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낮에 김연아 선수가 피겨에 출전한다고 해서 벌써부터 몇몇 커뮤니티가 달아오르고 있다. 어느새 한국은 올림픽에서도 10위 안에 드는 동계스포츠 강국이 되어 있고, 모태범 등 비록 올림픽 한정이지만 국민적 성원을 받는 비인기 종목(스피드) 선수들도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는 것 같다. 뭐 올림픽 끝나면 묻힐 확률이 높겠지만. 국가적 관심사와는 별개로, 일상사에서 동계스포츠를 접할 기회는 별로 없기 때문에 그렇거나 말거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그래도 빡빡하게 몰려 있는 유럽/북미 선수들 사이에서 메달 한두 개씩 걷어오는 건 국민적 자부심을 고양시키는 데 효과가 좋은 편이다. 덧붙여 일본과 중국과의 경쟁도.

유럽/북미나 동북아시아 외 선수들은 어디 있냐고? 열심히 하는 선수들을 비하할 목적은 없지만, 어차피 동계올림픽이란 건 부자 동네들 친선경기일 수밖에 없다. 겨울이 없는 나라들에겐 올림픽이라곤 하계밖에 없는데다가 공교롭게도 잘 사는 나라들은 북반구 북쪽에만 몰려 있는 까닭이다.(아, 물론 카자흐스탄이나 오스트레일리아도 메달을 따긴 했다. 이들은 각각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권에서 선도적 국가다) 그러니까 어제 아이스댄스 경기에서 테마로 '인도의 전통 무용'을 들고 나온 '미국' 팀을 보면서, 이 무엇인가 역설적인 상황에 대해 곤혹스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뭐 쓸데없이 오지랖이 넓을 필요도 없으니 이런 얘기는 이쯤 하자.

근데 인도는 그나마 참가라도 했지(개발을 안 해서 그렇지 인도의 경우 고산지대가 많아 약간 경우가 다르긴 하지만), 동남아 쪽 국가들은 이번엔 밴쿠버에 출장을 오지도 않았다. 토리노 때는 한 명을 보냈던 태국조차 결장이었다. 태국 방송국은 그 때 자국 크로스컨트리 선수 쁘라왓(당시 47세)의 경기를 중계했을까. 그는 온 힘을 다해 완주했지만, 실격자나 기권자를 빼면 참가선수 99명 중에 꼴찌(96등)를 했었다.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후 우연히 읽은 기사에서 본 그의 이름은 내 기억 속에서 2006년 태국 쿠데타와 자꾸만 겹쳐서 떠오르게 되었다. 먼 이국 이탈리아 땅에서 동계올림픽이 막을 내린 바로 다음날인 2월 27일, 태국 총리 탁신 친나왓이 기다렸다는 듯이 국회를 해산했기 때문이다.


잠깐 태국 정치사에 대해 해설이 필요할 것 같다- 아마 탁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80년대 정도의 상황부터 출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태국이 가진 복잡한 근현대 정치사에 비추어볼 때, 태국 현대사에서 쁘렘과 찻차이 춘하완의 80년대는 (비록 쁘렘의 전직이 육군 총사령관이었음에도) 전반적으로 상당히 안정된 시기였다. 쿠데타로 이루어진 애매한 상황에서 명망을 통해 집권하게 된 쁘렘은 법률을 뜯어고치면서 문민정부가 들어서기 쉬운 토양을 만드느라 애썼고, 별다른 위협요인이 없는 사회경제 부문은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해 나갔다. 이런 분위기 하에서 88년에 마침내 찻차이 춘하완의 민선 문민정부가 출범한다. 출범 4일 후 옆동네 버마가 8888을 겪은 것에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평화도 잠시, 춘하완이 민간을 중심으로 군부의 요구를 무시하는 정치를 펼친 게 화근이 되어 91년 수친다 끄라쁘라윤 육군 총사령관은 쿠데타를 일으켰고(무려 18번째다!) 찻차이를 퇴진시킨 후 적절한 수순을 밟아 수상 자리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 특수와 냉전기 서방의 지원을 통해 들어온 경제적 부를 토대로 형성된 중산층을 중심으로 해서 쁘렘의 안정기 동안 차곡차곡 쌓여 온 민주화 열망은 이미 임계점을 넘어 있었다. 정국은 극단으로 치달았고, 마침내 수친다의 수상 수임에(물론 쿠데타 후 입바른 말로 정치 불참 약속을 거듭했었다) 격렬히 반대하는 시민들이 참롱 방콕 시장을 구심점으로 펼친 92년 태국 5월 17-20일 민주항쟁('검은 5월')에서 유혈사태가 발생하기에 이른다.(왠지 여기서 92를 뒤집으면 29가 된다는 점이 생각난다) 놀란 수친다는 5월 24일 수상직을 사임하고, 이후 태국에서는 다시 민선정부가 들어선다. 이때부터 군부 불개입 시대는 2006년까지 지속되며, 태국 헌정사상 가장 민주적이라는 97년 헌법 등을 낳는다.(이 헌법은 2006년 쿠데타 후 폐기된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태국은 아시아 경제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휘청거리게 되었고, 1997년 결국 IMF의 지원을 받아들이고 대대적 체질 개선을 단행할 수밖에 없었다. 태국 경제는 이 여파로 한동안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다가 관광산업 호황 등으로 인해 운 좋게 성장률을 어느 정도는 만회하지만, 여전히 금융과 부동산 부문은 가라앉아 떠오를 생각을 안 했고 중소기업들은 죽어났다. 부실한 경제정책의 책임을 물어 2000년 11월 의회의 불신임을 받은 추안 릭빠이 정부는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약속했고, 2001년 1월 6일의 선거로 타이인을 위한 타이(타이락타이) 당의 CEO 출신 당수 '탁신 친나왓'이 경제 살리기를 내걸고 당당하게 수상직에 오르게 된다.

