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선택이 일어난다는 명제
 

자연 선택 이론이 동어반복(tautology)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이런 비판이 정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왜 그들이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지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자연 선택 이론에는 너무나 뻔한 측면이 있다. 너무 뻔해서 뭔가 이상해 보일 정도다.

 

자연 선택의 핵심 논리는 이렇다. 어떤 표현형에 변이가 있다고 하자. 그리고 그 변이 때문에 번식률에 차이가 생긴다고 하자. 그리고 그 변이가 적어도 부분적으로 유전된다고 하자. 그렇다면 자연 선택이 일어난다. 즉 세대가 거듭되면서 더 잘 번식할 수 있도록 하는 표현형의 빈도가 늘어난다.

 

이 논리를 유전자의 측면에서 서술하면 이렇다. 어떤 유전자 자리(locus)에 두 종류 이상의 대립유전자(allele)들이 있다고 하자. 그리고 각 대립유전자가 번식률에 서로 다른 식으로 영향을 끼친다고 하자. 그렇다면 자연 선택이 일어난다. 즉 세대가 거듭되면서 더 잘 번식할 수 있도록 하는 유전자의 빈도가 늘어난다(유전체내 갈등intragenomic conflict과 같은 골치 아픈 현상 등은 무시했다).

 

이것은 논리적 필연이다. 즉 너무나 뻔하다. 토마스 헉슬리가 “왜 이렇게 쉬운 것을 내가 생각해내지 못했을까?”라는 식으로 한탄했을 만하다.

 

 

 

 

 

자연 선택이 지속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명제
 

자연 선택이 몇 세대만 지속되다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면 생명의 진화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별로 흥미로운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다윈은 자연 선택이 끝없이 일어난다고 믿었다. 하지만 유전에 대한 그의 생각은 그런 믿음과 모순되는 측면이 있었으며 이미 당대에 그것을 지적한 사람이 있었다.

 

당시의 상식에 따르면 엄마의 피와 아빠의 피가 섞이면 중간 정도의 형질이 된다. ‘순수한’ 흑인의 피와 ‘순수한’ 백인의 피가 섞이면 피부색이 부모의 중간 정도가 되는 것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계속 섞여서 중간이 된다면 결국 여러 세대가 지난 다음에는 모두 똑같아진다. 변이가 사라지는 것이다. 수십 가지 색의 물감을 모두 섞으면 결국 하나의 색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변이가 사라지면 자연 선택도 없다.

 

멘델이 이 문제를 해결했다. 멘델이 발견한 바에 따르면 유전은 아날로그(analog)가 아니라 디지털(digital) 방식으로 일어난다. 따라서 세대를 거듭하더라도 모든 것이 중간 값으로 통일되지 않는다.

 

나중에 DNA가 발견되면서 그 디지털 방식의 형태까지 자세히 밝혀졌다. 그리고 새로운 변이가 생기는 메커니즘도 해명되었다. DNA의 자기 복제 과정에서 오류가 생기면서 돌연변이가 생기는 것이다. 또한 유성 생식을 하는 종의 경우에는 생식 세포를 만드는 과정에서 무작위로 뒤섞는 과정(crossover)을 거친다는 것도 밝혀졌다. 이렇게 무작위로 섞이다 보면 새로운 유전자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눈의 기묘함이 자연 선택의 결과라는 명제
 

“자연 선택이 일어난다”라는 명제와 “자연 선택이 강력하다”는 명제는 서로 다르다. 자연 선택이 일어나기는 하지만 별로 강력하지 않아서 눈과 같은 기묘한 구조를 만들어낼 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여기서 “기묘함”이라는 단어는 우연히 생겼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놀랍도록 정교하고 복잡해서 어떤 기능을 잘 행한다는 뜻이다. 예컨대 눈은 사물을 보는 기능을 놀랍도록 잘 수행하며 그 이유는 수정체, 각막, 홍채, 망막 등이 서로 잘 어울려 어떤 구조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창조론자 중에는 아예 진화와 자연 선택이 일어난다는 사실까지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어떤 창조론자들은 이것이 현대 자연 과학의 발견에 비추어 볼 때 너무 터무니 없다고 느낀다. 그들은 자연 선택이 일어난다는 것을 인정하는 대신 그 힘이 보잘것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에 따르면 신이 자연 선택의 방향을 인도해주지 않았다면 눈과 같은 놀라운 구조는 진화할 수 없었다. 즉 눈의 기묘함의 기원은 자연 선택이 아니라 신이다.

