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입학식에 갔다 오면서 든 短想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장)

 

지난 월요일(2월 22일)은 아들 입학식 참석차 포항 한동대학교에 갔다 왔다. 한동대는 포항시외버스 터미널에서 택시로 2만원이 나오는 거리에 있었다. 학교 앞을 지나가는 대중 교통이 별로 없으니 학교는 두메 산골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학생들 거의 전원을 기숙사 생활을 하게 하니 자유 분방한 낭만파 학생들은 결코 오고 싶어하지 않을 학교였다. 또한 학교 재단은 돈이 별로 없다고 들었는데, 학교를 둘러 보고, 학교에 대해 들어 보니 과연 궁핍과 알뜰함이 느껴졌다. 한동대에 들어서니 입구부터 ‘하나님의 대학’이라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이 현수막은 캠퍼스 곳곳에 걸려있었다. 학교 중앙에는 교회 겸 강당이 서 있었다. 입학식은 여기서 이뤄졌다. 기숙사를 둘러보고, 학교 소개를 들어보니 듣던 대로 사복 입고, 제 돈 내고 다니며, 부당한 억압은 없는 (기독교)사관학교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한동대의 이런 면모들은 대충 예상하던 대로였다.

 

내가 아들을 한동대에 보내기로 결심한 것은 두어 달쯤 된다. 아내는 진작부터 한동대를 선호했지만, 나와 아들은 그렇지 않았다. 아들 목표는 수능시험 볼 때까지만 해도 SKY의 경제학과 통계학과 심리학과 였다. 내신과 모의고사 성적이 지속적으로 받쳐줬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들은 중1부터 고3까지 대세 상승 기조였다. 그래서 논술도 열심히 준비했다. 그런데 수능성적 받아보니 모의고사 보다 약간 못나왔다. (거의 1등급 나오던 외국어가 2등급 나왔다.) 제 실력의 90~95%쯤 나왔으니 못 본 것은 아니다. 내 고3 때 영어, 수학 실력과 이번 수능 영어, 수학 문제의 난이도를 생각해 보니 요즈음 애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수능 등급 컷에 걸려 (언어,수리,외국어 ALL 1등급이 아니니) SKY 수시에서 실패했다. SKY 아래는 별로 생각을 안 하다 보니 그 대학 군에 수시를 넣을 때는 안전지원(?)을 하지 않았다. 논술도 그리 잘 본 편이 아닌 모양이다. 뚜껑 열어보니 내신과 수능에서 우리 애보다 좀 처지는 애들이 그 대학 군에 많이 붙었는데 아들은 떨어졌다. 수능성적 위주로 뽑는 정시로 오니 좀 더 불리해졌다. 학과를 바꾸어 그 대학 군(소위 2번째 서열)에 지원할까, 학과를 유지하되 3번째 서열(?) 대학 군에 지원할까, 한동대로 갈까, 재수를 할까 등을 검토했다. 주위에서 재수를 시켜 보라는 사람이 좀 있었다. 내신도 최상급이고, 성실하고, 대세 상승기조니 재수 하면 확실히 좋은 곳에 갈 수 있다고 하였다…..

 

물론 나는 그럴 것이라고 확신하지만, 재수를 시키면서까지 이른바 첫 번째 서열 대학군에 넣고 싶지는 않았다. 학교 Brand Value, 네트워크가 별 것 아니라는 것이 내 경험이자 판단이니까. 또 세칭 일류 대학들이 애들을 잘 가르쳐서 업그레이드 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아니까. 또 아들이 학교가 잘 가르치지 않아도, 스스로 방향을 잡고, 자신을 채찍질하며, 자신을 업그레이드 할 정도로 뛰어난 애는 아니니까!

 

어쨌든 아들은 정시 지원에서 세 번째 서열(?) 대학 경제학과에 붙었고, 한동대에도 붙었는데 별 망설임 없이 한동대를 택했다. 나와 아내가 먼저 합의를 보고, 아들을 설득해서 3자가 기쁜 마음으로 한동대로 결정했다.

