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언제 제일 먼저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손님은 왕이다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영어권에는 “The customer is always right”라는 말이 있다.

 

손님은 왕이다 (엔하위키)

링크

 

The customer is always right (Wikipedia)

http://en.wikipedia.org/wiki/The_customer_is_always_right

 

가게 주인이 손님의 비위를 맞추는 경향은 어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것 같다. 그 이유는 손님의 비위를 맞추어야 장사가 더 잘된다고 가게 주인이 믿기 때문일 것이다. 비위를 맞추느라 짜증이 나겠지만 장사가 잘 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득을 생각하면서 참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되면서 비위를 맞추느라 짜증이 나는 사람과 장사로 이득을 보는 사람 사이의 분업(?)이 어느 정도 정착했다.

 

노동자는 스트레스를 받아가면서 손님의 비위를 맞추며, 그렇게 해서 얻는 이득은 사장이 챙긴다.

 

장사가 잘 되면 결국 노동자도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이라는 문제가 있다.

 

공유지의 비극 (위키백과)

링크

 

Tragedy of the commons (Wikipedia)

http://en.wikipedia.org/wiki/Tragedy_of_the_commons

 

어느 서비스업 회사에 노동자의 수가 많다면 어떤 노동자 A가 손님의 비위를 맞추지 않아서 회사 전체에 끼치는 영향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 A의 입장에서는 손님의 비위를 맞추지 않는 것이 더 나은 전략일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은 회사에서 노동자를 감시하지도 통제하지도 않는다는 전제가 있을 때의 이야기다.

 

이런 이해관계의 충돌이 있기 때문에 자본가가 손님을 왕으로 모시도록 노동자를 교육하며, 감시하며, 통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이 글에서 “손님은 왕이다”라는 자본주의 사회의 상식에 도전하려고 한다. 그런 상식에 도전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도덕 철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당위의 영역, 도덕의 교권). 설사 손님을 왕으로 모시는 것이 장사에 도움이 된다 하더라도 노동자도 인간이기 때문에 노동자가 스트레스를 덜 받도록 해야 한다고 자본가를 설득하는 방법이 있다.

 

아니면 노동조합 차원에서 “손님은 왕이 아니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자본가와 맞서 싸우라고 노동자를 설득하는 방법도 있다.

 

둘째, 과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사실의 영역, 과학의 교권). 과연 손님을 왕으로 모시는 정책이 장사에 도움이 되는지, 손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으면 망할 가능성이 높아지는지 따져보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첫째 방법에 대해서는 더 이상 다루지 않겠다. 노동자의 인권을 위해 “손님은 왕이다”라는 정책에 도전하는 자본가나 노동자가 있다면 물론 나는 환영한다.

 

 

 

종업원의 인권을 희생하면서 손님의 비위를 맞추면 장사에 왜 도움이 되는 것일까?

 

가게 주인이나 종업원이 손님을 칭찬하는 일이 많다. 날씬하다느니, 예쁘다느니, 멋있다느니,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느니 온갖 아부를 다 한다. 이렇게 칭찬하는 이유는 손님의 기분이 좋아지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기분이 좋아지면 물건을 살 가능성도 높아지고 다음에 다시 그 가게를 찾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칭찬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일까? 이것을 설명할 때 진화 심리학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인간은 칭찬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지도록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한 그럴 듯한 가설도 있다. 칭찬을 받을 때 기분이 좋아지면 앞으로 칭찬 받을 일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면 우정 시장이나 짝짓기 시장에서 인기가 높아질 것이며 결국 번식에 도움이 된다. 나는 그럴 듯한 가설이라고 소개한 것이지 잘 검증되었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오해하지 말기를...

 

 

 

가게 주인이나 종업원이 손님보다 지위가 낮게 보이도록 행동하는 것도 보편적으로 보이는 패턴이다. 이것도 손님의 기분이 좋아지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지위가 높아지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일까? 여기에서도 진화 심리학이 개입할 수 있다. 인간은 지위가 높아지면 기분이 좋아지도록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도 그럴 듯한 가설이 있다. 지위가 높아질 때 기분이 좋아지면 앞으로 지위 상승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지위가 높아지면 우정 시장이나 짝짓기 시장에서 인기가 높아질 것이며 결국 번식에 도움이 된다.