탁신은 주로 북부-동북부 지역을 주요 지지 기반으로 한 포퓰리즘 정책을 이용해 지지를 얻어 냈는데, 당선 이후 타이 민족주의에 포퓰리즘을 적당히 버무린 정치 수완을 보이면서 태국을 이끈다. 당연히 남부의 무슬림 지역 분리주의는 거세어졌고, 탁신 재직기 동안 몇 차례 이곳에서 무슬림 학살이 벌어진다. 그럼에도 탁신은 적절히 말레이시아와 이 문제로 밀고 당기기를 벌이고 몰아치기 정책(대표적으로 '마약과의 전쟁')으로 여론을 휘두르면서 지속적인 지지를 이루어 내고, 또 적절한 국가 통제를 바탕으로 한 경제 정책으로 경제 성장을 이끈다.(당시 제1야당인 민주당 측에서는 이에 반해서 '자유시장경제'를 내세웠다) 이런 배경 하에서 2005년 선거에서 탁신과 타이락타이는 다시 한 번 압도적 지지를 얻으며 재집권에 성공한다. 그러나 계속되는 부패 의혹이 이어지던 중 탁신 일가의 탈세 혐의가 드러나고 2006년 새해부터 본격적으로 반탁신 시위가 거세지게 된다. 이에 탁신은 2월 27일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시행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도입부에서 언급했던 2006년 2월까지의 태국 정치 상황이다.


4월 2일 제1야당인 민주당을 포함한 많은 야당들이 선거를 보이콧한 상태에서 조기 총선이 시행되었다. 결과는 당연히 타이락타이가 90% 이상의 의석을 획득한 압승. 그렇지만 이 선거에서 조직적으로 무효표가 백만 표 이상이나 발생했는데, 태국 시민들이 탁신 정부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였다. 결국 탁신은 민의에 따라 사임 의사를 밝혔다. 물론 좀 사태가 진정되면 돌아오겠다는 속셈이었는데, 마침 헌법재판소가 부정선거로 인한 선거 무효를 선언한다. 근데 탁신이 여기서 어정쩡한 형태로 '총리직에서는 물러나나 타이락타이 당수는 유지'를 천명하고, 제1야당 민주당은 별 대안도 없이 우왕좌왕하며 반대만 해 댔다. 열받은 군부는 마침내 (이제 추밀원에 들어가 존경받는 원로 노릇 하는) 쁘렘의 지지를 등에 업고 쿠데타를 터뜨린다.

이제 상황은 상당히 희극적으로 진행된다. 일단 쿠데타는 선언되었는데 시민들은 별 생각이 없었다. 심지어 가도로 나와서 탱크에 꽃을 꽂고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탁신은 일단 비상사태를 선포해 보지만 별 소득은 없었고(당시 뉴욕에 가 있었다. 탁신 지지계인 군사예비학교 10기는 재빠르게 포위당해 손발이 묶였고) 군부는 손티 분야랏깔린 육군 사령관의 지휘로 빠르게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고 수도를 접수했다. 게다가 그저 쿠데타 승인 기계인 국왕은 이번에도 이틀 만에 재까닥 쿠데타를 승인해 버렸다.

