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짬짬이 - 사실은 짬짬이 일했음^ ^- 결국 리얼진보를 모두 읽었습니다. 제가 땡땡이의 대가이긴 하지만 요즘 일이 몰린 지라 제대로된 서평은 힘들겠고 그냥 떠오르는 단상 몇가지로 여러분과 생각을 나누고 싶어요.

다 읽은 첫소감을 말하라면 안타깝게도 진보 진영에 대한 제 선입견은 깨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 선입견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크게 1) 당위에 집착한다 2)환원론적이다 3)엘리트주의적이다 4)자본주의에 대한 인식이 얕다 정도를 들고 싶습니다. 물론 제 선입견은 그야말로 선입견일 수 있겠지요. 부디 그러기 바랍니다.

물론 제가 감명 받은 챕터들도 없지 않았습니다. 제가 무지한 탓이겠지만 처음 접한 '사회 임금'이란 개념도 좋았고 복지 재정 확보를 위한 증세 부분도 나름대로 진보 진영의 고민이 심화되었다는 증거를 본 듯하여 반가왔습니다. 또 적색과 녹색의 조화(?) 혹은 딜레마를 다룬 글도 단지 진보 진영만이 아니라 모두 모색해야할 지점이란 생각을 하기도 했지요. 뜻밖의 수확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진보 정책이라기보다 진보 진영에 보내는 고언으로 보이지만 정당 리더쉽을 다룬 박상훈씨의 글은 막연한 구호와 관념만이 횡행하는 민주 개혁 진영 사람들도 꼭 읽어야 한다고 추천하고 싶습니다. (아직도 분당이 옳았다고 주장하는 분들은 특히!)

반면 읽으며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글들도 있었지요. 대학 평준화를 주장하는 챕터가 그랬습니다. 대학 평준화 정책 자체보다 그 정책을 제시하는 기본 인식이 저를 짜증나게 하더군요. 대학 서열화로 말미암아 국민들이 무뇌 상태에 빠져있다라... 그러면 그 체제 하에 있는 진보진영은 왜 무뇌가 되지 않았을까요? 거기에 예상되는 현실의 부작용에 대해 '대학 평준화되면 국민들이 무뇌 상태에서 깨어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구절을 접할 땐 모골이 송연해질 지경이었지요. 그렇게 막연한 그림으로 대학 제도를 바꾸어도 좋은 걸까요? 더 나아가 바꾸었는데도 사람들의 사고나 행동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 결과 현실의 엄청난 부작용을 직면하게 된다면 진보 진영은 어떤 해법을 내놓을 수 있을까요?

사실 우린 '인간의 의식은 제도로 구성된다'와 '그러므로 그 모순을 간파한 소수의 지도가 필요하다'는 두 테제로 뭉친 좌파 정당들이 집권 이후 어떤 비극을 탄생시켰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아마 그들도 소수였을 땐 인민을 향한 자신들의 선의를 믿어의심치 않았을 겁니다. 그렇지만 집권 이후에도 자신들의 선의대로 인민이 움직이지 않았을 때 그들은 결국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가지고 올 수 밖에 없었지요.

현실 자체보다 당위에 집착하는 태도는 그 챕터 외에도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가령 목수정씨가 제시하는 문화 정책들도 제 눈엔 모두 의문 투성이였습니다. 목수정씨는 스크린 할당제를 실시하여 특정 영화가 스크린을 독점하는 현상을 방지하자고 합니다. 더 나아가 곳곳에 독립 영화 상영을 의무화하자고 합니다.

글쎄요. 역시 당위가 앞서지요. 거기에 상업 영화는 악, 독립 영화는 선이란 이분법의 자취도 느낍니다. 더 큰 문제는 현실 자체를 무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선 스크린 독과점 방지나 할당제 모두 재원을 필요로 합니다. 관객이 들지 않는 영화도 의무적으로 상영해야 한다면 당연히 극장 수익률은 떨어집니다. 정부가 지원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극장들은 문을 닫겠지요. (이를 들어 자본의 파업이라 칭한다면 전 더 할 말 없습니다.) 이를 막으려면 결국 정부는 극장의 수익률을 보장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정부가 수익을 보장해주는 극장 사업은 그야말로 땅짚고 헤엄치기지요. 너도 나도 뛰어들 겁니다. 이를 어떻게 방지할까요? 정부가 자격 심사해서 일부에게 특혜를 주는 방식으로 해결할까요?

