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같이 묻는 것은 분명 우문일 테다.

시제(時制)라는 개념은 언어마다 어떤 것을 기준으로 문법화되어 있느냐, 또 문법요소가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분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국어에서 선어말어미 '-었-'은 사건의 완료, 시간적 과거, 또는 미래에 대한 추단을 표현한다. 하나의 문법요소가 세 개의 다른 시제 개념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 중에서 세 번째 용법은 흥미로운데, 일반적으로 미래 시제를 나타낸다고 주장되고 있는 '-할 것-'이나 '-겠-'과 부분적으로 포개지는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한국어에 엄밀히 말해서 미래 시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종종 있지만, 필자가 할 이야기는 그다지 엄밀한 얘기는 아니니 여기서는 그런 주장에 대해서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더구나 같은 미래를 지시한다고 해도 이 세 가지 문법요소에 의해 나타내어지는 의미는 상당히 다르다. 다음 문장을 보자.

1. 저 마을에는 사람이 많이 살았다.

건전한 언어감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문장의 시제를 통상적으로 '미래'가 아닌 '과거'인 것으로 인식할 것이다. '-었-'에 의해 표지되는 미래 시제는 다른 문장이나 발화 상황과의 상대적 관계가 강하게 존재하는 경우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1번 문장 앞에 한 문장을 더 넣자.

1-1. 정부가 개발 계획을 짜고 있으니, 저 마을에는 사람이 많이 살았다.

근데 이 문장 역시 건전한 언어감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색하게 느낄 것이다. '-었-'의 미래 표지는 의미상 긍정적인 단정보다 부정적인 단정이나 반어적 표현의 경우에서 좀더 잘 발현되기 때문이다. 이 문장을 다음과 같이 수정해 보면 이는 확연하게 다가온다.

1-2. 정부군 놈들이 어제 탱크로 싸그리 밀어 버렸으니, 저 마을엔 이제 사람 다 살았다.

그렇지만, 항상 부정문의 경우에서만 '-었-'이 미래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다음과 같은 예가 있기 때문이다. 즉 이 경우 '부정적'이라는 것은 의미론적인 것이다.

1-3. 너 이 새끼 죽었어.

다음으로, '-겠-'과 '-할 것-'은 둘 다 미래에 대한 추측이나 가능성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유사하지만, 어느 정도의 의미상 차이를 갖는다. 다음 두 문장을 비교해 보자.(이 예는 남기심, 고영근, 『표준국어문법론』, 탑출판사, 2006, 311쪽에서 인용)

2. 내일은 비가 오겠습니다.
3. 내일은 비가 올 것입니다.

여기서 2와 3의 의미는 (미래를 나타낸다고 할 때) 비슷하지만 약간 차이가 있다. 화자의 태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두 문장만 비교해 보면, 2는 판단의 근거가 비교적 강할 때 사용되지만 3은 근거가 좀 약할 때 사용된다. 이제까지의 논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미래 시제의 실현 양상을 관찰할 수 있다.

1. '-었-'에 의한 부정적인 추측
2. '-겠-'에 의한 추측/가능성(근거 강한 편)
3. '-할 것-'에 의한 추측/가능성(근거 약한 편)

사실, 한국어에서 미래를 표현하는 방법의 수가 이 정도에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보조동사 '되다'에 의한 합성 동사 구문,

4. 저 마을에는 사람이 많이 살게 된다.

도 가능한데, '되다' 동사가 앞의 문법요소들과 결합한 다음과 같은 형태도 물론 가능하다.

4-1. 저 마을에는 사람이 많이 살게 되겠다.
4-2. 저 마을에는 사람이 많이 살게 될 것이다.

또, 때로 어떤 보조적 장치 없이 그냥 원래의 동사만으로 미래를 표현하는 것도 제한적으로 가능하다. 이 글에서도 사용되었는데,

5. 필자가 할 이야기는 그다지 엄밀한 얘기는 아니니, 여기서는 그런 주장에 대해서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따위이다. 이와 같이 현재형을 쓰는 상황에서 표현된 '미래'는 엄밀하게 시간적 미래라기보다는 무언가 '앞으로 벌어질 상황'에 대한 추상적인 지시적 의미의 일부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단순하게 미래만을 지칭하는 경우도 있다.

5-1. 너 거기 서, (잡히면/안 서면) 죽는다.

5-1과 같이 조건성이 주어질 경우에는 일종의 상대 시제로서 현재형이 사용되는데, 이와 같은 경우 그냥 미래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 밖에 이런 예도 있고..

