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을 읽은 사람들이 제기하는 비판들 중 두 가지 종류가 가장 많았던 것 같다. 하나는 진화 심리학 자체에 대한 거부감에서 나오는 비판이고 다른 하나는 출처(reference, 참고문헌) 문제에 대한 지적이다. 첫째 비판은 진화 심리학을 향하고, 둘째 비판은 이덕하라는 글쓴이를 향한다. 내가 출처를 제대로 인용하지 않는다고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다.

 

아마추어로서 가볍게 글을 쓴다면 굳이 출처를 제시하지 않아도 큰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쓰는 사람도 큰 부담 없이 쓰고 읽는 사람도 큰 무게를 두지 않고 읽으면서 서로 토론하면 그만이다. 나는 그냥 취미로 기타를 치고 있는데 악보대로 정확히 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사실 악보의 어떤 부분은 정확히 해석하지도 못한다. 이런 나를 두고 비난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전문 기타리스트가 아니라 그냥 취미로 기타를 치기 때문이다.

 

반면 나는 진화 심리학을 취미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전문가가 되고자 한다. 그리고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이미 전문가 수준에 도달했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내가 출처를 제시하지 않았다는 비판은 정당하다. 이것에 대해 나는 한 번도 부정한 적이 없다.

 

물론 내가 쓰는 글 모두를 전문적 수준까지 끌어올릴 생각은 없다. 나는 온갖 주제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며 그 중 일부는 내가 기타를 치듯이 취미 수준에 만족할 것이다. 내가 전문적 수준의 글을 쓰고자 하는 주제는 <진화 심리학의 이론적 기초>, <진화 윤리학>, <다윈주의적 공산주의>. 이런 주제가 아니라면 설사 진화 심리학에 대한 내용이라 할지라도 상당히 가볍게 쓸 때가 있다. 예컨대 하이힐의 진화 심리학과 같은 것을 다룬 글이 그렇다. 이런 글에 대해 출처를 요구할 때에 나는 때로는 그냥 취미로 쓴 글이니까 가볍게 읽어 보시라라는 식으로 답할 것이다.

 

나는 인터넷에 올린 글에서 출처를 제시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구체적으로 출처를 요구할 때에도 거부한 적이 여러 번 있다. 그 이유는 대체로 두 가지 때문이었다. 어떤 경우에는 내가 어느 책 또는 어느 논문의 어디에서 읽었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독자가 요구한 출처를 뒤지기 위해 한 시간 이상 투자하는 것은 나에게 너무 큰 부담이다.

 

또 다른 경우에는 짜증이 났기 때문이다. 나는 인터넷에서 토론을 할 때 계속 토론할 사람상종하지 말아야 할 인간을 구분하는 경향이 있다. 인터넷에서는 온갖 사람들이 글을 쓰고 있으며 그 중에는 구제불능인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당신과는 앞으로 토론할 생각이 없습니다라고 밝힌 경우가 많다. 진화 심리학에 대해서는 쥐뿔도 모르는 사람이 터무니 없이 나의 글을 비판하면서 나를 가르치려고 드는 사람이라고 느낄 때 나는 더 이상 그런 사람과 토론하지 않으려고 한다. 지금까지 경험을 볼 때 내가 너무 성급하게 상종하지 말아야 할 인간으로 낙인 찍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내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깨달으면 그런 낙인을 나중에 지운다) 그런 낙인은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주제에 대한 세 권의 두꺼운 책을 준비하고 있다. 나는 우선 초고를 다 쓴 다음에 출처 문제를 맨 나중에 해결하려고 했다. 그것이 가장 효율적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어떤 분이 출처를 평소에 잘 관리해서 되도록 초고일 때부터 제시하는 버릇을 들이라는 충고를 해 주셨는데 그것이 옳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http://www.mozilla.or.kr/ko/ 에서 모질라를 깔고 모질라에서 http://www.zotero.org/ 를 띄워서 출처 관리 프로그램을 깔았다. 되도록 평소에 출처 관리를 할 생각이지만 얼마나 실천할 수 있을지는 자신이 별로 없다. 가방끈이 짧아서 이런 방면으로는 경험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내가 지금부터 성실히 평소에 출처를 관리한다고 하더라도 1년 정도 후에나 효과가 나타날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출처도 없는 글을 뭐 하러 인터넷에 올리느냐고 핀잔을 준다. 출처도 없는 글은 별로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나의 글을 널리 알리기 위해 그리고 여러 가지 비판을 받기 위해 글을 올리고 있다. 그리고 나의 글이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나의 글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한국어권 인터넷에서 나의 글만큼 깊이 있고 정확하게 진화 심리학을 다룬 글이 얼마나 많다고 생각하는지를. 나는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진화 심리학 문헌이 엄청나게 한국어로 번역되었지만 대부분 대중서이며 그나마도 거의 대부분 번역이 상당히 나쁘다. 나는 한국의 프로이트 번역과 진화 심리학 번역에 대해서는 한 마디 할 만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http://cafe.daum.net/Psychoanalyse <번역 비판> 게시판에 모아 놓은 내 번역 비판 작업을 보라). 즉 한국어로 읽을 만한 제대로 된 진화 심리학 문헌이 그리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많이 부족하더라도 나의 글이 상대적으로 쓸모가 있다는 얘기다.

