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발견한 하나의 기사가 내 머리 속에 잔상으로 남는다.

1979년 부마민주항쟁 당시 사망자 3명이 발생했다는 국가문서가 드러나면서 진상규명 요구와 함께 공론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가칭 부마민주항쟁 특별법 제정을 위한 경남연대(이하 부마경남연대)는 18일 발족회의 자료를 통해 "지난 4월 국회가 공표한 부마항쟁특별법에 대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심사보고서에는 공개된 국가문서에서는 처음으로 ''부마항쟁 사망자 3명''을 적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마경남연대는 "이 내용의 출처는 부마항쟁 당시 부산에서 유언비어 유포를 이유로 포고령 위반으로 구속된 노승일, 김영일의 항소 이유서에서 ''마산소요사태시 학생 3명이 죽었다'' 등의 발언을 한 사실과 부마항쟁 10주년 기념자료집에 실린 자료로서 부마항쟁 당시 지역신문의 비보도 취재자료 등이다"고 설명했다. 
(기사 전문은 여기를 클릭)


518학살과 비교한다면, 부마항쟁의 격렬함에 비해 사망자가 없었던 그 이유를 나는 아크로에 다음과 같이 기술한 적이 있었다.

훗날 해병대 사령관을 역임한 박구일은 부마사태에 선두 투입된 해병대 7연대 연대장이었고 그는 현장에 투입된 해병대원들에게 이렇게 지시한다.(*4)


"시민들이 때리면 맞아라. 돌을 던지면 맞아라. 어떠한 경우에도 시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말라. 단, 어떠한 위급한 상황에서도 총은 빼앗기지 말라"

 

당시 현장에 투입된 한 해병 장교는 자조적으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시위 진압 훈련을 받은 공수부대와 전경들에 비해 우리는 그런 훈련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다가 상부의 그런 지시를 받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몸으로 때우는 것"


출처(ref.) : 정치/사회 게시판 - 518 학살 현장에 해병대가 있었다면 - 피노키오님과 whataday님 멘트에 대하여 - http://theacro.com/zbxe/?mid=free&search_target=title_content&search_keyword=%EB%B6%80%EB%A7%88%EC%82%AC%ED%83%9C&document_srl=578305
by 한그루



나는 상기 글을 쓰면서 '518 학살 현장에 해병대가 있었다면'이라는 전제를 하면서 '직업군인의 직업윤리'를 들어 518학살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고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광주민주화항쟁의 역사는 상당히 달라져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또 다른 판단인 '만일 부마항쟁에서 사망자가 발생했다면 직업군인의 직업윤리와는 별개로 독재정권은 부마항쟁에서 끝이 났을 것이고 따라서 518학살의 처참함은 역사 속에서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30여년이 지난 다음에야 말이다. 그 후의 진행이 어떻게 되었는지 기사가 검색이 되지 않아 알 수 없지만, 나의 또 다른 판단의 전제인 '만일 부마항쟁에서 사망자가 발생했다면'는 비록 틀렸지만 바뀐 전제를 적용해도 결론은 '정치적 판단에서 맞다'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3명의 사망자 주장'을 유언비어라고 통치권에서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왜, '3명의 사망자 주장'을 유언비어라고 판결했을까? 하나의 역사적인 흐름이 완성이 된다. 바로 순교자 정치.



물론, 당연히 한국 민주주의 투쟁사를 폄훼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이런 나의 생각은, '프랑스 혁명이 발생했을 때 바스티유 감옥에는 정치범이 꼴랑 한 명'이라는 호사가들의 조롱과는 다른 것이다. 그러나.....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자.



만일, 마산 앞바다에서 김주일의 시신이 떠오르지 않았다면 419혁명은 이승만 독재정권의 종식을 이끌어냈을까? 역사에 가정이라는 것만큼 싱거운 것은 없다지만 나의 질문에 '그렇다'라고 단호하게 대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순교자'가 있어야지만 민주주의가 진일보되었던 한국 민주주의 투쟁 역사 속에서 '순교자'는 각 시대의 민주주의 투쟁의 아이콘으로 자리잡고 있다. 박정희 독재정권에서 '오적'이라는 시로 독재정권에 항거했던 '시인 김지하'는 자신의 투옥 생활 중 '민주주의의 순교자'가 될 것을 걍요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주장 속에서 김태일 열사 역시 '순교자의 행렬의 한사람'에 불과하다는 주장까지도 제기되고 있다.



진실이 어디에 있던 간에 만일.... 이한열 열사의 죽음이 없었다면 619항쟁에 이은 629항복이라는 것이 역사 속에서 존재했을까? '그렇다'라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을까?