6. 너는 이미 죽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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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우는 굉장히 제한적인 사례인데, 화자는 이 문장이 100% 실현될 것을 아는 상태에서 절대적인 확신의 의미로 완료상을 나타내는 '-어 있-'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뭐 이밖에도 동사 자체가 미래의 의미를 가지는 경우도 많고 따져야 할 것도 많지만(대표적으로 이상에서는 청유나 의문, 의지 표현에 대해서는 별로 다루지 않았다. 드물게 쓰이는 '-(으)리-'도 빼먹었고) 한국어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로 어정쩡하게 일단 맺기로 한다. 결론은 별 거 없고, 한국어 미래 시제 표현의 양상이 다양하다 정도 되겠다.



사실 이 글의 본론은 여기부터다. 서두에서도 썼지만, 시제를 분류한다고 할 때 위의 한국어 예처럼 '하나의 시간'에 대해 여러 가지의 시제가 모두 다 다르다고 본다면 어떻게 일반적인 기준에 의거해서 분류를 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서, 시제를 분류하기 위해서는 어떤 문법적 표준이 필요한데, 이 표준은 대개 개별 언어의 문법에 의해 개별 언어마다 다르게 정의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시제의 본질을 '시간 표현'에 있다고 본다면, 시제를 보편적으로 분류하기 위해서 최소한의 기준을 다음과 같이 설정해 볼 수 있다.

(1) 화자의 태도에 관련된 사항(다른 말로 양태modality)은 고려하지 않고, 시간적 개념만을 가지고 분류할 것.

이렇게 보면 분류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 조건을 적용하면 위에서 논했던 한국어의 사례들은 모두 단일한 미래 시제에 포섭되기 때문에 경우가 훨씬 간단해진다. 이런 방법을 다른 경우들에 확장시키면 되지 않을까? 즉, 자연어의 다종다양한 문법이 문제가 된다면, 자연어의 밖에 존재하는 논리어를 하나 구축해서 자연어의 시제를 포섭해 버리면 된다. 이때 좋은 후보 중 하나가 ESR 논리어(가칭)이다.

아마도 언어에 대해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알고 있겠지만, 시제를 분류할 때 라이헨바흐의 ESR 도식이라는 것이 있다. 3점 분류법이라고도 하고, 정확한 용어는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이 분류법의 요체는 가상의 시간 선상에서 E(사건시, 사건이 일어난 시간), S(발화시, 화자가 말하는 시간), R(기준시, 추상적인 문법적 기준 시간)이라는 세 시간적 점, 그리고 시간의 진행을 나타내는 선 연결을 통해 시제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화자나 청자의 반응은 고려에 넣지 않고 순수하게 시간만 계산에 넣는다는 점에서 상당히 간결하다고 할 수 있는데, 바로 이 도식을 이용하면 원래의 물음이 어느 정도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음, 그건 그렇고, 우선 이 분류법에 대해 대략 해설을 해야 할 텐데.. 예로 이 분류법에 따르면 단순미래 시제는,

SF. S,R - E

와 같이 도식화할 수 있다. 근데 그럼,

SF?1. S - R - E
SF?2. S - E,R
SF?3. S - E - R

은 안 되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하나 고려해 보면, 먼저 SF?3은 미래보다는 미래완료 시제의 일부를 나타낸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SF?2는 미래라고도 할 수 있고, 미래 진행상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럼 SF?1은? 미래를 기준으로 해서 그보다 먼 미래를 지시하는 거니까, '후미래' 정도 되겠다. 대충 한국어로 표현해보자면 '-할 것일 것이다'와 같다. 하지만 미래 시제라는 게 기본적으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예상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후미래는 미래보다 더 들어맞을 일이 적고, 따라서 표현될 일도 적어서 문법화되어 쓰이는 언어는 적다.

한 김에 좀더 많은 사례를 들어 보면 좋겠는데.. 우선 현재(P), 과거(SP), 미래완료(FP), 대과거(PP)를 볼 수 있다.

P. - E, S, R -
SP. E, R - S
FP1. S - E - R
FP2. S, E - R
FP3. E - S - R
PP. E - R - S

여기서 먼저 P와 PP, FP는 그다지 문제될 게 없을 것이다. 좀 아리까리한 건 SP인데, 다음은 안 될까?

SP?1. R - E - S
SP?2. E - R, S

이 경우 SP?2는 그냥 과거보다는 현재완료에 가깝지만, 어차피 ESR 도식이란 게 '논리적' 분류이기 때문에 단순과거, 현재완료라는 시제 개념과 일대일 대응을 시키기는 어렵다. 언어에 따라서는 그냥 과거시제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SP?1은 현재 이전 시점에서 준거를 두고 그 이후 일어난 사건을 지칭하기 때문에 그냥 과거보다는 과거미래의 일부이다. 가령 한국어로는 '-할 것이었다'.