 

학술적인 글은 여러 가지 요소들로 이루어진다. 아이디어, 논리, 관찰이나 실험 결과, 학계 동향에 대한 전반적 평가 등.

 

아이디어나 논리의 경우 출처가 필요 없다. 수학 정리(theorem) 증명의 경우가 그렇다. 증명 과정을 충실히 보여주기만 하면 누가 처음 증명을 했는지 출처를 제시하지 않아도 증명의 유효성을 평가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다만 학술적 특허권과 표절 문제가 발생할 수는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런 면을 다룰 때 (어디에서 본 내용일 때에 출처를 제시하는 대신) 책에서 본 기억이 없을 때 나는 이런 내용을 어디에서 읽은 기억이 없다. 이것은 내가 생각해낸 아이디어인 듯하다는 식으로 밝히고 있다.

 

관찰이나 실험 결과를 언급할 때에 출처는 필수다. 이런 면을 다룰 때 내가 출처를 제시하지 않은 것은 정당화의 여지가 전혀 없다. 나는 초고니까 기다려 달라고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을 뿐이다.

 

학계 동향의 문제에 대해서는 출처로 해결되기 힘들다. 예컨대 진화 심리학자들 다수는 이렇게 믿는다는 식의 평가가 그렇다. 이것을 출처를 댐으로써 제대로 해결하려면 진화 심리학자들의 온갖 의견들을 거의 몽땅 소개하는 검토 논문(review paper)을 써야 할 것이다. 사실 그런 검토 논문을 쓴다 하더라도 어떤 것이 다수의 의견인지 확실히 보여주기 어렵다. 상세한 검토 논문이 있다면 그것을 인용하면 되겠지만 항상 그런 논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이럴 때 저명한 진화 심리학자의 권위에 의존하는 방법이 있긴 하다. 예컨대 “Tooby & Cosmides ****라는 논문에서 쓴 바에 따르면 진화 심리학자들 다수는 이렇게 믿는다고 한다라는 식으로 인용할 수는 있을 것이다.

 

내가 진화 심리학자들 다수는 이렇게 믿는다라는 식으로 쓴 것을 보고 나의 믿음과 진화 심리학자들 다수의 믿음을 혼동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진화 심리학자들 다수의 믿음과 충돌하는 이야기를 할 때도 꽤 있다. 예컨대 진화 심리학자들 다수는 이렇게 믿는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는 식으로 쓴 구절도 여러 군데 있다. 내가 좋아하는 Tooby & Cosmides의 의견이 진화 심리학계에서 절대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아니다. 아주 많은 진화 심리학자들이 그들의 대량 모듈성(massive modularity) 테제를 비롯한 온갖 주장들을 거부한다.

 

내가 앞으로도 결코 출처를 제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예컨대 http://theacro.com/zbxe/?document_srl=121366 를 보기 바란다. 나는 그 글에서 프로이트를 비판하기 위해 프로이트의 글과 프로이트 비판자들의 글을 상당히 많이 인용했다.

 

다만 나의 출처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인내심을 많이 발휘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나는 <진화 심리학의 이론적 기초> 5~10년 동안 쓸 생각으로 쓰기 시작했다. <진화 윤리학> <다윈주의적 공산주의>를 다룬 책의 경우에는 우선 순위가 <진화 심리학의 이론적 기초> 다음으로 밀려난 상태다. 게다가 내가 지금까지 평소에 출처 정리를 하지 않았다는 점과 나의 짧은 가방끈(대학원에서 하는 훈련 중 하나가 출처 관리와 인용 기술이다)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