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에서인가에서 미국 TED를 본딴 강의를 하는 것을 몇 번 보았다. 제목인 I am 뭔 것 같았는데.

몇 개는 참 재미있게 보았다. 어떤 것은 좀 의아하게도 보았는데 그 중에서 강신주의
<자본주의> 특강이 있다.  재방송 포함하여 두어 번을 보았다. 그의 강연 내용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그 이유 중 한가지는 내가 새롭게 배울 지식(또는 사실)이 그닥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강연 특징은 당위론과 자기류적인 도덕론에 바탕을 두고 있어서, 감성적인 아줌마들에게는
좀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같이 까진 사람에게는 좀 답답해 보인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집 긴급과제인
아이들 교육문제에 있어서 그의 주장은 전혀 와닿지 않는, 한심한 일반론으로 느껴졌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한다.

 

"여러분, 여러분은 집의 아이들이 공부 잘하기를 바라죠 ? "
"공부 잘 하는 아이 더 좋아하죠 ? 더 이쁘죠 ? 그렇죠"
"그게 결국은 뭔가요 ? 돈 많이 벌어라는 거죠.  나중에 돈 많이 벌게 해주려고

학원에도 보내고, 좋은 옷도 입히고.....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자식을 돈버는 기계로

생각하고 있는거죠.  그러니까 더 이뻐해주고 아끼고 투자를 하는 것이죠.

왜냐하면 우리는 자본주의에 살고 있으니까요.   안그래요."      (카메라는 심각한 얼굴의 방청객을 비춤)

  

이런 wording의 이야기를 한 기억이 난다.

모든 사회문제의 근원을 자본주의적 물질주의로 투사하고 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참으로 피상적인 관찰이다.

돈을 많이 벌면 좋지만 이는 그야말로 과도한 일반화다. 그의 강의는 이런
과도한 일반화와 극단의 예로 포장되어 있어, 어떤 때는 대형개신교 목사의 설교같은 느낌을 받는다.
청취자로 하여금 생각과 비판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극단의 단정적인 주장과 자극적인 예를 이용한
마술쑈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집 아이들은 정기적으로 당원교육(?)을 받는다. 특히 내가 한 잔 하고 오면 심화과정이 바로 시작된다.
아이들과 하는 교리문답은 이렇게 시작한다.
"젊을 때, 왜 공부를 열심히 해야하는가 ? "  이 질문에 대한 아이들의 답은 아래와 같아야 한다.

 

"예, 남에게 무시 당하지 않으려면 열심히 공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

 

내가 없는 미래에 우리 아이들이 돈을 잘 벌지 못하는 것은 큰 걱정 안하지만,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남들에게 무시당하고 천대받는 것을 상상하면 무척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이런 교리문답을 만들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교양없고 무식하여 돌아서서 수군거림 당하는 사람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극단의 공산주의, 전체주의, 왕권 사회에서도 사람들은 그 시대가 규정한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그것은 자본주의 공산주의와 같은 경제체제의 문제가 아니라, 그 보다 더 근원적인 권력에 대한
것이 아닌가 한다. 나름 공부 열심히하고 잘하면,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고
무시당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후자가 더 큰 이유라고 한다.
넓게 말하면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는 것이 세속에서 가장 중요한 자기 방어책이 된다. 이건 체제와는 독립적인
문제다. 어느 시대나 신묘한 경지에 이른 악사나 화공, 점쟁이 등은 남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살았음이
시대와 독립적인 공부의 필요성을 보여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현학적인 라틴어 어원풀이로 시간 때우는 한심한 강단 철학자도 싫어하지만, 부흥회 스타일의 방송용 철학자은 더 싫다.
80년대 유안진류의 철학과 지금 팔리는 철학자와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다. 내가 대형교회 목사들의
복음주의적 설교를 경멸하는 이유는 그것이 어떤 갈등적 상황에 도움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여성의
말에 의하면 "그런 위기의 순간에 기도를 하면 답이 받는다"고 하는데, 글쎄 그런 잘 모르겠다. 내가 그 수준은 아니니
그런데 내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그런 자기류적이며 극단의 유심론적인 해법은 결국 자기 욕심의 합리화 과정중
일부가 아닌가 한다. 요즘 지지고 볶은 사랑의 교회나 순복움교회에서 싸우는 두 집단의 기도에 각각 다른 답을
신이 줄 가능성은 별러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론1:   <강신주>류의  철학은 갈등상황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싸구려 <현수막> 이론이다.
 결론2:  문제해결에 실천적 방안을 제시해주지 못하는 일체의 이론은 개인적인 중얼거림과 다르지 않다.

 

 
오늘 트위터에서 강신주가 한 노숙자 이야기가 시끄러워 생각나는대로 한번 씨부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