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줌 흙을 쥐고 처음인 듯 들여다본다.
흙은 마지막 남은 틀려버린 일을 끝내고
다시 시작할 수 없다는 냄새를 낸다.
썩음의 목마른 소리를,
무너진 아름다움을 들내어 보여준다.
흙은 또 금방 생활을 토해낼 것 같은 창백한 빛,
나는 너무 놀라서 다른 흙을 쥐어보고
또 다른 흙을 쥐어보며 소리쳤다.
이처럼 하얗게 질려 있는 것은
얼마나 많은 슬픔과의 입맞춤 때문이냐!

 

말없는 땅의 한줌 흙은
이미 너무나 강력한 패배에 길들고 말았다.
세계의 씩씩한 사람들은 오고 있지만
흙은 늦었어 너무너무 늦고 말았어.

이성부의 시 <자연> 전문.


고등학교 때 읽고 무척 깊은 인상을 받았던 시다.

이성부의 시는 <벼>나 <전라도> 연작이 유명하고, 저 <자연>이란 시는 별로 언급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전통 농경문화에 고착되어 시대의 변화에서 소외되고, 어떠한 정치적 명분에도 불구하고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갈 수밖에 없는 호남의 비애를 저렇게 절절하게 떠올려준 시는 본 적이 없다.

물론 이것은 내 개인적인 해석일 뿐이다. 이성부 본인은 다른 의미로 저 시를 썼을 수도 있다.

박노해보다도, 김남주보다도, 김준태보다도... 내가 더 사랑한 시인이었다.

좀더 솔직히 말하면 박노해는 가소로웠고, 김남주는 우스꽝스러웠고, 김준태는 좀 안쓰러웠다고나 할까.

나머지 시인들은 잘 모르겠다. 나의 시 읽기는 너무나 일찍 끝나버렸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