 

입학식 참석차 대절 버스를 타고 내려가는데 버스에서 잠깐 자기 소개 시간을 가졌다. 수시로 붙은 애들이 많았고, 정시로 붙은 애들은 적었다. 추가 모집 4차에 붙은 애도 있었고, 추가 모집 8차에 붙은 애도 있었다. 입학생들의 성적 편차가 엄청나게 큰 학교로 느껴졌다. 얘기 들어보니 무슨 신앙 간증하듯이-하나님의 인도하심 어쩌구- 입학 소회를 얘기하는 애들도 있었고, 다른데 다 떨어지고 오직 한동대 하나 붙어서 왔다는 애들도 있었다. 독실한 신앙 가족 출신 애들도 있었고, 고3 때 친구 따라 교회 처음 나간 애들도 있었고, 기독교 신앙과는 꽤 거리가 있어 뵈는 애들도 있었다. 대체로 김영길 총장의 책 ‘갈대상자’를 보고 매료됐다는 애들이 많았다.

 

우리 집 책꽂이에도 이 책이 2권이나 있는데, 아내는 두 번을 읽었고, 아들도 한번 읽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읽지 않았다. 주워들은 얘기를 종합해 보니 그 책을 안 봐도 김총장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이 나와 별 차이가 없는 것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신앙의 차이(격차)는 클 것이다. (한동대를 보고 산중에 기도원을 떠 올리지 않고 절간을 떠 올린 것이 내 신앙의 수준이다) 

 

하지만 복음(이른바 말씀)을 자꾸 떠들어 사람을 감동. 감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복음대로 살아서, 복음을 입에 올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감동. 감화시키는 그런 사람이라는 느낌은 뚜렷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좋은 학교, 좋은 교육에 힘쓰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그런데 아들 할아버지는 기독교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데, 그것은 살면서 보니 믿는다는 사람들이 당신 보다 더 욕심 많고 불의하고, 그러면서도 제사 등을 무시하기 때문이란다.)

 

내가 아들에게 한동대를 적극 권한 것은 한동대가 한국에서 드물게도 설립자 및 핵심 운영자들의 생각(철학, 가치, 사상) 내지 신앙을 온전히 구현한 대학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한동대를 선택한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 생각의 중심이 기독교 신앙인지 아닌지-가톨릭, 불교, 원불교, 유교, 자유주의 교육 사상 등-가 중요할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인류의 지혜와 양심을 결합한 그 나름대로의 ‘위대한 사상’을 온전히 구현했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다.

 

내가 알기론 한국의 꽤 많은 대학들은 설립자의 財테크, 稅테크, 지배력 확대의 수단으로 탄생했다. 당연히 교수, 직원, 학생회, 교육 관료 등 나머지 이해관계자들의 (정당한) 견제와 노동조합적 욕망이 얽히고 설켰다. 초발심에 위대한 정신이 흘러도 하류에서는 그 순도와 수량을 유지하기 힘든데 있어도, 초발심 자체부터 오물투성이니 말해 무엇하랴? 삼성, 두산 등 재벌이 운영하는 대학들은 꽤 유능한 CEO출신 경영자(총장)를 세우긴 하겠지만, 그 재벌들의 영혼의 수준을 생각하면 영 미덥지 않다. 한국 재벌들이 일본의 마쓰시타의 절반 수준만 돼도 믿고 보내겠는데…… 한편 우리 가족이 서울 서초구에 오래 살아서 그런지 모르지만 대학이 서울에 있느냐, 지방 산골짜기에 있느냐도 별로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다.

