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즘 교학사 교과서 문제를 계기로 민족주의에 대한 논의가 다시 활기를 띄는 것 같다. 당장 아크로와 스카이넷 담벼락에선 그런 관점에서 이야기가 있었고.

지역이나 민족이나 인종은 가장 큰 특징이 스스로 선택불가능한 단위라는 것이다. 이런 선택 불가능한 단위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고 그걸 기반으로 어떤 주장이 이루어지는 것은 동일한 맥락이다.

물론 이게 긍정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기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보통 내부의 모순을 외부의 모순으로 돌려막기 하는 수단으로 악용[내부지배이데올로기]되거나 거기서 더 나아가 다른 지역 다른 민족 다른 인종을 (억압적으로) 통치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외부지배이데올로기]로 기능하는게 일반적이다. 이것을 지배이데올로기로 부르자.

이것과 달리 사상이나 종교라는 것 역시 또 다른 의미의 지배이데올로기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사상으로써의 자유민주주의 역시 그 범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파시즘과 다른 것은 선택가능성의 측면일 것이다. 그런데 이 사상을 (합리적 절차와 합의 과정이 생략된채 정권유지의 수단을 위한) 처벌의 대상을 한다면 자유민주주의 역시 파시즘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선택가능성의 차단이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 전두환시기가 바로 이와 유사하다. 그들은 겉으론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웠지만 실상은 파시즘의 한 형태였다고 볼 수 있다. 거기다 영남이라는 지역단위를 근거로 했기 때문에 우리는 지역적 패권주의 또는 파시즘적인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부분적으로 영남의 상층부는 파시즘적인 측면을 기타 나머지는 패권주의적인 측면을 내면화 했다고 볼 수 있다. 박정희 반신반인론이나 조갑제류의 영웅사관은 이것과 연결되어 있다.

마르크스-스탈린으로 대표되는 공산주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주장하면서 사상의 선택가능성을 부정했고 그 결과 민족을 기반으로 하는 지배이데올로기와 비슷해져버렸다. 종교 역시 한때는 지배이데올로기로 기능했지만 근대사회는 종교의 지배이데올로기 기능을 부정하면서 시작했다. 종교가 지배이데올로기로 기능할때 그 지배이데올로기적 폭력성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임을 역사는 잘 보여주었다. 종교전쟁[외부지배이데올로기]이나 마녀사냥[내부지배이데올로기]은 이런 측면을 잘 보여준다. 사상이나 종교가 부분적 선택가능성을 말살할때 그것은 민족을 기반으로 하는 파시즘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교학사 교과서가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측면에서 사실적 검토가 선행될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이 레퍼런스로 언급한 수준자체가 너무 떨어지기 때문에 사실 이것만으로도 교과서로서 부적절한 측면만 있음을 언급하기로 한다. 암튼 교학사 교과서에 자체에 대해서는 다음에 언급하기로 하고 우선은 뉴라이트 진영의 식근론 자체가 내포하는 문제점을 생각해보기로 한다.

우선 그들의 이론체계가 맑스진영의 민족담론 부정과 근대화 긍정이라는 측면이 있음을 언급할 수 있겠다.(원래 맑스이론은 근대성의 한 형태인 합리주의 자체를 긍정한다.)

하지만 그들은 맑스진영이 가지는 근대화의 일면인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거세함으로써 그것을 우파진영의 이론으로 둔갑시켰다. 물론 나는 맑스이론의 경제학적 측면을 인정하지는 않지만 그들이 자본주의에 대한 가지는 문제의식에는 공감한다. 따라서 문제의식까지 거세하려는 그들의 시도에 대해 깊은 우려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지역 민족 인종이라는 단위 나아가 종교 사상 자체를 아에 부정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민족에서 혈통주의는 부정을 할 수 있다하더라도 문화적 정서적 공감대로서의 민족은 부정한다고 부정되는게 아니라는 측면이 있다. 맑스진영의 식근론이 가지는 문제점은 바로 이런 것일 것이다. 그것은 부정되어야 할 게 아니라 승화되어야 할 대상이라는 것이다. 종교 역시 종교현상자체를 부정하는게 아니라 종교가 지배이데올로기화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정치영역에서 축출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탈민족주의나 포스트민족주의는 민족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기반으로 해야지 민족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그 한계가 있다고 보며 그것 자체가 하나의 사상적 구조물일 뿐인 한계가 있음을 봐야 한다.

그러면 식민지제국주의는 어떤 지배이데올로기에 기반하고 있었을까? 식민지제국주의 자체가 인종주의(+민족주의) 지배이데올로기와 사상적 지배이데올로기를 적절히 혼합한 형태임을 염두해 둘 필요가 있다.

이러한 식민지제국주의가 가지는 인종주의 지배이데올로기는 오늘날 사실 더 이상 유지되기 힘든 정치적 기반위에 있다. 하지만 그게 사라졌다고는 보지 않는다. 다만 정치적 힘을 잃었을 뿐이다. 민족주의는 어떠한가? 일본이나 이런 나라에서는 모를까 서구는 좀 상황이 다르다. 이런 복잡한 상태에서 일본의 식민지배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으로서 민족담론이 가지는 위상이 어느정도는 재설정될 필요성은 있는 듯 싶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중국과 일본의 민족주의가 부상하는 가운데 민족담론의 부정은 매우 힘든 과정이 될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식근론은 근대화담론(사상적 지배이데올로기)으로 민족담론(민족주의 지배이데올로기)을 억압하려는 독특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 즉 민족이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고(특히 조선후기 지배층의 무능을 부각시킨다) 근대화 여부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그런데 이것은 장면 정부의 무능을 부각시키면서 동시에 박정희 정권의 경제발전을 강조하는 논법과 매우 닮아 있다.) 일본 역시 자신의 식민지배로 인해 조선이 근대화 되지 않았는냐를 항변하고 있고.

