recent moralizing by conservative religious leaders that HIV/AIDS is punishment for sexual sin (John 1995). (Cheryl Brown Travis, 9쪽~10쪽)

 

진화 심리학 가설이 인기를 끄는 것은 기독교의 사고 방식과 부합하기 때문이란다. 정말 어이가 없다. 기독교인들이 그 동안 진화 생물학을 얼마나 증오했는지 모른단 말인가? 그나마 진화 생물학은 주로 동물에만 집중했다. 인간을 설명할 때에도 주로 신체적인 것만 설명했다. 하지만 진화 심리학은 인간의 정신 즉 기독교인들이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을 진화론적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이것이 기독교인들이 진화 생물학보다 진화 심리학을 더 증오하는 이유다.

 

게다가 성교과 죄를 연결시키는 기독교의 사고 방식과 여기서 논란이 되는 진화 심리학의 가설들은 별로 상관도 없어 보인다.

 

진화 심리학에 적대적인 빈 서판론과 기독교의 사고 방식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빈 서판론자들은 인간이 어떤 생물학적인 조건에 의해서도 제한 받지 않는 무한한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이것은 신이 인간에게 자유를 주셨다고 믿는 창조론자의 사고 방식과 비슷하다. 그렇다고 내가 빈 서판론이 학계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가 기독교 때문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대충 그럴 듯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는 증거도 없이 우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Research selected for high media coverage is interpreted as validating common stereotypes about femininity and masculinity. The media chooses to highlight scientific findings that confirm! stereotypes because they think people will attend to them. People do attend to these stories, because they are easily integrated with preexisting concepts (stereotypes). (Cheryl Brown Travis, 12쪽)

 

사람들이 자신이 품고 있는 기존 생각과 부합하는 것들을 듣는 것을 더 좋아하기 때문에 대중 매체에서 진화 심리학 가설들을 더 열심히 소개해 준다는 이야기다. 정말 그런가? 오히려 사람들은 자신의 기대가 깨졌을 때 더 관심을 기울이지 않나? 갓난 아기도 자신의 예상을 뒤엎는 일이 벌어졌을 때 더 오래 쳐다본다. 마술 쇼나 신기한 이야기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이 진화 심리학 가설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뭔가 재미있는 적응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인 것 같다. 예컨대 진화 심리학자들은 “남자는 늑대다”라는 상식에 부합하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만 했다면 별로 인기가 없을 것이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거칠게 말하자면) 왜 남자가 여자를 보면 섹스 생각만 하도록 설계되었는지 그 이유에 대한 그럴 듯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들도 들려준다. 예컨대 배란기일 때 더 바람을 피우도록 여자가 설계되었을 것이라는 가설을 들려준다. 이런 이야기는 사람들이 평소에 품던 생각과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인기가 없을까?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왜 여자가 그렇게 설계되었는지를 설명해주는 그럴 듯한 적응 가설도 들려주며 사람들은 그것을 재미있어 하는 것 같다.

 

 

 

 

 

자연주의적 오류
 

Stereotypic notions of gender roles are by and large cherished in American culture. Popular books trade quite successfully on the same notion of inherent, fixed gender differences. The idea that women and men are effectively from different planets was such a successful marketing idea that it was reiterated in a book series and even became the basis for a one-man Broadway show. Such books provide reassurance about the natural, and therefore rightful, divisions of labor. They also offer reassurance about the natural basis for unequal political privilege that goes along with these gender differences. (Cheryl Brown Travis, 10쪽~11쪽)

 

“자연적인[자연스러운] 따라서 올바른(natural, and therefore rightful)”이라는 구절은 자연주의적 오류(naturalistic fallacy)에 빠진 사람이나 하는 이야기다. 만약 자연주의적 오류를 거부한다면 자연에 의해 설계되었다 하더라도 올바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할 것이다. 따라서 자연주의적 오류에 빠지지 않은 사람은 자연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올바름과 관련된 도덕 철학적 정당화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할 것이다.

 

 

 

 

 

진화 심리학의 강간 가설에 대한 몰이해
 

In addition, for rape to be an evolutionarily based adaptation, rapists should differ genetically from the nonrapists in the same category, that is, the category of youths or of misfits assumed by Thornhill and Palmer to be the most likely characters to perpetrate rape. (Cheryl Brown Travis, 19쪽~20쪽)

 

강간의 적응 가설이 옳다면 못난 남자들 중에 강간하는 남자와 강간하지 않는 남자 사이에 유전적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첫째, 강간의 적응 가설은 “못난 남자가 강간을 하도록 하는 메커니즘”에 대한 가설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다. 예컨대 “전쟁” 상황과 같이 강간을 해도 별로 처벌 받을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 남자가 강간하도록 진화했다는 가설이 있다.