그럼 이 ESR 도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시제의 수는 몇 가지일까? 이제부터는 조합론이다. 즉,

1. O - O - O
2. O, O - O
3. O - O, O
4. - O, O, O -

의 경우마다 서로 다른 E, R, S를 배열하는 경우의 수인 것이다. 먼저 4는 1가지고, 2와 3은 각각 3가지다. 1은 3! = 6가지. 그러니까 추상적인 시간만을 고려했을 때 가능한 시제의 수는 총 13가지라는 결론이 나온다. 음, 생각보다 별로 없네?

..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상대시제의 대부분은 두 개의 ESR 도식을 병치해야 더 잘 파악되고, 심지어 그렇게 해야만 파악할 수 있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후자의 대표적 사례로 '과거미래완료' 시제(한국어로는 '-해 있을 것이었다', 영어로는 'would have p.p.')가 있다. 에스페란토는 충실한 단선적 ESR 도식을 따르고 있어서 이걸 그냥은 표현할 방법이 없다. 한국어로는 앞에서 보인 것처럼 어떻게 표현은 가능한데 거의 쓰이진 않는다. 어쨌든, 이걸 ESR 도식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Sent1. E,R1 ――――――― S (단순과거)
Sent2. ―――E―――R2―― S (과거미래완료 중 하나)

와 같이 나타내야 한다. 여기서 Sent1과 Sent2는 시간적으로 엮여 있는 문장군을 이루는데, 이 문장군 하에서 Sent2의 기준시는 R1과 R2 두 가지가 된다. Sent2에서 R2는 R1보다 뒤에 있음으로 상대적 미래를 나타내며, E는 Sent2에서 R2보다 앞에 있음으로 상대적 미래에 대한 완료를 나타낸다. 즉, 과거미래완료가 성립되는 것이다.

이렇게 복합적으로 따지고 들자면 문장군을 엮는 것에 대한 논리적 제한은 없기 때문에 이론상 ESR을 쓰는 논리어가 표현할 수 있는 시제는 무한히 많다. 또 ESR의 시간흐름자 '―'에 구체적 시간을 써 넣으면 예컨대 '내일 미래', '3일 후 미래', '엄청 먼 미래' 따위 시제도 표현할 수 있다.(실제로 이런 시제 체계를 가진 아메리카 토착어가 있다) 다만 3개 이상의 문장이 복합된 시제 지정 문장군은 모든 언어를 통틀어 거의 볼 일이 없고, 추상적 시간만을 표현하는 언어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근접한 2개의 문장으로 구성된 문장군 정도로 계산을 한정하면 충분히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경우의 조합은 다음과 같다.

1. - O, O, O, O -
2. O, O, O - O
3. O - O, O, O
4. O, O - O, O
5. O, O - O - O
6. O - O, O - O
7. O - O - O, O
8. O - O - O - O

여기서 4개의 O에 R1, R2, E, S를 써 넣어서 문장군에서 한쪽 문장이 취할 수 있는 시제의 총 개수를 계산할 수 있다. 1의 경우 한 가지, 2, 3의 경우 각 4가지, 4의 경우 4C2 = 6가지, 5, 6, 7의 경우 각 4C2 × 2! = 12가지, 8의 경우 4! = 24가지. 따라서 총 개수는 75가지가 된다. 여기에 단독으로 쓰이는 경우 위에서 계산한 13가지가 더 있고.. 근데 마지막으로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터키어 등에서 독립적인 시제 범주로 사용되는 초월시제 혹은 금언시제(Gnomic tense)이다. 이건 발화시와 사건시가 완전히 무관계적인 시제이기 때문에 시간선상에 S를 표현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이는 '-E, R-' 정도로 나타낼 수 있다. 이것까지 해서 모두 더하면 R을 2개까지 허용하는 ESR 논리어가 가질 수 있는 총 시제의 수는 89가지가 된다.

위에서 보이는 것처럼 이건 결코 적지 않다. 아마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나중에 내가 인공어를 만든다면 이 89가지를 시제의 기본형으로 삼을 것 같다. 빈틈없는 표현을 추구하는 인공어라면 이렇게 시제 체계를 구성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을까? 물론, 좀 양적 과잉인 면도 있긴 하지만.


p.s.
사실 위의 분류에 R을 제거한 절대시제로서 'S-E(미래)', '-S, E(현재)-', 'E-S(과거)'의 3개를 추가해서 92개라고 셀 수도 있다. 또는 논리적으로 이 시제들이 R이 하나 있는 ESR에 포섭되고, R이 하나 있는 ESR이 R이 2개 있는 ESR에 포섭된다고 보면 76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