 

 

 

이런 상상을 해 보자.

 

어떤 가게 B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손님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적혀 있다:

 

손님은 왕이 아닙니다.

 

종업원도 인간이며 인권이 존중되어야 합니다.

 

종업원에게 반말하지 마십시오. (나이 차이가 50세 이상인 경우에는 예외를 인정해 드립니다)

 

여러분의 가족, 친척, 친구 중에 서비스직에서 일하는 종업원이 없나요? 그분들의 인권이 중요하다면 이 가게에서 일하는 종업원의 인권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대한민국에서 그 가게 B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나는 위에서 칭찬, 지위와 관련하여 인간 본성 이야기를 했다. 만약 그런 나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 옳다면 그 가게 B에서는 손님을 칭찬하고 손님의 지위를 높임으로써 손님을 기분 좋게 하는 효과를 덜 볼 것이다. 이런 면에서 장사에 해를 끼칠 것이다.

 

 

 

하지만 인간 본성에는 그런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본성상 도덕적 동물인 것 같다. 인간은 도덕적 판단을 하고, 어느 정도는 양심적으로 행동하고, 남의 행동을 도덕에 비추어 판단하고 칭찬하거나 비난하도록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된 듯하다. 진화 윤리학은 이런 것을 다루는 분야다.

 

다음은 진화 윤리학 관련 서적들 중에서 추천하고 싶은 것들이다.

 

Good Natured: The Origins of Right and Wrong in Humans and Other Animals, Frans de Waal, 1996, 동물학에서 접근한 도덕성의 진화

 

Moral Minds, Marc Hauser, 2006, 촘스키 언어학에서 접근한 도덕성의 진화

 

Just Babies: The Origins of Good and Evil, Paul Bloom, 2013, 아기의 도덕 심리

 

Hauser의 경우에는 사기를 쳤다는 혐의를 받고 있기 때문에 좀 더 조심해서 읽어야 한다는 문제가 있긴 하다. 그래도 『Moral Minds』는 읽은 만한 책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In 2007, Harvard University announced an internal investigation of alleged scientific misconduct by Hauser. In August 2010, the investigators found him solely responsible for eight counts of misconduct, and he took a year's leave of absence. In July 2011, Hauser resigned his faculty position at Harvard, effective August 1, 2011.

http://en.wikipedia.org/wiki/Marc_Hauser

 

 

 

만약 인간이 선천적으로 도덕적인 존재라면 “우리 가게는 종업원의 인권을 존중합니다”라는 메시지가 장사에 도움이 될 가능성이 있다.

 

단순화해서 이야기하자면 칭찬, 지위와 관련된 인간의 선천적 심리는 “손님은 왕이다” 정책이 장사에 도움이 되도록 만들고, 도덕성과 관련된 인간의 선천적 심리는 “손님은 왕이 아니다” 정책이 장사에 도움이 되도록 만든다. 그렇다면 어떤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할까? 이런 것을 제대로 정량분석할 수 있다면 대박이겠지만 적어도 엄청나게 어려워 보인다. 그리고 문화권마다 다를 수 있다.

 

 

 

최근에 기업의 도덕성을 강조하는 광고가 조금씩 생기고 있다. 예컨대 “우리는 기부를 하는 기업, 즉 착한 기업입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광고가 꽤 생겼다.

 

기업 측에서 진화 심리학이나 인간 본성론에 대해 명시적으로 생각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기업의 도덕성을 부각하는 것이 장사에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에 그런 광고를 하는 것 같다.

 

 

 

나는 “손님은 왕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명시적으로 전달하는 기업이나 가게를 본 적이 없다. 만약 그런 메시지를 명시적으로 전달한다면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것이다. 이것이 인지도가 낮은 기업이나 가게에는 큰 이득으로 이어질 수 있다.

 

때로는 이 요인(특이한 일을 함으로써 얻는 광고 효과)이 위에서 말한 칭찬, 지위, 도덕성과 관련된 요인들을 압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