하지만 식민지제국주의가 가지는 사상적 지배이데올로기로서 근대화자체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서 문제의식이 존재할 수 있고 인종주의적(민족주의적)지배이데올로기에는 그 자체로서 문제의식이 있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일본제국주의에 대해 사회주의 진영과 민족 진영이 이 역할을 각각 수행해 왔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흔이 이 대표적 인물로써 여운형과 김구를 들고 있고 나아가 신간회운동이나 좌우합작운동이 그런 측면이 있다.

그런데 식근론은 근대화라는 사상적 지배이데올로기로 민족이라는 지배이데올로기를 공격하는 참 이상한 구조라는 것이다. 마치 17세기 근대화로 종교를 공격했듯이. 애시당초 좌파에서 잉태된 식근론 자체가 계급으로 민족을 공격하는 형태라서 그런지 모르겠다.

우리는 여기서 계급독재론과 비슷한 논조를 근대화론에서 볼 수 있다. 근대화 특히 자본주의 자체에 대해 어떤 의미의 불가침의 신성의 영역으로 설정하려는 새로운 파시즘의 형태의 가능성 말이다.

2.

저번에 이야기했듯이 식근론은 근대화담론을 통해 민족 담론을 공격하면서 자신들이 무슨 대단한 성취라도 이룬듯이 뻐기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하지만 우리는 근대화 자체에서 그 수준차이와 그 진행과정의 폭압성의 측면을 봐야 한다.

일본이 받아 들인 근대화(이걸 박정희 역시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서구 여러 나라의 근대화 과정에서 가장 수준이 떨어지는 독일의 근대화를 고대로 받아들인 한마디로 후진 근대화라고 할 수 있다.

즉 근대화 자체의 수준이 열라 떨어진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임에도 근대화 담론이 마치 민족 담론보다는 더 근사한 것처럼 포장해서 그 당시의 근대화를 찬양하는데 이것이야말로 너무나도 아전인수식 해석에 다름 아니다

오히려 민족 담론 자체에 있어서도 패권적인 나아가 파시즘적인 민족담론을 공유하는 일본과 서구열강에 맞서 그에 대한 대항논리로서의 저항적 민족담론 자체가 있었음을 부정해서는 안된다. 전자는 권력적 지배와 억압을 그 본질로 하지만 후자는 대등한 관계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근대화 담론과 민족 담론 개개의 수준에서 그 타당성을 검토해야지 근대화 담론으로 민족 담론의 문제을 겨냥하는 것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파시즘적인 민족담론은 뒤로 감추고(나아가 후진 근대화 담론의 성격까지 왜곡하면서) 대신 저항적 민족담론만을 공격하는 것은 후안무치한 형태라 아니할 수 없다

이러한 관계는 박정희 담론에서도 그대로 리바이벌 된다.

그리고 근대화 담론과정에서 이승만이나 박정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중에 대다수는 보다 더 수준있는 근대화를 원했을 뿐 근대화자체를 부정하지도 않았고 나아가 마르크스주의를 추종하는 사람들 조차도 근대화 중에 자본주의를 부정했지 근대화의 핵심요소인 합리주의 자체를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마치 근대화 담론의 논의에서 이승만과 박정희 반대편에 있었던 사람들을 싸그리 종북으로 몰아붙이는 것이야말로 논리구조의 파탄이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일제시대에도 고종이 사망한 이후 3.1운동의 대의 자체가 공화국의 수립을 지향했다는 점에서 근대화를 부정한게 아니고 일본의 폭압적 근대화 즉 독일식 덜떨어진 근대화를 부정했을 뿐이다

민족 담론에서도 일제시대 그들이 추구했던 패권적 나아가 파시즘적 민족 담론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저항적 민족 담론으로 대항했을 뿐이다

따라서 폭압적 근대화 담론을 가지고 저항적 민족 담론을 공격하는 행태는 전혀 이치에 맞지도 않고 논리구조의 일관성 자체를 결여한 잘못된 공격에 해당되는 것이며 그들의 후안무치를 감추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술책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근대화 담론 자체에 보다 선진적인 근대화를 추구하는 열망과 후진적인 독일식 근대화를 추구하는 열망이 대립했고(특히 3.1운동 이후) 나아가 민족담론 자체에서도 일본과 서구식의 제국주의 파시즘적인 민족담론과 반대로 그에 대한 저항적 민족담론이 공존했다.

근대화 담론 자체의 2가지 이슈와 민족 담론 2가 이슈 중에 각각 어느 것이 더 우리에게 합당하는지가 논의되지 않은채 단지 후진 근대화 담론으로 저항적 민족 담론을 공격하는 것은 그 자체로 논리의 파산이다.

오히려 후진 근대화 담론이 가지는 포악성은 민족 담론의 고유의 파시즘적인 포악성에 거의 다름 아니라고 볼때 저항적 민족 담론은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