이렇게 되자 탁신은 해외에서 발이 묶이고, 손티는 잠깐 사태 수습(타이락타이 해체 등. 어차피 살아남은 의원들이 모여서 '인민의 힘당'을 만들었기 때문에 지지율 약간 갉아먹는 것 이외엔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탁신도 멀쩡했고)을 맡다가 총선을 시행한다. 이 총선의 결과가 좀 웃긴데, 그렇게 군부와 민주당이 반탁신 운동을 자극했는데도 타이락타이당의 후신인 인민의 힘당이 이겨 버린 것이다. 결국 친탁신계 총리가 집권하고 군부는 적절히 태클 걸어 주면서 손티의 정계 진출을 위한 포석이나 까는 선에서 만족한다. 물론 군부가 이번 쿠데타로 얻은 게 없는 건 아니지만(지원 비용 증가) 그래도 이건 통상 생각하는 쿠데타와는 상당히 거리가 먼 싱거운 난동 정도였달까. 뭐 이후에 자잘한 스캔들들이 터지면서 다시 정권이 뒤집히고 민주당의 아피싯 웻차치와가 집권해서(물론 이 사람은 자유시장주의자) 현재 태국 총리를 맡고 있으니 최종적으로 득 본 건 민주당이긴 했지만.

쿠데타에 이어지는 탁신의 행보도 재미있는데, 이 사람은 쿠데타가 일어나니 영국으로 건너가서 돈(이 사람 원래 재벌이다)으로 맨체스터 시티 구단주 같은 거 하면서 잘 먹고 잘 살았다. 그러다가 잠깐 귀국했는데, 소송 연타를 먹고 반 년 만에 다시 망명길에 오른다. 이후 민주당 정권 하에서 버텨나가고 있는 인민의 힘당의 후신인 타이공헌당을 지원해 주고 있다. 현재 태국에서는 종종 탁신 지지파와 반대파가 치고 받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탁신은 잊을 만 하면 뉴스에 등장해서 "군도 현 정부 퇴진 운동에 동참해줄 것" 운운하며 재쿠데타 운을 띄우기도 한다. 반대파도 별반 다를 바는 없다. 재작년 10월 5일만 해도 탁신이 영국 난민 신청할 즈음해서 참롱이 반탁신 시위대 PAD(민주주의민중연대, 우습게도 성향은 극우다)를 이끌다가 체포되는 일이 벌어졌고(당시 탁신파 집권 중) 정국 혼란이 발생하고 쿠데타설이 나돌았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요즘 탁신 뭐 하나 궁금해서 좀 검색해 봤더니 캄보디아 훈 센 총리하고 연합해서 뭔가 계획하고 있는 것 같다.(참고로 훈 센은 곧 종신 집권하실 분이다. 굽신굽신) 실제로 태국 내에서는 올해 2월 중순경 쿠데타가 벌어진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최근에 유명 영자지인 <더 네이션> 같은 곳에서는 군측을 인터뷰하면서 쿠데타에 대해 물어보는 기사도 났다.(당연히 군측은 그런 거 없다고 했지만) 또 요즘 탁신의 태국내 재산에 대한 압류 판결이 났는데, 이 때문에 점점 더 긴장이 고조되는 중이기도 하다. 태국 쿠데타야 뭐 새삼스런 일도 아니게 되었으니 일어나면 그런가 보다 하겠지만, 어쨌거나 태국의 2월 분위기는 윗동네의 축제 분위기와는 좀 다른 것 같다. 터키 쪽에서도 엊그제 쿠데타 미수로 군 장성들이 잡혀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려 오는데, 이쯤 되면 쿠데타와 올림픽이 뭔가 주기적 친연성이 있는 걸까.



밤에 잠이 안 와서 별 생각 없이 끄적여 본 글입니다. 아, 그건 그렇고.. 이승훈 선수 금메달 축하합니다.

- 오늘 아침에 블로그에 쓴 글인데, 어차피 당분간 다시 닫을 거라서 이쪽에 옮겨 둡니다. 근데 블로그에서 바로 복붙해서 그런지 문단 구분이 잘 안 되네요. html로 br 하나하나 붙이면서 편집했습니다.