 

내가 한동대에서 느끼는 최대의 매력은 학생들을 한국 사회가 꼭 필요로 하는, 지성과 인성을 제대로 갖춘 사람으로 교육시켜 줄 것 같았고, 아들 역시 학교의 사상과 시스템에 잘 맞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우리 둘째는 전혀 맞지 않을 것 같다) 동시에 별로 유명하지 않는 지방대니 만큼, 겸손은 기본이고, 간판 보다 실력을 숭상할 것 같고, 약간이지만 와신상담의 도전 의지도 살아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살면서 10대 후반의 별 것도 아닌 성취(일류대 입학)가 두고두고 해악(나태와 교만)이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아서 인지, 아니면 이름없는 지방대 출신의 설움을 겪어 보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10대 후반의 아들의 꿈이 온전히 이뤄지지 않은 것도 매력이다.

 

솔직히 아들을 한동대로 보내겠다는 결심의 발목을 끈질기게 잡은 것은, 2009년 5월 말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사태에 낸, 한동대 총학생회의 상식 이하의 논평(성명)이었다. 저런 편협한 애들을 총학생회장으로 당선시키고, 저런 망동을 거침없이 하도록 만든 학생 및 교수들의 성향이 맘에 걸렸다. 그런데 뒤에 들어보니 당시 한동대 학생들 사이에서 거센 반발이 있었고, 또 몇 개월 전 총학생회 선거에서 보수기독교 성향의 후보들이 참패했고, 그 학생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한 (조선일보와 관계가 좋은) 교수가 학교를 떠났다는 얘기를 들었다. 물론 총학생회 선거 결과를 보고 아들을 보내겠다는 결심을 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한동대도 한국 대학생들의 보편적인 상식과 정서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 저으기 안심이 되었다.

 

입학식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지난 30년 동안 참 많은 것이 변했다는 것을 느꼈다. 만약 1980년대 한동대가 있었다면 -한동대는 1995년에 개교하였다- 반역의 역사를 붙잡고 몸부림치며, 제도권 교육, 철학, 가치를 거세게 거부하던 우리 386세대는 한동대 학생들을 코흘리개 내지 고등학교 4학년, 5학년 정도로 취급했을 것이다. 당시 우리가 육군사관학교생이나 경찰대생들을 보는 시각이 그러했다. 또한 그저 학과 공부만 열심히 하는 애들도 덜 떨어진 놈들이라고 치부했다. 당시 나를 포함한 수많은 ‘깨어 있는’ 대학생들은 학과 성적이 나쁜 것을 조금도 부끄럽지 않았다. 아니 성적 좋은 것을 부끄러워했다. 기득권의 상징인 대학 졸업장 자체를 거부한 친구, 선배들도 있었다.(그래서 지금도 대학 중퇴인 친구, 선배가 몇 있다) 그런 내가 기독교 신앙을 철저히 구현하여, 제도권 교육을 확실히 시킬 것 같은 대학에 아들을 보내다니!!!  그것도 한국의 기독교 신앙에 대해 세계적 차원에서 보면 근본주의 내지 보수주의 경향이 강한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망치를 든 사람은 모든 것이 못의 문제로 보인다고, 하나의 편향인지 모르지만 나는 세계를 호흡하면서, 사회역사적 책임을 깊이 의식하고, 그것을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실천하려고 한 사람들의 위대한 힘을 믿는다. 물론 대부분의 한동대 학부모들은 기독교 신앙의 힘을 믿겠지만……

 

나는 한동대가 모든 우수한 자원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서울, 수도권의 흡인력에 쓸려가지 않는 훌륭한 지방대학으로 우뚝 섰으면 좋겠다. 포항공대처럼 빵빵 한 재단이 뒤에 없어도, 위대한 정신과 방법을 가진 학교 경영자들이 신화를 만들면 정말로 커다란 사회역사적 의미가 있을 것이다. 어쨌든 나와 아들은 이 신화창조에 동참하게 되었다. 마침 오가는 길에는 갑자기 봄이 밀려와서 햇볕과 바람이 참 좋았다. 좋은 날이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