 

이에 대해 진화 생물학자들은 어떻게 반박하는가? 내가 아는 바에 따르면 반박하지 못한다. 그들은 그냥 신이 없다고 우길 뿐이다. 아직까지 눈의 기묘함에 대한 설명으로 제시된 것으로는 자연 선택과 신 밖에 없다. 외계인을 끌어들여 설명하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외계인의 지능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설명할 때 결국 자연 선택이 아니면 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서 결국 둘 중 하나로 귀결된다.

 

진화 생물학자들이 자연 선택의 강력한 힘을 믿는 이유는 눈의 기묘함에 대한 설명으로 신 말고는 오직 자연 선택만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신을 믿지 않는다면 달리 설명할 길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자연 선택이 기묘함을 만들었다고 적어도 잠정적으로 결론 내리는 것이다.

 

 “신이 없으니 자연 선택이 강력하다”는 식의 논거를 넘어선 것을 나는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모든 기묘함이 자연 선택의 결과라는 명제
 

물론 여기서 “기묘함”이란 위에서 말했듯이 인간의 눈과 같은 성격의 기묘함을 말한다. 컴퓨터는 그 기묘한 구조 때문에 여러 가지 일을 잘 한다. 개미와 인간 사회 조직 역시 그런 측면이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쓸모 있는 도구와 인간 사회의 기묘한 측면이 결국 몽땅 자연 선택의 산물이라고 보는 입장이 있다. 자연 선택의 결과가 적응(adaptation)이기 때문에 이런 입장이 범적응론(pan-adaptationism) 또는 적응론(adaptationism, 적응주의)이라고 불리는 것은 별로 이상하지 않은 것 같다(참고로, “범적응론”과 “적응론”은 여러 의미로 쓰인다).

 

적응론자들은 “적응론”을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한다. 그들에 따르면 인간의 정신과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연 선택에 대한 이해가 필수다. 따라서 자연 선택의 결과인 적응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당연하다. 적응론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인간의 정신과 사회를 이해하는 데 있어 자연 선택이 별로 도움을 주지 못한다. 사회 자체의 논리를 따져야 한다.

 

모든 기묘함의 근원에는 자연 선택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상당히 집요한 환원론자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자연 선택으로 환원하려고 한다.

 

물론 모든 기묘함을 자연 선택에 직접 환원하지는 않는다. 즉 모든 기묘함이 적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콘돔은 임신을 막는 일을 잘 수행하는 잘 조직된 구조다. 이 구조가 자연 선택의 직접적 산물인 적응이라고 주장하는 진화론자는 사실상 없다. 즉 콘돔을 써서 번식을 억제했던 사람이 그러지 안았던 사람보다 더 잘 번식했기 때문에 콘돔이 자연 선택의 직접적인 결과로 진화했다고 보는 사람은 없다(이 문제에서 상당한 혼동을 보인 진화 심리학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여기서 콘돔이 인공물이라는 점은 중요하지 않다. 거미줄도 거미의 신체 밖에 있는 구조물이다. 하지만 다수의 진화 생물학자들은 거미줄이 자연 선택의 직접적 산물인 적응이라고 믿는다.

 

콘돔이나 컴퓨터가 적응이라고 보는 사람은 없지만 적응론자들은 그것이 자연 선택의 간접적 산물 즉 자연 선택의 부산물이라고 본다. 따라서 콘돔과 컴퓨터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결국 자연 선택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극단적인 적응론자라 하더라도 인간의 정신과 사회의 모든 측면을 자연 선택으로 설명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이 글에서 “기묘함”이라고 부른 측면만 자연 선택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눈의 예를 들어 보자. 눈에는 놀라운 기묘함 즉 지혜도 있지만 맹점과 같은 어리석음도 있다. 어떤 진화론자도 맹점이 있던 동물이 맹점이 없던 동물보다 더 잘 번식했기 때문에 맹점이 자연 선택의 결과로 진화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음의 글에서 상당히 극단적인 형태의 적응론을 펼치고 있다.

 

Daniel C. Dennett, 『Darwin's Dangerous Idea: Evolution and the Meanings of Life』

John Tooby & Leda Cosmides, 『The psychological foundations of culture(1992)』, http://www.psych.ucsb.edu/research/cep/papers/pfc92.pdf

 

 

 

2010-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