우연이던 우연이 아니던 '누군가가 죽어나가야만' 민주주의가 진일보되었던 한국 민주주의 역사를 고찰하면서 한국 민주주의는 '순교자의 정치'에 의하여 발전되었다고 하면 한국 민주주의 투쟁 역사를 너무 폄훼하는 것일까?



사실, 이런 순교자 정치의 원조는 대한민국 독재 정권 하에서 민주주의 항쟁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일제시대에도 있었다. 바로 '류관순 누나'의 '옥 속에 갖혔으며 만세 부르다 푸른하늘 그리며 숨이졌데요'라는 동요에서 보듯 '류관순 누나'의 '순교'는 한국 민족주의 역시 '순교자 정치'에 의하여 고취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류관순 누나는 옥 속에 갖쳐 숨을 거두었다는 '알려진 역사적 사실'과 달리 류관순 누나는 일제 통치권에 항쟁한 것에 비하면 '오히려 일제에 의하여 관용이 베풀어졌다'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잠깐 짚고 넘어가자면 흐강님은 '류관순 누나'의 일부 역사 교과서에서의 홀대가 '한국 개신교에의 반발심'에 의하여 그렇게된 것이라고 주장하셨는데 사실은 정반대이다. 일부 개신교 세력과 박인덕 등이 자신들의 친일 의혹을 덮기 위해 류관순 누나를 필요 이상으로 미화, 칭송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류관순 누나에 대한 사실이 어디에 있던 간에, 3.1만세운동은 33인의 주동자들 대부분이 변절하였으며 그들의 행적은 은폐되고 달랑 '류관순 누나'만 순교자가 되어 3.1운동의 의의가 후세에 전해지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 당시 바스티유 감독에 수감된 정치범은 달랑 한 명'

'33인 중 독립운동 때문에 생을 마감한 사람은 33인이 아닌 류관순 달랑 한 명'



여기서 질문을 하나 던져본다.



518학살의 결과, DJ는 내란음모죄로 사형을 언도받았다. 만일, 그 때 DJ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면? 아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통치권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부마항쟁에서도 '3인의 사상자설 주장'을 유언비어로 통치권에서 단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태우 정권 이후로 발생되는 노동자들의 분신 자살 사건과 시국과 관련된 분신 자살 사건 등은 이런 순교자 정치의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교자 정치의 정점에 노무현의 자살이 위치하고 있다.



물론, 부림사건에서의 당시 노무현 변호사의 고뇌와 활약은 대단한 것이기는 했다. 변호사라는 촉망받는 직업에서 인권변호사로의 전환은 당시 시대상을 고려한다면 중대한 결심을 하지 않으면 안되니 말이다. 그런 것까지 폄훼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DJ의 민주주의 항쟁 운동을 영화화한다면? 과연 관객이 천만이 들까? 아니 천만은 커녕 오백만이라도 들지 의문이다. 왜? DJ는 순교하지 않았으니까. 역으로, 노무현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지 않았다면 영화 변호인 신드롬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가 죽어나가야지만 민주주의가 진일보 했던, 하다 못해 민족주의 정신 고양을 위하여 순교자 정치를 강요했던 것이 한국 현대사의 기술이니까.



그리고 당연히, 이런 순교자 정치를 확대하자면 총에 맞아 죽은 박정희 역시 '죽을 때까지 조국의 번영만을 노심초사했다'는 순교자 정치의 반열에 있은 것이며 '명성황후'나 '안중근 의사' 역시 순교자 정치의 반열에 있는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당시 시대상으로 보아, 순교자 정치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순교자 정치는 국민이 원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비이성, 비지성의 통치권의 비근대성에 연유한 것'이니 그냥 역사의 한 장면으로만 판단하면 된다. 그러나, 영화 변호인 신드롬은 박근혜와 이명박 정권의 폭악적인 통치 행태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많이 꼬진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민주주의 국가이다'라고 자신있게 주장할 수 있는 현대에서 발생했다는 것이다.



즉, 과거의 순교자 정치가 '민주주의를 병들게 한 통치권의 반발'로 발생한 것이라면 영화 변호인 신드롬은 '민주주의 국가의 민주주의 시민들'이 스스로 순교자를 만들어 '민주주의를 병들게 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영화 변호인 신드롬이 한국 사회가 병든 증거라고 주장한 이유이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한국 민주주의가 병들고 있다'는 것이고 어쩌면 영화 변호인 신드롬에 가장 쾌재를 부르고 있는 부류는 바로 '통치권일 것'이다. 마치, IMF 환란 당시 사회적 강자들이 와인잔을 서로 부딪치면서 '이대로!'를 외쳤던 것처럼 말이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