아마 방법은 있겠지요. 제가 더 큰 문제라고 보는건 자본과 관련된 것은 허위나 비인간적이라고 보는 태도입니다. 진보 진영은 독립 영화들이 관객들에게 외면받는건 극장들이 상업성만을 따져 상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는 듯 합니다. 제가 보기에 이는 현실을 완전히 무시하는 인식입니다. 극장들이 독립영화를 상영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관객들이 잘 선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독립 영화지요. 메이저의 독점 현상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 메이저들도 시장 논리를 이기지는 못합니다. 간단히 말해 독립 영화가 충분히 채산성을 보장해준다면 당연히 메이저들은 독립 영화에도 뛰어듭니다. 이 점은 우리가 독립 영화의 정의만 살펴봐도 쉽게 알 수 있어요. 즉 독립 영화 자체가 시장으로부터의 독립을 지향하는 영화입니다. 그런데 그 영화들을 강제로 시장에 편입하면 관객들이 즐기게 될 거라는 생각은 모순이지요.

이는 역사적으로도 증명됩니다. 에이젠쉬체인의 영화는 소비에트 체제하에서도 인민들에게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헐리웃 스타일이 인기를 끌었지요. 

글이 대책없이 길어지는군요. 쩝. 빨리 끝내고 일 마무리 해야 하는데.

위의 사례들이 현실을 무시했다면 박노자씨의 글 같은 경우는 어떤 종교성이 느껴져서 속으로 웃었습니다. 사실 박노자씨 글을 좋아합니다. 우리 사회가 보다 더 건강하고 다양해지기 위해 꼭 필요한 주장이지요. 그렇지만 전 박노자씨 같은 입장은 운명적으로 영원한 비주류에 머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필요한 당위이되 현실의 체제나 제도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종교의 이상이 결코 현실에서 구현될 수 없는 것처럼. 그러나 어떤 종교인들은 이 사회에 꼭 필요한 것처럼.

김상봉씨를 비롯한 몇몇 저자들의 글도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다만,

제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긴 자본에 대한 구절들이 모두 피상적이라는 점입니다. 저자들 모두(박상훈씨는 제외될 듯) 너무나 당연한 듯이 '자본으로부터의 해방'을 이야기합니다. 제 지식이 얕아서인지는 몰라도 전 저 개념을 책을 덮을때까지 이해할 수 없더군요. 뭘 뜻하는 것인지요? 사민주의를 말하는 것인지요? 그렇다면 자본에 대한 적절한 규제 정도로 써야하지 않을까요? 아니면 개인적 소유는 인정하되 생산 수단은 사회화하겠다는 것인지요? 그 경우 현실의 구체적인 상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요? 사회주의의 수정판은 아닌지요?

그외 제가 얻은 소득은 민주 노동당의 분리 이유가 당순히 종북주의만이 아니라 노조에 기대는 조직운영에 대한 차이도 알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말은 좋게 느껴지지만 현실에선 어떻게 당 조직을 강화하고 지지세를 확보할지 의문이더군요. 풀뿌리 조직을 강화하자는 모토를 내걸고 있지만 글쎄요. 책 전체에서 '한국 현실에 존재하는 수많은 계층과 계급, 지역간의 갈등 조정'에 대해 그리 깊은 고민을 찾아 볼 수 없었던 전 과연 풀뿌리에서 발생하는 문제와 갈등을 어떻게 극복하고 전국적으로 집권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스러웠지만 이 점은 제가 정당 조직이나 활동에 대해 잘 모르는 탓이라 여기렵니다. 아무쪼록 진보 진영의 성장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