 

둘째, 설사 “못난 남자가 강간을 하도록 하는 메커니즘”이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했다 하더라도 Travis의 주장은 터무니 없다. 왜냐하면 강간을 하느냐 여부에는 온갖 요인들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어떤 남자는 강간을 할 기회를 잡지 못했을 수 있다. 또는 두 남자가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자랐을 수 있다. 강간을 덜 죄악시하는 문화권에서 자란다면 강간을 할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Michael Kimmel concurs that the account of rape as the product of evolution constitutes bad science. He notes that the supposed natural conflict between males and females is based on assumptions that females, especially female primates, are coy and careful in their sexual behavior. However, primatologist Sarah Blaffer Hrdy (1977) has effectively refuted this notion. She observed that females often exhibit a natural propensity toward promiscuity, while it is males who may work hard to ensure monogamy and parental certainty for themselves. (Cheryl Brown Travis, 20쪽)

 

다윈 이래로 100여 년 동안 진화론자들이 “수줍은(coy)”과 “까다로운(choosy)”을 동일시했다는 점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둘은 상당히 다른 개념이기 때문이다. 섹스를 원하는 남자의 아구창을 날리며 “너하고는 안 해”라고 쏘아 붙인다면 그런 행동에 “까다로운”이라는 단어는 적용될 수 있지만 “수줍은” 행동이라고 볼 수는 없다.

 

어쨌든 수 많은 종을 비교해 보았을 때 부모 투자(parental investment)를 더 많이 하는 쪽이 성교 여부를 결정할 때 더 까다로운 것은 보편적인 패턴이다. 이것은 수컷이 부모 투자를 더 많이 하는 종의 경우 수컷이 오히려 더 까다롭다는 점에 의해서도 잘 드러난다.

 

물론 영장류 중에는 일반 침팬지(common chimpanzee)와 보노보(bonobo chimpanzee)처럼 엄마-아들 사이와 같은 가까운 친족만 아니면 거의 언제나 성교 요구에 OK인 종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보통 성교를 제안하는 쪽은 수컷(더 정확히 말하면 부모 투자를 적게 하는 쪽)이며 성교의 대가로 무언가를 제공하는 쪽도 보통 수컷이다.

 

게다가 『A Natural History of Rape』에서 제기한 강간의 적응 가설과 부산물 가설은 인간에 대한 가설이지 침팬지에 대한 가설이 아니다. 인간은 침팬지가 아니다. 따라서 인간에 대한 가설에 대해 살펴볼 때에는 침팬지보다는 인간에게 집중해야 한다.

 

 

 

 

 

인간 진화에 대한 몰이해
 

For example, he notes that among species where there is active paternal involvement and dual provisioning of young, there is also limited physical sexual dimorphism. Notably, human evolution shows a pattern whereby sexual dimorphism decreased significantly. (Cheryl Brown Travis, 22쪽)

 

수컷이 암컷만큼 자식을 돌보는 일부일처제에 가까울수록 암수의 차이가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갈매기와 긴팔유인원(gibbon, 긴팔원숭이)이 대표적인 예다. 반면 하렘(harem) 체제나 렉(lek) 체제처럼 수컷이 정자를 제공하는 것 말고 자식을 위해 거의 하는 일이 없는 종의 경우 암수의 차이가 매우 크다. 바다 코끼리처럼 수컷이 암컷에 비해 훨씬 큰 종도 있고 공작처럼 수컷이 암컷에 비해 훨씬 화려한 종도 있다.

 

인간의 경우는 어떤가? 우리 조상들이 화석들에 따르면, 침팬지와 인간이 갈라진 이후 지난 약 6백 만년 동안 남자와 여자의 신체 크기 차이는 줄어들었다. 인간이 일부일처제를 향한 방향으로 진화하면서 차이가 줄어든 듯하다. 하지만 성적 이형질(sexual dimorphism)이 줄어들었다고 이야기하기는 힘들 것 같다. 왜냐하면 표현형에는 신체 크기 말고도 온갖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젖가슴의 경우 남녀의 차이가 벌어진 것 같다. 암컷 침팬지의 경우 젖을 먹이지 않을 때에는 젖가슴이 별로 두드러지지 않는 반면 인간 여자의 경우에는 젖을 먹이지 않을 때에도 젖가슴이 상당히 크다. 현생 인류의 경우 체모의 경우에도 큰 차이가 있다. 남자만 수염이 난다. 목소리도 남녀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있다. 6백만 년 전에 우리 조상들의 모습이 어땠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 세 가지 표현형의 경우 암수의 차이가 더 벌어진 듯하다.

 

 

 

 

 

빈 서판론
 

Intentional actions, such as rape, cannot be separated from the contexts in which they occur. The understanding, meaning, and significance accorded actions are derived not from biological features, but from society and culture. (Cheryl Brown Travis, 22쪽)

 

“생물학적인 특성들이 아니라 사회나 문화로부터(not from biological features, but from society and culture)”라는 구절은 빈 서판론자들의 편협한 생각을 잘 반영하고 있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생물학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 서판론자들은 진화 심리학자들이 사회적인 것을 무시한다고 누명을 씌우고 있다. 반면 빈 서판론자들은 생물학적인 것을 무시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주장할 때가 많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균형을 잘 맞추고 있다고 자랑한다.

 

 

 

2010-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